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진영의 소란이 의미하는 것
가수 박진영이 새 음반을 냈다. 이를 두고 말이 많다. 방송사마다 방송금지 처분을 내리고 기독교 무슨 단체에선 노래가 불순하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박진영과 그 편드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목소리가 높다. 나아가 자신들이 성과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는 투사인양 행세하는 것 같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걸까.
일단 박진영의 말은 그 자체로 논리적 자가당착이다. 한 예를 들자. 박진영은 어느 인터뷰에서 오현경과 백지영 등 이른바 비디오 사건 당사자들을 언급하며, 그들은 잘못이 없고 그것을 관음증 환자처럼 훔쳐보고 당사자들을 매장시킨 사람들이 문제라고 했다. 성을 하나의 놀이로 주장하는 그로선 당연한 얘긴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사람들이 그런 비디오를 놀이삼아 즐기면 안 될 것은 무엇인가. 그걸 즐긴다고 해서 왜 박진영 따위에게 관음증 환자에 도덕적 백치란 얘기를 들어야 하는가. 박진영이야말로 그의 적들과 똑같은, 자기 잣대에 의한 도덕주의에 보수주의자 아닌가?
이 이야기의 핵심은 맹목적인 자유주의자들이 얼마나 엉터리 아전인수에 빠져 있으며 음흉한 거짓말쟁이들인가 하는 점이다. 성이 해방되어야 하고 그것이 거칠 것 없는 놀이로서 민중에게 획득되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진짜 이유는 성이 언제나 지배계급과 계급적 위계구조에 의해 철저히 독점·통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생활에서 시간과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은 성과 사랑이다. 그러나 애들 유치원 보내기도 빠듯한 서민 부부에게 그런 시간과 비용이 어딨는가. 나아가 이런 지적은 민중 일반을 성적으로 궁핍하고 그로 인해 민중을 야비하고 천박하게 몰아가는 전체 구조에 비추면 빙산의 일각도 안 된다. 즉 잘 보이지 않는 이 구조 자체를 해체하기 전에 해방과 놀이는 꿈 속의 꿈조차 못 된다. 그런데 박진영같은 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 한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다 잘 살 수 있다’는 그 가증스럽고 오래된 거짓말을 그대로 빼닮았다.
박진영 소란의 진정한 의미는 성을 둘러싸고 그것을 자기 몫으로 더 가지려는 이 구조 상층부의 내부투쟁이다. 보수주의는 기득권 세력들이 남들 모르게 자기들만 성을 누리려는 오래된 논리며, 자유주의는 그 아래 쪽에 새롭게 부상하는 일종의 쁘띠부르주아 세력의 도전논리로, 마음만 먹으면 시간과 비용을 언제든 제고할 수 있는 자들의 논리다. 어느 쪽이 이기건 민중은 다른 가난과 더불어 여전히 성적 궁핍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귀신과 살쾡이의 싸움이다, 그래서 입맛이 쓰다. 대체 귀신인가 살쾡이인가. 바로 이 한심한 구경이나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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