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Ya Basta!’ –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사파투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총을 들게 만들었다”라고 어느 한 농민이자 사파티스타 해방군은 말한다. 제도혁명당(PRI)의 독재 정권 하, 미국에의 경제종속,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그리고 자유무역지대 설립과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로 멕시코는 황폐화되었고, 멕시코 민중들은 빈곤과 억압에 허덕여왔다. 특히, 인구의 10%인 천만 명의 원주민들은 경제적 착취와 사회·문화적 억압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던 중, 1994년 1월 1일에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반대하며 농민들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이름으로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은 정부군에 쫓기고 쫓겨 치아파스의 정글로 몰렸으며, 정글 속에서 이들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여성, 동성애자, 원주민, 농민들과 노동자들에 대한 모든 억압과 착취에 맞선 투쟁을 하면서 국제적 反신자유주의, 反세계화 투쟁의 ‘영웅’이 되었다.

이들은 여러 차례 정부와 평화협상을 시도하였으나 그 때마다 배신을 당했고, 1996년 에르네스토 세디요 전 대통령이 또 다시 그들을 배신하자, 지난 7년 동안 정부와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1일에 71년간의 독재를 끝내고 대통령으로 취임한 빈센테 폭스는 유화 정책을 들고 나왔다. 폭스는 실제로 치아파스 4개 곳에서 정부군 기지를 폐쇄하였고, 감옥에 투옥되었던 사파티스타 17명을 석방하였다. 또한 사파티스타들이 요구하던, 하지만 세디요 전 대통령이 백지화시킨 원주민보호법을 의회에 상정해놓은 상태이다.

그러자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지난 2월 25일, 그들이 숨어 지내던 정글에서 나와 평화를 위한 ‘사파투어(Zapatour)’를 시작했다. 마르꼬스 부사령관을 비롯한 23명의 사파티스타 지도자들은 치아파스 주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서 이들을 지지하며 모인 2만5천명 군중에게 “우리는 더 이상 멕시코의 잊혀진 구석에 남겨져 있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경멸 또는 양심을 씻어내기 위한 자선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출정식을 가졌다. 버스와 캐러밴에 탄 이들은 12개 도시를 거치고 제3차 전국원주민회의에 참석한 후 3월 11일 정부와의 협상을 위해 멕시코시티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들은 도시와 도시를 옮기면서 원주민들의 권리와 자치를 위한 노동자, 농민, 해외 활동가 등의 대중적 지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사파티스타는 폭스의 우호적 제스쳐에 무조건적으로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폭스는 우익당인 국민행동당 소속이며, 선거 당시부터 신자유주의적인 그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사파티스타와의 평화협상과 그의 사전적 제스쳐들은 의회에서 소수인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고 외국 투자자들을 안정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사파티스타는 103명에 이르는 사파티스타 석방, 정부군 철수와 원주민보호법 통과를 그들의 평화협상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이미 여러 번 배신을 당한 이들은 폭스의 신뢰성에 조심스러운 의문을 표하면서 평화협상이 결렬될 것도 각오하고 있다.

오는 4월, 북미자유투자협정이 중남미까지 확대되는 형태인 미주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 of America; FTAA) 설립을 위한 협상이 시작된다. 멕시코인들은 자유무역협정과 자유무역지대가 민중들의 삶을 어떻게 파탄내는지 혹독히 경험하고 있다. 사파티스타는 당장 평화협상을 통해 천만명의 원주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자치권과 식량을 얻어내고자 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구의 반대편에서 한미투자협정과 한칠레투자협정 체결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우리 역시 이제부터 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 “어떠한 얼굴색이든, 어떠한 언어로든 자기 자신에게 ‘이제 그만! Ya Basta!’라고 말하는 어느 남성이나 어느 여성이든”(1996년 인류와 反신자유주의를 위한 사파티스타 국제회의 폐회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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