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때 10가구 가운데 1가구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 호주였고, 전체인구의 최소 20%가 사노비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원장 심윤종)은 8일 조선시대 중·후반기인 1606년~1888년 사이 작성된 경상도 단성현(현재의 경남 산청지역, 당시 인구 30여만명)의 호적대장 20여개를 시기별로 정리·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한가구 또는 단기간의 호적연구는 있었으나, 한 행정구역 의 호적장부 전체를 장기간에 걸쳐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결과를 보면 17세기초 이 지역에서 여성이 호주로 등록된 가구는 최고 14%로 `여성 호주제’가 일반의 추측과는 달리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쪽은 “출가한 딸이 친정 근처에 사는 경우도 상당수 조사됐다”며 “이는 남성중심의 유교적 사회질서가 뿌리내리기 이전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유교적 질서가 자리잡은 18세기 후반에는 여성 호주의 수가 3~4%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17~18세기에 걸쳐 호적에 `아버지를 모른다’ `아버지가 없다’고 기재한 경우도 평균 30~40%에 이르렀다. 연구소쪽은 “당시 노비의 수는 양반 집안의 부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였다”며 “양반이 여자노비를 통해 낳은 서자를 사노비로 삼는 비정한 사회상이 엿보인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선 후기(18세기 후반) 들어 호적에 나타난 남성의 숫자가 여성에 비해 급감하는데, 전문가들은 이는 군역 및 세금기피 등 당시 부패한 사회상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금의 주민등록원본에 해당하는 호적대장은 조선시대 정부가 호구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방행정단위별로 3년에 한번씩 작성한 것으로 해당주민의 직역(직역)과 나이, 부계 선조 등에 대한 인적사항을 담고 있어 신분제 및 가족제도의 변화과정과 인구변동, 부역관계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사료다.
연구팀의 김건태(39) 교수는 “통계적 개념이 희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조선시대 중앙정부의 통계와 지방의 호적대장에 기록된 각종 수치가 비교적 정확히 일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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