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녹색좌파] 6/6 아흐마드 니메르

알 나크바 시위가 있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군은 상징적 의미이자 인명손실을 목표로 F16 전투기를 동원 서안의 팔레스타인 목표물을 공격했다.

이와 동시에, 지난 9월 민중봉기(Intifada)가 시작된 직후 미국의 감독 하에 설립된 조사단의 진상보고서인 미첼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일련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보고서의 목적은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자치당국 모두, 비록 서로 다소 상이한 견지에서 진상보고서를 해석하고는 있지만, 보고서를 지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첼 보고서는 양측 모두의 폭력 종식,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중단, ‘상대편에 대한 자극’ 중단, ‘냉각기간’ 후의 정치적 협상 복귀 등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측 특사인 윌리엄 번즈는 이 지역을 방문,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와 팔레스타인 대통령 야세르 아라파트를 만나 보고서의 이행을 논의하였다. 양측은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감독 아래 팔레스타인 보안군과 이스라엘 군 간의 조정을 재개하는 데 동의했다.

샤론은 또한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했으며 서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차량폭탄 사건과 무장공격-이 사건들로 두 명의 정착민이 죽고 여섯 명이 부상당했다-에 대한 대응을 삼갔다.

팔레스타인 자치당국은 휴전 발표 후 세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군과의 충돌로 사망했음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의 휴전을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한 작전’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인 지 역을 봉쇄하고 팔레스타인 마을, 특히 가자지구에서 가옥과 농경지를 파괴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대중들은 미첼 보고서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보내고 있다. 사람들은 협정을 통해 민중봉기 이전의 참을 수 없는 상황으로 사태를 되돌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8개월 간의 이스라엘의 가혹한 탄압으로 거의 5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나온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압도적 다수는 실질적인 성과 없이는 절대 민중봉기를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미첼 보고서의 저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번 민중봉기의 근본 원인이 지난 9월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하여 의도적으로 자극한 때문이 아니라 8년 간의 정치 협상의 결과 때문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아울러, 근본적인 쟁점을 다루지 않고는 중동에 진정한 평화는 없을 것이다.

53년 간의 강탈

이것의 이유는 알 나크바 자체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은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던 곳에 수십년 동안 시온주의자들이 정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1948년 직전에 시온주의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땅의 6.6%를 장악하고 있던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지역 전체의 87.5%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77.4%를 장악했고 서안과 가자지구는 각각 요르단과 이집트의 수중으로 들어갔다.시온주의자들의 식민화는 원주민들을 식민 지배에 종속시키기보다는 땅에서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다른 유럽의 식민지 모델과 달랐다.

시온주의자들이 선동한 일련의 대량학살과 군사 공격, 공포 정치 이후 7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자신들의 집과 땅을 등졌다. 약 500개의 팔레스타인 촌락과 소도시가 공동화되고 파괴되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 가운데 10만 명만이 이스라엘에 남게 되었다.

1967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서안,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등 많은 팔레스타인 땅을 다시 점령하게 되었고 3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추가로 몰아냈다.

1948년 병합된 영토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과는 달리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 이들의 삶을 지배하기 위해 군사명령이라 알려진 특수한 일련의 규칙이 작성되었다.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의 모든 측면은 이스라엘 군당국에 의해 통치되었다.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은 서안과 가자지구의 79%를 징발하였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정착촌 건설이라는 전략적 프로그램을 수행함으로써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 지역을 서로 분할하려 하였다.1993년 9월 오슬로 협정 조인 이래 서안과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20만 명으로 두 배로 증가하였다.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정착민 수는 17만 명을 넘어 팔레스타인인 주민수와 거의 같은 수가 되었다.

경제적 변화

1967년 전쟁은 이스라엘에 두 가지 중요한 결과를 미쳤다. 첫째, 땅 점령은 자원, 영토, 경제 등의 측면에서 이스라엘에 이득이 된 한편 팔레스타인 인구의 대규모 증가도 가져왔다.

이는 시온주의 국가에 커다란 문제를 제기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로 흡수되는 것을 피하면서 영토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그것이었다.

둘째, 1967년 전쟁은 미국의 지역 정책의 전략적 위성국가로 이스라엘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군사 원조와 재정적 선물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미국의 원조를 대규모로 받았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일련의 정착촌 계획을 통해 첫 번째 이슈에 접근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68년의 알론 계획이었는데 이는 정착촌 건설과 팔레스타인계 주요 밀집지역에 대한 자치와 자율권 부여를 통해 점령 지역을 통제하려는 것이었다.

1967년 이래 이와 동일한 처방이 이스라엘 전략의 기초를 이루었다. 1993년 9월의 오슬로 협정은 그것이 최근 구체화된 것에 불과하며 아무 문제제기도 받지 않은 이 협정의 성공이 현재 민중봉기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점령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이러한 화해를 가져오게 된 하나의 추동력은 1980년대 이후 이스라엘 경제가 낮은 기술력의 섬유 및 의류로부터 하이테크 부문들로 변화된 것이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복합대기업들은 이제 미국의 금융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미국 경제의 부속품이다.

이러한 변화 이전에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농업과 건설 부문 등 이스라엘의 노동집약적 산업을 위해 거대한 값싼 노동자 군을 이루고 있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인들의 경제는 투자를 가로막는 이스라엘의 엄격한 군사명령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발전을 가로막혔다. 한 예로, 1980년대 후반 첫 번째 민중봉기 기간 동안 이스라엘 군사명령의 절반 이상이 팔레스타인 경제에 대한 경제 규제에 관한 것이었다.

점령 지역은 또한 이스라엘 상품을 위한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 한 때는 이스라엘 수출의 10%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하이테크 산업으로 경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의 새로운 부르주아지는 다른 중동 나라들과의 경제, 정치 관계를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자국의 상품을 팔고 요르단, 이집트, 팔레스타인 지역의 값싼 아랍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공장들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변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1996년과 97년 사이에 식품과 음료 부문의 수출은 거의 20% 하락한 반면 하이테크 수출은 34.7% 증가했다. 1992년과 97년 사이에 의류 및 완성품 수입은 거의 세 배로 증가했고 이 부문의 수출은 정체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중동과 전세계의 많은 나라들과 수입 자유화 및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했다.

중동 지역 경제 강국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주된 장애물은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지속적인 민중봉기라는 망령이 이 시온주의 국가를 쫓아다니면서 아랍 세계와의 전면적인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다. 아랍 세계 전반에 걸친 팔레스타인의 투쟁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 또한 이스라엘 시장을 전면적으로 끌어안으려는 아랍 정권들을 위협하고 있다. 요르단과 이집트 정부는 팔레스타인과의 적극적 연대를 도모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있다.

귀환할 권리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은 알 나크바 행사들에서 발견된다.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 있는 500만 팔레스타인 난민들-대부분 서안과 가자지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의 난민촌에 살고 있다-은 53년 전에 쫓겨난 땅으로의 귀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귀환할 권리가 쟁취될 경우 이스라엘 국가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스라엘 정치 여론의 모든 스펙트럼이 이구동성으로 갖고 있다. 귀환할 권리가 인정될 경우 이스라엘은 현재 형태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것이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 권리는 배타적인 유태인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 500만 귀환자들과 서안과 가자지구의 300만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에 현재 거주하는 100만의 팔레스타인인들이 400만 이스라엘 유태인들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요구대로 ‘자국 모든 시민을 위한 국가’가 되거나 완전히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여기서는 인종주의적 법률을 통해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의 성격을 띠거나 하는 것이다.

귀환을 위한 이 투쟁이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에 반제국주의적 역동성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첼 보고서나 현재 진행되는 미국의 압력이 팔레스타인 자치당국과 이스라엘 정부로 하여금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게 만들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팔레스타인 대중들의 이에 대한 반대는 커다란 장애물이 놓여있음을 보여주지만 팔레스타인 좌파의 허약함과 민중봉기에 응집력있는 전략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이를 현실적 가능성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비대중적 움직임에 필요한 하나의 요소는 봉기를 종식시키고 팔레스타인 자치당국에 대한 정치적 반대파를 체포할 수 있는 정치, 군사적 힘이다.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지브릴 라조우브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예방방위군(PS)의 형태로 서안에 이러한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활동가들은 예방방위군이 민중봉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소재와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라조우브는 이스라엘 군과 협동으로 이 방위군을 이끌어왔으며 또한 예방방위군은 미 중앙정보부와 함께 팔레스타인 보안기구들 가운데 자금과 중무장, 훈련에서 가장 뛰어나다.

그러나 가자지구에서 예방방위군은 민중봉기에 적극적이었으며 참여하지 않은 것은 팔레스타인 총보안부(PGI)였다.

일부에서는 이스라엘 정부가 각 팔레스타인 지역을 서로 다른 보안기구를 통해 통제하도록 하는 협정을 강요하려 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아라파트의 죽음 이후 벌어질 지도 모르는 계승 전쟁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이 민중봉기를 저지시키는 데 무력함이 드러날 경우 샤론 정부가 1980년대 레바논에서처럼 전면전과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한층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또다른 시나리오는 알 나크바가 재연되는 것이다.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 추방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내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인접 아랍 국민들로부터 대대적인 반응을 불러올 것이다.

단기적인 미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든 민중봉기는 오슬로 협정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회의 전면적인 거부와 귀환할 권리에 대한 여전한 주장을 보여주었다.

민중봉기는 또한 문제의 근본 원인-시온주의-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결도, 중동 지역의 평화도 결코 없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제국주의의 원조와 인종주의에 의해 지지받으면서- 이스라엘이 시온주의 국가로 남아있는 한 아무리 많은 협상과 ‘평화’계획도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