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장> ⑪ 한국철도차량 통합설립 이후

철차공투위 전면파업 두 달여…”잘못된 구조조정 정부가 책임져라”

무능한 경영진 직장폐쇄에다 “노조파업은 아무런 압력 안돼” 망발

경기도 한국철도차량(대표이사 정훈보) 의왕공장을 찾은 때는 지난 12월4일 저녁. 노조사무실을 빼고는 불빛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공장안은 무능력한 경영진과 재벌지주사들의 억지에 질려버린 듯 스산하기조차 했다. 경영진은 12월1일부로 직장폐쇄 공고를 하고 노조사무실을 뺀 공장전역에 단전단수조치를 취했다.

전면파업 56일째. 저녁9시를 넘긴 시간이지만 노조대표자, 교섭위원 등 대책회의는 끝날 기미가 안보인다. 옆 건물 탈의실에는 상경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2백여 조합원이 낮에 있었던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 집회를 마친 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난방은 물론이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조합원들은 침낭하나로 밤을 이긴다. 10월23일부터 시작된 상경투쟁에는 창원, 부산, 의왕 등 세 공장의 모든 조합원이 조를 나눠 1주일씩 참여하고 있었다. 상경투쟁조에 편성되지 않은 의왕공장 조합원들은 하루건너 출근해 공장을 지켰다.

대우중공업 의왕지부 이영길(44) 수석부지부장은 “우리 요구는 단협·노조·고용을 승계하고 잘못된 구조조정을 시정하라는 것”이라며 “노사와 주주사, 채권단, 산자부, 노동부 등이 참가하는 TV공개토론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빅딜 1호’ 사업장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한국철도차량(주)은 99년 7월1일 공식 출범했다. 재계가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의 하나로 철도차량 3사 일원화를 발표한 뒤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이 각각 40:40:20의 지분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했다. 물론 정부는 이 빅딜·구조조정에 산업자원부를 중심으로 깊숙히 개입했다.

한국철도차량 소속 현대정공노조(위원장 조동원), 대우중공업노조 의왕지부(지부장 김유신), 한진중공업노조 부산지부(지부장 이래환)는 철도차량공동투쟁위원회(철차공투위)를 꾸려 올해 단·임투를 벌여왔다. 철차공투위는 △구조조정 관련 합작계약서 등 각종 합의서 공개 △주주3사와 노조 사이에 체결된 3승계 인정 △노사합의 없는 공장분할·폐쇄·이전계획 철회 △임금 11만5천3백37원 인상 등의 공동요구안을 확정하고 경영진과 교섭을 진행했다.

사실 노조간부나 조합원들도 이처럼 파업이 길어지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대법원 판례는 영업양도의 경우 노조·단협·고용을 포괄적으로 승계하도록 하고 있고, 실제로 구조조정 사업장 20여곳 중 세 가지를 승계하지 않은 곳은 단 한곳도 없기 때문이다.

대우중공업 김유신 지부장은 “경영진은 파업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며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산업자원부가 부실화를 진두지휘한 책임을 지고 사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훈보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창원공장 1백50명, 의왕공장 98명의 고용승계를 여전히 거부하고 있었다. 노조간부들이 구조조정 관련 각종 합의서 공개를 요구하는 것도 주주3사가 단협·노조·고용승계를 못하도록 계약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태도는 그 자질을 의심케 하고 있다. 11월30일 가정통신문에서 경영진은 “직장폐쇄의 목적은 노조간부들과 일부 노조원의 그릇된 생각을 고치려는데 있다”며 “철도차량은 보통 납기가 1년 반에서 2년이나 되는 품목이라 파업이 회사에 아무런 압력이 되지 않는다”고 염장을 질렀다.

다음날 철차공투위 노조원 5백여명은 과천을 향했다. 교섭단과 산업자원부의 면담이 잡혀있고 정부청사앞 집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우중공업 김종문(46)씨는 “직장폐쇄는 공권력을 투입하려는 수작”이라며 “물량수주는 뒷전에 미뤄놓고 부실경영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 7시30분 회사를 나서 정부청사앞에서 공무원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준 김씨는 “정부가 빅딜을 해놓고 이제 와서 오리발 내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7차 상경투쟁에 참여한 창원 현대정공노조 배영교씨는 “조합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여성조합원 12명이 이번 상경투쟁에 함께 했다”며 “‘사원을 내 가족처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회사가 공장을 지키려는 사람을 내쫓고 심지어 전기까지 끊었다”고 배신감을 토로했다.

현대정공노조 조동원위원장은 “회사유인물은 노조지도부와 조합원을 이간질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조합원의 단결력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며 “재벌들이 잇속 챙기는 데만 급급한 게 철도차량 구조조정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이재철 leecc@nodong.org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