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동패가 뜨고 있다!?-노래패는 어디로

13회 노동문화사랑방

율동패가 뜨고 있다!? – 노래패는 어디로!

신자유주의 반대, 김대중정권 퇴진 3.30 투쟁문화제, 6.1 투쟁문화제. 노래패와 풍물패는 간데없고, 무대에서는 율동문선대 일색이다. 이러한 문화적 흐름을 진단해보고, 비어있는 지점은 뭔지, 문화패 활동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열린 13회 노동문화사랑방에는 여느때와 다르게 율동, 노래, 풍물단위, 그리고 문화국 담당자까지 함께 모였다.

“3~4시간 이상 진행되는 투쟁문화제를 기획하려면 문화역량들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그런데 풍물패나 노래패의 경우에는 섭외하고 싶어도 무대에 설 단위가 없는 게 현실”이라는 문화담당자의 말대로라면 노래패나 풍물패는 어디로 갔는가? 이미 수년 전부터 지적되어 온 것처럼 재생산이 안되어 침체되어 있긴 하지만, 일주일 전에 문화제가 기획되는 조건 또한 집회무대에서 풍물패나 노래패를 보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획조건에서 율동패가 무대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조에서, 대중들이 율동패에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노조에서, 투쟁집회시 선동의 역할에 부응하는 율동패 조직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또한 화려하고 감각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조합원들의 감각의 변화가 율동패에 환호하고 박수를 치게 한다. 그러나 피아노줄을 타고 날라가지 않은 한 대중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받을 것인가?

풍물패나 노래패는 선동성을 회복하면 될 일인가?

활동의 경험이 많은 노래패일수록 “집회에서 문선활동이 즐겁지 못하고, 활동의 활력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고단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와는 다르게 자체 정기공연이나 파업사업장에서 공연을 할 경우에는 하고 싶은 판을 짜고 그 속에서 재미를 느낀다. 최근에 생긴 신생노래패처럼 문선활동보다는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활동하는데 더 관심을 갖는 경우도 생긴다.”는 얘기들은 집회 문선활동여부가 문화패활동을 가늠하는 잣대인가하는 점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97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10여개 참가팀중 절반에 가까운 문화패가 ‘가자 노동해방’에 맞춰 문선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며, 당시 시대상황과 정서를 잘 대변하는 노래라는 평가와 함께 문화패의 자기표현이 획일화되어 있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던 적이 있다.

문선대로서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만으로는 문화패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집회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노래패가 문선대로서 활동에만 긴박되지 않는 노래모임의 생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에서, 사업장이 없어져서 노조가 없어지더라도 풍물을 향유하고 다양한 활동의 공간을 열어내는 노력속에서, 삶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힘과 문화패의 생명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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