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 1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다양한 축하행사를 펼치면서 최영애 소장은 남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동안 노력으로 성폭력 특별법,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뒀지만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중심의 성문화는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성문제를 인권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바꿔나가는 데 진력하겠다는 최 소장을 만나봤다.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이 셋을 낳고 뒤늦게 여성학 공부를 하면서 고통받는 여자들의 현실이 마음에 다가왔다. 그때 한국에도 외국과 같은 강간위기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사명감을 느꼈다. 당시에는 여성운동에서도 노동문제가 주류였고 성 문제는 관심 밖이었지만, 성폭력 문제야말로 중산층 여성과 노동계층 여성들의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제 성폭력 근절운동은 우리 여성운동의 중요한 장을 차지하게 됐다.

―지난 10년간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자평하는가?

=성폭력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만드는 단계까지는 끌어올렸다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성폭력은 대부분 아는 사람이 가해자다. 교수, 교사, 성직자, 애인 등 믿고 신뢰하는 관계에서 가해자들은 그 점을 악용한다. 그런데도 장원씨 사건이나 군대내 성폭력 사건 등에서도 여전히 `피해 여성의 품행이 문제 있다’고 비난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질타당하는 사회의 모습은 뿌리깊은 남성중심 성문화가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할 해법이 있는가?

=인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지만 굉장히 어렵고 느리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직장내 성희롱을 규정한 남녀차별 금지법이 도입될 때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조금씩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지난해 성희롱 사건에서 승소한 피해 여성들의 대부분이 원래의 직장에 남아 있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게 뭐 대수라고 한 남자의 인생을 망치게 하느냐”는 비난과 따돌림을 받은 피해자들이 버틸 수가 없어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없앨 장치를 마련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조항을 법 개정안에 반드시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 성희롱을 용기있게 고발할 수 있는 여성들도 나와야 하지만 남성들의 인식을 바꾸는 교육도 중요하다.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소유, 쾌락, 놀이 개념의 성의 아니라 관계중심적 성 인식이 필요하다. 성관계는 일방통행적이 아니라 상호 동의에 의해야 함도 가르쳐야 한다.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 존중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시켜야한다. 남성은 능동, 여성은 수동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고 성에 대한 주체적 의식을 가르쳐야 한다.

성폭력 연구에서 전형적인 성 고정관념을 가진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비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남성은 여성의 거부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하고, 여성들은 자기가 원하는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성교육은 일찍부터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

=우리사회의 성의식은 급변하고 있다. 청소년성매매(원조교제)가 주요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지만 정작 10대들은 그 문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용적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하기 전에 처녀막 복원 수술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현실이다. 또 어린이에 대한 성폭력도 심각한 수준에 있다. 그런 점에서 어려서부터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선 우리 아들 딸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가르치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도록 하는 `세이 노’ 훈련을 아주 어려서부터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위계적 질서에 익숙한 우리들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싫다고 말하지 않도록 교육시켜왔다. 이는 우리 어린이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내모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또 교육의 내용도 문제다. 클린턴 성추문사건이 났을 때 미국 교육위원회는 아이들에게 이를 어떻게 이해시킬지 함께 고민한 뒤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은 성과 관련된 사건에 민감하지만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침묵을 지킬 뿐이다. `오양 비디오 사건’이 화제라면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고 어떻게 보아야 할지, 토론하고 교육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95% 이상이 여성이라는데 여성들이 성폭력의 주된 피해자가 되는 이유는?

=여성들은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한 여성 변호사가 동료 변호사들과 술자리에서 남자 변호사가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을 때 너무 불쾌했지만 전체 분위기를 깰까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다.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전문직 여성도 이런 상황인데 다른 여성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피해자를 유형화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피해자는 착한 여자들이다. 언제나 남을 배려하라고 배워온 여성들은 상급자의 행위를 거부하지 못하고, 자신이 거부했을 경우 남성이 받을 상처를 걱정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피해의 상처가 더 깊게 남는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훈련’이 그런 점에서 필요하다. 여성학에 호신술 강의가 포함되는데, 치한이 잡아 당기면 눈을 찌르라는 대목이 있다. 이 때 대부분은 눈을 찌르면 상대방이 다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해요”라고 묻는다.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가해자의 눈을 걱정하는 게 우리 여성들이다. 그래서 나는 딸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소한 싫고 그름을 분명히 말하고 스스로의 몸을 방어할 줄 아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게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후 외국의 지원이 끊겨 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난해부터 정부에서 의료지원비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는 자체 비용으로 꾸려왔다. 1년에 1억정도 지원해주던 외국 인권단체의 도움이 컸는데 올해부터 지원금이 끊겼다. 우리사회의 문제인데도 외국 단체의 도움으로 버텨온 셈이다. 정부 지원은 활동비의 ⅓정도다. 나머지 ⅔를 벌기 위해 자료도 만들고, 개인후원도 받고, 음악회도 열고…(웃음) 돈 걱정 때문에 정말 괴롭다.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 등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민간이 대신하는 것이므로 정부가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10년동안 일하면서 우리 사회의 성의식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

=우리 사회의 이중적 성 인식이 가장 큰 문제지만 성과 관련된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시각 또한 문제다. `성폭력 여성 유발론’이 언론에서 너무 자주 되풀이된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를 14명이 강간한 끔찍한 사건을 다룬 기사는 맨 끝에 주민의 말을 빌려 “이 초등학생은 담배도 피고 행실이 안 좋았다”고 붙여놓는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어른들의 무책임한 발언을 문제삼아야 할 언론이 성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런 미디어에 대한 감시활동을 좀더 본격화하고 남성들이 남성적 성문화와 관행을 가장 많이 학습하는 대학과 군대의 성문화 교육을 많이 개발하고 싶다.

정리 박민희 기자

대담후기

최영애 성폭력상담소장을 만났을 때 첫 느낌은 이 조그마한 여자가 그토록 많은 싸움을 헤쳐온 바로 그 사람인가 하는 경이로움이었다. 근친 성폭행을 사회적 이슈로 만든 김보은-김진관 사건, 직장내 성희롱을 사회문제로 터뜨린 서울대 우조교 사건, 군대내 성폭력 문제를 드러낸 이중위 사건 등 우리 사회의 성폭력 투쟁의 선봉에 서 있던 최 소장은 160㎝가 채 안되는 가냘픈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성폭력 예방운동을 남성들도 함께 하는 인권운동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방법론을 개발해 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는 10년동안 남성중심의 성문화와 싸우며 진지하게 고민해온 현장활동가의 경험이 배어 있었다.

그가 여성운동에 뛰어든 데는 미국 한 강의실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흑인과 백인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가정하고 일상의 삶을 그대로 복원한 그 다큐멘터리는 다수의 소수에 대한 차별이 무엇인가를 그에게 가르쳤고 그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여성들의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최영애 소장 약력

△1951년 부산 출생

△70~76년 이화여대 기독교 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86~89년 동대학 여성학과 졸업

△91~한국성폭력 상담소 소장

△91~94년 성폭력 특별법 제정추진특위 위원장

△92~93년 김보은 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 공동대표

△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장

△99~2000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위 남녀차별개선실무위원회 위원

△98~ 한국 여성단체연합 성과인권위 위원장

▲2001년 3월~ 경찰청 여성실 여성대책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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