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기업, “교섭 요구안 검토하겠다” 공문 보내와

건설운송노조 27일 총회서 계속 투쟁 결의

그동안 노조 불인정과 단체교섭 해태로 장시간 마찰을 빚어오던 레미콘 업계의 노사 노사관계가 계속되는 노조의 파업과 국회 및 노동부의 ‘사측 부당노동행위 엄단’ 방침 등에 따라 조만간 단체교섭이 성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동안 노조탄압의 대명사로 알려져 온 유진기업(주)이 처음으로 지난 26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 앞으로 공문을 보내 교섭요구안 검토를 위해 (노조가 27일 개최하자고 요청한) 금번 교섭은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7일 노조(위원장 장문기)에 따르면, 지난 23일 노조가 소속 조합원이 있는 개별 레미콘 업체들에 ’27일에 단체교섭을 하자’고 보낸 공문에 대해 그동안 ‘노조 불인정’ 입장을 고수하던 적지 않은 업체들이 ‘교섭안 검토를 위해 이번 교섭을 연기하자’는 의사를 밝혀왔다.

유진기업은 이날 ‘전국건설운송노조 단체교섭 요청에 대한 회신’이라는 제목의 공문에서 △노조에 가입돼 있는 유진기업 소속 조합원 현황을 통보해 줄 것과 △교섭요구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여 대안을 확정할 수 있도록 금번 교섭은 연기하고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유진 계열사인 이순산업도 26일 노조에 보낸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공문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노조에 전달했으며, 한영 미화 등 경기북부지역 8개 업체, 효성 CKI 등 경기동부 2개 업체 등에서도 교섭 연기를 요청해 왔다.

노조 오희택 사무차장은 “그동안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 ‘노조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거나 아예 무응답으로 일관해 온 업체들이 27일 단체교섭 요청 건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연기를 요청하거나, 몇 군데에서는 ‘교섭에 응할 테니까’라는 전제를 달고 시간을 달라고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근로자성 인정’ 판정과 국회 증인 신문 결과가 큰 작용

레미콘 업체들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2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의 레미콘업계 노·사 증인신문에서 여야의원 막론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측을 질타하며 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노동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만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 될 뿐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용자에 대해서는 제재가 없어 법 집행이 형평성을 잃었다는 여론이 높은데다 김호진 노동부장관이 얼마 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사측 태도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동부가 유진기업 대표이사(최근에 아들 유경선으로 교체)이자 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인 유재필씨를 구속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고, 이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인신구속을 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며 유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코너에 몰린 연합회가 궁여지책으로 교섭 연기를 요청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노동위원회나 법원 등에서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노조법상 근로자’라며 ‘노조활동을 이유로 계약해지 한 것은 부당해고이며, 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판정이 잇따라 나왔고, 더군다나 경기지노위는 레미콘 운송기사들을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고까지 인정하는 등 사법기관의 근로자성 인정 판정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쪽, 노조 합법 여부 소송과 단체교섭 병행 움직임

그러나 이같은 태도변화를 레미콘 노사관계 정상화 수순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유진기업 등 대다수 업체들과 특히 레미콘연합회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에는 변함 없이 ‘조합원부존재확인소송’을 진행 중(지법 계류중)이고, 이날 유진기업의 공문에서도 ‘단체교섭에 응하겠다’는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유진기업의 관리부문 사장인 김춘수씨는 노조에 공문을 보낸 의미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조에는 변함 없지만, 국회 증인신문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온 만큼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처음부터 점검을 해 보겠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다만 “단체교섭을 할 만한 적법한 당사자로 인정하긴 어렵지만,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노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즉, 회사쪽은 국회나 정부 차원의 압력도 있는 만큼 단체교섭에는 참여하되 이와 별도로 노조 합법성 여부를 따지는 소송은 계속해 나갈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단체교섭은 이뤄진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는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유진기업이 조합원 명단을 요구하고 시간을 달라고 한 것은 일단은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는 국회나 정부에 면피하는 한편 계약기간이 만료된 조합원들을 걸러내면서 지연전술을 쓰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7월2일날 교섭하자” 노조 공문 보내

이에 노조는 28일 다시 레미콘 업체들에게 공문을 보내 다음달 2일 단체교섭을 하자고 요청했다. 노조는 이 교섭마저도 무산될 경우 단체교섭 해태로 노동부에 진정과 고소고발하고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내는 등 법적 대응과 함께 수위를 높인 투쟁을 벌여낼 계획이다.

한편 노조는 27일 밤 9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조합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갖고, 농성을 계속하면서 노조인정과 운반단가 현실화, 매주 일요일 휴무 등의 단체협약 요구안 관철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