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민주노총 3기 지도부와 함께
치열한 선거전을 뒤로하고 민주노총 3기 지도부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무총국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바람에 아직은 모든 사업이 본궤도에 접어든 건 아니다. 임원회의가 상집을 갈음하고 있으며, 사무총국 또한 과도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3기 지도부는 수 차례 임원회의와 한 차례의 수련회를 통해 각각의 역할을 나누고, 본격적인 활동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노동과 세계>는 본격적인 활동을 앞둔 3기 지도부를 만나 이들의 포부와 활동청사진을 들어봤다.
<노동과 세계>가 만난 단병호 위원장>
“무엇보다 원칙에 충실하겠다”
권한과 책임 분명히 해 민주노조운동 위상 정립해야
건강한 비판정신 중요…바람직한 위원장은 ‘외유내강형’
주말의 노곤함이 묻어나던 지난 12일(월요일) 아침. 단병호 위원장은 이날도 다른 날처럼 8시쯤 일찌감치 출근했다.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결재서류를 검토한 뒤 조간신문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그는 지금 3기 위원장의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참이다.
“솔직히 1차투표 결과는 충격이었습니다. 3대 집행부 1년 반 동안 운동의 대의를 충실히 지키면서 힘있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표로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좀더 뚜렷하고 분명한 사업을 펼치지 못한데 대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와 새로운 전환을 주문한 것으로 읽고 있습니다.”
‘당선보다는 대의원들의 준엄한 평가를 깊이 새기겠다’던 당선소감은 이렇게 구체화돼 있었다. 그렇다면 눈길을 끌었던 ‘소신껏 일하겠다’는 공약은 어찌될 것인가.
“한 마디로 원칙에 충실하겠다는 것입니다. 원칙과 현실이 부딪히면 당연히 원칙을 선택해야 한다는 거지요. 사실 3대 집행부 때는 ‘무리 없이 가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위상을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임원부터 사무총국 실장에 이르기까지 재량권을 최대한 보장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 단위원장은 사무총국 인사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조직실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정규직 등 미조직 노동자 조직사업을 위한 인력이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현장과 긴밀히 결합함으로써 현장의 생생한 의견이 총연맹 사업에 적극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3년 임기 동안 그는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역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을 맨 먼저 꼽았다. 우선 조직내부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민중진영의 투쟁력을 결합해 강력한 전선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책적 대응은 바깥의 정책역량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뜻을 내비쳤다.
다음으로는 조직을 확대, 강화하는 일. 우선 유기적 계통화와 상하간의 생동감 있는 교류를 통해 ‘동맥경화증’을 치유하고 조직의 통합력을 높일 참이다. 비정규직 등 미조직 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균등처우와 정규직화를 위한 법·제도개선과 함께 조직화를 위한 재정과 인력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정규직 조직노동자의 인식전환’을 크게 강조했다. 인력을 파견하고, ‘5억 기금마련 5만인 선언’ 등에 적극 나설 것을 호소했다.
세 번째는 노동시간단축. 그는 ‘올해를 넘기면 안된다’고 단언했다. 내년이면 선거국면에 휩쓸려 상당기간 어려울 거라는 진단이다. 요구를 100% 관철하기가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나 그는 적어도 ‘총량’에서 노동조건이 후퇴해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네 번째로는 ‘민주노총의 정치적 위상 제고’를 들었다. 우선 명실상부한 ‘민중의 대표체’로 서야 하고, 정치활동 주체를 형성하는 데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재창당의 경우 ‘외연확대’보다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농민과 빈민 등 기층민중의 결합력을 높일 것을 강조했다. 통일운동에서도 민주노총이 주도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계급적 대표성을 확고히 갖는 조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3년 뒤 조합원은 얼마나 늘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구체적 수치를 머뭇거리던 끝에 마지못해 “추세로 보아 70만명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입을 뗐다. 빈말일 망정 ‘1백만 민주노총시대’를 거론할 법도 했지만 그는 진중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확대할 수 있는 3대영역은 비정규-영세사업장, 교사-공무원, 삼성 등 무노조재벌 등인데 공무원을 빼고는 급속히 늘어날 요인은 별로 없다는 ‘냉정한 분석’과 함께. 한국노총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는 ‘계급성’을 중요한 지표로 내세웠다. 섣불리 통합을 추진할 문제가 아니며, 밑으로부터 변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한편 노동운동을 둘러싼 최근의 상황은 ‘3기 청사진’을 느긋하게 구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지뢰 터지듯 현안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탓이다. 당장 정부가 약속을 뒤집고 주5일근무제를 미루려 하고 있고, 노사정위는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와 관련해 주고받기식의 무원칙한 ‘담합’을 한 상태다. 어디 그 뿐인가. 많은 사업장이 구조조정 공세에 짓눌려 있고, 비정규직의 생존권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들 현안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게 당장 급하다.
“지금으로선 대대적 반격에 나서기가 어려운 게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2001년을 꿰뚫는 전체투쟁의 흐름이 중요합니다. 상반기에는 지난해와 달리 1~2주 동안의 기간을 정해 임단투와 구조조정 반대투쟁 등 모든 현장투쟁을 집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위노조는 계급적 과제를 자신의 요구로 내걸어 정치쟁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반기에 승부를 건 총력전을 펼침으로써 제도개선을 확보하자는 것이지요.”
그는 조합원들이 조직에 대한 불신을 떨쳐내고, 눈치를 보거나 움츠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다는 의지로 행동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내친 김에 그가 ‘평소 조합원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들어보자.
“우선 자기권리를 확실히 주장해야 합니다. 생활상의 요구 뿐 아니라 조직에 대해 건강한 비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비판기능을 잃으면 조직은 죽고 맙니다. 지금 노동자의 삶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진 말아야죠.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미래는 개척되지 않습니다. 민주노총은 60만 조합원의 집합체입니다. 따라서 조합원 개개인이 노조와 연맹, 총연맹 활동에 적극 참여해 자신의 역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두 시간 남짓 지났는데 벌써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민주노총 위원장의 일정표에는 빈틈이 없었다. 일정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고 주말까지 잡히는 게 보통이다. 물론 ‘가족과의 오붓한 한 때’는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이 지난해 10월의 저녁외식이다. 이런 여건에서 책 볼 시간은 있을까. 뜻밖에 그는 매일 책을 보고 있었다. 출근전 20~30분이 그의 독서시간. ‘요즘은 어떤 책을 보느냐’고 물었더니 전국연합 이천재 공동의장이 쓴 <희망 그 이후 고백>을 가방에서 꺼내들었다. “연설만 잘 하시는 줄 알았더니 글 솜씨도 대단하시더군요. 조합원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죠.”
끝으로 단병호가 생각하는 ‘민주노총 위원장론’은 어떤 것일까.
“우선 민주노총 강령에 충실한 사상으로 무장돼 있어야 하겠지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평등사회를 건설하는 게 핵심이라고 봅니다. 다음으로 대중조직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늘 열린 자세로 폭넓게 경청해야 합니다. 반면 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하겠지요. 결론적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은 ‘외유내강형’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에 비춰 볼 때 스스로 많은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족한 만큼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차남호 chanh@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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