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수색역에서 은평터널 방면으로 언덕길을 걸어서 10분 ‘수색철거 대책위원회’ 농성장을 찾아갔다. 수색역에 즐비한 노점을 지날 때, 재래시장의 향취를 느끼는 것도 잠시, 세련된 고층 아파트 밀집지역이 눈에 들어 온다. 앞으로 개발이 잘 될 지 의문이 들 정도인 구시가지 사이에 있는 아파트 밀집지역. 바로 이 아파트가 94년부터 시작된 수색 영세민의 피와 눈물을 쥐어짜면서 철거 뒤에 만들어진 아파트다.

94년부터 시작된 싸움, 아직도 끝나지 않아

대략 800여 세대가 살고 있던 이 곳 수색은 1987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후 94년부터 본격 철거에 들어갔다. 94년부터 시작된 철거와 탄압은 이제 2001년까지 햇수로 7년째 계속되고 있다. 94년 800여 세대에 대한 대대적인 철거와 이에 맞선 철거대책위 활동을 통해, 97년 23가구가 영구임대주택 입주 전까지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가수용 단지를 쟁취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건설자본과 가옥주들의 부단한 회유책과 탄압은 주민들을 이주시켰고, 99년에 다시 4세대의 작은 대오로 영구주택 입주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전 한 세대가 떠나 현재는 3세대만 남았다. 이탈한 사람은 전 위원장이었다는데, 집안 가재 살림에 압류딱지가 붙어 있던 사람이 갑자기 몇 천만 원 되는 전셋집을 알아보고 다녔고, 예상한 대로 농성장을 떠났다고 한다. 이를 전하는 말 속에는 현재 농성대오가 겪고 있는 고충과 결코 그런 일로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다짐이 섞여 있는 듯 했다.

마침 찾아간 날인 7월 24일은 ‘노빈학 연대투쟁’ 기간이라 사람들이 집회장에 나가고, 농성장은 할머니 한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며칠 전 용역깡패에게 부상을 당해 발을 다쳐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는 할머니는 94년 대대적인 철거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용역깡패 수백명이 아예 동네에서 진을 친 상태로 있었거든. 특히 밤에는 주민들이 한명씩은 돌아 다니지 못하고 여럿이서 짝을 지어 다닐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서웠어. 또, 공가(사람이 살지 않아 비어있는 집)에 불을 질러놔서 동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철거민들이 그랬다고 소문을 내더라고.” 지금도 건설자본과 가옥주들은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따내려고 막무가내로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는 악선전을 퍼뜨리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꽃병 날라줄 때가 가장 기뻤지

“임대주택에서 하루라도 잠을 잔 뒤에 죽을거야. 싸우는 건 안 힘들어. 어떻게 하면 이길까 이런게 정말 힘든거지.” 처음 철거 투쟁에서 학생들에게 꽃병을 날라 줄 때 그때가 가장 기쁘고 즐거웠다고 하는 할머니. 이제 어느 누구도 겁날게 없는 완강한 투사가 된 할머니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철거 투쟁 중에 구속된 남편과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는 아주머니는 “강제 철거 때, 애(자녀)들이 하얗게 사색이 되고 충격을 받아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했어요. 아빠가 돈벌러 멀리 갔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요새는 애들이 엄마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해 하고 물어볼 때 그때가 가장 힘들어요. 아무래도 우리 철거민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 같아요. 바깥은 아름다운데, 여기는 완전히 달라요.”하며 한숨을 쉬었다.

며칠 전 7월 6일, 달랑 3가구만이 남아있는 가수용단지를 용역깡패 200여명이 침탈해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는데, 그 바로 전날 건설 자본과 가옥주는 가수용단지 반환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공증을 했다고 한다. 가수용 단지를 약속해 임대주택 입주 가능성을 부풀려 놓아 긴장을 풀게 해 놓고, 그 다음 침탈을 하는 저들의 야만에 대해, 철거민들은 격노했다.

인간다운 삶은 위한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어

사회주의란, 사회주의를 태동시킨 배경과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인간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에 맞선 인간해방을 향한 투쟁 역시 계속될 것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과 3박 4일 수련회와 같은 노빈학 연대투쟁을 할 때 가장 기쁘다. 학생들이 잡혀가면 함께 잡혀가야 마음이 편하고 안심이 된다.”고 말하는 인정많은 할머니를 통해서 말이다.

철판 슬레이트 지붕, 도로변의 차 소음, 뙤약볕의 무더위로 밤에도 잠을 못자, 집회에 가면 잠만 자다 온다며 웃음 짓는 할머니를 뒤로 하며, 처절한 삶의 현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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