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표제에 의한 비례대표제 위헌 판결을 보며
제도는 구조의 제약을 넘지 못한다
근대적 법은 신을 대신했다. 근대는 ‘법’이 판단의 기준이다.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요, 집행하는 것은 ‘행정을 수반하는 집행부’요, 법을 판단하는 것은 ‘사법부’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이런 ‘삼권분립’의 형식을 갖고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국민대중에게는 이 세 가지의 제도적 장치들이 서로 다른 계급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갈등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집권을 비판하는 한나라당의 공격이라든지, 행정부 내 부서간 갈등이라든지. 그러나 맑스는 이러한 것을 ‘찻잔 속의 폭풍’ 정도로 비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소위 ‘법’이라는 것은 입법부와 행정부 위에 군림하며 최종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하다.
지난 7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현행 1인 1표제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 배분방식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유권자의 선택에 대한 대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정계뿐 아니라 의회 진입을 갈망하고 있는 진보정당운동세력에까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환영 논평을 냈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1인 2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이렇게 된다면 진보정당의 의회진출에 호조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선거법에 있는 진보정당세력의 의회 진입 장애요소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정치개혁의 진전을 위해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반드시 기존의 보수정치를 갈아엎을만한 선거법 개정으로 이어질 지 미지수다. 민주당은 위헌 결정에 대한 환영을 표명한 반면, 한나라당은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보수 정치세력들은 각각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더욱이 선거법 개정에 따른 실질적인 의석 변화를 위해서는 유권자의 투표성향,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을 극복하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 1인 2표 비례대표제는 진보정치에게만 유리하고 보수정치에게는 불리하다는 단순도식의 정치적 결과를 낳지는 않는 것이다.
둘째, 정치개혁을 화두로, 다른 이슈들이 봉합되거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될 수 있다. 지금부터 내년 6월 지자체 선거까지 선거법 개정과 선거국면의 부각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긴밀화·신속화시키고자 하는 노동법 개악과 자본과 권력의 폭력 등이 이슈화되지 못하도록 하거나,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투쟁이 부차적인 문제로 터부시되는 국면을 초래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셋째, 제도에 대한 환상이다. 유럽 민주적 정치제도는 권력구조로서 의원내각제와 선거법으로서 1인 2표 비례대표제가 일반화되었다. 이것은 흔히 대통령제와 단순다수제보다는 정치적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의 우위성을 갖는다고 회자된다. 그러나 유럽에서 노동자 계급정치는 제도정치영역 내에 봉합되어졌고, ‘위임정치’, ‘대리정치’라는 부르주아 정치 개념 안에 묶어 두는 결과를 만들었다.
지금은 그 20세기 정치의 한계를 넘어 실질적인 정치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을 전망해야 하며, 따라서 제도 변화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삼가해야 할 때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