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임박한 공황과 노동운동의 대응
지금 즉각, 총파업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제공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제 5장은 11월 22일에 작성된 것입니다)
** 지난 11월 17일자 <주간정세동향>에 [부록]으로 본 글의 앞부분인 1. 2.
3. 이 나간 직후부터 금융위기에 대한 기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하더
니, 급기야 21일 밤 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급박하게 상황이 전개되면서 매주 <주간정세동향>에 기획 연재 하
려던 본 글도 긴급히 작성되어, 20일에는 4. 신자유주의에서의 공황 — 그
원인과 특징이 컴퓨터 통신 천리안과 나우누리의 노조와 학술단체 CUG에 올
려졌으며, 5. 한국 자본주의에서의 공황–그 원인과 예상되는 결과 역시 22
일 작성 되는대로 각 CUG에 올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주간정세동향>에
서는 지면 관계상 제 4 장 부분은 싣지 못하고,,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 대
해 잘 설명하고 있는 제 5 장 부분만을 따로 싣습니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공황이 노동자 민중의 삶에 미칠 영향과 그 정세적 중요성으로 인
해 애초 기획 의도인 [부록]이 아닌 [정세초점]으로 옮겨 싣습니다.
제 4 장 부분이 필요하신 분은 컴퓨터 통신에 올려져 있는 내용을 참조하
시거나 따로 연락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6. 공황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응 방향. 7. 맺음말을 계속
이어 싣겠습니다. -<편집자주>
5. 한국 자본주의에서의 공황 – 그 원인과 예상되는 결과
1) 공황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의 국제금융정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레스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은 지난 11월 13일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한국
은 500억 달러 대의 IMF 긴급자금을 지원 받아야만 ‘공황’을 피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증언했다.(그의 말은 부정확하다. 피할 수 있는 것은 ‘공황’이 아니라
‘파산’이다!)*주1) 이 일이 있은 후 오늘로써 일주일이 조금 지났다. 그리고 정
부는 21일 국제통화기금에 정식으로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21일 오전 11시 스탠리 피셔 국제통화기
금(IMF) 수석 부총재를 만난 후 “피셔 부총재는 언제든지 요청하라고 밝혔다”(무슨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면서 “2∼3일 내로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다.*주2) 그리고 IMF측에 요청할 구제금융의 구체적인 규
모는 미국, 일본 등의 협조융자를 포함하여 500억∼600억 달러인 것으로 보도되
고 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가? 국제통화기금에서 구제하기로 했으니 이제 대공
황은 피해지는가? 한국경제의 위기는 한고비를 넘긴 것인가? 유감스럽지만 아니
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공황이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조
금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공황은 그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공황의 전형적인 양상은 대대적인 도산, 파산 같은 것이다. 그런데 국제통화
기금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피해질지 모른다. 국제통화기금이 돈을 빌려
주면(구제금융은 공짜가 아니다. 빌려주는 것이다!) 외환보유고를 채워서 국가
파산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여타의 초국적 자본들도 국내 은행(또
는 재벌)에 대한 대출금(달러로 된) 회수를 중지할 것이며, 돈을 새로 빌려주기
도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행의 지원으로 하루하루 간신히 연명해 오던 은행, 종금사
들이 줄줄이 파산을 선언해야 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내
은행들이 재벌에 대해 대출금을 회수하려 하거나, 어음을 할인해 주지 않는 상
황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재벌 또한 줄줄이 부도를
내거나 도산하는 사태를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다.*주3)
이에 앞서 지난 19일 정부는 경제부총리를 교체하면서 ‘금융시장 안정 및 금
융산업 구조조정 대책’을 발표했다. 그 골자는 ①일일 환율 변동 허용 폭을
2.25%에서 10%로 4배 확대 ②종금사를 비롯한 부실 금융기관들의 폐합 ③정부 재정 투입에 의한 금융기관 부실 정리 및 3년간 예금 보장 ④채권
시장의 거의 완전한 개방 등이다. 그리고 긴급한 달러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
해 정부가 미국이나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빌려 온다는 대책이 덧붙여졌다. 평
상시 같으면 하나하나가 모두 혁명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질 대책들을 한꺼번
에 쏟아 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메가톤급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발표 다음날인 20일, 환율은 새
로 적용된 일일 변동 허용 폭 10%를 단숨에 채우며 1,139원까지 폭등, 나흘째
외환거래가 중단되었다. 그것도 단 30분만에 그렇게 되었다. 증시도 종합주가지
수가 전날보다 14.18%나 급락했다. 또한 자금시장의 경색현상이 심화되면서 3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시중 금리를 대표한다)이 하루만에 0.3% 올라 연리 14.3%로
치솟았다. 런던, 룩셈부르크 등 해외에서 거래되는 각종 한국물(코리언 페이퍼)
들의 가격도 일제히 폭락했다.
이렇게 비상대책이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은
IMF를 통하지 않은 지원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목줄을
바짝 조인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스탠리 피셔 IMF 수석 부총재와 티모시 게
이트너 재무부 차관보를 한국에 보내 IMF의 구제금융을 요청하라고 종용했다.
동시에 이례적으로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까지 직접 나서 IMF 구제금융 신청
을 독촉했다. 말이 ‘종용’이고 ‘독촉’이지 실은 목줄을 바짝 조인 상태에서 들
이댄 최후 통첩의 칼날이었다.
결국 어떻게든 대선 때까지 시간을 벌어 보려던 국내 패권집단(지배세력 안의
패권적인 부분으로서 주축이 재벌과 특권 관료이다)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
다. 이렇게 해서 한국은 IMF를 통한 초국적 자본의 ‘경제적 식민통치’ 아래 놓
이게 된 것이다. IMF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짐작하고
있는 재벌 언론들에서도 “경제신탁통치”, “경제주권 저당” 등으로 자신들의 참
담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IMF가 요구한 각종 조건의 이행이
어렵다 해서 무조건 부정적 시각으로 받아들이면 지난 날 페루, 가나, 이집트
등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IMF폭동’도 가상할 수 있다”고 우려 섞인 말을 하고
있다.*주4)
‘재벌언론’들의 이러한 보도들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
융을 받는다고 해서 상황이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상황은 오히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공황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자본의 잇따른 파산이나 도산 등의 파국 양상은
공황이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공황은 꼭 파산이나 도산
등 파국의 양상을 띠고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경제학에 따르면 공황이란
“항상 기존의 모순들의 일시적 폭력적인 해결에 지나지 않으며, 교란된 균형을
일시적으로 회복시키는 강력한 폭발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 자본의 주기적인
가치감소(자본이 지니고 있는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 이것이 표면화된 것이 주
가하락이다 : 필자 첨가)–이것이 이윤율의 저하를 저지하고, 새로운 자본의 형
성에 의하여 자본가치의 축적을 촉진하기 위한 ‘불가피한'(필자 첨가) 수단이다
–는 자본의 유통과 재생산 과정이 주어진 조건들을 교란시키며 따라서 갑작스
러운 중단과 공황을 ‘수반’한다”*주5)
여기에서 보듯이 공황은 첫째로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에서 나타나는 소비재-생
산재 또는 실물-금융 등 경제.산업 부문간의 불균형(이렇게 되면 재고누적 또는
자금경색이 심각해질 것이다!), 둘째로 새로운 자본투하(생산성이 높은)가 급속
히 이루어지는 속에서 낡은(생산성이 낮은) 투하자본이 폐기되지 않음으로써 일
어나는 자본의 장부상의 가치와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가치 사이의 불균형(이렇
게 되면 그 기업의 주가는 형편없이 떨어질 것이다!), 셋째로 과잉 생산과 과소
소비 사이의 불균형(이렇게 되면 유휴설비가 전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등 각
종 불균형에 의한 재생산 과정의 교란.중단 현상이다.(이 가운데 첫째와 셋째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 글 앞의 4. 에서 간략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러한 불균형을
폭력적으로 해소함으로써 균형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각종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을 없애 버려야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이다. 자본
주의는 적자생존이지 모두가 더불어 사는 질서가 아니다. 그래서 약자를 죽이기
위해서 당분간 모두가 제살깎아먹기 경쟁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버티는 힘
이 약한 자가 탈락한다. 이것이 어려운 말로 ‘자본의 가치감소’이다. 이렇게 하
여 불가피하게 기존 자본의 가치(상품 가치와 불변자본-기계와 원료-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과정이 일어나게 된다. 폐업이 아니면 휴업이나 조업단축이라도 하
게 만들어야 하며, 도산.파산이 아니면 법정관리나 화의라도 신청할 지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자본가는 그 귀한 재산의 값어치가 떨어
지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한편 이렇게 자본의 가치를 깎아먹는 이 과정에서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자
본만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 또한 감소한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제살을 깎아
먹으면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온전히 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본주의 질
서가 ‘평등’을 향하여 나아가 버리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본가들의 재산만이 가
치를 깎아먹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력의 가치도 깎아먹히게 만든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정리해고와 임금동결이 바로 그것이다! 해고된 노동력
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어지고 만다. 또 실질임금이 줄면 노동
력의 값어치가 그만큼 삭감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재벌들은 그 동안 이것을 집
요하게 주장하고 악착같이 관철시켜 왔던 것이다.
공황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따라서 공황은 ‘파국적’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파
산이나 폐업 같은 극적인 모습만을 뜻하지 않는다. 또 중요하다. 그리고 겉모습도 총파업으로 나라 경제가 정지하는 것과 같은 아주
극적인 모습만을 꼭 상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언론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즉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에 의해
파국을 면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공
황의 과정이 공장과 은행들이 일거에 줄줄이 문을 닫고 도산.파산하는 극적인
“파국”의 양상으로부터 조금 누그러뜨려진 “파국적”인 양상으로, 그리고 시간을
다소 끌면서 약간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예컨대 은행이나 종금사 같은 금융부문에서 일거에 줄줄이 파산선언을 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 대신에 부실한 금융업체들이 강제적으로 통.폐합되어 나
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질서 있게 도산 처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국제통화기
금은 파산과 도산을 ‘합리적’인 것이라며 아주 좋아한다고 하니까! 한편 실물부
문의 자본(재벌을 위시하여)들도 판로가 막히고 돈줄이 막혀 일거에 대거 쓰러
져 나가는 사태는 면할지 모르겠으나, 수익성이 낮고 부채가 많은 기업들로부터
시작해서 조업단축과 휴업을 하거나 법정관리, 화의신청을 하는 기업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 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동향만 보더라도 54위의 재벌인 진도그룹이 11월 20일 1,100억 원의 협
조융자를 받기로 했고, 전북지역의 중견 건설업체인 서호건설이 18일 부도를 냈
다. 또 대구의 현대금속과 그 계열사인 동성철강공업이 20일과 21일 각각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주6) 이처럼 경기는 침체되고*주7), 금리는 올라서 경영수지
는 아주 어렵게 되는 데다가 예전처럼 은행돈을 마구 끌어다 쓰는 것마저 어려
워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속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긴축과 디플레
이션이라고 한다.
한편 공황의 표면을 상징하는 외환.증권시장은 어떻게 될까? 갚아야 할 빚은
산더미이고 경기는 침체되는데 환율과 주가가 좋아지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어
제, 오늘의 호전되는 양상은 극히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물론 당장 달러 부
족으로 인한 환율의 폭등세와 그에 따른 주가 폭락은 얼마간 진정될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추세적으로 보면 환율이 하락하는 것도 아니고 주가가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환율은 폭등되어 있는 현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계속 상승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대공황의 최저점에서 1,500원 선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주8) 주가 역시 일시적으로 반등하고 있지만 실물경제의 악화에 따라 다
시 하락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번 대공황의 최저점에서 300원 대
이하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 이러한 공황의 과정에서 가장 심각하게 잠식당하는 것
은 노동력의 가치이다.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정리해고 당할 것이다. 그리고 취
업문은 좁아져 실업자가 급증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환율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특히 석유류 등)의 급등과 세금 및 공공요금의 인상 등으로 인해 물가는 폭등
할 것이다. 정부가 은행의 부실을 떠 안느라고 수십조 원을 쏟아 부으면서 IMF
가 요구하는 대로 재정적자를 내지 않으려면, 세금과 공공요금을 대폭 인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멕시코의 경우 IMF의 구제금융에 따른 구조조정 요구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했고, 연간 물가가 26∼
48% 오르는 속에서 임금은 한자리 수에 머물러야 했다. 최근 멕시코 경제가 다
시 살아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이와 같은 살인적인 초과착취와 초과수탈에
의한 것이다.*주9)
IMF의 구제금융으로 공황이 ‘파국’을 면하고 다소간 완화된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지만*주10), 우리들이 보다 더 중시해야 할 측면은
그것이 아니다. 공황을 통한 균형회복 과정이 IMF의 요구와 철저한 통제에 의해
서,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관철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경제구조
재편)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하다.
초국적 자본은 상품(우리의 경우 특히 자동차, 정보통신 등) 시장은 물론 금
융.서비스 시장의 완전한 개방, ‘유연화-착취’ 제도의 도입(정리해고제, 파견근
로제 등), 금융산업 개편(재벌에게 특혜 대출하는 ‘관치금융’의 혁파), 재벌 경
제력 집중 개편, 기업 매수.합병의 자유 보장, 초국적 자본의 은행 지분참여 보
장 등 자신들이 들어와서 마음껏 착취.수탈할 수 있는 구조와 여건들을 강요할
것이다. 그것도 ‘개혁’의 이름으로!
뿐만 아니라 높은 금리와 불안정하게 오르내리는 주식시장 및 외환시장을 겨
냥한 투기적 금융자본(헤지펀드)의 준동도 극심해질 것이다. 이런 것들이 관철
되면서 공황은 국제통화기금, 보다 정확히는 미국이 주도하는 초국적 자본 세력
에 의해 관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공황을 구경꾼의 위치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 과
정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서둘러
서 이것저것 대책을 쏟아 내놓고 있다. IMF는 전면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공황을 관리하면서 이를 계기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질서(구조와 체제)로 경제
를 대(大)개편하려 하고 있다.
재벌들은 이미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리해고제를 실시하고 3년간 임금을 동
결하라고! 그렇다면 이것은 지난번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 이상의 한판 싸움이
다. 5.16 이후 형성되어 온 우리나라 경제질서–노사관계만이 아니라–를 판갈
이하는 거대한 한판 싸움이다. 5.18과 6.10 항쟁처럼 같은 정치적인 사안에 대
한 싸움만이 큰 싸움이 아니다.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불가분이고 그 가
운데 경제적인 것이 기초적이다. 이 기초적인 문제에 지금 한판 싸움이 다가오
고 있다.
이 싸움을 잘 해서 노동자.민중이 민중생존권의 파탄으로, 민주 기본권의 말
살로 내몰리지 않아야 하고 나아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자면
용기와 더불어 지혜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지혜는 통박이 아니라 과학
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첫째 이번 공황이 초래된 원인을 정확히 밝혀 내야 한
다. 둘째 이 상황 속에서 각 세력들은 어떻게 개입하여 자기 이해관계를 관철시
키려 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 기초해서
이 역사적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2) 각축하는 제 세력의 한국경제 진단
한국경제 왜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한국경제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길래 대
공황이라는, IMF의 신탁통치라는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가? 이에 관해서 재벌,
특권관료 등 국내 지배세력은 그 동안 무엇이라고 말해 왔는지, 이에 맞서 대치
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운동은 또 뭐라고 말해 왔는지, 그리고 초국적 자본 세력
은 또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잠시 살펴보자.
우선 지난 36년 간 한국경제를 주도해 온 국가관료 세력(국가기구를 점유.운
영하고 있는 집단)은 한국경제의 현상태에 대해 뭐라고 말해 왔는가부터 살펴보
자. 이들의 현실 인식은 한마디로 형편무인지경이다. 이 지점에서도 이들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지난 36년 동안 민중 위에 파쇼적으로 군림하며 특권을
누리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주11) 그 전형적인 표본이 바로 며칠 전
퇴진한 강경식 부총리이다.
그는 자칭 ‘시장경제론자’이다. 결코 지난 군사정권 시절처럼 정부가 경제를
주도하겠다거나 정부의 규제가 유지.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해 온 것이 아니다.
그는 국내외를 들끓게 한 기아사태에서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
장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다 알고 있다, 기아를 삼성에게 넘겨주기 위한 명분으로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나중에 적절한 시기를 보아 삼성에 넘겨주기 위해서, 시
장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나서서 기아 그룹의 회장을 쫓아내고서, 삼성 대신 정
부가 기아를 인수하고 공기업으로 만들기로 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 과정에 흑
막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통해서 온 세계가 한국의 특권 관료집단과 재벌
사이의 검은 결탁이 빚어내는 퀴퀴한 냄새를 맡고 있다.*주12)
‘부도유예협약’이라는 기묘한 변칙도 그렇다. 부도유예는 재벌에게만 해당이
된다. 또 누구는 유예해 주고, 누구는 아니고를 자기들 임의대로 한다. 무슨 근
거로 그렇게 하는지 법적 근거도 없다. 중소기업은 ‘해당무’이다. 그것을 계기
로 돈이 오고간다. 안 봐도 누구나 안다. 그는 모피아(재경원의 특권 관료집단
을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고 있다!)의 보스이다. 그리고 모피아는 흔히 정경유착
이라고 하는 문제의 표본이다. 그는 국가기구를 더욱더 폭압기구화 하고 이런
방어벽 속에서 국가기구를 더욱더 사유물화 하고서, 이런 특권적 지위 위에서
재벌과의 결탁관계를 바탕으로 비리를 일삼아 치부하는 이 나라 특권 관료의 천
민적 속성을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도 확고하게 견지하고 또 과시했다. 이것이
이 나라의 특권관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없다. 저들의 기득권을 유지하
기에 유리하게 세상을 본다. 그런데 경제가 별 문제 없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경제는 항상 별 문제가 없다.
이번 대공황이 일어나기 한달 전 강경식은 “우리 경제의 현황과 향후 정책방
향”이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주13)
“한보사태 이후 계속되는 대기업 부도사태로 촉발된 주식시장의 침체, 단기
금리의 상승 그리고 금융경색에 따른 연쇄도산의 우려 등이 금융 대란설과 경제
위기설의 주요 원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지금의 우리 경제
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고 또 극복될 것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금의 위기설은 실제로는 자신감의 상실에서 비롯된
심리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경제지표를 보면 명확해집니다”, “우선 최근의 경제
동향을 살펴보면 ’95년 4/4분기 이후 하락국면을 지속하고 있던 우리 경제는 여
러 가지 지표가 뚜렷이 호전되는 기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의 문제는 자본가들이 자신감을 잃고 있는 순전히 심리적인 것일 뿐,
실제적으로는 거의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것이 그 동안 이 나라 경제를 주도해
온 특권관료들의 시각이었다. 강경식 혼자만이 그런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번
대공황이 닥치기 넉달 전인 지난 7월 4일에 있은 어느 잡지의 좌담에서 재정경
제원 제1차관보 안병우는 좌담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주14)
“지금 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데
대해서 너나 할 것 없이 공감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러면서 그는 “정
부는 결코 ‘위기’라는 표현을 스스로 쓴 일이 없고, 이 상황을 위기로 보고 있
지도 않습니다. 경제가 어려움이 있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현상적인 경기의 부양만으로 해결될 어려움이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저 경기 순환적인 현상에 대한 경
기 조절적인 대책 즉 불황이니까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은행에서 재벌들에게 돈
을 좀더 풀어 주고, 또 정권의 공약사업을 조기에 집행해서 정부 예산지출을 좀
더 늘이는 따위만 가지고는 뭔가 좀 부족한 상황, 그래서 플러스 알파로 구조조
정을 해야 하는 상황 정도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을 평하여 “대변혁이 시도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
다. 구조조정이 변혁, 그것도 대변혁이라니!
이처럼 장관이 ‘심리’론적 경기부양론자라면, 차관보는 ‘물질’론적 경기부양
론자이다. 그리고 둘 모두 대(大)낙관론자이다. 이것이 한국 경제관료 집단의
현실인식이었다.
그러나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에 온 신경이 가 있는 이러한 그들의 시각, 그
시각으로 파악한 현실인식은 냉엄한 현실의 벽에 부딪쳐 무참하게 부서지고 있
다. 지난 19일 낮 갑자기 퇴진하면서 강경식은 “우리가 세상이 너무 변한 걸 몰랐다”고 푸념하면서 정부종합청사를 떠났다. 이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말 한마디 없이!*주15)
그러면 지배세력의 또하나의 주요 분파인 재벌들은 뭐라고 말해 왔던가?
잘 알다시피 재벌들은 관료들과는 달리 입만 열면 ‘경제위기’를 떠들어 왔다.
그리고 경제위기의 주범이 노동자라며 노동자에게 범죄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일은 열심히 안 하면서 돈만 많이 요구한다고 몰아세우면서! 그러면 이러한 그
들의 인식은 얼마나 과학적인가?
그들은 마치 지난 냉전 시기의 을 펼쳤듯이 “전반적 위기론”을 외쳐 왔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제1차, 제2차, 제
몇차, 등등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위기를 얘기했듯이 재벌들은 경기가 하강국면
을 보일 때마다 어김없이 ‘경제위기론’을 들먹였으니까! 그러나 한가지가 달랐
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파국을 맞아 무너진다고 하며 남의 파국에 대
해 위기론을 펼쳤다면, 한국의 재벌들은 자신들이 무너진다고 하면서 자신의 파
국에 대해 위기론을 펼쳤다. 전자는 남이 무너질 거라고 기대감을 느끼기 위해
서 또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투쟁하라며 고무하기 위
해서 그런 얘기를 했다면, 재벌들은 자기가 무너질 거라고 그러면 이 나라 경제
가 무너질 것이고 그에 따라서 당신들 노동자.민중들도 살기 곤란해질 거라고
은근히 위협하기 위해서 그런 위기론을 만들어 내고 퍼뜨렸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하여 위기
론을 주도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조석래 전경련 부회장(효성그룹 회장)은 7월
23일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개막된 “제11회 최고경영자 제주도 하계 세미나”에서
있은 기조강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위기국면이다. 굴지의 대기업 그룹이 연쇄적으로 무너지거
나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가 이렇게 된 것은 각 경제주체들이 그 동안 너무 잘못했기 때문이다.”
“근로자는 어떤가. 지난 85년부터 10여 년간 일본과 미국의 임금이 1백30% 정
도 오를 때 우리나라는 무려 4백16%가 올랐다.”
“생산성을 상회하는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가 우리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된 것
이다(이건 순 거짓말이다!).”
“임금뿐만이 아니다.”
“근로자는 회사를 자기 회사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일부 기업에서는 작업현장 재배치까지 노조가 간섭했다고 한다.”
“과연 생산성 향상이 있을 수 있을까?” 라고!
이렇게 터무니없는 말로 노동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놓고는 나아가 “국민
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평등보다는 차등을, 형평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체제임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주16) 이 속에 한국 재벌의 천민적 자
본가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재벌들의 을 뿐이다. 그저 “시장주도로 가야 한다”, “정부 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재
벌을 완전히 자유롭게 해야 한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따위의 구
호성 주장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 관료와 재벌이 한통속을 이루고 있는 이 나라 패권집단(지배세력
중에서 패권을 가진 부분으로서 지배블럭이라고도 하는데)을 한 묶음으로 압박
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은 뭐라고 말해 왔고 뭐라고 또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한마디로 얼르고 뺨치는 식이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한국경제 잘 될
거다”라고 말한다. 10월에 한국을 다녀간 국제통화기금(IMF) 조사단은 “한국경
제가 고속 성장을 거듭한 후 최근 구조적, 경기순환적 구조조정기에 접어들었
다”, “주요 수출상품의 교역조건이 악화됐음에도 불구, 거시지표가 여전히 건전
하고 물가도 안정된 상태”라고 말했다.*주17)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경제는 결딴났다”고 이야기한다.*주18)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는 “한강의 기적은 끝났다”는 소리가 요란하다. 미국의
경영진단 컨설턴트 회사인 부즈 앨런 & 해밀턴(Booz. Allen 지난달 31일 “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의 첫 번째 소제목이 “경제 기적의 끝”(the end of economic miracle)이
다. 이 보고서는 그 이유로 첫째 “정부주도의 성장전략이 장애요인으로 작용하
고” 있는 것과, 둘째 “앞으로 중국 등 개도국과 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의 경쟁
압력은 더욱 심화될 전망”임을 들고 있다.*주19)
따라서 그들에게는 어떠한 과학성도 없다. 과학성의 전제조건인 논리적 정합
성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요건인 논리적 일관성조차 없다. 그들에게는 이 나라
패권집단보다 한 수가 높은 술수만이 있다. 회유와 위협의 복합전략이라는 고단
수가!
어째서 고단수인가? 그들은 낙관론과 비관론을 동시에 펼친다. 그러면 사람들
이 헷갈린다. 이때 이들은 헷갈리게 하는 이론들과 함께 이와 나란히, 회유하는
이론도 펼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캉드쉬 총재는 11월 13일 “아시아 경제는
짧고 강한 조정을 거친 뒤 향후 20년 이상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
고 말하고 있다.*주20)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이론을! 즉 그 앞뒤 안 맞는 이야기들로 사람을 흔들어 놓은 다음에,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하면 잘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절딴날 거라는–또는 절딴낼 거라
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노골적으로 말하면 속이 보이니까, 어
떤 자는 절딴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른 자는 잘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또
같은 자라도 어떤 때에는 절딴난다는 얘기를 하고, 다른 때에는 잘 될 거라는
얘기를 하는) 등 얼핏보면 일관성조차 없어 보이게 앞뒤 안 맞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앞뒤 안 맞는 이론을 그들의 언론이 종합.정리한다. 비지니스
위크(Busines Week) 최신호는 아주 생생하다. 여기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한국의 경제문제는 좋아지기 전에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한국의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는 최근 경제난.금융난의 탓을
외국인들에게 돌리고 비난하면서 진실 보도를 단속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
제는 이렇게 남을 비난하는 대적(對敵) 전선을 치는 대응방식 속에서 기업과 노
동자와 정부가 개혁을 수행해 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고통스럽기는 하겠지
만 근본적인 대개혁(radical shakeup)만이 다.”*주21)
그러면 어떤 대개혁을 하라는 것인가? 비지니스 위크는 “한국은 지금 위기에
빠졌다”는 단정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것은 ‘자유화’를 계속
추진해 나아가는 대신에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로 되돌아가기 때문
에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상품시장도 개방하고, 자본시장도 개방하고, 기업 매
수&합병도 자유롭게 보장하라고 한다.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도 철폐하라고 한
다. 정리해고제를 실시하고, 노사관계도 협조적으로 개혁하고, 포항제철의 경우
처럼 노동력도 대폭 줄이라고 한다. 또 정경유착의 뇌물관행도 개혁하고, 재벌
의 문어발식 팽창 관행도 개혁하고, 은행의 대출관행도 개혁하라–신용평가를
기준으로 중소기업에도 문을 열어 주는 방향으로–고 한다. 이것을 그들은 근본
적인 대개혁이라고 말하고 있다.*주22)
이처럼 지배세력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수단으로써 이러저러한
논리를 펼칠 뿐 진정으로 한국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왜 대공황과 같은 파국
적 상황으로 내닫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원인을 제대로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위해 싸워 온 이른바 운동
권에서는, 그리고 그 안에서 이른바 ‘이론적 실천’을 담당해 온 사람들은 뭐라
고 말해 왔던가?
앞에서 인용한 좌담에서 한국노총 이정식 기획조정국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
다. “한국경제가 현재 처한 상황을 보면 한마디로 구조적인 요인과 경기적인 요
인이 결합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위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고
하고는 뒤이어서, “만약에 우리가 조심스럽게 위기라고 규정한다면, 한국경제가
처한 국내외의 조건이 과거 불균형 고도성장을 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는
데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은 본질적으로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한국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모순을 격화시켜 결국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즉 한국경제는 위기상태는 아니고 단지 앞으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그
것도 추상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인식은 정부당국자의 인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식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 하나로 재벌들이 자꾸 위기
론을 펴고 있는데, 노동자가 한 목소리로 ‘경제 위기론’을 펴면 재벌의 이데올
로기 공세에 당하게 된다는 즉자적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경제위기는 과
장되고 있다는 식으로 반대론을 펴게 된다. 노동조합 운동 쪽에서 이러한 경향
을 많이 보여 왔다. 그리고 ‘이론적 실천’을 주장하는 일부에서도 이런 주장을
펼쳐 왔다.*주23)
다른 하나는 위기론과 파국론은 지난 날 변혁적인 운동권의 일반적인 주장이
었는데 이런 주장은 극단적이고 과격하므로 중간층–이것을 국민이라고들 부르
고 있는데–의 온건한 정서에 맞게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개혁주의’적인 사고방
식이다. 그래서 위기론이 아닌 것도 아니고 긴 것도 아닌 어정쩡한 논조들이 많
이 등장했던 것이다. 한국의 유일한 진보적인 제도권 언론인 한겨레21에서도 바
로 얼마 전까지도 “외환대란”, “금융빅뱅”은 이야기하면서도 한국경제의 위기와
관련지어 분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부 해외언론 ‘한국 금융위기’ 과장보
도”라고 보도했다.*주24) 이런 전반적 흐름 속에서 우리들의 ‘실천적 이론’도
역시 매우 부족하다.
3) 과학적 진단과 예측(전망)을 향하여
①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그 주인인 재벌의 위기이다
‘위기’가 무엇이냐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서울대 정운찬 교수는 “‘위
기’라는 말은 그에 합당한 대책이 있을 때에나 써야 하는” 말이라고 하고 있다
(앞의 좌담에서). 일반적으로 위기는 파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회가 내포된
위험 상황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지금 위기인가? 우리의 답은 한마디로 “그렇
다” 이다(파국적인 현상황에서야 내놓고 “아니오” 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
만….). 현상황 안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주인인 자본가계급에게 위험과 기회가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위험인가? 지금까지 국내 시장을 독차지하면서
노동자.민중에 대한 착취.수탈을 독점해 왔는데 이제 그것을 초국적 자본들에게
내주어야 할 위험이다. 그러면 기회란? 초국적 자본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서
노동자.민중에 대해 더 효율적(?)으로 초과착취함으로써–이것을 “유연화-초과
착취”라 부르자–자본축적을 지속하는 것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지금 이 지점에 처해 있다.
이 지점에서는 관료보다는 재벌이 더 절박하다. 관료는 일종의 지대수취자이
다. 지대로 나누어 가질 떡이 적어지면 같이 손해를 보겠지만(다른 말로, 지대
로 가치를 착취해 내는 자본만큼 절박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위기라고
아우성치는 데 앞장서기보다 재벌을 뒤따라간다.
그러나 재벌은 아우성만 칠 뿐 왜 그렇게 되었는지 따지려 하지 않는다. 왜
냐? 자꾸 따져들어가다 보면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얘기하고 있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데? 하고 따져들어가면 결국 제 발등을 찍는
데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고비용-저효율이라는 것도 부동산투기(고 토지비용)
로, 재테크(고 금융비용)로, 문어발식 확장(천민적 이윤 추구에 따른 기술력 향
상의 부진 및 그에 따른 낮은 생산성)으로, 모두 다 자기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
들이 아니던가? 한보의 비효율적 설비를 보라! 삼성의 자동차 부지는 사용할 수
없다!
이렇게 한국의 재벌이 망하면서, 그들이 주인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국 자본주
의 국가경제가 그들과 함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국가적 위기는 재벌의 위
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벌은 국가의 위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기의 위기를
그 뒤에 놓는다. 마치 자기들이 무슨 애국자이기나 한 것처럼! 그러나 국가경제
의 위기는 재벌의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위기는 한국 자본주
의의 주인인 재벌의 위기이다.
② 이 위기는 구조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바탕 위에서 경기순환적인
것과 정권의 정책적인 것이 복합하여 대공황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말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구조적인 것과 경기순
환적인 것이 복합되어 있다”고 곧잘 이야기한다. 변증법적이라는 말만큼이나 복
합적이라는 말도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앞에서 인용한 좌담을 보면 재경원 관료
도, 서울대 교수도, 한국노총 간부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경기변동상의 문제
와 구조적 문제가 복합되어 동시에 갑작스레 나타났기 때문”, “구조적 요인과
경기적 요인이 결합된 것”, “경기순환상의 어려움에다….. 구조적 취약성이 더
어우러진 어려움” 등등.*주25)
도대체 어떻게 결합되고, 복합되고, 어우러졌다는 것인가?
자본주의 경제에는 경기순환은 밤낮의 변화와 같이 운명처럼 따라다닌다. 자
본간에 경쟁은 있고 계획은 없는 무정부성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위기도 겉
으로는 경기순환상의 위기로 표현되게 되어 있다. 호경기 국면에서는 구조적인
위기는 은폐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영삼 정권 전반기 경제가 잘 나갈
때(호경기)에는 이 구조적 위기가 가리워졌다가 후반기에 오면서 드러나고 있듯
이! 그 때에는 10%대의 초고도성장이 이루어지면서 경기과열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구조적인 것과 경기순환적인 것은 그 차원이 동일하지가 않다. 내면에
진행되고 있던 구조적 위기가 호황기에는 표면화되지 않고 있다가 경기순환적으
로 공황국면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전면적으로 표면화되는 것이다. ‘복합’은 이
렇게
다음으로 이번 폭발은 그냥 경기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 복합된
것이다. 두 가지는 같은 차원에서 복합되어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경
기순환은 정부가 조절을 한다. 일반적으로 호황기에는 열기를 누그러뜨리고 불
황기에는 냉기를 누그러뜨린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의 주특기인 정략 제일주의에 따라 경제정책을 운용했다. 김영삼 정권은 여론과
인기를 배경으로 자기의 정략을 관철시키는 정치를 펼쳐 왔다.
그런데 여론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려면 경기 상황이 일단 좋고 봐야 한다. 그
래서 과열경기 때에도 별로 열기를 누그러뜨리려 하지 않았다. 또 작년 하반기
부터 경기하강의 조짐이 보이는 데도 경기변동이 그렇게 나타나지 못하게 어거
지로 막아 왔다. 경제라는 비행기를 연착륙을 시키려 하지 않고 계속 하늘에서
날아다니게 하려고 했다. 예산을 팽창시키고, 공약사업을 벌이고, 돈을 풀고 하
는 등……..
이제는 경제성장율을 5%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데도
7∼8%대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 결과는 무모한 운행으로 KAL기가 괌도에서 하듯이 국가경제가 대공황의 파국으로 추락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 책임을
져야 한다.
③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은 종래의 천민적 축적방식 위에다 신자유주의
를 수입·접목함으로써 극단적으로 심화된 것이다
현재 한국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이 때 드러
내고 있는 구조적 위기는 어떤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인가? 자본주의에 고
유한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것인가? 아니면 재벌경제라고 하는 천민성이 안고
있는 모순이 드러난 것인가? 그밖에 또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두 가지는 절대적으로 분리되지는 않는다. 천민 자본주
의도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천민 자본주의에서는 천민적인 성격만이 모순을 드
러내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 심화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천민성
만을 이야기하면 초국적 자본이 얘기하는 것, 경실련이 얘기하는 것과 같게 된
다. 그러나 자본주의만을 이야기하면 모순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반
이론을 수학공식 풀 듯이 대입(代入)하는 것으로 된다.
신자유주의의 세계에서는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조절이 침식됨으로써 자본주의
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진행된다. 자본은 안면몰수하고 노동의 착취에 열중한다.
임금노예적 노동을 강요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자본
주의에서는 구조적으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민중 사이에 불평등이 존재하는데
이 모순을 더욱 심화시킨다. 구 자유주의(또는 구 보수주의)가 그것을 다소라도
누그러뜨리려 했던 것과는 반대로!
한국의 자본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그렇게 해 왔다. 그들이 지배하는 국제
분업체계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의 자본은 그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지않으면 초국적 자본은 생산기지를 다
른 곳으로 옮길 것이다. 이미 신발.섬유 등은 동남아로 많이 옮겨갔다. 위협적
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 철강, 기계금속,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등도 그렇
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특히 중국으로 넘어갈 경우 난감해진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려면 그들을 따라 착취의 강화를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
포항제철은 1993년 이후–김만제의 자랑에 따르면–인원의 20%인 5,000명을 감
축했다. 시설을 확장하는 속에서 그렇게 했다. 이것이 신(新)경영이다. 그 다음
이 노사관계 개혁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강도 높게 밀
어붙였다. 이렇게 해서 유연화와 초과착취가 접목된 ‘유연화-초과착취’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렇게 해서 미시적으로 기업 안에서 노동자들의 지위가 상당히 악화되었을
뿐 아니라 거시적으로 국민소득의 분배가 더욱 불평등해졌다. 노동소득분배율
은 91년 56.24에서 95년 49.44로, 56.24 –> 54.92 –> 53.58 –> 52.05 –>
49.44 매년 계속 떨어져 왔다.*주26)
반면에 재벌에의 집중과 집적은 급속히 더욱 심화되었다. GNP에 대한 30대 재
벌의 가 재벌의 비생산적 투자를 통제하는 측면이 있었다면 이제 규제완화에 따라 결
탁은 남되 규제는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재벌은 금융.언론으로 뻗어 나갔
고, 자본과 정권의 공고한 결탁 위에 재벌의 경제주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었
다. 신자유주의는 이 경향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두 가지 수치에서 그 동안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한국 자본주의
가 어떻게 모순을 심화시켜 왔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자
본주의는 그 동안 자본주의의 바탕 위에서, 천민적 축적방식–재벌과 국가기구
가 결탁하여 노동자.민중을 폭압적으로 억압하고 초과착취해서 상품을 생산하고
수출증대로써 상품가치를 실현하는 기존의 자본축적 방식–을 가지고서 자본축
적을 진행해 왔다. 이것이 이른바 초과착취적 압축성장 모형이다. 그런데 여기
에다 신자유주의 방식을 접목시켰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자본주의의 모순이지
만 그것이 극단화된 형태의 모순이다. 이렇게 2중 3중으로 모순을 극도로 심화
시켰던 것이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기묘하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착취도의 강화를 추구함
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적이다. 그리고 규제 대신 시장을 역설하는 점에서도 그
러하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운동에 대해 기본적인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으려고
하며(제3자 개입금지가 엄연히 살아 있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적이라고 이
름 붙이기 어렵다. 나아가 재벌이 망하려고 하면 돈을 찍어서 한은 특융으로 메
워 주도록 정부에 요구한다. 규제는 싫고 특혜적 지원은 계속 받겠다고 한다.
④ 이 위기가 대공황으로 터져 나오게 된 데는 한국 자본주의가 세계경제에 깊
숙이 편입되어 있는 구조적 조건 속에서 초국적 자본의 전략이 관철된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번 대공황의 폭발은 내부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인가, 외부적 조건에서 비롯
된 것인가? 세계적으로 경기가 나빠져서, 그래서 수출시장이 닫혀서 초래된 것
은 아님이 분명하다. 또 우리나라가 동남아에 자본을 많이 진출해서 그것이 동
남아 사태로 피해를 입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혹자는 “동남아가 폐렴 걸
리면 한국은 독감에 시달린다”고 말하고 있지만*주27) 지금 현실을 보면 동남아
는 폐렴이라면 한국은 폐결핵에 걸려 있는 꼴이다. 정운찬 교수 같은 이도 “세
계경제는 전반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속에서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을 보면, 문
제가 심각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이번 위기가 대외적인 것보다는 대내적인 데
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주28)
그러나 직접적으로, 다시 말해서 경기순환적으로는 대외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것이 순전히 국내적 요인에서 왔다고 말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왜 그런가? 한국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 구성부분으로 존재
하는 것이지 외딴 섬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분업 체계 속
에서 구조적으로 제약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80년대에 들어서 “핵심 생산재를 제외한 일반 생산재와 부품
의 수입대체를 일정하게 진행시켰다”, “동아시아 국제분업의 재편과정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중화학공업 내구 소비재 생산과 일부 첨단산업의 부품생산 수
출기지로 특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대형 직접투자가
새로이 진행되었고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일본자본의 진출이 본격화했다”*주
29)
초국적 자본이 국제분업을 이렇게 재배치하면서 경공업이나 일반적인 중화학
공업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점차 이전되어 갔다. 한국재벌의 해외진출은 실은 초
국적 자본의 이러한 국제분업체계의 재배치에 따른 것이 적지 않았다(대표적으
로 나이키 신발). 초국적 자본은 경공업 및 일반 중화학공업을 자꾸만 노동력이
더 저렴한 동남아시아로 그 생산기지를 옮겼다. 반면 첨단 생산부분은 한국으로
옮기는 데 조심스러웠다. 자신들의 경쟁자가 될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렇게 해
서 구조적으로 국제수지가 적자로 되었다. 예외적인 3저 호황 시기를 제하고는
추세적으로 그러했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 초국적 자본의 시장개방 공세가 김영삼 정권 들어서면서
더욱 거세어졌다. WTO체제가 수립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편 이제 제국주의의 세계지배 전략상 남한의 위치는 달라졌다. 냉전 시기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과 대치하는 자본주의 전초기지로서의 중요
성–그래서 국내시장을 보호받도록 해주고 수출시장을 제공해 주었다–은 급격
히 떨어졌다. 이제 한국 자본주의는 여타 나라의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특수
한 관계의 강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되어 갔다. 즉 특수관계보다는 초국적
자본의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한국의 지배블
록은 북한과의 대결을 이유로 삼아 미국과 낡은 특수관계를 지속시키고자 했다.
이 모순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국의 대북관계가 일단락
되기까지는 일단 유보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초국적 자본의 주도분파인 미국은 더 이상 한국시장 지배를 미루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요컨대 미국을 주도분파로 하는 초국적 자본은 한국 자본주의를 국제분업상
중간적인 지위에 두고서 역할하도록 배치했으며 이것은 한국의 독점자본에게는
그 지위가 심히 불안정한 것이었다. 초국적 자본은 한국 자본주의에게 자기들의
경쟁자가 되는 위치를 설정해 준 것이 결코 아니었다. 반면에 한국 자본주의로
서는 고도축적을 계속하려면 이제 자체 기술혁신으로 핵심기술 부문으로 한 단
계 도약해야 하는데 그같은 능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이것은 초국적 자본과 더
욱 격렬한 경쟁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뜻했다. 반면 생산기술이 낮은 부분은 자
꾸만 초국적 자본이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는 후발 개도국의 도전을 받게 되었
다. 이것만해도 위기적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 점이 되었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동남아와 중국 등 후발 개도국들의 추격과
선진자본주의와의 경쟁으로 양쪽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호두
까기에 끼인 꼴이 된 것이다. 거기다가 초국적 자본은 앞에서 말했듯이 더 이상
한국 자본주의를 특수하게 대우해 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국 자본주의는
낡은 기술력과 낡은 초과착취 방식에 머물면서 대외적으로는 특수관계에 따른
특수한 우대를 유지하려고 고집했다(시장개방에 저항하여 많은 마찰을 일으킨
데서 이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위기는 심화되었다. 초국적 자본은 한
국 자본주의를 파국을 통해 굴복시키려는 전략을 집행했다.
이것이 이번에 대공황이 터져나온 또하나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러한 분석을
“음모론”적 시각이라거나 “종속이론적” 시각이라고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세
계체제는 어느 나라를 절대적으로 종속시키지는 못할지라도 부단히 초국적 자본
이 지배하는 국제분업 체계 속에서 그들에게 복무하는 역할을 하게끔 제약한다.
“시장”이란 강자에게는 자유지만 약자에게는 제약인 것이다. 왜 몇 나라만이 선진자본주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는지는 이러한 제약을 제외하
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음모론”도 마찬가지이다. 아민이 이 점을 잘 말하고 있다. “지배세력은
세계를 관리하기 위한 전반적인 정치적 전략을 갖고 있다. 이 전략은 미국에 의
해 수행되고 세 거두(미.일본.EU)의 지원을 받고 있다”, “우리의 적이 일관된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일종의 진부한 ‘음모 이론’으로의 복귀라는 구실
로 이에 대한 논의를 피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아무런 음모도 없다. 적은 분
명히 일반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다.”*주30)
⑤ 한국 자본주의의 장래는 물질기술적인 측면과 세력관계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 가운데 결정적인 것은 세력관계의 측면
이다. 현재의 위기는 낡은 세력관계의 산물이다.
지금까지는 이번 대공황의 원인을 짚어 보았다. 이제 각 세력들이 이 공황에
개입해서 자기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는 지금, 향후 이 공황은 어떤
새로운 것을 낳을 것인가?
자본주의에서는 공황은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데 따르는 고통스
러운 신음 같은 것이다. 이 고통 이후 어떻게 될까? 건강을 회복해서 나올까?
속병이 더 깊어져서 나올까?
경제는 물질기술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관계이다. 경제는 쇠를 깎고
길을 닦고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서로 맺어져서 영위하는 것이지 로봇들이 영
위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경제가 잘 되려면 물질기술적 능력도 향상되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관계가 잘 맺어져야 한다. 그러면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
이 사태를 좌우할까? 물질기술적인 것일까? 아니다! 첨단기술이란 무엇인가? 첨
단의 기계장비인가? 첨단의 기계장비를 만드는 사람과, 그 장비를 작동하는 사
람등 사람인가? 당연히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란 혼자서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인간(人間)으로서 사람이
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 속에서 계급으로 또는 세력으로서 다른 계급 또는 세력
과 대면하고 있다. 그냥 갑돌이와 갑순이로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과 직원
으로, 사용자와 피고용자로, 자본가와 노동자로 대면하고 있다. 이 관계 여하에
따라 물질기술적인 것은 달라진다.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봉건적인 관계였다
면–물질기술적인 향상은 그 동안처럼 그토록 빠르게 도로 그리고 앞으로처럼 환경과 도저히 조화할 수 없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
다.
한국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재벌에 의한 초(超)독점적인 소유관계와 국가
자본주의에 의한 민중수탈적인 축적방식이 아니었으면, 그리고 이 둘을 결합시
키는 재벌.관료 지배블럭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처럼 급속히 “압축적”으로 성
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구조가 지금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국내 지배세력과 그들을 대변하는 근대경제학자들은 한국 자본주
의는 지금 낮은 기술력에 고 말하지만, 자본이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좀더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이미 아니다. 지금의 문제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고 세력구조적으로
위기적인 것이다. 일상적인 것이라면 사람들의 관계를 그대로 두고도, 기술혁신
으로 타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력구조적으로 위기적인 것이라면 사람들의 관
계, 구체적으로 세력관계를 변화시키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
그러면 각 세력들은 지금 이 대공황 속에서 어떻게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변
화시키려고 하고 있는가? 초국적 자본은 한국 자본주의를 뜯어고치려고 하고 있
다. 국가기구가 초국적 자본의 진출에 방어벽을 치는 것, 재벌과 결탁하여 재벌
을 지원하는 것을 못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이것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
장하고 있다.
이번 대공황 과정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그들이다. 한국의 국가는 국
가파산 직전까지 갔고 초국적 자본에 두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기본방향은 정
해진 셈이 된다. “IMF 구제금융 지원국들의 전례로 볼 때 서울에 설치될 IMF 상
주 사무소는 각종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정부에 까다로운 정책 자율성 나아가 경제주권의 일부제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한국일보) 이
것이 “사실상의 경제 신탁통치”라는 제하의 신문기사의 일부이다.*주31)
“IMF가 독점적 경제질서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력 집중과
독점적 지위로 표현되는 국내 재벌구조의 대수술을 요구할 확률도 있다”고 언론
은 보도하고 있다.*주32) 그러나 IMF는 독점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가장 독점적인 초국적 자본의 세계 지배를 옹호하고 있으며 그것의 집행
위원회로 역할하고 있다. 그들은 약소국의 시장이 토착자본에 의해 점유되고 있
는 것을 참아 주지 못할 따름이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 재벌 소유.경영체제를
공격함으로써, 또 정경유착을 공격함으로써 그것을 관철시키는 명분을 찾고 있
다. 그렇다면 초국적 자본은 국내 지배블럭을 해체시키려고 하는가? 아니다. 그
들은 단지 약화시켜서 보다 확고하게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는 개편을 하려고 하
고 있다. 이것을 “개혁”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일제가 개화를 표방하며 실은 침
략을 추구했듯이!
다음으로는 국내 지배세력 즉 재벌과 관료이다. 이들은 그 동안 기존의 지배
구조를 유지시키려 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러면? 백기를
들고 초국적 자본이 하자는 대로 할까? 기본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
한 한계 내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것이 있을
까? 결국 지배세력 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의 이익을 지키는 대신 비핵심적
인 부분을 희생시키고자 할 것이다. 30대 재벌의 이익을 지키는 대신 여타의 재
벌들이 가지고 있는 부분을 초국적 자본에 내어 주려 할 것이다. 또 30대 재벌
안에서 4∼5대 재벌을 제외한 여타 부분을 희생시키려 할 것이다. 이것은 종속
적인 지배집단이 쓰는 상투수법이다. 제조업 시장개방 압력을 피하기 위해서 농
산물시장을 개방해서 농민을 희생시켰듯이!
아마도 특권을 누려 온 관료들이 크게 타격을 받을 것 같다. 초국적 자본은
이들의 역할을 대폭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유
지할 명분을 갖지 못하고 있다. 시대는 바야흐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풍미하던
시절이 아니고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는 때이다. 게다가 그들은 부패.무능하며 민
중으로부터 경원시되고 있다. 무엇을 근거로 자신들의 입지를 정당화할 것인가?
강경식의 초라한 모습이 그들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한가닥 역할은 있다. 노동자와 민중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역할
–신자유주의 하에서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이 역할이 있다. 이제 그들은 이 역
할에 더욱 전문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민중은?
유감스럽지만 노동자.민중은 현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운동
세력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면 포섭, 일면 탄압으로 크게 약화되어 있
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포로가 다. 운동 안에서는 변혁지향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고 변혁 대신 개혁이,
계획 대신 시장이, 전투성 대신 타협성이 미화되어 왔다. 아니 그것이 아닌 것
들은 편협하고 “극단적인” 것으로 매도되고 배제되어 왔다. 그래서 대중들까지
는 아니지만 운동의 허리에 해당하는 선진층까지도 여기에 많이 젖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초국적 자본의 주도하에 내외 지배세력의 이해관계가 관철되면
서 노동자.민중은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말 가능성이 많다. 지금부터 정
신을 차리고 대응에 나서더라도 이미 상황에 대한 주도권은 노동자.민중 편에
있지 않다. 지금부터 정신차리고 대응해야 방어를 얼마나 잘 하느냐 하는 수준
그 이상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 대공황을 기회로 삼아 민주변혁을 이루어 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세력관계는 재편될 것이다. 첫째 지배세력 안에서 초국적 자본이 국내화하면
서 규정적이 될 것이다. 둘째 재벌의 지배력은 다소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결코 중소자본의 지위 강화를 뜻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국가관료의 지위
는 약화될 것이고 그들과 재벌과의 결탁관계도 약화될 것이다. 대신 내외 독점
자본의 도구적 역할로 재조정될 것이다.
이렇게 지배세력 내부가 재조정되면서 그 힘은 노동자.민중에 비해 훨씬 강화
될 것이다 또 지배방식도 더욱 신자유주의적으로 한층 고도화될 것이다. “초과
적인” “유연화-착취” 그래서 “유연화-초과착취”가 노자관계의 새로운 특성으로
정착될 것이다.
이렇게 낡은 세력관계는 붕괴하고 새로운 세력관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⑥ 새로운 세력관계 하에서의 모순
그러면 이렇게 새로워진 세력관계는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과 성장을 보장할
것인가? 또 각종 모순을 해소시켜 줄 것인가?
자본주의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자본이 잘 축적되어야 하
는 문제이다. 둘째는 피지배 계급과 세력을 잘 복종시켜야 하는 문제이다.
첫 번째 것부터 검토해 보자!
한국의 자본은 이제 고도성장 시기를 다시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재벌은 아직 그러하지 않았지만 관료세력과 그들의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미 예
견되어 온 것이었다. “우리 경제가 불가피하게 맞이할 고성장이 아닌 중성장 시
대에서……..”라고 재경원 차관보는 몇 달 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경제
연착륙론이었다.*주33)
IMF 관계자들도 비슷한 얘기를 해 왔다.(매일경제신문, 10. 16일자) “앞으로
는 정부주도에서 시장주도로 바꾸는 노력이 계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경제
의 앞날은 매우 낙관적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8-9%의 고속 성장기는 다시 맞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주34)
그러면 어떻게 해서 파국적 상황을 맞고도 이렇게 낙관적일 수 있단 말인가?
시장주도로 가면서 재벌이 대오각성을 해서 기술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여서 이
로써 선진자본주의의 생산력을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해서인가? 초국적 자본의
어떠한 발언에서도 기술력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고작 “벤쳐 캐
피탈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뿐이다.*주35) 이것은 정부가 이미 추진해
오던 것이며 새삼스러운 것이 전혀 아니다.
그들은 또 ‘지식에 기반을 둔 경제’를 권장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
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미래학자들이 21세기에는 지식집약 산업이
중요해진다는 말만큼이나 구체성이 없다. 생명공학, 우주공학 같은 첨단산업으
로 나아가자는 것인가? 아직 핵심 생산재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의 일
반적 중화학 공업의 생산기술 수준이 선진자본주의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는
데(자동차에서 도요다와 현대를 비교해 보라!).
그러므로 중도(中度)성장(5% 내외의)이 이루어지려면 여타의 조건이 있어야만
한다. 수출 위주의 축적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고 본다면 결국 가격경쟁력에 의
존하는 것이다. 종래의 초과착취에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유연화-착취를 복합하
여 “유연화-초과착취”를 강요함으로써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조건이 충
족된다면 중도(中度) 성장 패턴으로 내려앉아서 당분간 ‘지속가능한’ 축적을 하
게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파국론은 파탄한다. 노동에 대한 착취강화가 가능한
한 한국 자본주의(그 주인은 재벌인)는 축적과 성장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멕시코의 세디요 대통령은 그것을 자랑하고 있
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년 초 가장 심각한 재정위기를 넘긴 후 정부의 경제정책의 중심목표는 강
력하며 지속적인 성장 촉진이다”, “지속적인 중.장기 성장을 달성하기 위하여
구조개편을 하여 국내 사(私)부문의 자본축적을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급박
한 위기가 진정되고 경제회복이 공고해진 후 사(私)부문의 적립금 형성을 촉진
한 덕에 연평균 5% 이상의 변함없는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그리
고는 “1994년에 발생한 경제와 재정위기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몇 년에 걸쳐 일
하며 이룬 생활수준을 현저히 악화시켰으며, 많은 이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라
고 말하고 있다.*주36)
많은 사람들이란 누구인가? 노동자.민중이 아닌가? 이들의 생활수준을 현저히
악화시킨 바탕 위에서 지속적인 중도 성장을 이루어 가고 있지 않는가? 노동자.
민중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
그러나 자본은 이렇게 지속적으로 축적하겠지만 기술적 생산력에서는 획기적
발전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 중도(中度) 성장은 어느 시기에 가면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자본주의가 경쟁상대가 되지 못
하도록 초국적 자본이 제약하고 통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는 밖에서
만이 아니라 국내로 대거 들어와서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후발 개도국
들이 중위의 기술수준으로 점차 발돋움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가 되면 한
국 자본주의는 중도성장에서 저도(低度) 성장으로 또 한 발자국 더 후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개편은 결코 지속가능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축적과 성장
을 일시적으로 지속되게만 할 것이다. 마치 신자유주의가 환경과의 관계에서 지
속가능성을 말하고 있지만 그 관계가 결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못하듯이!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민중이 중.장기적으로 이러한 관계를 용인하
느냐 하는 점이다. 그렇지 못할 것이다. 멕시코에서 어떻게 했는지 다시 세디요
의 말을 들어보자. 첫째 발전을 되돌리기 위해 외국자본 유치전략을 세웠다. 둘
째, 국가재정을 견고히 하기 위해 일반 부가세율을 10%에서 15%로 인상했다. 셋
째 공공요금도 조정했다(석유값 및 전기료). 넷째 국가지출을 10% 줄이기로 했
다(빚을 갚아야 하니까!). 다섯째 고용창출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 완화를 했다
(노동보호규정을 없앴다는 이야기이다!) 등이다.*주37)
그밖에 멕시코 석유판매수입금을 미 연방준비은행에 예치, 국내 이자율 인상,
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항만.비행장.철도의 사유화(초국적 자본에게로), 석유
시추 및 채굴권에 대한 외국인 참여 허용 등을 해야 했다. 그리고 금융위기 때
문에 추가로 늘어난 막대한 대외 채무와 원리금 상환 압박은 멕시코가 직면한
중대한 난관을 이루고 있다.*주38)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고용을 유지하는 데 노력하는 대신에 임금을
억제시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지배세력들도 이와 대동소이한 것을 노동자.민중에게 강요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멕시코보다 전투적이기 때문에 임금동결과 노동시장 유연화
를 내용으로 하는 담합(‘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의)이 성사될 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지난 경험들을 볼 때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 지는 반드시 낙관적이지 않
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을 향해 진행해 나갈 때 기층 대중들 속에서는 분노가 끓
어오를 것이다. 모순은 심화되고 투쟁은 격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외 독
점자본의 “유연화-초과착취”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모아져 나갈 것이다. 이것은
천민적 신자유주의 지배 모델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예견할 수는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사람은 구조에
의해 제약되지만 그것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게 되지는 않는다. 노동자.민중은 통제와 억압으로 제약되겠지만 결코 손발을 완전히 묶여 노예처럼 굴종하게 되
지는 않을 것이다. 임금노예적인 족쇄가 조여질수록 저항은 점점 더 적극화될
것이다.
□ 주 ———-
1) ‘뉴스+’ 11월 27일자 “금융공황은 오는가, ‘한국은 금융 파산국’, 외국에 찍
혔다”를 참조하시오.
2) 한국일보 11월 22일자. 임창렬 부총리는 이날 밤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IMF
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3)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환율 폭등세와 주가
하락세는 일단 주춤해졌다. 21일 외환시장에서는 닷새만에 거래가 정상적으
로 이루어지면서 전날보다 83원이 떨어진 달러당 1,056원으로 마감되었다.
그리고 종합주가지수도 전날보다 17.66 포인트 오른 505.07을 기록했다.
4) 한국일보 11월 22일자 및 문화일보 11월 21일자 및 매일경제신문 11월 22일
자를 보시오.
5) 자본, 마르크스, 제3권 제15장, “법칙(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의 내적 모
순들의 전개”, 비봉출판사, 1990, pp. 294-298을 참조. 이 부분에서 그는
“노동자 수의 감소를 노동착취도의 증대에 기술혁신을 하고서 생산성 향상분을 실질임금 상승으로 되돌려 주지 않는 신
자유주의 방식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이윤율의 저하가 저지된
다 : 필자 첨가)에는 넘을 수 없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물론 이러한 보상은
이윤율의 저하를 저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런데 :
필자 첨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달함에 따라서 이윤율은 저하하지만 자
본사용량(투하자본 : 필자 첨가)이 증가함에 따라 이윤량은 늘어난다”, “또
이것(이윤율의 저하와 동시에 자본량은 증대하는 것 : 필자 첨가)에 수반하
여 기존 자본의 가치감소가 진행된다”, “이러한 각종의 영향들(자본량이 증
대하면서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과 기존 자본이 가치가 감소하는 경향 : 필
자 첨가)은 때로는 주로 공간적으로 서로 나란히 존재하지만, 때로는 주로
시간적으로 서로 뒤를 이어 작용한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지점에서는 이 상
반되는 요인들의 충돌은 공황에서 그 출구를 찾는다”고 공황의 원인을 밝히
고 있다.
6) 경향신문 11월 21일자, 국민일보 11월 20일자, 조선일보 11월 21일자 등을
참조.
7) SBC워버그 증권은 내년도 한국 경제가 2.5%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매일경제 11월 22일자에서.
8) SBC워버그 증권과 쌍용증권은 연말 환율이 달러당 1,250원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NG베어링 증권도 1,200원 정도로 전망했다. 매일경제 11월
22일자 참조.
9) 조선일보 11월 22일자, 매일경제 11월 22일자 등 참조.
10) 물론 꼭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과거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의 경우 긴
축->금리인상->핫머니 유입->부작용의 악순환으로 IMF의 구조조정 계획이 실
11) 이에 대해 인하대학교 김대환 교수는 “정부주도 공업화의 고압적, 억압적
특성”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
모색”, 당대비평 2, 1997년 겨울호, p.78.
12) 비지니스 위크 지는 11. 24일자에서 한국의 현상태를 국가적인 위기로 표현
했다. 이 잡지는 커버 스토리 “한국의 위기”(Korea’s Crisis)에서 청와대가
은행대출을 수단으로 하여 재벌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아 왔다는 것과 정
부관료가 은행대출을 사실상 결정해 왔다는 것을 ‘폭로’했다.
13) 10. 8일자 전경련 ‘최고 경영자 간담회’에서 행한 강연자료 중에서, 재경원
경제정책국 산업경제과.
14) 창작과 비평, 1997년 가을호, “좌담 한국경제의 활로를 모색한다” 중에서.
15) 11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자수첩 중에서.
16) 한국경제신문 7월 24일자에서.
17) 한국경제신문 10월 16일자, 찰스 아담스 아.태국장보의 한국경제에 대한 평
가이다.
18) 뉴스+ 11. 27일자 “‘한국은 금융파산국’, 외국에 찍혔다” 참조.
19) ‘”한국경제의 재도약” 용역 결과’, 재경원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 97. 10.
31일자.
20) 한국경제신문, 11월 14일자 참조.
21) 비지니스 위크 11. 24일자. 커버 스토리 “한국의 위기” 중에서.
22) 위와 같은 글에서.
23) “현시기 경제 상황의 성격과 노동조합 운동”, 채만수, 이론, 1997년 여름
호.
24) 한겨레 21, 11월 20일자 참조.
25) 앞에서 인용한 창작과 비평의 좌담에서) 그래서 차이가 없어 보인다.
26) 장상환, 앞에서 인용한 논문 중에 있는 <표><제조업 부문에서의 계급별 소
득분배>.
27) 시사저널 11월 20일자–실제로는 13일 발행.
28) 창작과 비평, 앞에서 인용한 좌담에서.
29) 한국경제론 강의, 제12장 “한국경제의 흐름”, 박동철, 한울, 1994년 참조.
30)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하여”, 사미르 아민, 당대비평,
1997년 가을호, p. 51.
31) 한국일보 11월 22일자 참조.
32) 한국일보 11월 21일자 참조.
33) 앞에서 인용한 창작과 비평, 좌담에서.
34) 매일경제신문, 10. 16일자 참조.
35) 앞에서 인용한 ‘한국경제의 재도약’ 용역 결과 참조.
36) 21세기 도전과 전략 중, “21세기 목전에서의 도전과 응전” 가운데, ‘지속적
인 경제 성장’ 부분에서, 에르네스토 세디요 (Ernesto Zedillo) 멕시코 합중
국 대통령, 1996, 밀알.
37) 세디요,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
38) “멕시코사태 거울삼아 금융위기 극복 나서자”, 신현종, 중앙일보, 8월 2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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