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겨울과 싸우는 사람들

최근 들어 온도계의 눈금이 영하 10여도를 오르내린다. 출퇴근길에 매서운 추위가 옷속을 파고든다. 그래도 난방장치가 돌아가는 실내, 아니 사방이 벽으로 둘리어 추위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하다. 정부와 자본, 그리고 추위의 합동공세에 맞서 힘겨운 ‘겨울투쟁’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태전부터 ‘동투’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다. 올해도 어김없이 찬 겨울을 투쟁열기로 녹이는 사람들이 많다.

“천막안에 있으니 천국이 따로없죠”

한국통신노조 파업3일째인 지난 20일, 명동성당 본당 뒤켠에 자리잡은 천막안에서 만난 조 조합원 고미란씨(44).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두 아들을 두고 시부모까지 모시고 산다는 그는 파업 첫날부터 농성에 참가했다. 고씨는 “집행부도 그랬겠지만 나부터도 파업에 실제 들어갈 줄 몰랐고, 기껏 3∼5천명 모였다가 17일 저녁이나 18일 새벽에는 집에 갈 줄 알았다. 그러나 당장 목을 조이고 들어오니 조합원 동력이 살아나 파업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노조 파업에 한번도 안빠졌다는 고씨는 “그동안은 늘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파업을 하면서 그간의 투쟁은 실패한 게 아니라 이번 투쟁을 끌어가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첫날은 무척 추웠는데도 농성 준비를 제대로 안한 탓에 고생을 좀 했지만, 지금은 천막안에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며 웃는다. 언제까지 할 수 있겠냐고 묻자 “우리는 모두 1주일 이상 버틸 각오 돼 있다. 그 이상 넘어가면 성탄절인데, 성당이 행사는 치러야 할 것 아니냐”면서도 “물론 더 간다해도 우리 조합원은 견딜 수 있다”고 힘있게 말했다. “이렇게 기분 좋게 파업하는 건 처음”이라고 그이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대우자동차노조 조합원들은 지금 2명중 한 명은 내쫓겠다는 경영진의 구조조정안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노조 최종학(33) 대변인도 착찹하기는 마찬가지다. ‘노조는 뭐하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가 하면 자포자기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18일 공청회에 1천여명이 참가하는 등 현장분위기가 살아나서 다행이다. “이번 투쟁은 자동차산업의 미래와 직결돼 있어요. GM에 팔리면 현대, 기아도 결국 무릎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임금 몇 푼이 아니라 2,3세를 위해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해외매각 반대투쟁 과정에서 해고됐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그가 야무지게 말한다.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그게 진실이 아니면 아닌거죠.”

철도차량 사장이 바뀌고, 대우지분이 현대로 넘어가는 게 확정적인 등 큰 변화가 일고 있는 가운데 대우중공업노조 의왕지부 파업현장에는 이대우(36) 홍보부장도 있다. 이부장은 “조합원들의 파업열기가 여전히 뜨겁지만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면도 있다”며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많은 조합원이 사태를 주의 깊게 관망하고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지난 11월 회사쪽이 타워크레인부서 46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한 뒤 한양공영 창원지부 조합원들은 순환상경투쟁을 벌여오다 지금은 매각추진에 따른 자산실사를 막기 위해 창원에 대기하고 있다. 박동신(36) 지부장은 생계 대문에 교대로 출근하고, 쉬는 날에는 일감을 찾아 여기저기 전전하는 조합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회사쪽은 삼미특수강 사례를 참고해 교묘하게 나오고 있다. 노조는 정리해고가 위장된 자산매각으로 보고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지난 20일 법원의 파산확정선고를 받은 대아합섬 노조원들은 공장사수를 위해 모두가 공장안에 대기중이다. 그러나 퇴직금을 즉시 지급한다는 회사쪽의 약속 때문에 직원의 절반정도가 사직서를 쓰고 나간 상태다. 노조 최영술(36)위원장은 정부가 제3자 인수를 추진할 것으로 보고 소액채권단과 함께 공동투쟁을 모색하는 한편 1월부터 본격적으로 투쟁이 벌여나갈 계획이다.

지난 7일 (주)아림 사장은 볼보기계코리아에 계약포기를 요청했다. 노조를 설득해 해체할 수 없다는 그 이유. 그 노조 이영철(33) 위원장은 12월12일 철야농성에 들어가 전조합원과 함께 출퇴근선전전, 주민선전전을 계속하고 있다. 아림직원 44명 가운데 16명의 조합원이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노조는 퇴직금에서 1인당 2백만원을 투쟁기금으로 결의한 상태다. “우리는 7~8년이상 일해왔고, 우리의 요구는 볼보가 우리를 정규직화하라는 것입니다” 이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소극적이던 사람까지 함께 투쟁”

12월15일 정오 금감위가 있는 여의도 보람증권빌딩 앞. 추운 날씨에도 보험사 지급여력기준 철폐와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에 참가한 현대생명노조 임아무개(33)씨. 지난 3월 한국생명과 조선생명이 합병한 현대생명은 1년도 안 돼 퇴출위기에 내몰렸다. 한국생명은 96년부터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몇 차례 인원을 줄여왔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바라던 구조조정은 올해만 두 차례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3백여명이나 나갔다. 고위직은 무사하고 임씨 같은 영업관리쪽 여성노동자들만. 그렇게 쫓겨난 고졸 여성노동자들을 뽑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대부분 전업주부로 남거나 어렵사리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얻을 뿐이다. “별로 적극적이지 않던 남자 직원들도 집회에 이렇게 많이 참석했다는 건 이제 막다른 골목이라는 얘기죠. 그런 와중에도 윗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이 집회 참석을 방해했다니 너무 슬퍼요.” 임씨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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