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주둔군 지위협정 개정은 ‘속 빈 강정’을 넘어 ‘독이 든 강정’이다

–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 합의 규탄 성명 –

1. 28일, 송민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과 프레드릭스미스 미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는 6년째 끌어온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에 합의·가서명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며 서로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들의 회견을 바라보는 온 국민의 심정은 허탈과 분노, 바로 그것이다. 겉으로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처럼 꾸몄으나 본질적으로는 개선한 것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우리의 자주권을 더욱 교묘하게 왜곡, 유린하는 장치를 새로 만든 까닭이다.

2. 먼저, 형사재판관할권을 포함한 사법권 조항이 우리의 눈을 할퀸다. 정부와 미국은 ‘미군피의자의 신병인도 시점을 기소 단계로 조정’한 것을 대표적인 개선 조항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범죄를 줄이고 또 줄여 고작 12가지로 한정함으로써 주한미군 범죄 가운데 70%이상을 차지하는 교통사고 등 그 밖의 대다수 미군 범죄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기소된 미군 피의자에 대한 우리 당국의 심문권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기소 후 신병인도’가 지니는 사법 절차적 의미를 겉치레로 전락시켰다. 또한, 이미 유죄를 선고받아 형을 집행 당하는 미군에 대해 미군 측의 ‘집행 중지 요청’이 있을 경우 그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조항을 새로 삽입함으로써 우리 당국의 사법권을 더욱 축소하였다. 게다가, ‘공무상 업무’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을 미군 측이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조항, 우리 당국이 일단 시작한 재판의 경우에도 미군 측이 재판권 포기를 요구할 때에는 즉각 자동적으로 재판 자체를 포기하도록 규정한 조항 등은 글자하나 고쳐지지 않았다. 이처럼, 형사관할권 및 사법권에 관련한 개정 결과는 ‘속 빈 강정’을 넘어 ‘독이 든 강정’을 방불케 한다.

3. 또한, 환경에 관련한 조항 역시 우리의 귀를 아프게 한다. 정부와 미국은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법령을 존중한다’고 합의한 것을 ‘환경 조항’ 신설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첫째, ‘법령의 준수’가 아니라 ‘법령의 존중’ 이라는 수사학적 기만으로 일관한 점 둘째, 오염된 환경의 원상회복 의무와 원상복구를 위한 비용부담 책임을 강제하지 않은 점등을 고려할 때 유명무실 개정의 절정을 드러낸다.

4. 한편, 주한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우리 노동자의 노동3권과 미군들이 사용하는 농산물 검역에 대한 조항 역시 겉과 속이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70일이던 냉각기간을 45일로 축소했다고 해서 단체행동권을 금지하는 애초의 효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더구나, ‘군사상 필요’라는 해고의 자의적 요건은 개정 조항에도 서슬이 퍼렇게 살아있다. 공동검역 역시, ‘미군용 식료품 공급이 지연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언제든 미군 측의 필요에 따라 개정 조항을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였다.

5. 우리는 이번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 결과를 보며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날로 증가하고, 더욱 흉폭해지는 주한미군의 범죄, 독극물 방출과 기름 유출 등 전국에서 마구 자행되는 주한미군의 환경파괴에 가슴 졸이는 우리 국민의 절박하고 절실한 요구는 그들에게 아무 런 관심거리도 아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거짓의 말 잔치를 벌여 터져 오르는 반미감정을 잠시 누그러뜨리려는 것이지, 주한미군이 지금껏 저지른 온갖 행악과 횡포를 줄이거나 막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개정 결과에 분노하는 온 국민과 함께 재개정을 위한 투쟁에 굳건히 나설 것이다.

6. 정부는 이번 개정 결과를 두고 일본과 독일의 사례와 비교하며 자기들의 잘못을 가리려한다. 우리는 그러한 발상이 완전한 허상이며 환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독일과 일본에 주둔한 미군은 그 나라 군대의 지휘권을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에 주둔한 미군은 60만 우리군대의 지휘권을 휘두른다. 왜 개정 협상을 6년이나 끌어야 했는지, 그처럼 어렵사리 도달한 ‘개정’이 왜 ‘개악’으로 되고 말았는지, 그 질문의 답은 한, 미 사이의 군사적 예속관계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주한미군이 이 땅에서 자행하는 범죄, 환경파괴 등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민족 자주의 회복, 평등한 한미관계 정립에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불평등 조약의 불평등 개정을 아프게 지켜보는 오늘, 우리는 주한미군 철수, 민족 자주를 향해 온 국민의 선두에서 국민과 더불어 굳건히 싸울 다짐을 다시 새긴다.

2000년 12월 29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대변인실

(문의 : 사무실 02-845-0615 장대현 011-9707-5435 강형구 011-9942-2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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