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노동조합의 역사(3)

노조민주화 투쟁의 흐름, 민주노조실천협의회로 조직적 결실

88, 89년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부딪치며 성장해온 노조민주화 투쟁은 90년 4월 또 한번의 직권조인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89년 이후 노조민주화 세력들은 주로 대의원 활동으로 현장활동의 폭을 꾸준히 넓혀나갔다. 또 안양을 중심으로 평택과 경주 대의원들과도 교류를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의 결실은 90년 4월 김경종 집행부의 직권조인 직후 ‘민주노조실천협의회'(민실협) 명의의 홍보물을 내는 것으로 조합원들에게 조직적 성과로 다가선다.

마침내 민주노조 깃발을 꼽다.

90년 봄, 조합원 앞에 ‘민실협’이란 이름으로 선 민주노조 세력은 당면한 과제이자 투쟁인 3대 집행부 선거투쟁에 들어간다. ‘살맛나는 세상’을 주요 슬로건으로 위원장 후보에 출마한 김수진은 김경종, 최인식, 김춘식 등 4명이 출마했음에도 90년 7월 20일 치러진 선거에서 1차에서 과반수를 넘기며 당선된다.

한편 본조와 지부를 분리해 처음 치러지는 7월 27일 실시된 안양지부 1대 지부장 선거에서도 한성수가 당선되고 7월 28일 경주지부도 여인수가 당선되며 민주노조의 깃발을 올리고 민주노조를 대중적으로 실천하기 하는 일대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위원장 선거와 2개 지부장 선거에서 승리한 민실협은 안양공장을 중심으로 집행간부로 올라가는 경우 민실협을 탈퇴하는 것으로 정리되고 김창한이 민실협 의장으로 선출된다.

당시 집행간부의 조직 탈퇴라는 당시 결정은 이후 현장조직과 집행부와의 관계 설정 등의 문제를 야기하며 재수정되기도 한다.

민주노조와 만도 자본과의 격돌 91 단협 투쟁

시장물가조사, 조합원 설문, 각종 공청회 및 설명회, 단체협약 1인 1요구안 만들기 등 노조운영의 민주성 확보와 조합원의 참여 폭을 넓히기 위한 3대 집행부의 노력과 실험은 91단체협약 투쟁을 통해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집행부의 직권조인을 막는 민주노조의 체결권은 3대 집행부를 탄생시킨 고리였으며 3대 집행부가 반드시 사수하여야 할 생명이었다.

그러나 만도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노조의 싹을 자를 수 있는 고리 또한 체결권이었다.

91년 단체협약 투쟁은 ‘체결권 사수’가 쟁점이었다. 당시는 만도뿐만아니라 87년 폭발적이 노동자 투쟁으로 만들어진 노동조합이 자본의 탄압과 회유에 대부분 어용화 되었다. 89년을 전후로 민주노조 깃발이 하나 둘씩 꼽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체결권의 문제는 주요 요구이자 투쟁의 목표였다.

91 단협투쟁에서도 사측은 예외없이 체결권 시비를 걸었고 91년 1월부터 시작된 ‘체결권 사수’ 투쟁은 3개월을 간다.

* 다음호에는 91 단협투쟁 과정이 나갈 예정입니다. 당시 자료나 사진을 갖고 있는 동지는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모타공장 소자보 투쟁 및 정도채동지의 사진과 자료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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