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들 모두가 항상 ‘선택’하며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까산드라 버드슬레이
12달여 전 내 남편 존과 나는 직업을 때려치우고, 여행가방을 꾸렸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한국에서의 경험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 우리가 한국에 간다고 말했을 때 모두들 놀라서 소리쳤다.
한국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한국전쟁, 88 올림픽, 수많은 자동차산업과 한국인들이 먹는 김치라는 것에 대해서였다. 우리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한 두서너 권의 책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앞으로 6개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부산에 도착했다.
첫 번째로 우리가 부딪힌 것은 단지 부산 금곡동에 사는 서구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린 학생들은 우릴 쫓아와서는 ‘헬로우’라고 불러댔다. 어른들은 우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아이들은 영어로 말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특히 사람들은 존과 같이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아기들은 우릴 보고 울기도 하였다.
그것은 마치 유명인사나 또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 같았을 것이다.
극복해야 할 것은 언어장벽 이었는데, 운 좋게도 우리 둘 모두는 언어를 좀 배울 수 있었기에 기본적인 인사말과 레스토랑에서 식사주문을 할 줄 알게 되어 이웃들과 한국친구들에게 호감을 샀다.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곧 한국 사람들이 미국식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식 영어는 호주 영어와 발음차이가 있어 호주 영어와 같은 다른 나라의 영어를 이해하는데 별로 쓸모가 없었다.
한국인이 영어를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과 얘기할 때마다 미국식 발음으로 천천히 그리고 명확하게 발음해야 한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심지어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했다는 존의 비서와도 의사소통 하기가 힘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존이 다닌 대학에서는 직업훈련이 있었는데, 한국인 종업원들이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존이 통역자로 활약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국인의 노력부족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가 어떤 곳에 갈 때마다 몇몇의 사람들이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영어 연습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부산에 있는 대개의 서구인처럼 우리가 미국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우리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고 또 존이 선박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 때마다 사람들은 항상 놀라워했다.
우리가 많이 받는 질문 중 또 다른 일상적인 질문은 한국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전에 한국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음식을 정말로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음식을 꽤 즐기고 실제로 일상적으로 먹고있다고 대답하면 질문자들은 늘 놀라곤 하였다.
입안에 항상 군침이 돌게 하는 비빔밥, 불고기, 삼계탕이나 된장국, 존과 내가 인정하는 최상의 술은 우리가 맛봐왔던 막걸리였다. 한편 김치 맛은 우리를 사로잡았다.
곧 이어 아시안워커스뉴스와 접촉하게 된 이후 존과 내가 가졌던 멋진 경험들은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해외에서 온 다른 이들의 경험들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 신체적 가혹행위와 차별들에 노출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알게된 것은 충격이었다. 오늘날 누구도 그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서는 안 된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여자와 남자,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백년도 더 지난 유럽산업혁명 때와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일한다.
심지어는 행운의 나라라고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동자들도 가게에서 이십만 원에 팔리는 옷을 위해서 이천 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공장에서 뼈빠지게 일한다.
왜 그들은 존과 나처럼 세계를 볼 수 있는 모험이나 환상적인 기회를 갖지 않는가?
대신 그들은 자신이나 가족들을 위해 좀더 나은 생활을 하게 할 수 있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존과 나는 현재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데 그곳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유모나 가정부로 온 젊은 여성들을 착취하고 있어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아시안 워커스 뉴스를 보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나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눈감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외국에서 다른 문화를 경험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언제나 선택을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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