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같은 지혜와 버들가지 같은 유연성’의 진실
– 소위 ‘대우차 노동조합 정상화 및 공장정상화 추진위’에 대한 비판-
노동조합 창립기념대회를 대신한 결의 대회, 기필코 공장으로 돌아가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우울한 날이었다. 케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그곳 광주에서의 21년 전의 학살
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뼈저리게 확인하는 오늘(18일), 대우차노동조합은
창립 28주년을 맞았다. 투쟁의 대오를 사수하고 있는 500여 명의 해고노동자
들은 산곡성당에 모여 창립기념대회가 아닌, ‘정리해고 철회·해외 매각반대’
를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다. 정작 그들 자신이 학살의 대상이었던 이들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4월 10일 폭력만행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들로 모
여, 기필코 함께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결의를 서로 나누었다.
대우차 인수에 대한 GM측의 동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 다
른 한축으로는 일부 전직위원장과 현장조직 간부들로 구성된 ‘대우자동차 노
동조합 정상화 및 공장정상화 추진위원회’의 활동이 ‘여러모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정추위’는 왜 언론의 먹이감을 자처하는가?
투쟁하는 노조지도부를 무력화시키고 쟁점을 호도하는데 있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었던 ‘노-노갈등’이라는 단골메뉴가 이번 대우차 투쟁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물론 이 만병통치약을 선전하고 다니는 전도사 역할은 언제나 그렇듯이 언론의 몫이다. 흡사 공장 관리자들의 캠페인 같은 모양새로 치루어진 지난 14일 부평역에서의 소위 ‘정추위 결의대회’에 대해 “이는 GM의 인수제안서 제출이 임박한 시점에서 노조가 해외매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협상과정에서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라는 보도로 포문을 연 언론은 그 뱀같은 세치혀로 온갖 근거없는 악의성 보도를 해대며 대우차노조의 투쟁상황을 왜곡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행 ‘정추위’의 부평공장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17일의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의 좋은 먹이감으로 때맞춰 던져졌다.
크게 ▶대우차처리 ▶노동조합운영 ▶경영진의 경영활동 ▶정추위 실천사항의 네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번 설문조사는 표본추출에 있어서의 적합성, 문항구성의 합리성, 통계처리의 타당성 등과 같은 ‘통계로서의 가치’라는 측면에서의 면밀한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우차 노조 역시도 그에 대한 분석을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설문조사의 가치와 무관하게, 외견상 그럴듯해 보이는 ‘정추위’의 이번 설문조사의 취지가 실상은 매각에 대한 입장과 같은 무게있는 쟁점들은 고사하고 노조의 입장에서, 대우차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서의 최소한의 조건과 상황도 고려하지 않은, 본말이 전도되었거나 아니면 의도적인 외면의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는 단지 설문조사 취지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산곡성당 지도부와의 협조관계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지만, 대자투쟁 안밖에서의 시선이 무언가 자꾸 엇나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 반복 주장되고 있는 ‘정추위’ 스스로의 활동근거와도 긴밀히 결합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뱀같은 지혜와 버들가지 같은 유연성’의 진실
‘정추위’는 산곡성당을 거점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집행부의 투쟁전술이나 대우차처리에 대한 제반의 입장이 현장조합원들의 의견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문제가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한 현실적이고 올바른 정책수립, 그를 통한 조합과 조합원의 보호를 어렵게 만드는 중대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추위’는 자신들이 진행한 이번 설문조사가 99년의 워크아웃 이래(이는 기자회견문상에서의 주장이고, 설문의 분석자료에서는 ‘노동조합 역사상’이라 주장) 처음임을 강조하며, 현장조합원들의 여론수렴을 통해 ‘정추위’ 활동방향 수립에 활용할 것이며, 노동조합에도 전달하여 반영토록 하겠다고 한다.
정리해고 이전에 현장의 여론이었으며, 그를 선도했던 산곡성당 해고조합원들의 울분 섞인 분노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정추위’가 이런 주장을 하기에 앞서서 산곡성당 지도부들이 처한 현재의 조건과 상황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노동조합은 4월 말경부터 노동조합활동의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판단과 함께 그를 위한 제반의 계획들을 제출했다. 수배상태가 아닌, 임원을 포함한 노조간부가 조합사무실로 출근하여 정상적인 조합활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의 일환으로 지난 5월 9에는 간부합동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물론 사측과의 협상 재개 노력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런 노력들이 현 산곡성당 지도부가 가지고 있는, 현장조합원의 여론을 듣고 의지를 결집하여, 현장에 근거한 투쟁을 진행하려는 ‘의지’이다. 그러나 ‘정추위’는 이러한 의지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오히려 지도부의 ‘의지’를 제한하는, 나아가 대자투쟁의 근본적 문제들을 지도부의 의지의 잣대로 보려는 왜곡된 시각안에 갇혀 있다.
법원의 판결을 받고 합법적으로 노조사무실에 출입하고자 했던 해고조합원들이 무차별적 폭력을 당했던 지난 4월 10일 이후의 상황을 똑바로 보자. 목숨을 건 저항의 대가로 허용되었던 노조사무실 출입에서 해고조합원들이 확인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사방을 컨테이너 박스로 막은 조합사무실은 그야말로 ‘출입’만이 허용되었었고, 지금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전투경찰은 여전히 상주하고 있고, 조합의 유인물들은 중간관리자들에 의해 갈취되고 내팽겨쳐 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외면하고 마치 모든 문제가 조합의 의지부족인 것처럼 호도하는 ‘정추위’의 주장을 우리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뱀같은 지혜와 버들가지 같은 유연성’은 언제라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이같이 스스로의 이해만을 위해 작동되는 고무줄같은 잣대를 유연성이라 부른다면, 우리는 차라리 고목의 굳건함을 신뢰하겠다. 그리고 백과사전을 뒤져보면 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다리, 눈꺼풀, 귓구멍 등이 없고 혀가 가늘고 두가닥으로 갈라져 있으며, 눈은 가까운 거리의 것을 잘 보며, 귀는 퇴화하여 겉귀가 없다.”
‘정추위’활동은 노동조합을 고립시키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설문조사와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정추위’에서 밝히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번 설문조사는 ‘전체 97개 선거구에서 해고되지 않은 대위원이 있는 63개 선거구 소속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표본을 추출했다고 한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분석의 여부와 무관하게 이러한 표본추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집단인 전체조합원들 중에서 균등하고 합리적으로 선정되었어야 할 표본이 63개 선거구로 제한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정추위’는 형식적으로나마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틀안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섰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아 ‘정추위’가 노동조합 조직 구성에 있어서의 일부분이 아니며, 실재로 ‘정추위’의 활동은 여러모로 보아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의 활동을 상대화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정추위’의 설문문항에도 ‘노
동조합의 활동이 정리해고자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표현이나 조합원들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미 진행되어 버린 ‘정리해고에 대한 의견’을 조합원들에게 묻는 것, 심지어는 ‘회사의 노동조합을 대하는 태도’를 묻기까지 하는 등 전반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이런 방식의 설문대상 선정은 타당하지도 않거니와, ‘정추위’가 밝히고 있는 ‘현장조합원과 산곡동지도부와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스스로의 역할규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해고조합원들을 더욱더 고립시키고 상대화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단결된 조합활동의 복구’이외의 노동조합 정상화란 있을 수 없다.
이 모든 어긋남의 원인을 시사해 주는 열쇠는 어쩌면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정상화 및 공장정상화 추진위원회’라는 이들의 명칭부터 잘 보자. ‘노동조합 정상화’. 누군들 바라마지 않는 것이랴만, 문제는 어떠한 정상화냐에 있다. 우리가 판단컨대, 정상화에 대한 ‘정추위’의 입장은 한마디로 말해 ‘정상적이지 못한 노동조합의 정상화’이다. 정리해고 이전 한목소리로 외쳤던 ‘해외매각반대’이건만, 시간이 많은 흐른 지금 그것이 ‘현실적 대안’일 수 없기에 ‘해외매각반대’를 주장하는 노동조합은 이들에게 비정상적이다. GM으로의 매각과 부평공장 존속· 고용의 유지를 동떨어진 문제로 사고하면서, 노동조합의 과격하고 진부한 활동이 그를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비정상적이다. 부평공장의 존속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기업이미지 재고와 노사협조를 생각하며 캠페인과 거리청소를 하는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당연히’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노동조
합의 정력적 활동이 불가능한 현상황을 조합의 의지로 해석하려는 이들의 눈에 조합의 비정상성은 당연한 결론이다.
현시기 노동조합의 정상화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앞서 말한 조합활동을 제한하는 여러 조건들과의 투쟁, 그리고 전조합원의 단결을 통한 ‘지치고 와해된 조합활동의 복구’를 의미할 뿐이지,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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