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미국 : 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 이삼성 지음, 한길사

“21세기 미국의 패권은 지속될 것인가?”

정주연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오는 3월 26일 로스앤젤레스 오디토리움에서는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이 영화

제는 73회를 거쳐오는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만한 영화의 진가를 높여주는 역할을 해

왔다. 지나치다 문득 영화포스터에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선전문구를 보면 괜스레 믿음이 일

어나며 주머니의 돈을 주저없이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불하곤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을 텐데, 이렇듯 헐리우드 영화의 물에 젖어 보거나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수사여

구에 이끌려 본 사람이라면 이제쯤에는 이 영화들이 담고 있을 이데올로기(좀 거창하다면 ‘스

토리의 이면’이라고 해도 좋다)를 쉽게 간파해 낼 것이다. 이 영화제가 73회를 거듭해오는 동

안 상을 받은 작품(적어도 최우수작은 반드시!)들은 어김없이 ‘아메리칸 드림’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 그대로라면 ‘미국의 꿈’이나 ‘미국인의 꿈’ 정도가 맞는 번역이겠지만 사실상 이제 그

들의 논리에 속지 않을 만큼의 안목을 갖게된 지금에는 ‘그건 바로 미국적 꿈이겠죠?’라고 토

를 달고 싶어진다. 동시에, 한때는 이 영화들이 담고 있는 휴머니즘에 감동하기도 했던 것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들의 문화적 공세 앞에 ‘바로 이것이 휴머니즘이다’라고 감동할 또다른 나

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킬링필드’, ‘홀로코스트’…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된 역사적 사건 속에서

미국은 언제나 평화의 수호자, 인권의 수호자로 그려진다. 문화산업에서 세계의 패권을 제압한

헐리우드가 있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미국이 20세기 역사에 저지른 추악함은 감춰지고 가리

워질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미국은 20세기 초 세

계대전을 통해 세계 운영의 주도권을 쥔 이래로 탈냉전기인 지금까지 유례없는 단일 패권의

시대를 굳건히 지켜가고 있다. 이 무소불위의 권력은 오늘날 대적할 어떤 상대도 갖고 있지 않음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을 알고 미

국의 미래를 점쳐보는 것은 새로운 세기 세계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중요하다. 이삼성의 {세계

와 미국}은 미국을 움직이는 정신적·물질적 시스템의 유연성을 파고 들어가서 그 실체를 보

여주고 또한 평화의 중재자라는 이름 뒤에 숨은 미국의 패권적 성향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패권유지를 위한 변신의 귀재, 미국

{세계와 미국}은 미국사람들 내에서 여전히 유효한 환상은 미국을 ‘세계평화 중재자’로, 인도

적인 책임을 다하는 충실한 ‘인권 수호자’로 믿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비판과 저항

이 일어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이러한 믿음은 지속되고 있다. 로위와 긴스버그 같은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어려운 학술 용어와 분석틀을 빌어서 미국의 패권주의적 성향을 부인하고 있다.

단지 미국은 한 나라가 패권을 갖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세력균형의 역할을 할 따름이라고

강변한다. 나폴레옹 혁명이 유럽에 자유주의적 정치변동을 가져왔던 긍정적인 측면을 들어 이

들은 미국도 세계질서에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확산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패권을 저지하기 위해 구성한 신성동맹처럼 미국이 군사적 동

맹들을 만들어가는 것은 자유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거

의 한세기 가량 미국의 패권적 지배에 놓여있던 전세계의 민중들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의

주장과 논리들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미국인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민주적이기 때문에 미

국이 남의 나라의 민주주의와 이익을 해치는 일이 없다는 착각과 환상에 빠져 있다(인종차별

과 가난한 자에 대한 복지의 심각한 부재 상황이라는 미국의 현실을 볼 때 사실상 미국인의

삶이 민주적이라는 것도 미국 인구의 몇%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식 민

주주의는 이것조차 눈가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문제를 낳았던 2000년 대선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허울을 벗을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는 잘 들려오지 않고 있

다.) {세계와 미국}은 미국인들이 자부심으로 내세우는 미국 민주주의의 메카니즘은 세계를 상

대로 미국인들, 특히 잘 조직화된 미국 이익집단들의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세련

된 다원주의적 메카니즘일 뿐, 다른 나라 민중의 이익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세계시민주의적 메

카니즘은 분명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 이 책은 풍부한 사례와 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통해 미국이 전지구적 패권 유지를 위해 벌이는 반인권적, 반민중적인 행위들을 보여준

다. 미국의 이중적인 행태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만큼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고립주의 외교이념을 내세웠지만 이것은 유럽에는 유효했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철

저히 개입주의를 드러낸다. 평화중재자임을 자처하며 실상은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보스

니아와 북아일랜드 같은 지역의 분쟁에는 개입하고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이나 중미 지

역은 개입하지 않는다. 인권적인 문제의 개입을 내세워 자신이 패권을 갖고 싶은 나라에는 개

입하지만 동시에 독재정권(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칠레 피노체트의 군사구데타 지원…)이라도

자국에 이로울 때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21세기 미국의 패권은 지속될 것인가?

최근 미국의 보수진영의 움직임은 자국민들에게 심어주었던 평화중재자, 인권수호자의 이미

지도 여지없이 무너뜨릴 태세다. 환상을 심어주고 이것을 지켜가기엔 ‘미국의 이익’이라는 명제

가 더 매혹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세계는 이제 인플레 없는

고도성장이 지속되는 신경제가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적어도 미국만큼은 이러한 주장이 아직은

유효하다. 미국은 전세계 이윤에서 1990년에는 36%를, 1998년에는 48%를 차지하면서 상승하고

있다. 물론 2000년 미국 주식시장이 심각하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이 미국경제를 흔

들 만큼은 아니다. 아직 미국은 이자율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이 아닌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 동안 실물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드러내기 시작

하였고, 막대한 무역적자의 누적이 그 동안은 월가로 흘러들어오는 전세계의 여유 달러자금에

의해 드러나지 않았으나 미 증시의 하락세가 투자자금의 유출을 불러와서 무역적자를 감출 수

없었다. 최근 부시정권이 세계적으로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가미사일방어(NMD)를 적극

추진하는 배경에는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패권을 동시에 지켜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미국

은 지금 마치 2차대전이 대공황의 효과로부터 미국을 탈출시켰듯이 NMD 추진을 통해 정보기

술(IT)산업에 대한 수요를 전세계적으로 늘려 신기술부문에서 자본의 과잉축적을 해소할 뿐

아니라, 우주공간에서의 패권도 장악함으로써 소위 위성을 통한 전방위적 세계제패를 꿈꾸고

있다.

{세계와 미국}은 미국의 패권을 잘 분석해놓은 책이지만 미국 패권의 미래를 점치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쟁에 나가기 전에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듯, 그런 의미에서 이책은 유효한

정보를 준다. 안타까운 것은 저자가 미국 정치의 두 주체인 민주당과 공화당이 자국의 이익이라

는 테제 앞에서 그다지 변별점을 찾기 쉽지 않지만 양당이 ‘자국의 이익’을 무엇으로 보는가의

차이로 인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마치 “DJ가 되

면 세상이 좀 나아질꺼야”라고 말하던 정치그룹을 떠올리게 할 만큼 민주당 집권이 조금은 나았

을 것이라는 미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국의 패권이 도전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

을 너무도 잘 보여줘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의 균열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금방 실망할 것이다.

“혹여 미국의 패권이 도전을 받는다면?”이라는 질문에는 중국, 러시아 민족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으로 꼽힌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에 짓눌려온 전세

계 민중들에게 또 다른 패권세력의 등장은 절대 바라는 바도 희망적인 것도 아니다.

20세기말 일어나기 시작한 전세계 민중들의 반세계화 투쟁은 자본주의적 패권질서에 대한 강

력한 도전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패권질서의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응전이다.

이 불길이 더 커지고 거세지는 날, 미국 패권의 시대도 종말을 고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변화·발전하는 과정에 스스로의 모순으로 붕괴되거나, 노동계급의 거대한 저항이 그렇게 만들

것이라는 과거의 강요된 환상을 끌어오기 위해 던지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도

21세기를 인류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전지구적 노력을 결집한 우리의 몫이라고 정리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시작하는 것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자는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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