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타리크 알리·수잔 왓킨스 지음, 안찬수·강정석 옮김, 삼인

진정 거대한 ‘예행연습’이길 꿈꾸며

장석준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교육부장>

요란한 광고와 함께 시장에 나오는 책들 치고 썩 괜찮은 책은 별로 없다. 하지만

최근 출판사측의 적극적인 광고 전략 속에 사회과학 서점들에서나마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른 타리크 알리와 수잔 왓킨스의 책 {1968}은 분명 이런 경험적

결론의 예외다. 일단 독자들 중에 아직 이 책을 사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강력히 권하는 것으로 이 서평을 시작하고 싶을 정도다. 68

년 세계혁명을 다룬 책으로는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이 후)

이 먼저 나와 있고 분량도 그 쪽이 훨씬 두껍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의 느낌

은, 적어도 평자에게는, {1968}쪽의 완승이었다. 카치아피카스가 그렇게 강조

하고 싶었던 전 세계적인 반란과 혁명의 물결(카치아피카스는 이를 ‘에로스

효과’라고 부른다)을 이 책은 1968년 한 해의 뉴스 필름을 보는 것과 같은 일

지(日誌)식 서술을 통해 참으로 생동감있게 제시해준다. 사회과학 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각각의 사건들이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능히 짐

작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알리와 왓킨스는 최대한 저자 자신의 개입을 억제하면서도 자신들

이 말하고 싶은 바는 다 말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1968년의 각 사건에 참여

한주역들의 발언, 당시의 신문 기사 등이 꼴라쥬로 엮여져 있어서 우리는 마

치 에이젠슈타인이나 고다르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아

마도 저자들은 사회과학과 역사 서술의 영역에서 ‘혁명적 모더니즘’을 실현

하려는 듯이 보인다. 이런 ‘만용’ 역시도 저자들의 그 68 정신이 아니고서는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으리라.

책을 읽고 나서 더욱 확고해졌지만, 책을 사기 전부터도 타리크 알리라는

이름은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알리는 파키스탄 출신

으로 영국에 유학 와서 1968년 당시 영국 좌파 학생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

이 됐다. 당시 그는 책 안에도 이름이 나오는 로빈 블랙번 등과 함께 [블랙 드

워프], [레드 몰] 같은 신좌파 저널을 냈고 ‘베트남 연대 캠페인’을 조직해 베

트남 반전운동을 벌였으며 조국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학생 민주화투쟁을 세

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이후 그는 자유 저술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영국의 신좌파 정치조직과 고국 파키스탄의 민주화투쟁에 개입했다.

현재도 그는 좌파 저널인 [뉴 레프트 리뷰]와 [레드 페퍼]의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나토의 코소보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 신노동당의 우경화에 반대하여

새로운 좌파 대중정당을 만들려는 운동 등에 참여하고 있다.

그에 대해 신뢰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이러한 경력 자체보다

도 그가 ‘아직도’ 68 혁명 정신의 핵심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따지

고 보면, {1968}의 각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들 중 대부분이 결국 체제에

흡수되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들이 직접 예를 들고 있는 힐러

리 로드햄(이 책 342쪽에 실려 있는 그녀의 사진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모습

을 찾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찬드리카 반다라나케,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주 외에도 그 예는 수없이 많다. 프랑스 5월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인

다니엘 콩방디는 프랑스 녹색당의 유럽의회 의원으로서 이 당을 ‘독일 녹색

당화(즉, 핵폐기물 반입에 찬성하고 코소보 폭격을 지지하는 정당으로 만들려

는)’시키려는 시도의 선두에 서 있으며, 독일 적녹연정의 68세대 수상인 슈뢰

더와 외무장관인 피셔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약간의 교정책을 내놓은 같은 68

세대 재무장관 라퐁텐을 자본가들의 먹이감으로 내놓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

다.

이런 이들에 비하면, 알리는 그 예외성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지는 그런 인

물들 중 하나다. 혹 조국 파키스탄의 현실이 서구 68세대와 같은 손쉬운 변

절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도 해본다. 하지만, 사실 또 다른

요인이 존재했다. 그것은 벨기에의 트로츠키주의자 에르네스트 만델의 역할

이다. 68세대에게는 아버지뻘에 해당하는 그는 정력적인 저술과 강연 활동을

통해 68의 주역들을 ‘교육’하고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그렇게 해서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건설된 것이 프랑스의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 혁공동)이

었고, 알리가 속한 바 있는 영국의 국제맑스주의 그룹(IMG) 등이었다. 혁공동

이 프랑스에서 68을 직접적으로 이은 거의 유일한 정치적 경향으로서, 현재

사회 투쟁의 맨 앞에 서 있으며 프랑스 민중의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깊다(이들은 우리 나라의 김우중체포 국제결사대의 활동

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만델이 제시한 지침 중 하나는 바로 베트남 등지에서의 제 3세계 민족해

방투쟁, 서유럽의 학생·노동자 혁명투쟁, 동유럽의 민주화 투쟁, 이 세 투

쟁이 모두 전세계적 혁명운동의 구성 부분이라는 명제였다. 이는 너무 뻔한

절충주의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68년 당시만 해도

마오주의 경향의 학생들은 동유럽의 민주화 투쟁을 ‘반사회주의적인 반동’

으로만 봄으로써 자신들의 투쟁과 체코, 폴란드의 투쟁을 서로 연관짓는 데

실패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국 민중들의 지지를 갉아먹었다. 이 점에서 알

리와 왓킨스의 책은 철저히 만델의 시각에 입각해 있다. 프랑스의 5월과 프

라하의 봄, 베트남의 위대한 투쟁이 동등한 비중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는 서로 간에 심오한 연관 관계를 갖는 것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

이러한 시각은 월러스틴과 아리기 등의 ‘전세계적 반체제운동’이라는 명제

로 발전했다.

만델의 또 다른 지침으로 주목되는 것은 현실의 제도권 정치 지형과 운동

의 정치를 서로 연결시키는 지혜로운 실천이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만델 자

신은 이미 1968년의 ‘예행연습’이었던 1960년의 벨기에 총파업 당시에 다른

극좌 논자들과는 달리 좌파 세력의 ‘중기적’ 목표로서 ‘구조개혁’을 제시한 바

있다. 68 당시에도 그는 ‘내일 아침의’ 세계 혁명만을 생각하고 있는 젊은 학

생,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고려사항들’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키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그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

지 않은 혁명’에 대해 결산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

부분은 결코 간과되어선 안 될 68의 또 다른 ‘진실’이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68의 영광보다는 이러한 비판적

평가가 더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 크리스 하먼의 말마따나 68이 ‘거대한 예행

연습’이었던 게 사실이라면 ‘이번의’ 진짜 한 판은 정말 ‘제대로’ 붙어봐야 하

는 것이니까 말이다.

알리에 비하면 또 다른 저자 왓킨스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

나, 그녀가 ‘이두’출판사에서 나온 만화 {페미니즘}의 저자라는 사실은 그녀

의 입장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 책에서 그녀는 페미니즘의 모든 사

조들을 종횡무진하면서도 혁명적이고 대중적인 여성정치라는 관점에서 한 발

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의 이런 사상은 {1968}에서도 68년 당시 여성

투사들의 자각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충분한 강조로 잘 나타나고 있다고 생

각된다.

{1968}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면, 솔직히 뭔가 역사적 노스탤지어 같

은 게 앙금처럼 남는다. 그러면서 우리의 현재에 대한 잡념들에 휩싸이게 된

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 혹은 콜롬비아의 농민 반란군은 이 시대의 남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인가? 시애틀이 과연 1968년 투쟁을 예비한 미국 버클리

대학 투쟁 같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전세계적인 저항은 과연 68 이상의 국제적 연대감을 형성해주고 있는가?

하지만, 투쟁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그것을 몽상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곳

에서 그것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도 당시의 주체보다 더 지

혜롭게. — 1917년, 1945년을 그리워하던 이들의 머리 위에 떨어진 1968년의

천둥소리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으로, 이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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