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노동조합의 역사(2)
민주노조, 그 태동과 가슴벅찬 이름이여
87년 8월 23일 전체조합원의 참여 속에 제 2대 위원장인 김경종 집행부가 들어선다. 그러나 김경종 집행부하에서 현장의 불만과 고충을 집행부에 올라가 얘기하고 돌아오면 곧바로 부서장이 불러 “요즘 무슨 불만 있냐?”며 면담을 요구하는 따위의 일이 빈발하는가 하며는 현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독선과 비민주적 운영의 난맥을 드러낸다고 당시 활동가들은 회고한다. 88년 하반기 김종일, 황성근과 함께 ‘만인의 징검다리’라는 홍보물을 발행하며 활동을 하던 안양공장 한성수를 노동조합에서 제명함으로서 집행부의 독선과 비민주적 운영에 대한 조합원의 불만은 더욱 쌓이게 된다.
노동조합이 일과시간 이후 교섭을 거부하게 된 역사적 배경들
89년 1월 단체협약이 마무리된다. 소위 직권조인이 이루어진 것이다. 1월 13일 안양공장 기계사업부, 금형부를 중심으로 전 공장엔 긴장과 술렁거림이 감돌았다. 12시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활동가들은 약속한대로 기계사업부 휴게실에 모여들었고 ‘직권조인’에 대한 성토와 항의가 쏟아져 나왔다.
현장노동자들의 분노는 자연스럽게 ‘직권조인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기계, 금형, 조향, 모타, 쇼바로 현장을 순회하였고 대열은 어느덧 300여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1월 13일의 노동자 민주주의를 위한 집단행동은 당시 위원장의 2시간 여에 걸친 해명과 설명으로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주동자’에 대한 징계를 들고 나온 사측의 탄압으로 이어졌다. 당시 주동자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표광렬’ ‘여철우’ ‘김방연’ ‘박노봉’ ‘김희준’에 대한 징계 결과는 병역특례임을 감안하여 표광렬은 정직 3개월, 나머지는 경고와 견책이라는 징계최소화로 끝이 났으나 일련의 사건들 속에 ‘민주노조의 상’이 조합원 사이에 그려지는 계기가 됐고 활동가들은 구체적인 민주노조 운영 방식들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병역특례 중이었던 1월 13일 집단행동 관련자 징계를 주도했던 안양공장 총무부 0광0 부장은 정직받은 표광렬의 집에 쌀포대를 사들과 찾아가 ‘병 주고 약도 주었다’고 한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사측의 탄압과 그 대응 및 보장의 문제’ ‘노동조합내 홍보의 자유’ ‘체결권’ ‘노조 운영의 민주적 절차와 투명성 재고’ ‘정보의 공개’ 등이 대의원과 활동가들의 주요 활동내용으로 자리 매김 된다. 또 민주파 대의원으로 불려지는 대의원들의 현장활동은 ‘한겨레신문 스크랩 후 게시’ ‘자발적인 공청회와 토론’ ‘집행부에 대한 집단항의’ ‘독자 홍보물 제작’등 그 영역을 넓혀 나간다.
한편 2대 집행부는 ‘만인의 징검다리’ 편집위원들에게 “할말 있으면 뭐든지 공식 노보에 실어라” “편집위원회 구성할테니 들어와서 해라”고 하여 노보 ‘길’ 편집위원으로 홍광희등이 활동을 해보지만 집행부의 사전 검열로 결국 해체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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