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사회포럼인가?
세계사회포럼(www.forumsocialmundial.org.br) 노엄 촘스키
편집자주: 1월 25-30일간 세계 자본가와 정치인들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축배를 드는 동안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전세계 사회운동 세력들이 모여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합니다. 올해부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과 같은 시기에 매년 개최하기로 한 세계사회포럼은 세계화 저항블록의 가장 큰 연례행사가 될 것입니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인간개발을 촉진할 경제정책의 수립 △풀뿌리 조직화의 국제적 전략 수립 △WTO,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민주화를 위한 제안 △다국적기업의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력 △빈곤과 기아를 근절하고 환경을 보호할 지속가능한 발전 제안 △성차별, 인종차별 반대 △원주민들의 토지와 문화 보호 등'([진보정치] 31호에서 인용)입니다.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또다른 소개로는 “참가비 2천5백만원 사교클럽과 국제민중연대”([진보정치] 31호), “세계를 움직이는 질서는 민중에 의해 만들어져야”([한겨레신문] 1/16) 등을 참고하십시오.
2차대전 이후 국제경제의 통합(“세계화”)이 증대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이는 전간기(戰間期)의 쇠퇴를 역전시키면서 대체적으로 측정해 볼 때(가령 세계경제의 규모에 비교한 교역량) 1차대전 이전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전후의 통합은 두 국면을 통과하였다. (1) 1970년대 초까지의 브레튼우즈 시기와 (2) 규제 환율과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라는 브레튼우즈 체제 해체 이후의 시기. 보통 “세계화”라고 부르는 것은 두 번째 국면이다. 두 번째 국면은 제3세계 대부분, 그리고 1990년 이래 인도나 동유럽의 “이행기 경제”에 대한 “워싱턴 컨센서스” 노선에 따른 구조조정과 “개혁”이라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과 결부된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한 선진산업 사회 자체에도 동일한 판본이 적용된다. 두 국면은 두드러지게 구별된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첫 번째 국면을 산업 국가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두 번째 국면인 “세계화 시기”는 표준적 거시경제 조치(성장률, 생산성, 자본 투자 등)의 전세계적인 상당한
퇴보와 불평등의 증대로 표상되는 “납기(leaden age)”라 부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노동자 대부분의 임금이 정체하거나 하락했고 노동시간은 극적으로 증대되었으며 복지 및 지원 시스템은 감축되었다. “황금기” 내내 사회적 지표는 국내총생산을 뒤따랐다. 1970년대 중반 이래 사회적 지표는 꾸준히 쇠퇴하여 최근 대부분의 세밀한 경제 연구에 따르면 40년전 수준에 이르렀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자유무역”의 확대로 묘사되지만 이는 사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무역”의 상당 부분은 기업내 이전, 외주(outsourcing) 등의 수단을 통해 사실상 중앙관리되고 있다. 아울러, 이 시기 전체의 미국 경제의 핵심 특징인, 위험과 비용을 사회하기 위한 국가부문에의 의존 확대와 더불어 경제 도처에서 기업들 사이의 전략적 결연과 과점을 향한 강력한 경향이 존재한다. 국제 “자유무역” 합의는 자유화와 보호주의의 복잡한 조합을 내포하고 있으며, (제약업을 필두로 한) 많은 중요한 사례들에서 거대기업들로 하여금 공공부문의 실질적 기여로 개발된 약품에 독점가격을 부과함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얻도록 만들고 있다. 두 번째 국면에서 단기 투기 자본 이전의 엄청난 확장은 정부들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선택지를 급격하게 제한함으로써 정치체제가 민주적인 경우에조차 국민주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무역” 구조는 1차대전 이전 시기와 매우 상이하다. 이제는 상당 부분이 부유한나라들로의 제조업 유입으로 구성되며 그 대부분은 기업내부 거래이다. 생산을 이전하겠다는 단순한 협박과 더불어 이러한 선택지는 노동대중과 행정민주주의에 대한 또다른 강력한 무기이다. 현재 등장하는 체제는 사회, 경제, 정치적 삶에 관한 결정이 점차 사적으로 집중된 무책임한 권력-제임스 매디슨의 기억할만한 구절에 의하면 “정부의 도구이자 압제자”로 2세기 전에 그가 생각한 민주주의에 위협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기업 중상주의”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