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때아닌 인기
[더 네이션] 12/18 존 위너
2000년 12월 8일 : 20년전 오늘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뉴욕시 서부 72번가 다코
타 아파트 앞길에서 존 레논에 총을 발사해서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나마 남
아있던 60년대의 유산에 끔찍한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그러나 존 레논은 아직 살
아있다. 단지 이제 백발이 되어버린 그의 팬들에 의해서나, 비틀즈를 발견한 젊은
세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놀라운 방법으로 말이다.
핵심 사례 : 지난 8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공화당 전국 당대회에서 딕 체니가
당의 부통령 후보지명을 수락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설 때, 악단은 존 레논의 “함
께 가자(Come together)”의 빠른 버전을 연주하였다. <애비로드> 앨범의 수록곡인
이 노래는 “늙은 대머리가 오네”(체니 또한 거의 대머리이다)로 시작해서 “한 가
지, 내가 너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뿐”으로 이어지는, 부
자들의 세금 감면과는 아주 다른 것을 뜻하는 60년대 정서를 담고 있다.
체니는 아마도 존 레논이 “함께 가자(Come together)”를 1970년 캘리포니아 주
지사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과 대결한 티모시 리어리를 위해 만들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리어리는 이 노래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레논은 닉슨이 그
를 추방하여 반전운동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던 대통령 선거 중인 1972년에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무대에서 라이브로 불렀다. 레논은 제목을 “함께 가자, 전쟁을 멈
춰라, 지금 당장!(Come together–stop the war–right now!)”로 바꿨고, 청중들
은 열렬히 환호했다.
민주당도 전당대회에서 레논의 노래를 연주했다. 그들은 “상상해봐(imagine)”를
지미 카터에 대한 헌사 주제곡으로 사용하였다. 지미 카터와 그의 부인로잘린이
망치질을 하고 어린 아이들을 쓰다듬고 있는 비디오가 돌아가는 동안, 이지리스닝
으로 편곡된 레논의 노래는 미국 사상 최초의 개종 침례교도 대통령에게는 정말로
적절치 않은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노력하면 어렵지 않아/우리 아래 지옥이 없
고 우리 위에 다만 하늘만 있는 세상을 상상해봐” 라는 가사가 삭제되어 나갔다.
“상상해봐(imagine)”는 유토피아 찬가이다. 유토피아적 상상력은 전통적인 노동
계급 사회주의의 실리적인 정치와는 구별되는 60년대 신좌파 사상의 근간이었다.
“상상력에게 권력을(Power to the imagination)”은 68년 5월 벽에 쓰여졌던 핵심
구호이다. 오늘날 이 나라는 “1-800-imagine으로 전화하세요”라고 사람들에게 호
소하는 간판이 도처에 널려있다. 나는 전화를 걸어봤지만 “소유가 없는 세상을 상
상해봐(Imagine no Possessions)”라는 존 레논의 노래는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AT&T의 무선 서비스가 나올 뿐이었다. “무선 전화를 업그레이드 하시려면 1번을,
신규 서비스에 대한 문의는 2번을, 주문에 관한 문의는 3번을 이 설명을 다시 들
으시려면 4번을 눌러주십시오.”
넥시스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보면 레논의 “소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라
는 노래를 패러디한 다양한 제목들이 나온다. “토지세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
(Imagine no estate tax)”라고 하는 공화당 의원, “더이상의 레지스 생방송 토크
쇼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Imagine no more Regis)”라고 말하는 텔레비젼 비평
가, “컴퓨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Imagine no Computers)”라고 말하는 과학기
술 혐오자, 그리고 “네이더가 없다고 상상해봐(Imagine There’s no Nader)”라고
의견서의 제목을 단 민주당의 전문가.
레논의 가사는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서 인쇄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타임]지가
집권 초반기에 빌 클린턴을 표지로 썼을 때, “당신은 혁명을 하고 싶다는 거군요
(You say you want a revolution)”라는 해설이 붙어있었다. 2년 후, 공화당이 상
원을 장악했을 때, [뉴욕타임즈]는 R. W. 애플 Jr.의 “당신은 퇴보를 하고 싶다는
거군요(You say you want a Devolution)”라는 제목의 논설을 게재하였다. 몇 달
전에 조 리버만이 사회보장 민영화에 대해 마음을 바꾼 직후, [뉴리퍼블릭]은 “당
신은 점진적 변화를 하고 싶다는 거군요(You say you want a Evolution)”라는 머
릿기사를 실었다.
그러한 제목을 쓴 필자들은 레논이 폭력을 옹호하는 급진적 학생들을 비판하면
서 68년 5월 파리에서의 봉기에 대한 대답으로 “혁명”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었던 듯하다. 그는 이 노래를 두 가지 버전으로 취입했다. “빠른” 버전
의 싱글앨범이 먼저 나왔다. 그것은 1968년 5월30일에 녹음되어 시카고 민주당 전
당대회에서 벌어진 경찰 폭동 직후인 8월에 미국에서 발표되었다. “당신은 혁명을
하고 싶다는 거군요(You say you want a revolution)”로 시작하여, “나는 빼줘
(count me out)”라고 끝나는 이 노래가 발표된 후, 급진적 언론들은 모두 분개하
였다. [램파츠(Ramparts)]지는 이 노래를 “배신”이라고 지칭했고, [신좌파평론]은
“가엾은 프티부르주아의 공포의 외침”이라고 평했다. 반면 [타임]지는 비틀즈가
“전세계의 급진 활동가들”을 “시원하게”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두 번째 느린 버전
은 2개월 후 <화이트> 앨범에 수록되어 발표됐다. 레논은 이번에는 “나는 빼줘
(count me out)”라는 말 다음에 “나도 끼워줘(count me in)”라는 말을 덧붙였다.
후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두 가지 말을 다 썼는데 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일년 후에 그는 “권력을 민중에게(Power to the People)”라
는 노래를 불렀다.
레논의 “평화에 기회를 줘봐(Give Peace a Chance)”는 1969년 워싱턴 기념관에
서 50만의 반전시위대가 함께 불렀다. 그러나 이때부터 수정주의가 나타났다. 내
가 기억하기로는 그 당시 전투적인 친구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회를 줘봐
(Give 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a chance)”라고 바꿔 불렀다. 그리고
나선 가끔씩 뜬금없이 “전쟁에 기회를 줘봐(Give War a Chance)”란 말이 튀어나왔
다. 주류 언론인 [포린 어페어즈]는 미국의 지역분쟁 개입을 논박하는 에드워드
러트웍의 1999년 기사 제목으로 이 말을 붙였다. 뉴스쇼 프로그램인 프론트라인은
1999년 발칸에 대한 이야기를 같은 제목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P. J. 오루크는 베
스트셀러가 된 그의 책 제목을 {전쟁에 기회를 주자}라고 붙였다. 반면에 다른 사
람도 아닌 트렌트 로트는 상원에서 코소보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평화에 기회를
줍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피스 소프트웨어(www.peace.com)라는 이름의 회사는
“평화에 기회를 줍시다”를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다.
레논의 가장 열정적이고 비틀즈 이후의 개인적 색채가 강한 노래인 “신(God)”
(그의 첫 번째 독집앨범에 수록된 매우 느린 곡)은 “나는 비틀즈를 믿지 않는다(I
don’t believe in Beatles)”라고 끝을 맺는다. [뉴욕타임즈]는 9월에 전면을 할애
하여 필립 라이더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아트포럼]의 창간 편집인으로 스물
세줄에 걸쳐 자신이 패러디한 가사를 나열하였다. 앤디 워홀이 먼저 나온다. “나
는 앤디를 믿지 않는다(I don’t beleeve in Andy)”. 그리고나서 “나는 해링을 믿
지 않는다(I don’t beleeve in Haring)”, “나는 피스츨을 믿지 않는다(I don’t
beleeve in Fischl)”, “나는 쿤스를 믿지 않는다(I don’t beleeve in Koons)” 등
등 19명의 인기 예술가들이 이어진다.
몇몇 레논의 가장 기억에 남는 가사들은 아직 특집기사의 제목이나 다른 방식으
로 사용되지 않았다. “찰나의 업보가 네게 닥칠거야(Instant Karma’s gonna get
you)”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고, 넥시스에 따르면 “나는 해마라네, 우후후(I am
the walrus, goo-goo g’joob)”라는 구절을 사용할 방법을 찾은 사람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런 두드러진 예외를 제쳐두면 결론은 분명하다. 존 레논은 갔지만 그가
죽은 지 20년 후인 지금, 그의 말과 생각은 여기저기 모든 곳을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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