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렇다. 우리는 크나큰 위선자다.
[네이션] 12/18 크리스토퍼 히친스
선거가 있기 사흘 전, 나는 한 텔레비전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전 백악관 대변인 조 록하트는 찢겨진 고어-리버맨의 기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나는 그에게 진짜로 뭘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선거인단 투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그것을 자세히
돌이켜 생각해 보지만, 그것이 당시 모든 민주당 지도부가 하던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 투표에 대한 갑작스런 도덕적 강조는 어느 정도 꼴사나워 보인다.
특히 유권자 투표가 모두 산정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가령 역사적으로
부재자 투표가 친공화당쪽이었던 캘리포니아에서는 백만 이상의 부재자 투표가 있
었다. 이 수는 아직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12월 16일까지 결정될 필요도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표들은 유권자 투표에서의 고어의 우위를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런 일이 플로리
다는 물론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내 가족 중에는 세 명이 캘리포니아 등록 유
권자이다. 올해는 이들 모두가 우연찮게도 부재자 투표를 했다. (그리고 모두 네이
더를 찍었다.) 11월 29일 현재 그들이 던진 표는 총투표수에 계산되지도 않고 있다.
그래서 부시든, 고어든, “투표 산정”이나 “제대로 된 개표”에 관해 어리석은 그 진
부함을 다른 식으로 또 늘어놓는다면, 나는 투표권을 포기한다.
몇몇 바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현재의 이 위기야말로 우리가 훌륭한 체제를 가
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떠들 때마다 나는 이 권리를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느
낀다. 제발. 제발(Por favor). 제발(Je vous en prie).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전
혀 그런 것이 아니다. 오직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엄청난 편견이 체제 안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집계되지 못한 캘리포니아의 2백만 표는, 몬타나나
델라웨어였더라면 두 명의 상원의원을 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조그만 백인 중심
주 둘이면 일리노이나 뉴욕보다 표가 많아지게 된다. 또한 합법적으로 참정권이
박탈된 워싱턴DC에서였다면 이 표들은 그 어떤 상원의원도 뽑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캘리포니아의 부재자 투표가 전부 부시에게 갔더라도 이 표들은 여전
히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배타적인 고어측 선거인단에 의해 “대표”될 수밖에 없었
을 것이다. (그래서 공화당은 이러한 부당함에 항의하지 않았던 것이고, 선거인단
투표야말로 이제 그들의 마지막 남은 최선의 희망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민주주
의 국가들은 미국이 두 냉혹한 후보들의 다툼에 있어서 “거리 충돌”은 피한 것을
그리 존경스러운 눈초리로 보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뿐이다. 이거 봐, 우리가 가
진 체제가 어떻든지 간에 미국녀석들 것만큼 처참하게 타락하지는 않았는데. 진정
으로 다원주의적인 체제였다면, 지금쯤은 고어-네이더 연립정부가 선택가능한 카
드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유력 집안 출신의 이
세 정치인 둘이 동시에 왕좌를 향해 돌진하면서 또한, 새로운 법률팀을 고용하기
위해 자신들의 후원 기업들에게 다시 접근하는 것만큼 어처구니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 위선자(Pretender)는 텍사스 주지사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
고 있으며, 한 부위선자(Vice Pretender)는 코네티컷주 상원의원 자리를 물러나지
않고 있다.
행운과 용기-천금같은 행운과 네이더의 용기-의 결합을 통해 우리는 플라톤적인
이상적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두 기성 정당 후보는 패배했다. 헌법상 선거
인단 투표에서 동률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두 후보 모두 패배하고, 신뢰를 잃
은 꼭두각시들이 서로 이겼다고 주장하는, 완전히 말도 되지 않는 이 때,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그저 주관적 방식으로서, 그토록 과장스레 이야기되고 있는
“수작업 재검표”가 힘을 얻고 있지만, 객관적인 방식의 기계 검표 역시 똑같다는
점만을 지적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미국인들을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미 정
해진 선택들로만 몰아가려 했다. 브로워드군의 냉혹한 행정관 수잔 건스버거는 맨
처음, 민주당 후보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기표된 표는 모두 고어의 표라고 선언했
다. 이것은 많은 플로리다 주민들이 “둘 중 누구에게도” 표를 던지지 않거나, 네
이더에게도 그들의 표를 나눠주고 싶어했다는 잘 알려진 사실을 단호히 부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기간 내내 제3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직면한 장애나 좌절
감을 묘사하는 단 하나의 글도 보지 못했다.)
1906년 힐레어 벨로크는 “총선거에 관하여”라는 자신의 시에서 이렇게 썼다.
특권 위에 자리 잡고 선 저주받은 권력
(그리고 여자들을 따라, 샴페인을 따라, 다리를 따라 온다)
부서지다 – 민주주의는 다시 힘을 얻는다
(이것은 다리를 따라, 여자들을 따라, 샴페인을 따라 온다)
하지만 위선자들의 결투를 관전하기 위해서는 그들 사이에 많은 원칙적 문제들
이 걸려 있다고 상상하는 게 좋다. (플로리다의 “파시즘 바람”에 대한 사기꾼 제
롤드 내들러(뉴욕 8구역 출신의 공화당 하원의원-옮긴이)의 이야기가 괴기스럽지
만 않았다면 재미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부르주아 민주
주의의 모든 기제들이 전혀 무용한 이유로 내동댕이쳐지면서 이러한 자기도취는
야만주의로 거의 바뀌었다. 단 한 주 동안,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무원의 성실성,
심지어는 군대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공격받았다. 완전히 쓸데없는 것이었다. 이
점을 항상 기억하자. 이들 두 패거리는 권력을 쥐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며, 그것
을 휘두르기 위해 자신들의 체제 전체가 실질적으로 썩었다고 묘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내내 그들은 어떻게 이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
(미국인들이 종종 자신들의 나라를 부르는 말-옮긴이)인지 외쳐대는 것이다.
두 주 전만 해도 나는 민주주의에 관한 국가적인 논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을 만치 낙관적인 글을 썼다. 거기에 민주주의를 어떻게 “경축”할 것
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논의까지 말이다. 그 때 이
후, 이 방 안 모든 공기는 기성 정당들과 그 수하들에 의해 오염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산물인 소프트머니의 수혜자인 언론 역시 투표용지의 천공과 관련없는
그 어떤 주제나 질문들도 다루지 않음으로써 천박스러운 처신만을 보였을 뿐이다.
그런 것은 “경마” 정도의 조롱거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군 단위의 슬롯머신을 운
영하는 하급 게임위원회 정도의 처리방식에 가깝다. 다시 한번, 유권자, 시민들은
투기꾼과 소비자로 격하되었다. 더욱 신뢰를 잃고 약화되고 있던 정당 체제는 가
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다시 살아났다. 더욱 안좋은 것은 논쟁이 끝나고, 나름대로
질서있는 분할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직 “치유 과
정”일 뿐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양당 체제”의 복귀를 환영할 것이다. 마치 그
것이 예정된 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시길. 그리고, 신
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