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면 충분하다: 세계은행, IMF의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운 사례와 대안},
케빈 대나허, 월든 벨로 외 지음, 최봉실 옮김, 아침이슬
세계은행, IMF… 이제 제3세계가 말한다
최전승민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최근에 들어 소위 말하는 ‘제3세계’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매초
세계 주가의 높낮이에 대한 선진국들의 아우성 또는 자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무정부주
의적 폭력 시위들’에 대한 호들갑에 비하면 이 움직임들은 매우 하찮고 고요한 것이지
만 귀를 기울이면 사실상 목청 터지는 절규임을 알 수 있다. 1994년 나프타(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맞선 무장봉기로 워낙 유명해져 그나마 세계인들의 이목을
잠시 끌 수 있었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평화행진’은 그 움직임들 중 하나일 것이
다. 그리고 지난 12월, 지리 과목을 잘한 사람만 위치를 어림잡을 수 있는 세네갈의 다
카르에서 ‘다카르 2000: 저항에서 대안까지’ 회의가 개최되었다. 아프리카 30여개국에서
온 주빌리 사우스(Jubilee South)를 비롯한 사회단체들과 운동가 300여명이 모여 제3세
계 외채 탕감을 촉구하고 구조조정 거부를 결의하였다. 세계은행의 댐 건설, WTO의
농민 말살, IMF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수만 명의 인도인들의 외침은 묻혀진 채 지나
간다.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인들 역시 부당한 희생에 대항하는 시위를 끊임없이 벌였음
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들은 채도 하지 않는다.
이들의 고통의 근원을 찾아가려면 수백 년 전부터 시작된 유럽과 미국의 식민지 지
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고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으로만
가도 세계화 시대에서 제3세계 빈곤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유럽대
륙과 아시아 지역에서 전쟁이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1944년 7월, 영국과 미국은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라는 마을에 모여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의 내용인즉
슨, 전쟁 이후 양 국가를 근간으
로 한 자본주의 체제의 강화와 세계 경제의 재편을 위한 다국적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
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세계은행)이다. 57년
이 지난 지금 이 두 기구가 맹위를 떨치면서 제3세계 민중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생
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진보 운동의 핵심 의제가 IMF, 세계
은행, 그리고 이후 추가되어 ‘성스럽지 않은 삼위일체’를 구성한 WTO의 전면적 개혁
또는 폐지가 되리라는 사실을 그들은 예상했을까? 1994년, IMF와 세계은행이라는 불도
저가 세계경제를 휩쓸고 달리기 시작한 지 50년, 자본의 보다 자유로운 이동과 미국에
의 경제종속을 약속하는 나프타가 발효된 바로 그 해, 세계 민중들은 ’50년이면 충분하
다!(50 Years is Enough!)’, ‘이제 그만!(Ya Basta!)’을 외치기에 이르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두 차례 연이어 발생한 세계 전
쟁 이후, 미국과 영국은 전쟁으로 망가진 국가들의 경제 성장과 개발을 지원하여 빈곤
을 퇴치하고 한층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세워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IMF는 여러 선진국들 간에 준비금을 모아 일시적인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한 자금 지원
을 하여 자유무역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세계은행은 도로나 댐과 같은 기반
시설 확충을 위한 개발차관을 제공하면서 제3세계의 ‘빈곤 탈출’에 앞장서고 있다 한다.
세계은행의 홈페이지 대문에는 “우리의 꿈은 빈곤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다”라고 적
혀있다. 그 옆에는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는 제3세계 국가의 ‘빈곤으로부터 자유’로운 어
린 아이가 순진하게 미소짓는 사진이 있다. 정말 감동적이다. 하지만 IMF와 세계은행이
‘세계경제의 수호천사’라는 꿈은 사실상 일부 부유한 선진국만의 ‘수호천사’를 의미함이
드러나고 있다. 식민지 약탈과 내전으로 얼룩진 제3세계 국가들에게 차관을 해주는 대
신에 IMF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하여,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인 이자를 갚기 위
해 제3세계 국가들은 ‘외화유치’라는 명목으로 결국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상
황이 되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없어지고, 임금은 하락하고, 농민들은 강제이주
당하고, 환경은 파괴된다. 교육, 보건, 사회복지 등 가장 기본적인 공공부문에 들어가야
할 돈이 외국으로 흘러나가는 바람에 사람들은 질병과 빈곤에 쓰러진다. IMF를 주도하
고 있는 선진국들은 외채와 구조조정이라는 악순환의 그물에 제3세계 국가들을 철저하
고 계획적으로 가두어버리고 단물을 모조리 빨아먹는다. 그리고 나서는 신자유주의적 세
계화의 ‘합법적’ 확산을 위한 자유무역을 안정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된다. 80년대 남아
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구조조정 단행, 90년대 중반 나프타 발효, 그리고 2000년대 벽두에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체결 목표라는 일련의 과정은 이러한 각본의 전형이다. 서구의
초국적 자본은 이미 충분히 배부르면서도 ‘자유무역’에 또 입맛을 다시고 있다.
제3세계에 대한 IMF와 세계은행의 만행들은 이제 정말 지겨울 정도이다. {50년이면
충분하다}는 이러한 면에서 정말 지겨운 책이다. 이 만행들이 가져온 결과는 어디를 가
든지 그 양상이 같다.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겨도, 저자가 달라도, 심지어 다른 책을 봐
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특히 IMF의 구조조정의 쓴맛을 현재 경험하고 있
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뻔한 레퍼토리이다. 하지만 이것은 IMF와 세계은행이 초래한 파
괴의 범세계적 보편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지겨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읽게 되
는 이유는 바로 빈곤의 보편화가 끔찍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월든 벨로나 케빈 대나
허와 같은 제3세계의 대표적 지식인과 운동가인 저자들이 세계화와 제3세계의 빈곤화
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들은 제3세계
민중들에게 실질적이고 현실가능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논한다. 항상 그렇듯이 현실가능
성 여부에 논의가 편중되다보면 단순한 개혁과 부분적 수정만으로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현실가능성과 근본 사이의 다양
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제3세계 민중들이 고통받아야 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대안을
주장하면서도 지금 당장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제3세계 민중들에게 무엇이 절실한
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퍼트리샤 애덤스 외 여러 저자들은 윤리와 합법성에 입
각하여 외채를 불법부채라 규정하여 외채를 탕감시켜야 한다 주장하고, 데이비슨 버드
후는 세계은행과 IMF의 프로젝트에 대한 감시와 올바른 평가를 통해 실패한 정책을 바
로잡고 기구들을 개혁하자는 입장이다. 또한 몇몇 저자들은 아프리카의 독립적 정치·
경제 블록을 만들어 아프리카 국가들이 세력화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저자
들은 아프리카의 부패한 독재 정권은 세계은행, IMF와 한통속이므로, 오로지 민중들의
반세계화 투쟁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서구식 개발보다 제3세계 고유의 소규
모 생산과 유통의 공동체적 개발을 주장하기도 한다. 세계은행에 근무하였던 마이클 어
윈은 세계은행 내부의 관료성, 비민주성과 직원들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임금으로 인한
예산 집행의 비효율성 등이 문제라 지적하기도 한다.
제3세계 민중들이 스스로 정치세력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한 표를 던지면서, 미래적
당위가 아닌 현재적 대안을 생산해내고 있는 제3세계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제3세계의 주변화, 빈곤화와 경제적 종속을 유지, 강화하는 국제 기구들에 대한
대안일 뿐만 아니라, 다분히 백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일련의 반세계화 투쟁에 대한 제3
세계적 대안이기도 하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세력화’라 할 수는 없겠지만, {50년이
면 충분하다}에서는 그라민은행이 대표적인 예로 제시된다. 제시카 매튜스는 실패를 거
듭하는 세계은행과 대비하여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개발
기구 가운데 하나’라고 선뜻 말한다. 한 교수에 의해 시작된 그라민은행은 빈민들에게
저리로 소액 대출을 해주면서 그들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고, 원금과 이자
회수보다 대출 받은 빈민이 제대로 생활하고 있는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그라민은
행과 함께, 빈민의 절대 다수인 여성들의 공동체적 생활협동조합으로 발전한 인도의 자
가고용여성연합(SEWA)도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제3세계 민중들의 적극적 실천과 즉각
적 대안 생성의 훌륭한 예일 것이다.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제3세계 민중들은 움직여
왔고, 현재 현저한 세력을 이루고 있다. 위에 언급한 다카르 회의나 제3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에 우리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된다.
{50년이면 충분하다}는 IMF와 세계은행의 파괴력에 대해 깊은 분석이나 시원하게 급진
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재 제3세계 운동, 외채탕감 운동 내의 주된 논
쟁 지점의 기반이 되고 있는 IMF와 세계은행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들을 볼 수 있다
는 측면에서 괜찮은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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