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명퇴위로금을 함부로 탐하지 말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금 지급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노조위원장에게 13억3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성실히 일하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경영진이 날린 돈까지 물어내라는 것이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9월 퇴출금융기관에 대한 부실원인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영부실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대상에 부실경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박강우 장은증권노조 위원장이 포함된 것이다.
장은증권 파산관재인은 지난해 8월 예금보험공사의 지시에 따라 박위원장의 부친과 숙부에 대해 3억2천만원 가압류조치를 내린 데 이어 지난 2월2일자로 박위원장과 신원보증인에게 13억3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반면 이대림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단지 1천만원만 가압류했고, 경영부실의 진짜 주범인 경영진과 대주주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장은증권 부실의 주요원인은 경영진이 부실기업에 대한 지급보증으로 회사에 6백59억원의 손실을 입힌 데 있다. 그런데도 명예퇴직금 지급만을 문제삼고 있는 것은 부실경영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수작이다. 나아가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보장 요구에 미리 쐐기를 박겠다는 속셈이 숨어있다.
단체협약에 근거한 정당한 노사합의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정부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노사합의를 뒤집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이는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처사로서 노조의 존립근거 자체를 뒤흔드는 짓이다. 뿐만 아니라 경영부실의 책임을 경영에 대한 권한이 전혀 없는 노동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도 모자라, 손해배상 책임까지 묻고 있는 것이다.
명예퇴직은 IMF이후 구조조정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 관례화된 것으로 사실상 정리해고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공적자금이 수십조원씩 투입된 은행권도 18∼24개월치 임금에 해당하는 명예퇴직금을 지급한 바 있으며, 대다수 기업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을 실시해온 게 저간의 사정이다. 최근에 법원이 파산상태인 대한상호신용금고 전직원에게 퇴직위로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함으로써 법원도 퇴직위로금 지급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3일 중집에서 이 문제를 주요한 안건으로 다루고 민주노총 차원의 대책위를 구성키로 했으며, 단위노조 대표자 서명작업을 벌이는 등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결정했다. 이는 다른 노조에도 닥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여서 이번에 쐐기를 박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황미 leehm@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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