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도 할말 있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더니 직장 구하기가 수월찮다고 넋두리를 하면서 “안되면 학원 강사나 학습지 교사해야지 뭐”한다.
신문 광고며, 생활 정보지 구인란에 하루가 멀다 않고 눈에 띄는 것이 “학습지 교사 구함”이니 이해가 안되는 바도 아니지만, 학습지 교사를 갈곳 없어 가는 막판 따라지나, 마음만 잘 먹으면 아무나 다하는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여간 괘씸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대우 안해주고, 배운 사람들은 배운 사람대로 찬밥신세니 관절 디스크에, 신경성 위염에 몸버리고 마음 버리는 학습지 교사의 아픔은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그래도 노조에서 이런 지면이나마 내주며 하소연을 해보라니 짧은 글 실력이지만 고맙게 생각하며 몇 자 적어본다.
9:00 1분도 늦으면 안된다.
“두 번만 지각하면 바로 해고”, “1분만 늦어도 바로 찍히는” 회사의 인정머리 없는 협박이 아직 6개월차 신입에게는 꽤 먹히는 법이다. 어제 진행모임 준비로 3시까지 컴퓨터에 앉았더니 아침에 눈이 퉁퉁 부었다. 밥맛도 없고, 제일 애먹이는 3팀을 오늘을 어떻게 또 달래가며 수업할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특히 오늘은 독서지도가 있는 날. 만원버스에, 두꺼운 책을 예닐곱권씩이나 지고 들었으니 손잡이를 잡을 수가 있나. “아가씨 바짝 들어가 꽉 좀 잡으소” 고함소리에 정말 눈물난다.
10:00 샘, 전화 해봤어요.
매주 한번씩 하는 진행모임. 일주일에 한번인데 어떠랴 싶지만, 수업준비에, 학부모 면담 준비, 진행모임 준비까지 정말 교사는 머리가 터져나간다.
2시간동안 열심히 이야기하다보면 도움도 되지만, 주로 결론은 “팀에 따라 다르더라”는 말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아이들이 잘 따라와야 좋은거고, 아이들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누구나 아이들 잘 가르치고 싶지 않은 교사가 있겠야만은 이론만으로 안되는 것이 가르치는 일이다.
마치고 후다닥 식당에 내려가려니 “선생님, 00아파트 전화 돌려봤어요. 할 만한 사람들이 있던가요”하는 지부장의 말이 목구멍에 콱 걸린다.
12:30 아줌마, 아무거나 빨리 주세요
“아줌마, 아무거나 빨리 되는거 주세요” 1시 30분 수업에 맞추려면 15분내로 후다닥 밥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마친 편이다. 3개월전만 해도 밥 안먹고 택시 탔는데, 이제 어느정도 배짱이 생겨도 밥을 꼭꼭 챙겨먹는다. 안먹어서 아프나, 먹고 체해서 아프나 위장병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6시까지 아이들과 씨름하려면 뱃심이라도 있어야하니까.
1: 30 그만 두고 말지
7살때부터 글짓기를 시작한 이 팀은 1년째에 접어들면서 태도가 아주 엉망이다. 수업내내 글쓰기 싫다고 엎드려 있는 녀석, 뭘 물어도 ‘모르겠는데요”로 일관하는 녀석, 말만 하면 눈물바람인 녀석, 그래도 게중에 옆에 붙어앉아 “선생님, 선생님” 하는 녀석이 하나라도 있기 망정이지. 1시간 30분 만에 목이 쉬고, “그만 두고 말지”하는 생각이 저절로 난다.
3:00 선생님, 우리 애 많이 늘었어요
어제 그렇게 전화를 돌렸는데 두분 어머니 밖에 안왔다. 이달에도 회비를 내 돈으로 먼저 넣어야한다. 아이들은 엉망인데 비해 어머니들은 욕심도 많고, 우리 아이가 실력이 늘었다고 좋아하신다. 그래도 한달 하고 아이 실력 안는다고 교사 바꿔달라는 어머니들에 비하면 묵은 정이 고맙다. 한달만에 하는 면담이나 사실 할 말도 별로 없다. 한달만에 변하는 아이는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30분 후에 후다닥. 30분만에 다음 장소로 가려면 또 택시다.
6:00 어머니, 여기 **글짓기인데요
4시, 2학년 수업 하나 더 하고, 드디어 집에 온다. 집에 와서는 책가방 놓기가 바쁘게 전화통에 앉는다. 아침에 지부장님 말이 걸려서 지난 주 학교 앞에 가서 아이들 꼬드겨 받아온 전화쏘스를 꺼내놓는다. “저, 어머니 여기는 **글짓기”인데요, 몇마디 하기도 전에 “바쁜데요”하고 끊는다. 그래도 “전화 번호 어떻게 알았냐, 귀찮게 좀 하지 마라” 하는 모진 소리는 듣지 않아 다행이다. 한 30분 하다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7시 30분 수업을 간다.
7:30 몸이 고된 게 낫지
6학년 짜리 남자 둘을 앉혀놓고 달래고, 협박하면서 수업을 하고 있으면 엄마가 불쑥 문을 열고서 “니 똑바로 안 하나”, “우리 애가 너무 못 쓰지요”하고 공공연히 수업방해다. 말은 아이에게 하지만, 교사보고 똑바로 하라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럴 때 나는 직업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낀다. 몇 번이나 몸이 고된 게 낫지 생각하면서.
9:30 솔직하게 쓰라고?
집에 오자마자 이번에는 컴퓨터 앞이다. 내일 면담이 두 개나 있어서 평가표를 8장이나 써야한다. 잘하는 아이는 쓸 말도 많지만, 못하는 아이에 대해서는 작문을 해야한다. 아이에게 솔직하게 쓰라고 가르치는 일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벌써 수십장도 더 썼건만 아직도 2시간 이상을 잡아먹는 고된 노동이다.
11:30 오늘도 무사히
대충 마무리를 하고, 일어서려면 나와 같은 신세의 직장 동료가 어김없이 하소연하는 전화를 한다. 들어보지 않아도 즐거운 이야기는 없고, 누가 탈퇴하는 이야기, 아이가 수업시간에 뛰쳐나간 이야기, 엄마들 때문에 언짢은 이야기다. 이럴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동지애를 느낀다. 다음날 수업준비 하다보면 이럭저럭 1시가 넘고 “오늘도 무사히”하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
누구나 6개월이 되면 고비가 온다는데 솔직히 나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도 없이 바빠 조합활동 할 시간, 사람 만날 시간도 없고, 조합에 특별회비 낼만큼 월급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가르치는 것만 하면 좋을 텐데, 과외 업무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용직에도 적용되는 근로기준법도 우리에게는 남 일이다.
하지만 아마 내가 이곳을 떠나는 일이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그이유는 말썽 많고, 매일같이 속을 빡빡 긁어놓는 우리 아이들에 대해 아직도 나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노동자는 제일 무식하고, 돈 못 버는 사람들이지요.”하던 녀석이 어느날 “선생님, 노동자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지요. 노동자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지요.’하고 아는 체를 할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르친다는 것의 단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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