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통신/

조합원들은 비보다는 눈이 낫다고 했다. 파업전야부터 이틀째 밤에만 내려 추위를 더하고 신발을 적셔 밤잠을 설치게 한 비가 삼일째인 오늘(20일) 눈으로 바뀌면서 조합원들은 그나마 비보다 낫다고, 분위기도 잡힌다고 안도와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다.

게다가 아침에 들은 타결임박 소식과 가합의안 발표로 들떠있던 차에 내린 눈이었기에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비록 가합의안이 정규직 조합원들의 요구를 1백%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었고, 계약직 동지들의 요구는 완전히 배제된 것이었지만 우리의 준비상태와 그로 인한 앞으로의 투쟁을 예상할 때 현재 상태에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파업전야 때만 해도 우리가 진짜 파업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한 조합원은 극소수였다. 그만큼 지도부와 조합원들의 파업준비는 부실했다. 그래서 파업전야의 밤샘투쟁은 더욱 춥게 기억된다. 이런 준비부족과 추위, 그리고 거듭되는 악천후 속에서나마 꾸준히 대오가 지켜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고 강화됐기에 우리의 기쁨은 남다른 것이었다. 비록 그동안 파업대오를 이탈하려는 일부 조합원들의 눈치작전과 철통같은 사수대의 방어로 인한 약간의 불화가 있었지만, 그것만 빼고는 순탄하게 상승곡선을 그리는 양호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가합의안에 대해 정부가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고, 우리는 우리를 기쁘게 해준 그 눈을 맞으며 다시 협상이 결렬됐다는 슬픈 소식을 접해야 했다. 대오는 일순 술렁이기 시작했고, 지도부가 재파업의 의지를 강력히 표명함으로써 그 술렁임에 제동을 걸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추위와 함께 지속되는 회사쪽의 탄압 속에서 다시 한번 힘겨운 파업을 벌여야 한다는 부담으로 분위기는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하고 있다.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문화공연을 대하는 조합원들의 반응에서 그런 조짐은 역력히 드러났다. 예전만큼의 환호나 함성, 그리고 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일찍 기뻐한 것이다. 그렇게 쉽게 정부와 회사가 우리 요구를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흔들기 전술’에 대한 대비도 했어야 했다.

여하튼 지금은 파업 3일째 밤. 꺾이는 사기를 다시 한번 추스러야 한다.

그나마 바로 내일로 금융노조의 파업이 앞당겨졌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정부를 압박할 투쟁전선이 좀 더 확대될 것이고, 이는 우리 투쟁에도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에 매달리기에는 우리가 한가하지 않다. 조합원들의 꺾인 사기를 반전시킬 유일한 방법은 파업대오를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것뿐이다. 아직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을 설득해야 한다. 이미 현장활동가들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에게 전화를 걸고, 그것으로 모자라면 아침 출근길에라도 찾아가 바지춤, 치맛자락을 잡고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절박한 행동방침이 현장토론을 통해 즉시 마련됐다. 파업현장의 분위기가 꺾이느냐 올라가느냐는 이런 헌신적인 활동에 달려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하기에 우리는 무조건 파업대오를 늘려야 한다. 필사의 결의로.

서동현 (한국통신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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