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에서 더 당당했던 명효영동지
월드컵 경기장에 당 깃발을 꽂고 응원을!
대전 유성구 지구당 김영창당원
“축구를 잘한다는 거야? 축구회를 잘 한다는 거야?” 김영창 당원을 만나러 가기 전, 대전시지부장이 그를 추천한 이유에 대해 많은 추측이 오갔다. 어쨌거나 인터뷰하러 가는 축구에 대한 기자의 무지함을 내심 걱정하며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짐작대로 요즘 그의 생활은 ‘축구’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야근을 하고 곧바로 사무실로 왔다는 영창 씨는 그러나 축구 동우회에 대해 말하면서 줄곧 피곤한 내색 한 번 없이 즐거운 얼굴이다.
“창당 이후부터 줄곧 생각해 온 것이었어요. 같이 학생운동했던 선배, 당원인데 안 보이는 선배… 다들 어떻게 사나 궁금했죠. 이들을 만날 매개를 찾다가 축구회를 만들게 됐어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창 씨. 그래서 그는 ‘동호회’라 부르지 않고 ‘동우회’라는 것을 강조한다. 대전 유성구 지구당을 만들 때부터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영창 씨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늘 보던 얼굴’들만 볼 수밖에 없다는 점. ‘활동하는 폭과 조직의 틀이 정해져 있구나’하는 생각에 당이 주도하지 않는 다른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러나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실행에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들 다 잡아봤던 마이크 한 번 못 잡고 운전대만 줄곧 잡으면서’ 총선을 끝내고서야 그는 정말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 있어야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시작하자는 생각에서 축구복과 축구화부터 샀죠”
면회를 다녀왔다. 언제나 구치소 가는 길은 왠지 추운 것 같다. 그러나 금새 그녀를 보면 따뜻해진다. 언제 추웠냐는 듯이 말이다.
현재 서울 구치소에는 월곡동 강제 철거 반대 투쟁 과정에서 구속된 명효영 당원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난 달 29일, 그의 첫 공판이 열렸다. 그러나 재판장에 가시지 않겠다는 어머님. 난 공판에 가기 보다 어머님을 뵙기로 했다. 어머님이 일하고 계시는 가게에서 일을 도와드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며칠 전 어머님을 뵈었을 때가 생각났다. 가게로 친척 같아 보이는 분의 전화가 걸려왔다. “효영이 집 나갔어” 하시는 어머님은 금새 “그 철거촌 말이야, 거기서 싸우다가 (구치소) 들어갔어. 정부에서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싸우지. 정당하게 보상해 달라는 것이 잘못이라는 게 말이 돼? 주민하고 함께 싸우다가 그렇게 됐어”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님 말씀처럼 명효영 당원은 지난 12월 4일, 월곡동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다 주민들과 함께 연행되었다. 강제철거가 법적으로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공권력이 투입됐고, 이 를 막다가 구속된 것이다.
그의 공판결과가 매우 궁금하던 나는 주민들과 그의 당당한 재판투쟁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공판 내내 부당하게 피고석에 앉아 있던 모든 분들이 민중생존권을 위해 싸웠다고당당히 증언했다고 한다. 또한 대책위 사무실을 지켜내는 과정에서 있었던 폭력사용만을 강조하는 검사에게 그것이 정당방위였음을 말하였다. 그리고 재개발의 허구와 그에 맞선 투쟁의 정당함을 역설하며, 더 많은 돈을 위해서 버텼다고 매도하는 검사와 방화를 했다고 주장하는 검찰에게 그 주장의 허위성과 조작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런 당당함은 공판을 지켜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힘이 되었다.
명효영 당원은 이 날 징역 3년을 구형 받았다. 2월 14일이면 판결이 나온다. 변호사는 집행유예 혹은 보석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그나마 작은 숨구멍이라도 트이는 것 같다. 월곡동 강제 철거 반대투쟁은 그녀가 나온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 땅의 민중을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강서희/명효영동지 석방을 위한 비대위
명효영 당원 선고공판 : 2월 14일(수) 오전 10시 15분 서울고등법원 3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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