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3년된 기자의 경우
“인터뷰요?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상관없지만 기사에 나가면 아무래도 조선일보 기자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일텐데… 데스크하고 상의 좀 해보고 전화드릴께요.”
조선일보 정치부의 김창균 기자(40·사진).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는 부장과 상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밖에서 신문사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게다가 세무조사 때문에 ‘전쟁’ 치르느라 가뜩이나 날이 서 있을텐데 민주노동당 기관지와의 인터뷰라니… 결국 인터뷰는 물 건너간 게 아닌가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어디서 만날까요.”
서울대 경제학과 80학번. 대학원 졸업후 석사장교를 마치고 88년 4월 조선일보 입사. 수습기간이 끝나고 편집부로 발령. 그후 경제부, 국제부, 사장실,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 등을 두루 거쳤으며 현재는 민주당 출입.
스스로를 “광주학번”이라고 말하는 그는 대학 1학년때 잠깐 ‘지하써클’에도 몸을 담았었다고 했다. “선배들한테 광주얘길 전해들으면서 가슴 아파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웬만한 각오 아니면 계속 하기 어렵겠더라구요. 전 뚜렷한 의식을 갖고 있던 것도 아니였고 오히려 회색에 가까웠죠.”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냥 막연한 생각이었어요. 전공을 살려서 출세해보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고. 문학청년이요? 아니에요… 참, 고등학교 때 백일장에 나가 입상한 적은 한번 있어요.”
수습기자 시절 에피소드 하나. “입사한지 한달만에 결혼을 했는데 그때 사회부에 배치되어 경찰서 도는 수습기간이었거든요. 경찰서에서 먹고 자고 하니까 일주일에 한번 집에 들어가기도 어려웠죠. 그렇게 두달이 지나고 나니까 어느날 시경캡이 ‘오늘부터 새벽2시에 집에 가도 된다’ 하길래 새벽에 집에 갔더니 아내가 절 보고 펑펑 울기만 하더라구요.”
언론사 세무조사 실시 이후 현 정부와 조선일보가 일대 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적'(?)의 진지에 달랑 노트북 하나 들고 나간 기자의 심경이 궁금하다.
“한마디로 뻑뻑하죠. 정권 바뀌고나서 다들 50년만의 정권교체라고 칭찬할 때 우리 신문은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계속 나갔거든요. 당시 한화갑 원내총무가 거의 매일 저한테 ‘조선일보 너무 하는거 아니냐’면서 불만을 얘기할 정도였으니까요. 솔직히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보면 당장 출입처에서 피곤해지니까 회사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요즘에는 (당직자들이) 드러내놓고 감정표현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어요. 그래도 뭔가 비판적인 기사를 쓸 것이라고 ‘경계’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감지되죠.”
사실 그를 인터뷰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세무조사 공방으로 한창 시끄럽던 지난 7월초-조선일보 기자들이 총회를 열어 대정부 투쟁을 결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인터넷 조선일보 이메일클럽(기자들의 취재뒷얘기 등을 이메일로 서비스하는 것)에서 날아든 이메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의 13년된 기자의 요즘 생각’? “독자 여러분들이 ‘도대체 해당 언론사에 있는 현장 기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고 궁금해하실 것 같아” 썼다는 그 이메일은 세무조사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쓴 것이었다.
“그 이메일을 보내고나서 메일을 1백50통 정도 받았어요. 이렇게까지 엄청나게 파장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죠. 처음부터 끝까지 욕으로만 도배된 것도 있고, 격려성 글도 있고 골고루 왔어요.”
“‘…요즘 생각’을 보니까 정권이 조선일보를 탈세 집단으로 몰고 간다는 것에 대해 기자들 내부에서 큰 고민이나 갈등이 없었기 때문에 기자총회도 금방 끝난 것이라고 쓰셨던데요.”
“저도 그 총회 자리에 있었어요. 이번 세무조사가 조중동,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일보를 죽이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실시된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그때 총회 분위기도 그랬구요.”
갑자기 인터뷰가 좀 썰렁해졌다. “현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보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책에 대한 근거있는 비판이 아니라 거칠게 말하면 무조건 ‘물어뜯기’식이랄까요.”
“말하기 힘든 부분이네요. 내부에서도 젊은 기자들 중에는 우리 신문이 좀 심한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긴 해요. 저도 조선일보 논조에 1백% 동의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북문제에 있어서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도 좀 그렇고.”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30분 정도면 끝난다고 했던 인터뷰가 벌써 한시간 반이 지났다. 그가 초판신문이 나왔을 시간이라며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질문 한가지가 남았는데. “연봉이 얼마인지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작년에 7천만원 받았어요.” 5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소나타를 끌고다닌다는 그에게 물었다.
“기자로서 행복하십니까.” “썩 행복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 하고 싶은 일도 없어요. 내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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