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주의자들, 놀라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0/1 베르나르 카생

신자유주의적 세계 전체가 시끄러운 의심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융시장과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추진하는 형태의 세계화가 -끊임없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되

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시장주의는 이미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

기금(IMF)에 반대하는 성공적인 대규모 저항들에 의해 흔들렸다. 이번 니스에서의

시위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었다. 적들과 같은 전략을 취하면서 반(反)세계화

운동은 국내의 투쟁이 국제적 연대와 합의에 기반을 두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세계화는 비가역적이고, 불가피하며, 정치 평론가 알랭 밍크에 따르면, “은혜”

이다. 모든 분야의 자유시장주의 석학들은 10년도 넘게 우리들에게 그렇게 말해오

고 있다. 온갖 색깔의 경제 저널리스트, 주필, 평론가, 국제 기관과 정부들은 이

메시지를 반복했다. 그 신조는 여전히 가장 속기 쉬운 형태로 유포되고 있다. 유

럽연합 집행위원인 프레데릭 볼케슈타인은 최근 이렇게 썼다. “나로서는 확고하게

토빈세를 반대하고 건전한 조세 경쟁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 무엇보다도 세계화

라는 선(善)을 믿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볼케슈타인의 평소 조언자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

구(WTO)는 아마 그가 불필요하게 적나라했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실제 행동을 바

꾸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은 최소한 사람들이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더 이

상 허풍치지는 않는다. 최근 세계발전보고서에서 세계은행은 빈곤에 대한 “공격”

의 측면에서 자신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작년 8

월 캔사스시티에서 열린 연방준비은행의 연례 경제 심포지엄에서 전 국제통화기금

부총재 스탠리 피셔는 정부, 기업, 국제기구에 대한 많은 반세계화 투쟁의 정당성

을 인정했다. [타임]지의 주필이며, 세계무역기구의 열렬한 옹호자중 하나인 마이

클 킨슬리는 최근 세계무역기구가 “어떤 정치적 스펙트럼을 막론하고 경멸을 받은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볼케슈타인의 “선”이나 알랭 밍크의 “은혜”란 그저 그런

것이다.

이 두 “전문가”의 말보다 더욱 진지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선의의 비전문가에

게 내줄 시간이 없는 자칭 세계 지도자들을 거리낌 없이 비판하는 영국과 미국의

경제 언론에서 세계화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9월 11일자

[파이낸셜 타임즈]는 “대중과 자본시장의 요구가 마찰을 빚는 한, 정치가들은 선

거공약으로 반(反)기업 대중주의를 약속할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메시지는 확신

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11월 6일자 [비지니스 위크]는 “다국적 기업들이 정부가

약한 나라들에서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거리의 시위대는 이

나라들을 위해 자신들이 직접 규칙을 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경종

을 울린 것은 [이코노미스트]였다. 9월 23일자에서 “시위대가 옳다. 우리 시대에

가장 긴급한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이슈는 제3세계의 빈곤이다. 세계화의 물결

이 엔진이 가동된 것처럼 강력한 것이 사실이지만 되돌려질 수 있다는 것도 옳다.

이 두 가지가 진실이라는 사실로 인해 시위대-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 동조하는

여론층-가 끔찍한 위험으로 부상하고 있다”.

무엇이 이러한 갑작스런 태도의 변화를 일으켰는가? 시애틀, 워싱턴, 멜버른,

프라하에서 벌어진 거리 시위의 성공은 니스에서의 시위로 확인되었다. 세계화가

뒤집힐 수 있다는 경고나 정치 지도자들이 유권자의 “대중주의”에 대한 답으로 그

들이 했던 일이나 자신의 이름으로 승인해준 일들을 완전히 취소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전술적 사고가 작용한다. 시위대를 비판하는 이들은

대규모 반세계화 운동이라는 유령을 되살려냄으로써 각국 정부를 자극해서 이러한

운동을 없애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국제 자본가들의 예언

과는 달리, 이러한 전술적 고려는 그 자체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획적인 조작이 단지 현재의 태도 변화에서 아주 작은 역할만을 했다하

더라도 그것이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적잖이 그들의 투쟁이 성과를 얻

고 있는 것을 본 자유시장 세계화 반대파의 세력을 강화한다. 반대운동의 영향의

성장과 관계없이, 태도 변화에 관한 또 다른 아주 솔직한 설명이 있다. 반세계화

운동이 세계화와 똑같이 위로부터의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정당성을 얻는다는 주

장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다.

미국 금융의 이해 속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완전히 미국 금융의 이해에 부응하여 자본이 전세계적

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

적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서는 돈을 모으고 대학과 언론에 침투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것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어 다른 나라들로 퍼져 나갔다-이 필요하였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알려진 지적 구속복(拘束

服)을 통해 브레튼우즈 기구들로부터 차관의 “은혜”를 입고 있는 수많은 나라들에

강요되었다. 유럽의 경우 -영불해협 건너편의 일련의 정부들(대처 이후 영국 정부

들을 지칭-옮긴이)이 열렬히 신봉한 대처주의에 의해 1980년대 초반부터 추진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강한 프랑” 정책, 1988년의 자본 이동 자유화 결정,

1992년의 마아스트리히트 조약, 그리고 1997년의 예산안정화 협약을 만들어냈다.

이는 또한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공동체 가입 조건으로 강요된 구조조정 계획,

또는 더 포괄적으로는 유럽위원회가 계획하거나 시행한 모든 경제 자유화 조치의

원인이다.

각각의 경우에서 사람들은 당파 정치를 초월했다고 추측되는 국제기구들에 의

해, 그리고 “유일하게 가능한 정책들”을 결정할 권한을 독점한 “전문가의 의견”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조치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한 조치들을

정식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정부들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부과한

“구조조정 조건”이나 유럽연합 참가국의 “의무조항”을 따름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것들을 적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위로부터의 전략은 각국 정부를 책임으로부터

방면하고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제 반세계화 운동은 국제적인

차원으로부터 국내에 이르기까지 위로부터의 길을 취하고 있으며 그러한 전략으로

커다란 효과를 내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내향적 민족주의”, “프랑스 이데올로기”, “민족적 공화주

의”라는 어휘를 동원하는 통렬한 비판자들(베르나르-앙리 레비에서 다니엘 콩방디

를 거쳐 필립 솔레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들의 몇몇 언론계 친구들)은 반세계

화 운동을 자유시장주의를 옹호하고 설명하기 위해 자신들이 채택한 선입견의 구

속복 속으로 구겨넣는 데 실패했다. 주제 보베의 보석금을 미국 농민들이 내주었

다는 사실이나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연합(ATTAC)과 같은 운동들이 자발

적으로 여러 나라들에 퍼져나간 것은 민족주의에 관한 주장이 전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시애틀과 니스에서의 대규모 투쟁은 많은 다른 나라에서 시위대들

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모두들 자기 나라나 직업에 따라

고유한 요구들을 가지고 왔지만 그러한 요구들은 지구적 맥락에 놓였다.

각국의 정책이 국제적 수준에서 정해진 전략에 의해 과잉결정되기 때문에, 저항

과 대안의 마련 또한 같은 수준에서 일어나야 한다. 순전히 북반구의 물인 자유시

장 세계화와는 반대로 새로운 대안은 남반구와 북반구의 열망들을 통합시키는 것

이어야 한다. 1월 25일부터 30일까지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 레에서 열리는 세계

사회포럼(이냐시오 라모네의 글을 보라)의 주요 과제는 지구적 대안의 초석을 마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각국에서 권력관계를 염두에 두고 이러한 대안을 자기 나

라에 맞는 행동으로 바꾸는 것은 포럼에 참가하는 여러 운동과 노동조합, 국회의

원들의 과제가 될 것이다. 새로운 국제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사회적, 환경

적 기준과 같은 이슈들이 통합되고 동시에 분리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속도는 매

우 느리다. 점차적으로 새로운 국제주의는 고립된 투쟁들을 한데 모으고, 상징적

인 회동들에서 만들어진 여러 제안의 공통된 틀을 참조해서 이러한 투쟁에 정당성

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시민운동에 있어서, 시애틀이나 포르투 알레그레는 워싱턴 컨센서스나 예산안정

화 협약이 그들의 정부에게 갖는 것과 같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이제는 자유

시장주의자들의 고뇌를 이해할만 하다. 그들은 스스로 만든 모델에 따라 지어진

구조가 자기들 눈앞에서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들은 이 구조의 효율성

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정책은 다만 그것을 강화시키는 것일 수밖

에 없음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캐나다 정보부(CSIS)가 최근 발간한 “반세계화 –

확산되는 현상”이라는 제목의 훌륭한 보고서조차도 그들에게 다시금 확신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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