페루, 후지모리 사임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11/22 빌 반
정치적 위기와 스캔들로 사면초가에 있던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11
월 20일 멀리 도쿄의 한 호텔에서 페루의회로 서한을 보내 갑작스럽게 사임하였
다.
후지모리는 10년 이상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잔인한 경찰 국가의 수반으로 군림
했다. 그는 분명히 그가 사임을 하러 페루로 돌아갈 경우, 국민의 보복과 정권 내
부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페루의 분석가들은 대부분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그가 이
미 상당량의 개인재산을 국외로 반출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후지모리의 사임소식
은 내각과 가까운 정치적 후원자들로부터 심각한 반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들
은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자신들을 버리고 재산을 붙든 채, 해외에서 사임성명을
발표한 데 대해 충격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를 버렸다”고 페데리코 사라스 총리
는 절규했다.
후지모리는 일본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별거중인 부인
은 페루 대통령이 일본에서 태어났고,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의 아들과 친척들도 일본에 살고 있다.
사임발표 후, 수 천명의 시위대가 리마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기를 흔들면서
“끝났다. 독재가 끝났다”고 연신 외쳤다.
4, 5월에 벌어진 부정선거에 대해 증가하는 압력-특히 워싱턴으로부터-에 직면
한 후지모리는 이미 내년에 사임할 것을 약속했었다. 그는 새로 선거를 실시하고,
이제까지 전례가 없었고, 위헌이었던 대통령 삼선 도전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
나 동시에 그는 페루정치에 있어 주요 인자로, 아마도 의회의 리더로서 그리고 권
력을 이양한다고 하더라도 4년 안에는 대통령으로써 복귀할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운명은 그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인 블라디미르 몬테시노스와
뒤엉켜 있다. 그는 비밀경찰의 수장이며 자주 페루 독재정권의 배후세력으로 묘사
되기도 했다.
몬테시노스가 후지모리를 도와 야당의원에게 뇌물을 주는 비디오가 공개됨으로
써 저항이 거세져 결국 재선거 결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보기관수뇌가 된 전
육군 대위 몬테시노스에 대해 오랫동안 제기되지 못했던 비난과 폭로는 계속되었
으며, 그가 엄청난 부패와 유혈탄압에 책임이 있다는 혐의가 불거져 나왔다.
뇌물 비디오 테이프에 뒤이어 또 하나늬 테이프가 공개되었다. 몬테시노스가 비
밀경찰본부에서 열린 파티에서 페루 무장 세력들 지휘관들에게 연설을 하는 내용
이었으며, 거기에서 그는 고급 장교들이야말로 후지모리 승리의 대들보라고 칭찬
하는 장면이 나온다.
1970년대에 “반역죄”로 페루 군대로부터 면직되고, 잠시 수감되기도 했던 몬테
시노스는 워싱턴으로 은밀히 가서, CIA와 접촉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
약상 보호 전문 변호사가 되어 돌아왔다.
후지모리의 첫 번째 대통령 선거기간 중 후지모리를 지원함으로써 몬테시노스는
정권 내에서 세력을 확장시켰으며 군부내의 라이벌을 숙청함으로써 페루에서 가장
두려운 인물이 되었다.
한편 그와 미국정보기관과의 관계는 친밀하게 남아있었고, 워싱턴에서 보기에
그는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에서 핵심인물이었다.
몬테시노스가 자동화기를 요르단으로부터 페루군을 통하여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FARC)에 반입하는 국제무기거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에 뇌물 비디오가 등장하였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콜롬비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은 이들(FARC) 때문이다. 또한 비밀경찰수뇌인 그가 스위스, 파나마 그리고
다른 곳에 수천만 달러를 예금해 둔 외국 은행 계좌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몬테시노스는 후지모리가 공식적으로 그가 이끌던 악명높은 국가정보기관(SIN)
을 해산시킨 9월에 나라를 떠날 것을 요구받았다. 그는 파나마로 가서 워싱턴 측
이 보기에 그 이용가치가 다한,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던 독재자들과 그 앞잡이
들을 위한 피난처를 요청했다. 그 후 몬테시노스는 지난 봄, 두 번의 대통령 선거
사이에, 페루 군사령관들과 함께 쿠데타를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하는 바
에 따르면 육군은 이 계획을 지원했지만, 해군, 공군, 경찰 사령관들은 그렇지 않
았다고 한다.
10월에 몬테노시스는 페루로 돌아왔다. 파나마 정부가 그와 파나마 마약 거래상
과의 관계와 마약 거래에서 그의 이전 동업자와의 제휴 가능성을 놓고 그를 기소
하려하자 도망쳐온 것이 분명하다.
군용 공항을 통해 페루에 들어와서, 그는 여전히 군사령관들을 배후조종하는 것
을 즐기고 있었다. 후지모리는 개인적으로 전 비밀경찰수뇌를 잡아들이도록 했지
만 정작 몬테시노스는 경찰과 군대의 보호 하에 안전하게 있도록 하고, 다른 한편
으로는 그들에게 그 이웃들만을 수색하게 명령하는 광대짓을 벌였다. 후지모리가
그의 사임 편지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고의 후원자이며 예전에 마약거래로
번 돈을 세탁하고, 마약 거래상을 보호했으며, 고문,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른 몬
테노시스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단죄받아야 한다.
한편 후지모리는 그가 의회에서 주도권을 잃고, 권력이 인민행동당(PA)이라 불
리는 페루의 전통적인 보수 부르주아 당이 이끄는 야당 연합으로 넘어 갔을 때,
페루 내에서 그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보았다. 의회지
도자들은 후지모리에게 투표가 부당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선언하고 계획된 대통
령선거를 치를 것을 요구했다.
동시에 몬테시노스에 대한 부패 수사로 대통령이 연루되어 있음이 점차 드러났
다. 몬테시노스 사건을 맡았던 특별검사는 페루검찰에 후지모리의 마약거래 연루
가능성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살해된 콜롬비아 마약상인 파블로 에
스코바르의 형제인 로베르토 에스코바르의 증언을 인용하여 메데인 코카인 카르텔
이 1990년 후지모리의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 백만 달러를 후원하였다고 말했다.
에스코바르의 폭로에 이어 페루 신문은 10년 전 후지모리 선거운동본부의 혜성
같은 등장을 상기시켰다. 첫 번째 선거와 전통적인 보수당 후보인 작가 마리오 바
가스 요사와 대적한 결선 사이에 후지모리 선본은 갑자기 그가 나라를 횡단하는
데 사용한 전용 제트기를 포함한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였다. 그때 사람들은 페루
대기업의 상당수가 이 정치신예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추측했었다.
한편 수감된 한 페루 마약상은 몬테시노스를 킬로 당 700달러를 받고 마약을 반
출시킬 수 있도록 해준 페루 마약상 보호책의 핵심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돈을 내
지 않은 이들에게는 무자비했다.
또한 후지모리가 외국에 남기로 한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4천명의 노동자,
농민, 학생의 실종이 페루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공식보고의 공개를 들 수 있다.
보고서는 빛나는 길(마오주의 농민 게릴라 집단-옮긴이)와 투팍 아마루 게릴라 운
동에 대한 작전에서 자행된 대량학살, 살인, 고문에 관한 기소로부터 안보군의 면
책을 보장하는 포괄적인 특사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후리모리를 이어갈 정권의 성격은 결코 분명하지 않다. 그의 두 번째 부통령
(첫번째 부통령은 이미 사임했다.) 리카르도 마르케스는 후지모리는 페루로 돌아
올 것이라고 변호하는 한편, 자신은 정부를 구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 선거 때 후지모리의 라이벌이었던 알레한드로 톨레도를 포함한 야당인사들
은 마르케스는 후지모리가 이긴 부정선거에 의지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정통
성있는 정부를 구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대신 그들은 국회의장이 임시정부
를 꾸리고 대통령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편 페루 군부 수뇌들은 “헌법에 적법하게 당선된 당국의 결정에 절대적으로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경찰국가적 통치라는 최근의 페루 역사는 심각한 정치적
불안정과 국가를 좌우하는 사회적 양극화와 결합되어 있으며, 그러한 약속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워싱턴은 오랫동안 미국의 남미 개입의 핵심발판이었던 후지모리 정권으로부터
권력이 질서있게 이양되기를 바랬으나, 페루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통제할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정치적 위기가 야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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