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경제 신탁통치>와 노동운동의 대응
지금 즉각 총파업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제공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12월 13일자 발표)
⊙ 7.4.에서 뒷부분 「민주대개혁의 요구와 주장」은 다음에 싣겠습니다.
7.4. 세 번째 질문 : 무엇을 요구하고 주장할 것인가
(1) 총파국을 향한 급진전
① 한국경제의 총파국은 IMF와의 협약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한국경제가 파국 일보전에 이르렀다. “파국적”이 아니라 “파국” 그 자체이다.
그것도 금융부문(외환, 증권, 자금 등)과 실물부문(생산, 유통, 무역, 투자 등)
의 전 부문에 걸친 총체적 파국이다.*주1)
외환시장은 그 기능이 마비되었다. 환율은 1,700원 대로 폭등했지만 시장―신
자유주의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 않는 그 신성한 시장―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환율은 IMF와의 신탁통치 협약이 맺어진 지난 3일 1,196원이던 것
이 일주일 후인 12일에는 1,737원으로 치솟았다. 그런데도 시장에서는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며 나아가 일시적으로는 3,000원대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주2)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런 환율이 아니다. 아무리 환율이 올라도 외환시장의 기
능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이다.
증권시장 또한 주가가 일시 상승했으나 곧 폭락세로 돌아섰다. 주가는 300대
로 떨어져서 12일에는 350.68로까지 내려갔다. 앞으로 200대로까지 내려갈 것이
라는 것이 증권가의 공공연한 이야기이다. 주가는 지난 3일 379.31에서 IMF와의
협약 타결 이후 일시적으로 400대를 넘어섰으나(6일에는 435.73) 외환시장의 마
비와 함께 곧 폭락을 계속하여 이렇게 된 것이다. 주가의 이러한 폭락은 정부가
11일자로 외국인의 주식소유 제한을 50%까지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도 이렇게 주가만이 폭락하고 있을 뿐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증권시장에서는 또 주가 폭락과 병행하여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금
리는 폭등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데 10일에는 법정한도인 25%를 초과하여 25.48%
까지 치솟았다. 금리는 이후 다소 진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12일에도 24.68%로서
법정한도에 육박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자금시장(은행, 종금사 등)은 화폐자본의 자금회수로 겨울날씨처럼 꽁꽁 얼어
붙어 있다.
또 6일자로 한라그룹이 도산한 이후 10, 11일에는 큐닉스 컴퓨터, 가파치, 삼
성제약이 부도를 내는 등 중견기업들의 도산이 속출하고 있다. 연말을 넘기기
전에 기업들의 도산이 대대적으로 터져나올 전조(前兆)인 것이다.
이와같이 한국경제는 한마디로 경제 체계(시스템)가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
고 붕괴하는 상태 즉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총체적 파국을 향해 시시각각 다가
가고 있는 것이다.
파국은 피해질 수 있을 것인가? 설마 국가부도가 날까? 설마 은행들이 영업
정지를 선언할 것인가? 설마 증권시장이 폐장을 할 것인가? 설마 수출.수입이
모두 중지되는 사태가 올 것인가? 설마 수백, 수천 개의 기업들이 일시에 부도
를 내고 공장 가동을 중지할 것인가? 누구도 이에 대해 100% 장담할 수는 없
다. 그러나 사태의 전개는 그러한 총파국이 피해질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초국적 자본 세력의 이해관계와 전략.전술에 따를 때(이들이 현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데) 국가적인 외화부도가 피하기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
다. 그들의 달력에 한국의 국가파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지배세력과 IMF-미국-초국적 자본 세력은 한국에서 재협상 논의가 나오
고, 이로 인해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
태가 초래되고 있다고 거짓선전을 하고 있다.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한 측
면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외화부도, 국가파산의 진정한 원
인일 수는 없다. 직접적인 원인조차 아니다. 그것은 교활하게 꾸며낸 구실이다.
재협상이 이루어지더라도 구제금융이 충분히 들어온다면(재협상은 IMF 구제금융
거부가 아니므로!) 환율이 폭등하고 외환시장이 마비되는 사태가 초래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원인(직접적)은 오히려 IMF의 구제금융 자체가 국가부도를 막아준다는 명분과
는 전혀 다르게 극히 제한된 지원에 그침으로써 투자자들로 하여금 당분간 한국
을 떠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IMF 구제금융 제공이 발표된 직후 환
율이 폭등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우리의 인식을 확고하게 뒷받침해 주
고 있다.
환율은 4일 잠시 소폭(1,196에서 1,170으로) 내린 후 정작 구제금융 55억 달
러가 들어온 5일부터 오르기 시작했다.(1,170에서 1,230으로) 이 때에는 아직
재협상 논의가 크게 부상되기도 이전이다. 이 당시 국민회의는 ‘재협상’이 아니
라 “IMF와의 협상 진행상황을 주시하여 반드시 추가협상을 해 내겠다”며 ‘추가
협상’을 거론하는 정도였을 뿐 ‘재협상’이라는 말을 감히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
다. 재협상이란 말은 사태의 진상을 뒤늦게 알게 된 민중의 분노가 끓어오른 다
음에 국민회의에서 이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또 재협상 논의가 제기되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재차 협상하자는 것이었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를 거부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구제금융은 이
런 논의와 상관없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고 실제로 곧바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
리고 이렇게 구제금융이 들어오는 한, 또 그렇게 해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한 환율은 내려야 정상인 것이다. 그러나 환율의 움직임은 그와 정 반대였다.
그러면 왜 구제금융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일반적인 예상과는 정 반대로 환
율이 오히려 폭등하기 시작했는가? 그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구
제금융의 도착에도 불구하고 IMF 구제금융 이외에 미국과 일본 등의 구제금융
지원이 없다는 것이 사실로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의 규모로 550억
달러(이후 20억 달러가 추가되어 570억 달러가 됨)를 지원한다는 겉으로 드러난
발표와는 달리! 이 핵심적인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투자자들은 IMF-미국-초국적
자본이 한국경제를 곧바로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그들도 숨겨진 메시지를 알아내는 데 하루쯤(3일 밤부터
4일 밤까지)이 걸린 것이다. 이렇게 한국경제의 총파국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
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본을 철수해 버렸기 때문에, 달러의 수요는 있으나 공
급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환율이 폭등한 것이다. 외채상환 만기가 갑자기 밀
어닥쳤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의 외환 수요가 갑자기 폭증했기 때문에, 환율이
폭등한 것이 아닌 것이다.
광주항쟁 당시 미국인들이 미 대사관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일찌감치 광주를
떠났듯이 이번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먼저 메시지를 받
고서 돈보따리를 먼저 싼 것이었다. 이러한 메시지를 받지 못한 주식시장(한국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굴러가고 있는)에서는 3일 이후 6일까지 한동안 주가가
계속 상승했던 것이 이러한 사실관계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IMF의 방침이 어째서 한국경제의 국가부도 사태를 “전제”로 하고 있는지
를 밝혀보자.
IMF는 표면적으로는 550억(추후 570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세부내용을 들여다 보면 IMF 자신이 지원하는 것은 210억 달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른 국제금융기구와 여타 선진 독점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제공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IMF 이외에 지원하기로 되어 있는 미국.일본이나 여타 국
제금융기구나 여타 선진 독점자본주의 나라의 지원은 모두가 IMF의 지원이 끝나
고 나서도 한국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그 때에 가서 지원하겠다는 것이지 지금
당장 지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다.(95년 멕시코 사태의 경우 미국과 IMF가 각각
수백억 달러씩 나누어 맡아 즉시 지원했었다.) 대표적으로 세계은행(IBRD)의 경
우를 보자. 정부와 언론에서는 IBRD에서 연내에 20억 달러가 들어올 것처럼 이
야기하고 있으나 IBRD측은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주3)
더구나 미.일을 제외한 여타 선진 독점자본주의 나라들의 지원은 그야말로 제
3선, 제4선일 뿐이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미.일의 지원이다. 미.일이 당
장 구제금융을 지원한다면 여타 국제기구나 선진 독점자본주의 나라들의 지원은
제2선, 제3선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미.일은 당장의 지원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 IMF와의 협약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다. IMF가 감당하지 못할 때 제
2선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투자가들은 이른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무슨 뜻인지 감을 잡은 것이다. 그같은 미.일의 대
응 모습은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실세인 미국이 한국경제를 국가적 부도사태
로부터 적극적으로 구원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IMF의 구제금융은 충분한가? 미국.일본의 지원이 없더라도 충분하다면
의구심은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다. IMF는 한국경제
가 외환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기인 금년 말까지(단기외채의 상환만기
가 이 시기에 연중 가장 집중되어 있는데) 겨우 91억 달러만을 지원하기로 하고
있다. 그 중 55억 달러는 5일에 들어왔고, 35억8천만 달러는 18일에 들어올 예
정이다. 그런데 이 액수는 이 시기에 한국이 필요로 하는 외화금액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따라서 한국은 국가부도를 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이 뻔한 사실
을 속이는 것은 기만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국가부도가 나면 그 때에 가서
한국경제를 통째로 먹어주기로(국가부도를 사전에 막아주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
라) 이미 사전에 담합이 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외환보유고 사정을 보자. 이것은 국가 비밀사항이므로 완전히
공개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IMF와의 협상 과정에서는 완전히
공개되었다.(그것도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조선일보에 의해서!) 어쨌든 이번 IMF
협상 타결 직전의 가용 외환보유고는 33억 달러였다.(한국일보 보도에 의하면)
여기에 IMF에서 지원하는 91억 달러가 합쳐지면 가용 외환보유고는 약 124억 달
러가 된다. 그런데 IMF는 연말까지 가용 외환보유고로 112억 달러를 확보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정부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외환은 고작 10억
달러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연말까지 소요되는 외환는 아무리 적게 잡
아도 1백억 달러가 넘는다.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외채 상환금이 200억
달러(재경원은 163억 달러로 발표, 언론은 200억 달러로 추정)인데 그 중에 절
반을 재대출받는다고 해도(그렇게 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한국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아야 이 정도가 될 수 있다. 재경원에서도 30~40% 정도만
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00억 달러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산술만으로도 90억 달러가 모자란다. 국가부도가 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가용 외환보유고를 다 털어넣어도 국가부도를 막기 어려운 상태인 것이다.
IMF는 바로 이같은 상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원해 주는 체 하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목줄을 단단히 틀어쥐기 위해서!!
IMF-미국-초국적 자본이 한국경제의 국가부도를 획책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의
태도에서 또한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이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일본에
지원을 요청했고 일본에서는 한국의 파국이 일본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여 지
원할 의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국이 강력히 견제하여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
는 상태라는 것이다.*주4) 그러면서 미국은 계속해서 “IMF와 약속한 개혁조치를 먼저 단호히 조치하라. 그래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압박만을 계속하고 있
다.*주5) 대선을 치르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그러한 조치가 사실상 불가능하
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또 그런 심대한 변화가 현실적으로 연말 안에 처리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도대체 단 열흘 사이에 어떻게 상법, 은행법, 노
동법을 개정한단 말인가?
IMF-미국-초국적 자본이 국가부도를 기정사실로 삼고 있다는 것은 투기꾼인
헷지펀드와 더불어 그들의 또 하나의 첨병인 국제 신용평가 기관들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IMF와의 협약 이후 일제히 한국에 대한 신용
등급을 대폭적으로 하향조정해 버렸다. 심지어 사실상 정크본드(투자 부적격 채
권)로 평가해 버렸다. 국가부도가 났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디스는 10일 한국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나 떨어뜨렸고 단기채무 부문에서는
면(免)프라임(Not Prime)으로 격하시켜 세계에서 가장 신뢰성 없는 국가들과 같
은 수준으로 하향조정했다. 이것은 단순한 단계조정이 아니라 대외차입 봉쇄조
치였다. S&P도 바로 이튿날인 11일 한국 기업들의 신용을 무더기로 정크본드 수
준으로 평가해 버렸다. 이것은 여타의 국제 금융자본에게 한국에서 부채를 회수
하라, 투자를 철수하라고 지침을 내보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부
채회수, 자본철수가 밀어닥칠 수밖에 없고 국가부도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와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국제 신용평가 기
관들의 이러한 평가는 즉각 그 효력을 발휘했다. 산업은행의 외화조달을 좌절시
켰던 것이다. 산업은행은 뉴욕시장에서 27억 달러의 양키본드(달러화로 표시하
여 발행.판매하는 채권을 말한다)를 발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두 등급이나 강등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간사를 맡은 JP 모건 사가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요구하였고, 결국 11일 예정된 설명회를 산업은행이 포기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도쿄 금융시장에서도 무디스의 평가소식
이 전해지면서 일제히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신규대출이 동결되었고 만기가 돌
아오는 기존 대출금의 상환이 독촉되기 시작했다.*주6)
이처럼 한국의 달러부족 사태가 심화되고 외화차입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국
제 신용평가 기관들이 신용평가라는 방법을 통해 외화차입을 지원한 것이 아니
라 거꾸로 외화차입을 봉쇄했다는 사실은 국가부도 사태가 IMF-미국-초국적 자
본의 기획 속에 들어 있는 것임을 뚜렷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주7)
② 부채상환 문제로 외화부도(금융.실물 부문에서)가 일어난다!
이렇게 국가부도가 임박하면서 외환시장의 사정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앞서 말한 외환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 하나가 양키본드 발행이었다. 그러나 양키본드 발행은 앞에서 말한 바대로
국제 신용평가 기관들의 지침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사태의 심각성은 초국적 자본의 압박에 의해 신규 외화조달이 잘 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 자금회수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더욱
중요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도쿄 금융시장에서도 무디스의 신용평가소식이
전해지면서 일제히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신규대출이 동결되었을 뿐 아니라 만
기가 돌아오는 기존 대출금에 대해 상환을 독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도쿄 금융시장에 그치지 않고 있다. 모든 초국적 금융자본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이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채무 상환액은 약
200억 달러이다. 이 가운데 재경원은 최소 30%정도는 재(再)대출 받을 수 있다
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경제 전망에 대해 지난날 그들이 그러했
던 것처럼 순전히 주관적인 낙관론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이렇게 국가(한국은행) 차원에서 외환이 바닥나면서 외환시장의 문제는
국가부도로까지 되기 이전에 민간부문의 외화부도를 재촉하고 있다. 우리의 경
우 외채는 주로 정부 부채가 아니라 민간부문(종금사.은행.대기업.기업의 해외
법인 등)의 부채이기 때문이다.(80년대 외채위기 문의 부채가 위주였지만) 그런데 그동안 외국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외화차입이
불가능해진 은행.종금사 등은 만기 도래하는 외화차입금을 한국은행의 외환보유
고에서 지원받아 하루하루 외화부도를 막아 왔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가용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게 되면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되고 그러면 이 부문에
서부터 외화부도가 일어나게 된다. 즉 국가부도가 나기 이전에 종금사와 은행에
서 외화부도가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영업정지된 종금사들에서 가장 먼저 외화부도가 발생할 것이다.*주8) 또 종금
사들의 외환업무를 은행에 넘기도록 했기 때문에 그 짐을 떠맡고 있는 6개 은행
들이 그 다음 차례가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실물부문 기업(국내 및 해외법인)들의 외화부도이다. 미국은 은행
과 기업들에서 대거 부도가 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가가 이들의 부도를
막아주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IMF는 최근 한국은행이 은행.증권.투
신 등에 11조 원의 한은특융을 제공한 것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의 국가가 이렇게 통화증발로써 부도사태를 막으려 할 때 초국적 자
본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외화부문에서 부도가 나게끔 만들 것이다. 방법은 간
단하다. 자금회수이다. 그리고 투자철수이다.
기업의 경우 이러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수출대금으로 들어온 달러를 외환
시장에 내놓지 않고 기업 내부에 보유하고 있다. 그 규모는 약 1백억 달러 수준
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보유 달러가 결제대금 등으로 소모된 이후에는 기
업은 원화를 가지고 필요한 외화(달러)를 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외환시장이
마비될 경우 원화가 있어도 달러를 구하지 못해 외화부도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꼭 국가부도가 나지 않더라도 외환시장이 마비되면 그로 인해 필요
한 외환을 구하지 못해 기업들이 부도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외환위기
는 반드시 국가부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IMF의 외환보유고에 대한 통
제로 인해 한국은행이 설사 가용 외환을 가지고 있더라도 은행.기업에 필요한
달러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면 은행.기업은 외환을 구하지 못해(원화는 있어도)
외화부도를 내는 사태가 오게 되는 것이다.
사태의 전개는 지금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편 해외법인들의 경우 국내 외환위기가 심화되면서 외채 상환 압박이 극심
하게 가중되고 있다. 이 부분은 이번 공황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의 하나이다 그
구체적인 사정은 기업들이 털어놓지 않기 때문에 잘 알 수가 없다. 심지어 현지
법인들이 빌린 달러의 액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약 500억 달러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분명 더 많을 것이다.) 따라서 어쩌면 기업의 외화
부도는 해외 현지법인들에서부터 시발될는지 모른다.
③ 외환시장의 마비가 국내 경제 전체를 마비시킨다.
이번 공황의 특징은 내부적인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데서
부터 시작되는 점이다. 내부적인 취약점을 틈타 초국적 금융자본이 공황을 촉발
시키고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외부적인 데로부터 즉 외환부문의 파국
으로부터 어떻게 국내부문의 파국으로 파급되고 있는가? 또 국내부문을 파국으
로 몰아넣을 것인가?
먼저 금융부문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자.
종금사들은 지금 14개(1차 9개, 2차 5개를 합쳐서)가 영업정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영업을 하고 있는 종금사들도 예금주들의 예금인출 사태로 인해 부
도위기에 몰려 있다. 종금업계 전체가 부실하기 때문에 영업정지를 당하지 않은
회사들도 언제 영업정지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중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11조 3천억 원의
한은특융을 풀어 종금사들의 집단도산을 막았다. 이렇게 되면 자금사정은 다소
완화될 것이다. 그러나 종금사들은 많은 대외 단기부채를 지고 있다. 단기 외채
를 들여와서 돈놀이를 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연말이 가까와 오면서 이 단기외
채들의 만기가 도래할 때 외환시장이 파국을 맞고 있는 상황이 되면 원화가 있
어도 달러를 구할 수 없게 된다. 종금사들은 그 피말리는 전투를 해 왔는데, 이제는 환율이 3,000원이 되어도 달러를 구할 수가
없다. 그러면 외화부도를 내지 않을 수 없다. 국내부문에서는 파국이 발생하지
않아도 이렇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부도와 도산은 실물경제 부문으로 파급된다. 종금사들은 어음
(CP)할인으로 기업들에게 단기자금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중단되기 때문이
다. 초국적 자본은 그렇게 되게 하려고 압박하고 있다.
증권시장도 파국을 맞게 된다. 외국 투자자들은 주식소유 한도가 크게 확대되
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철, 조금 매입할 뿐이다. 외국 투자가들은 환율이 불안정한 현 시점에서 주식매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자칫하면 환차손을 입을 수 있으므로)
이에 더하여 증권시장은 종금사들이 도산하고 이에 따라 종금사의 어음(CP) 할
인으로 자금을 공급받고 있는 기업들이 자금경색으로 집단도산하게 될 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가의 대폭락을 맞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팔자”만
있고 “사자”는 없는 공황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은행은? 은행들은 지금 IMF가 요구한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8%
기준을 확보하기 위하여(그렇지 않으면 폐쇄해야 하므로!) 아주 엄격하게 자금
을 운용하고 있다. 거기다가 한은 특융까지 받아서 돈은 충분하다. 문제는 이들
도 많은 외채를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원통화의 절반 가까이를 특융으로 지
원하는 혁명적인(?) 지원조치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초국적 자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철수와 자금회수를 더 철저히 하도록 하는 요인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금사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비록 그 정도는 덜할지
라도–몇몇 은행들은 달러를 구하지 못하여 외화부도를 내게 될 것이다. 한국은
행의 가용 외환보유고가 있다고 해도 IMF가 가용하지 말고 확보해 두라고 했기
때문에 은행들에게 빌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융부문은 경제의 대내외 체계상 외환시장 사정이 어려워지면 제일차
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어 있다. 연말이 가까와 오면서 외환부문으로부터의 이러
한 압박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조여올 것이다. 금융 체계의 마비가 외환시
장, 증권시장을 거쳐 자금시장으로까지 서로 얽히고 섥히면서 전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실물경제 부문에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렇게 금융부문의 체계(시스템) 자체가 마비되어 가면서 실물경제 부문에서
도 연쇄도산 정도가 아닌 집단도산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또 집단도산이 아
니더라도 체계의 정상적인 운행이 벌써 서서히 마비되어 가고 있다.
여기서도 기능마비는 외부와 밀접한 쪽에서부터 오고 있다. 은행들은 외화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부터 살고봐야 하기 때문에 수출기업의 수출환어음
에 대한 매입을 중단하는가 하면 매입 수수료마저 인상해 수출업체들로 하여금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 정부가 수출환어음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하도록 했으나 이것을 지키는 은행은 거의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로컬 LC마저
발행을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무역업체는 물론 제조업체들도 자금위
기에 몰리고 있다. 그리하여 수출을 해도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인 것이
다.*주9) 거기다가 국내경제가 극심한 불안정을 보이자 외국의 바이어들의 주문
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편 수입부문도 그 기능이 마비되어 가고 있다. 환율폭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외국의 공급업자들이 국내 은행이 발행하는 신용장
(LC)을 믿지 못하겠다며 신용이 좋은 제3은행의 추가보증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입이 중단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되자 원자재를 가공하여 수출하
는 업체들은 원자재를 공급받지 못해 제품 수출납기를 놓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수출부문에서부터 마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수출주도형 경제인 한국경제에서는
당연히 생산 전반이 마비되게 된다. 아직 생산은 가동율이 저하되는 정도(환율
폭등과 고금리, 그리고 내수감소에 따른 재고누증의 삼중고로 자동차.전자.석유
화학 업계가 20% 내외의 감산을 추진하고 있는 등으로) 이상의 마비 증상은 보
이지 않고 있지만 서서히 그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외환 사정으로 원
유 수입 사정이 원할하게 되지 못하면 어느 특정 부문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정
상적인 운행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주10) 생산부문의 마비는 최후의 단계
일 테지만 이 또한 그 가능성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산부문의 마비는 전반적으로 올 수도 있지만 부문별로 올 수도 있다. 내수
부진, 원자재 가격 폭등, 원자재 조달난, 수출난 등으로 전반적으로 어려움이
닥쳐 오는 속에서 상대적으로 재정적 지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에게 마비가
먼저 오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자금시장에서 높은 이자를 제공하고 돈을 구하고
자 해도 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감량경영에 나서
면서 또 그들의 생산활동이 마비되어 가면서 하청업체들은 휴업에 들어가는 사
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것이 좀더 심해지면 폐업 속출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물부문에서도 결정적인 지점은 금융부문과의 관계이다. 여타의 조건
이 다 충족되어도 금융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즉 돈이 돌지 않으면 마비될 수
밖에 없다. 또 국내적으로는 한국은행의 융자로, 또는 “특단의 조치”로 자금이
일시적으로 돌게 만들 수 있을지라도 해외와 관련되는 부분에서는 이것이 통하
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이 가장 크다. 현재의 예상으로는 20일 이후에
는 은행부문에서 자체 외화자금을 막지 못해 모든 수출입 업무와 자금거래를 전
면 중단하는 금융공황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실물 생
산부문도 자동적으로 마비될 수밖에 없다.
또 금융부문이 체계 자체가 마비되는 파국을 맞지 않더라도 실물부문 자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외 금융관계에서 파국을 맞을 수가 있다. 연말 상환기일
이 닥쳐오는 단기외채를 지고 있는 기업들은 돈을 구하지 못하거나 외채를 갚을
돈이 있어도 달러를 구하지 못해 줄줄이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재벌 대기업들이므로 부도를 내는 그 대기업에서 그 재벌로, 이 재벌과 거래관
계를 가지고 있는 여타의 재벌이나 대기업으로, 그리고 대기업들에 하청으로 종
속된 중소기업으로 파급되면서 실물부문의 체계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
다.
④ 체계의 마비는 연말.연시를 전후로 하여 총체적 파국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람들은 대선이 끝나는 직후인 20일 경이면 총파국이 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그때 쯤이면 외채 상환 요구를 충족시킬 외환을 구할
수 없는 사태가 한계점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일반 기업이나
종금사만이 아니라 은행들에서 자체 외화자금을 막을 수 없는 상황–외화부도–
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재 주
택, 국민 등 몇 군데 은행을 제외하고 20일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연말
에 만기도래하는 외화차입금을 막기 힘든 상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렇
게 되면 기업과 관련한 외화와 원화 거래가 전면 중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11)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정부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구제금융 협력을 요청하는
사절단 또는 특사를 파견하는 등 미국.일본의 즉각적인 구제금융 지원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파국을 통하여 한국경제의
체제와 구조 및 나아가 체질을 개조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므로 파국은 연말.연
초를 거치면서 터져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배세력들이 희망하고 있는 것은
헛된 꿈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 파국은 총체적인 파국, 총파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공황은 국내적 요인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대외적 요인과 중첩되
어 있다. 또 대외적 요인에는 초국적 자본의 무정부적인 이윤추구 활동만이 개
입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전략.전술적 공략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그 모형이 수출주도형인데다 김영삼 정권 하에 들어와서 세계화를
표방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을 대폭 개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로 무모하게
진출하는 등 대외관계를 대폭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 대외관계는 매우 허약한 대외관계이다. 수출주도형이란 실은 초국
적 자본의 노동력 공급기지로서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깊이 편입되어 있을 뿐 아니라 종속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속 자본주의적 역
량으로서 선진 독점자본주의 즉 제국주의를 모방하여 그 아류가 되고자 공격적
으로 해외로의 진출을 추구했다. 그러므로 한국 자본주의는 대외관계에서 이중
으로 극심한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초국적 자본에 종속된 힘으로 남을 종속시
키는 초국적 자본의 흉내를 낸 것이다. 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아주 공격적으
로!
이 취약성을 보고서 초국적 자본은 지금 공략해 들어오고 있다. 경제의 패러
다임을 자신들의 장악과 지배에 유리한 형태로 개조하려 하고 있다. 그 무기가
대외적 부분이고, 그 가운데서도 초국적 금융자본과 가장 많이 얽혀 있고(수출.
수입과 자금대여 관계로) 가장 부실화되어 있는 금융부문이다. 그러므로 금융부
문에서 대외관계로부터 체계의 마비 즉 파국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실물부문 전체에 파국을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하여 총체적인 파국이 초래될
것이다. 이것은 국가기구의 재정.금융적 조절로서는 막을 수가 없다. 이렇게 파
국이 대외부문으로부터 오는 한, 그리고 특정 산업 부문으로부터가 아니라 금융
부문 전체가 마비되는 양상으로 다가오는 한, 파국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총체적 파국으로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것은 예고되어 있다! 무조건 완
전 항복을 하지 않는 한!
(2) “경제 신탁통치 무효화”가 우리의 첫 번째 요구이다.
① 경제 총파국으로 완전항복을!–이것이 초국적 자본의 전략.전술이다.
한편 상황이 총파국을 향해 숨가쁘게 치달으면서 우리들의 투쟁의 국면에도
빠르게 변화가 오고 있다. 이제 누구를 우리의 제일차적 투쟁 대상으로 할 것인
가 하는 것은 아주 분명해졌다. 긴 설명이 필요없게 되었다. IMF-미국-초국적
자본이 한국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그 상태에서 국내 지배세력에게 완전항
복을 받아내고, 그럼으로써 한국경제를 신속히 식민지 경제로 재편하려 하고 있
다는 것은 이제 일반 대중의 눈에도 선연해졌다.*주12) 여전히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아니 직시하지 아니하고 낡은 도식과 관성을 고수하고 있는 부분을 제
하고는!
그런데 여기에서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이미 총파국은 예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국적 자본은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구제를 거부하고 있다. 국가부도
를 막기 위해 IMF에 구원을 요청하라고 하더니(클린턴은 김영삼의 지원 요청에
이렇게 “호의적으로” 권고했다. 그러면 미국과 자신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
고!) 또 국가부도 사태를 막아주기 위해 IMF가 개입하는 것이라고 하더니 (IMF
는 국가부도를 피하려면 하루빨리 협상을 마무리하고 구제금융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며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했다!) 그런 이야기는 이제 흔적도 찾아볼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야수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IMF-미
국-초국적 자본은 이제 한국측에서 IMF의 요구조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한
한국경제는 철저한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지는
12월 11일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이 채무불이행을 선언, 국가적 부도를 내더라도 세계경제와 특히 미국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추가 지원을 끊어 그 동안 거만한 자세를 보여 온
한국에 명백한 교훈을 던져야 한다”, “미국 은행들과 기업들이 한국에 빌려준
돈은 미국의 대 외국 총대출의 2.9%밖에 안 되는 1백6억 달러에 불과하다”, “사
실상 부도 상태인 한국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해도 미국의 부담은 크지 않다” 등
등. 그러면서 이 신문은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대해 추가 지원을 호소하면서 한
국경제가 망하면 세계경제가 고통받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나 한국경제의 몰
락이 다른 국가에까지 영향을 주는 ‘도미노’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주13)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지도 초국적 금융자본의 시각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
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2일자 ‘렉스 칼럼’을 통해 “한국이 위험한 고비까
지 몰고가는 극단적인 정책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오산”이라고 비판하면서
“한국이 부도사태가 나면 타격이 클 것은 분명하지만 세계 금융시장의 붕괴현상
은 나타나지 않는 반면 한국경제는 폐허가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리고 한국
이 계속 엄포를 부리면 해보라고 하고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내렸다.*주14)
이처럼 IMF-미국-초국적 자본은 한국경제가 이제 확실하게 저들의 덫에 걸려
들었으므로 단단하게 족쇄를 채우겠다는 지배자 강자 침략자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는
② 안절부절 못하는 국내 지배세력–항복! 항복! 완전항복! 무조건 완전항복!
이와 같은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협박 앞에 국내 지배세력은 안절부절 못하
고 있다. 이렇게 되자 그 동안 IMF의 경제 침략과 신탁통치에 대해 약간쯤 불만
을 토로하던 국내 지배세력은 그 태도를 바꾸어 더 크고 강한 지배자인 초국적
자본 세력에게 두 손을 싹싹 빌고 있다. 더 이상 불만을 토로하지 않겠다고! 뿐
만 아니라 시키는대로 하겠다고!*주15) 그러면서 노동자.민중을 향해 다른 대안
이 없지 않느냐, 총체적 파국만은 피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경제 식민지, 경제
신탁통치 등에 대해 입에 올리지 말자고 설득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것도 입
을 맞춘 듯이 일제히!
재벌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경제 신탁통치 무효화’ 주장이나 ‘IMF와의 재
협상’ 주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런 주장들 때문에 총파국이 오고 있다고 하면
서. 파국은 초국적 자본의 각본에 의하여 피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음에도 불구
하고! 더 이상 상전의 눈에 벗어날 만한 짓은 눈꼽만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조
바심에서! 전경련의 이론제작 기관인 ‘자유기업 센터’의 공병호 소장은 주장하고 있다. 약간 길지만 들어보자.
“시장이란 무엇인가. 익명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서 분투.노력하는
곳이 시장이 아닌가”,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을 안정시키고 한 걸음 나아가 위기
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시급한가”, “첫
째 10조 원에 달하는 부실채권이 잠겨 있고 막대한 인력과 자원이 묶여 있는 기
아의 제3자 매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둘째 한보철강과 나머지 부실
한 그룹들에 대해서도 투명성과 공정성을 최대한 보장한 상태에서 제3자 매각을
실시하여 …. 인수하게 해야 한다”, “세째 은행의 국유화를 막아야 한다”, “네
째 노동시장의 정리해고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 모든 조치들은 국민정서를 뛰
어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들이 아니다. 신탁통치, 국치, 경제 식민지 등과 같
은 용어가 난무하고 오히려 국수주의적이고 배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감정
이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문제의 핵심
에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변죽만 올린다면 우리가 회생할 기회는 점점 멀어지
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한다. 이번에
도 우회를 고집한다면 우리에게 어두운 내일이 있을 뿐이다”*주16)
매일경제신문은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12월 12일자 ‘구국 위한 국론 결집
을’이라는 제목의 사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이후에도 오히려 외환시장의 완전 마비
상태를 비롯한 금융시장의 혼란 가속 등 위기국면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 가
장 큰 요인의 하나가 바로 국론분열과 이로 인한 국가불신 때문이라는 데 이론
이 있을 ‘한국은 아직도 믿을 수 없는 나라’ ‘불안한 나라’로 비쳐져 정부가 내놓은 어
떠한 정책도 신뢰(초국적 금융자본의 : 필자)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13일자 ‘클린턴에 SOS 자금지원 받아야’라는 제하의 제언(提言) 기사
에서는 “국가부도 위기에서 무슨 체면 타령 할 수 있겠는가 … (미국에 : 필
자) 이왕 도움을 청한다면 아예 백기 투항하는 게 좋다”며 막 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국론은 분열되었다. 무조건 완전하게 항복하고 경제 식민지가 되자
는 지배세력 쪽과 그럴 수는 없다는 노동자.민중 쪽으로! 그리고 초국적 자본은
노동자.민중이 경제 식민지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또 지배세력 내에 불만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안심하고 투자할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주인을 맞아들일 준비를 더 철저히 하라고 배짱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배세력은 국론을 통일하여 한시바삐 완전항복하자고 목청을 돋우고 있는 것이
다. 갖은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있지만 터놓고 이야기하면 바로 이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면서 대통령 선거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던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불이 붙었다. 한나라당 조순 총재는―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와서 출세한 지식인답게―IMF 총재 캉드쉬와 통화를 하고는
“오늘 아침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캉드쉬 IMF 총재도 ‘협상의 기본 내용은 재협
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하고 “캉드쉬 총재는 정치 지도
자들이 재협상 발언을 함으로써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있으며 이것
이 한국 금융위기의 기본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신당의 한이헌 정책위 의장은 “향후 3개월 동안은 위기 탈출이 급선무이
므로 재협상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분기별로 IMF와 협의하도
록 돼 있기 때문에 3개월 이후에 얼마든지 보완.조정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
다. 한의장은 “정치권이 국민의 저항심리를 촉발하고 선동하는 것처럼 비쳐지면
큰 낭패”라고 우려를 표명했다.*주17)
이렇게 지배세력들이 일제히 완전항복 경쟁을 하자 국민회의도 꼬리를 잔뜩
낮추었다. 국민회의는 그 동안 주장해 온 ‘재협상’이란 용어를 ‘추가협상’으로
다시 원위치시키면서 “우리 당도 협의 내용을 원칙적으로 이행한다는 입장”이라
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돈을 빌린 것이
지 ‘노예상태’가 된 게 아니며 IMF측도 가능하다고 밝히는 재협상이 안 된다는
이유가 뭐냐”며 패권분파에 항변했다. 그러면서 11일 밤에는 급히 캉드쉬 총재
에게 IMF와 한국정부의 협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긴급 전문을 보내기까지
했다.*주18)
이렇게 하여 재벌, 국가관료(정권), 언론, 정치권 할 것 없이 국내 지배세력
의 각 부분과 분파들은 일제히 초국적 자본에 다시 한 번 읍소를 하고 있다. 문
제는 그들을 향해 읍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민중을 향하여 더 이상 ‘경
제 신탁통치 무효화’나 반대를 주장하며 투쟁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기 시작했다
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나라경제를 완전히 거들내는 비애국적인 행동이
라고 매도하면서! 또 아무런 현실성이 없다고 역설하면서!
자! 그러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우리들의 요구와 주장은 과연 비현실적이
고 비애국적인 것인가? 그들의 주장은 과연 현실적이고 애국적인 것인가?
먼저 그들의 주장은 과연 현실적인가를 검토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
의 주장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IMF-미국-초국적 자본은
한국경제의 총파국을 필요로 하고 있고 전략.전술적으로 이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그들이다. 그들은 국내 지배세력의 반발과
민중의 저항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기 위해서는 총파국이 전략.전술적으로 필요
하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 그것을 호도하기 위하여 재협상 논의
때문에, 한국 민중의 저항 분위기 때문에, 노조들의 파업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
이 한국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둘러대고 있다. 무엇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완전히 항복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땅의 예속적 지배세력들도 하나같이 그들을 흉내내어 시장의 “신뢰”를 들
먹이고 있다. 시장이란 누구인가? 돈 가진 자본이 아닌가? 시장은 그 어떤 신비
스러운 존재(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같은)도 아니고 구조물 같은 물리적
장치(동대문 시장 상가 건물 같은)도 아니다. 자본이 그리고 자본가 계급이 이
윤을 추구하고자 분주히 움직이는 사냥터이다. 그러므로 시장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은 자본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이다. 본이 이러저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의 신뢰란 자본의 신뢰이
고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초국적 자본의 신뢰이다. 초국적
자본 가운데서도 주도적인 지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신뢰이
다. 그 이상의 그 어떠한 신비적인 것도 그 속에는 없다. 아무리 부르조아 이론
가들이 시장을 신비화하려 할지라도!
그러면 초국적 자본의 ‘신뢰’란 무엇인가? 한국 사람들이 몽땅 거짓말쟁이여
서 그 도덕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인가? 그들 말마따나 다는 것인가?*주19) 그들은 마치 그렇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자신들은 도덕성이
있고 우리 민족은 그렇지 못하다는 듯이. 이 땅의 예속적인 지배세력은 분명히
도덕성이 형편없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 초국적 자본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그
들은 도덕성과 진실성이 더 형편없다. 그들은 통킹 만에 어뢰를 설치하고 선제
공격을 해 놓고서 월맹측이 선제공격을 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던 자들이다.
그러면 이번 사태에서는? 시시콜콜한 것은 제켜두고 한국의 위기를 “구제”한다
고, 구제금융을 제공한다고 해 제를 빙자하여 침략.약탈.사냥을 하는 것이 그들의 본질이다. IMF는 불과 3개월
전까지 한국경제 정책이 “인상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해 놓고 이제 와
서는 “계속 경고했는데도 한국정부는 이를 무시했다”(캉드쉬의 12월 5일자 르
몽드 지와의 기자회견 중에서)고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주20) 이렇
게 하는 것보다 더한 부도덕성이 있을까? 또 ‘정책권고’를 한다고 말하면서 식
민지 경제를 강요하고 있는 것 이상의 부도덕성이 있을까? 이런 자들이 과연 도
덕성이나 진실이나 신뢰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가? 전 세계 민중은 이들을 신
뢰할 수 있을 것인가? IMF-미국-초국적 자본이 우리 민중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 민중이 그들을 믿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객관적으로 타당하다.
그런 자들이 도덕과 신뢰를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투명성’을
입에 올리기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면 초국적 자본은 그들이 마피아와 결탁되어
있는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고 있는가? 그들이 금융천국에 감추어 놓고 있는 거
액의 부정한 자금은 투명하게 밝혀지고 있는가?*주21) 그들은 금융거래에서 ‘고
객비밀 보장'(private banking)을 최고의 원칙으로 삼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왜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적 행위들은 투명하게 털어놓
지 않으면서 오직 한국의 지배세력에게 자신들의 먹을거리인 국가경제, 은행,
기업의 속사정을 투명하게 털어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고 있는 투명성이니 신뢰니 하는 것은 아직 안심하고 먹
어줄 조건이 100% 확보되지 않았다는 말을 교묘하게 둘러서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조건이 확보될 때까지는 그들은 이러저러한 구실들을 끌어붙이
며 “투명성”과 “시장의 신뢰”를 계속 들먹일 것이다. 지배세력뿐 아니라 온 노
동자.민중이 완전하게 항복할 때까지 그들은 계속 ‘투명성’과 ‘시장의 신뢰’를
거론할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정부의 노동자.민중에 대한 정책이 투명하지
않다고 하면서!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초국적 자본이 그렇게 나올
때 국내 지배세력은 어떻게 응답하겠는가? 말로써 민중을 “설득”하던 데서 나아
가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철저히 억압하는 강도높은 파쇼적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은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이제 좀 노동정책이 투명해
졌다”, “이제 좀 시장이 신뢰하려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 지점까지 가려
면 한국경제를 총파국으로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과연 우
리 노동자계급을 억누를 수 있겠는가?
그러면 이와같이 노동자.민중을 완전히 침묵시키면 충분하다고 할 것인가? 아
니다. 이것 말고도 초국적 자본들이 확보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가 더 있다. 그
중의 하나로서 신문 보도에 의하면 미국은 얼마전 한국의 다음 정권에서도 4자
회담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유력한 대선 후보자들을 일제히 만나 당선 이
후 4자회담을 지지하고 이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주22)
이것은 또 무슨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이야기인가? 미국은 경제 신탁통치 약속만
받아낸 것이 아니라 정치 신탁동치 약속도 받아낸 것이다! 나라의 주인인 민중
들이 모르는 사이에. 미국은 이번 한국경제 대공황 사태를 단지 남한만의 문제
로 또는 경제적인 문제만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신제국주의적인
전 세계 지배전략의 체계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6.
‘대공황 속에서의 내외 독점자본의 움직임’을 참조하시오.)
이 자리에서 그 지점들을 충분하게 다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
은 매우 분명하다. 저들은 남한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코언 미 국방장관은 9일 한-미 연례안보
협의회를 마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 및 군 장성급
회담 요구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4자 본회
담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중심적인 쟁점이 되고 있으며 이를 둘러
싸고 미국과 북한 간에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
에서 미국은 4자회담의 틀을 빌려서 주한미군의 존재를 합법적으로 인정받으면
서(북한 및 국제사회로부터) 그 대신 북한의 지위를 온전한 국제사회의 일원으
로(남한과 대등하게) 인정해 주는 “거래”를 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북미 평
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주한미군의 지위를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남쪽 지배세력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주23) 그래
서 4자회담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을(각서일지 모른다!) 미리 받아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까지 일거에 관철시킬 수 있으려면 남한 지배세력을 확실하게 굴복
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의 굴복을 받아내려면 한국경제
를 총파국 상황으로 몰아넣고서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라야 그같은 정
치.군사적인 목표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주24)
이 지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총파국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그들이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또 전략.전술에 따
라 이미 한국경제를 그렇게 몰아넣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냉엄한 현실, IMF-
미국-초국적 자본의 냉혹한 전략.전술을 보지 못하면 그들에게 정신을 빼앗겨
농락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들은 경제적 이해관계 상으로도 한국경제가 한 번쯤
총파국을 맞게 할 필요를 가지고 있다. 그래야 질서와 체질을 철저하게 개조할
수 있다. 또 정치적으로도 지배 엘리뜨들을 굴복시킬 필요를 가지고 있다. 그들
은 이 둘을 입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냉엄한 현실을 사실로서 인정(긍정이
아니다!)하는 바탕 위에서 우리의 대응책은 세워져야만 한다. 이렇게 할 때에만
그들의 악랄한 저의를 깨뜨릴 수 있다. 반면에 이 분명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때 그들의 완전항복 요구에 무조건 굴복할 수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
다. 이 땅의 천민적 지배세력들이 현재 그렇게 하고 있듯이.
다음으로 총파국을 피하기 위하여 IMF의 요구조건을 무조건 수용하자, 백기를
들 바엔 엉거주춤하게 들지 말고 힘껏 치켜들자고 말하고 있는 지배세력의 주장
은―특히 지식인들이 하나같이 입에 올리고 있는 이러한 논리는 과연 그들의 말
처럼 애국적인가? 신탁통치를 백지화하라는 우리들의 주장은 과연 매국적인가?
모 은행의 외환담당 간부는 “어떤 이유로든 자존심이 국가 존립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다”, “IMF에 사정을 해서라도 구제금융이 조기에 도입되도록 해야 한
다”*주25)고 노동자.민중에게 촉구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의 존립을 염려하는
애국자들이고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며 신탁통치 무효화를 주장하는 우리 노동자
민중은 비애국적이라고 그들은 강변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들의 너무나도 올바
른 주장을 ‘초단기적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하고 있다.*주26)
그들은 교묘하게 논리전개의 구도를 왜곡하고 있다. 누구라도 국가의 자존심
을 택할 것인가, 국가의 존립을 택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얼떨결에 국가의 존
립을 택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민족과 민중의 인간다운 삶이다. 국가는 이 사태가 지나고 나서도 살아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민족과 민중의 이해관계를 수호하는 장치로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외 독점자본의 이윤추구를 수호하는 장치로서, 노동자.민
중에 대한 탄압장치로서 살아남을 것이다. 마르코스의 말마따나 민족국가는 오
로지 억압하는 힘만을 관장하면서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주27)
그러나 이번 사태가 초국적 자본-신제국주의-신자유주의 세력의 구도대로 관
철되고 나면 우리 민족과 민중은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 의장이 “우리가 노예
인가”라고 항변하고 있는 말 바로 그것처럼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지배세력들은 민족과 민중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하는 실로 중대하고도 중대한 “인간의 존엄성과 긍지” 문제
를 국가의 자존심 문제로 둔갑시키고 있다. 그렇게 바꿔치기한 위에서 그 다음
으로 국가의 자존심 문제와 국가의 존립 문제를 대비시키는 논쟁 수법을 구사하
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작을 통해서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 국가의 자존심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을 쉽게 이끌어 내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실제로는 국
가(억압기구로서의)의 존립을 위해서 그 주인인 민족과 민중의 인간으로서의 긍
지와 존엄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결론으로 도출해 내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궤변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전도된(민족을 국가로 바꿔치기하
는) 개념조작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때때로 바꾸어질 수 있어도 민족
과 민중과 인간은 영원한(보다 정확하게는 훨씬 더 지속적인) 것이다. 그 둘은
같은 차원의 존재가 아닌 것이다.
또한 그들이 국가와 민족(민중.인간)을 바꿔치기 한 그 잘못된 구도에 따라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들의 논리는 이치에 닿지 않는다. 국가(나 민족)의 자
존심과 존립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
다. 자존심이란 무엇인가? 그냥 뽐내기 위한 것이 자존심인가?(그것은 자만심이
다. 또는 오만이다!)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은 민족과 민족국가가 제국주의 세력
이나 외세에 의해서 그 자주권을 박탈당하지 않겠다는 마음 또는 지향이다. 인
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긍지를 짓밟히지 않고 인간답게 살겠다는 마음 또는 지향
이다. 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이 마음이 없다면 외세가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통째로 삼켜도 아무런 굴욕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노예로서 살더라도 어떠한
굴욕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국가든 민족이든 개인이든 자존심이나 긍지 없이도 별 문제 없이 존립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노예적인 사상에 깊이 찌든 이 땅의 예속적 지배세
력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민중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긍지가
박탈된 삶은 목숨은 붙어 있을지라도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이와같
이 제국주의에 예속된 천민적 지배세력들은 자존심이고 긍지고 없이 먹고 살게
만 해 준다면 감사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노동자.민중들에게 자기들처럼
노예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이중적인 노예로서. 한 번은 국내
지배세력의 노예로서. 그리고 그 위에 제국주의의 노예로서. 그래서 곱배기 노
예로서!
지금 우리 노동자.민중은 왜 자존심이 짓밟혔다고 느끼는가? 민족의 자주권
(불완전하게나마 가지고 있던)이 더욱 철저히 유린당하고 그럼으로써 이후 노동
자 민중의 생활이 노예적인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
는 것이다. 민족적 자주권이 유린되고 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그
리고 이후 자주권이 유린된 국가는 더욱더 내외 독점자본이 노동자.민중을 억압
하는 데 쓰이는 도구로 변질될 것이기 때문에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지금도 민
족국가는 한편으로는 민중을 수호하는 측면이 있음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세력의 도구로서 민중을 억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의 자주
권조차 없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민족국가는 비록 존립하더라도 민중을 억압
하는 껍데기 역할만을 남기고 민중을 수호하는 알맹이는 몽땅 빼앗겨 버릴 것이
다.
더구나 이번 사태는 민족국가를 변질시키는 것에 멈추지 않고 있다. 저들은
한편으로는 민족국가를 억압하는 껍데기만 남기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
족국가의 밑바탕이 되는 경제에 대하여 그 지배권을 다 빼앗아 가려 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경제학에 따르면 경제는 국가와 정치의 토대이다. 이 토대를 다 빼
앗긴 상태에서 민족국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민족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로서
억압하는 역할만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토대가 없는 건물이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경제가 국가의 밑바탕인데도 그 밑바탕인 경제를 다 내어주면서 어떻게
민족국가의 존립을 지킨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민족국가는 산 송장과 같이 될
것이다. 민중을 억압하는 초국적 자본의 도구로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민족
국가로서 존립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지배세력의 논리는 자기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모순 투성이이다.
그들은 애국을 빙자하여 한국의 천민 자본주의 경제가 완전한 총파국을 맞이함
으로써 자신들의 지배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막아 보려고 안절부절하고 있
을 뿐이다. 자신들이 소유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들의 알짜배기를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다 내어주더라도 자기들 몫을 조금이나마 건져보기 위해
서!
우리 노동자.민중이 손놓고 있는다면 사태는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
서 천민적 지배세력은 우리 노동자.민중에게 애국심을 발휘해서 국가의 존립만
은 구하자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들의 헛소리에 우리 노동자.민중이 또다시
현혹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기존의 소유권과 지배권의 일부를 유지하게 될 것
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부분만! 알짜배기와 지배권은 신제국주의, 신자유주
의, 초국적 자본 세력에게 헌상(獻上)한 상태에서!
이들의 모습은 이조 말기 대지주 계급이 일제에 투항해서 일제 식민지 하에서
예속지주 계급으로 연명하던 것과 아주 흡사하다. 이것이 과연 애국인가? 그것
은 애국이 아니라 매국이다.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매국을 애국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 주장을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
하고 있다! 그것도 원 박웅서 소장의 글을 보라!)
③ ‘재협상'(지배세력 비패권분파가 제시하는)은 바른 주장이 될 수 없다.
이 지점까지 다 동의하더라도 여전히 하나의 커다란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초
국적 자본이 한국경제의 총파국을 기도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경제를 식민지적
으로 먹어주려 하고 있다면 국가경제가 완전 파국을 맞이하고 초국적 자본의 손
아귀에 넘어가는 것 말고 그 어떤 현실적인 대안이 있느냐는 의문 말이다. 다른
대안이 과연 있느냐?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경제 신탁통치를 긍정하고 그 틀 안
에서 이것저것 조금 개선해 보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않겠느냐?
는 논리와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지배세력의 비(非)패권분파는
그것을 대안이라고 내놓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답은 “그것은 대안이 아니다”, “그것이 대안이 되면 안 된
다”, “대안은 따로 있다”, “따로 있고 말고”이다. 우리의 대안(代案)은 간단하
다. “지급불능 사태를 빚더라도 IMF와의 비밀.날치기 협약은 무효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밀 날치기 협약을 무효화하고,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차제에 종속
경제를 자립적(이것은 물론 고립화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민족경제로 재
건하는 것이 우리의 대안이다.” 그렇다. 한국경제를 경제 신탁통치 하에서 되살
리는 것이 아니라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과거와 다르게 재건하는 것이다!
이것을 대안으로 삼을 때에도 역시 의문은 남는다. 그 의문 또한 둘로 나누어
진다. 첫째는 재협상이냐 무효화이냐 라는 둘 가운데 어느 것이 과연 옳으냐 하
는 문제이다. 과격하게 들리는 ‘무효화’보다 그들과 같이 재협상을 주장하면 안
되느냐는 질문이다. 둘째는 무효화한다고 하면 저들은 우리 경제를 완전 마비시
키고자 할 텐데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질문이다. 즉 자립적 민
족경제도 좋지만 당장 경제 메커니즘이 마비될 텐데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다,
우선 첫째 질문부터 검토해 보자!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재협상’을 거론했
다. 처음에는 그 의미가 다소 애매모호했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면서 그 말의
의미가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국민회의는 “재협상은 원칙적으로 협약을 준수하
는 기조 위에서 국가(민족이나 민중이 아니다!)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추가 협상을 의미한다”며, “마치 재협상 논의가 대외 신인도 회복에 부정적 영
향을 미친 것처럼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행동이야말로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우매한 행동”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것이 ‘재협상’이라는 것의 실체이다. 너무 가혹한 부분에 대해서 좀 누그러
뜨려 달라는 것!(이 글의 7.3을 참조하시오.) 경제를 초국적 자본에게 전면적이
고 완전하게 개방하고, 금융의 명줄을 초국적 자본에게 넘기고, 공기업을 비롯
한 알짜 기업들을 초국적 자본에게 넘기며, 유연화-초과착취로 초과이윤을 보장
하며, 초과착취에서 비롯되는 높은 이윤율로 높은 금리를 만들고(40%까지!), 그
렇게 만들어진 높은 금리로 돈놀이를 해서 노동자.민중의 피땀을 빼먹을 수 있
게 하는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의 기본 틀은 전혀 문제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누가 국민의 편입니까?’라는 제하의 국민회의의 정치광고 문안을 그대로 옮
겨 보자. “지난 12월 3일, IMF는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채 3당의 대통령후보에
게 이행각서에 대해 치욕적인 서명을 요구했습니다. 여당 후보는 아무런 대책없
이 IMF가 요구한 서약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는 원칙적으로 IMF
와 협의된 내용의 이행을 수용하면서도 대량실업과 연쇄도산 방지를 위한 추가
협상의 의지를 밝히는 공한을 때통령에게 보냈습니다.”
여기에서 보듯이 재협상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알맹이는 없는 빈껍데기뿐이
다. 원칙적으로 수용하면서 협의하는 것이 무슨 재협상인가? 지난번 협약을 원
칙적으로 인정하면 대량실업과 연쇄도산은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협약의 뼈대인데 무슨 재주로 대량실업과 연쇄도산이 방지되게 한단 말인가? 고
작 그 강도를 조금 누그려뜨려 달라고 구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정
치광고의 내용은 진실성이 없다. 원칙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대량실업을 방지하
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각도를 바꾸어서 검토해 보면 재협상이란 말은 원칙에 대해서 다시 협상할 때
에라야 개념상으로 적합하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수용하는 재협상’이란 말은
논리적으로 이치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부랴부랴 ‘재협상’이란 ‘추가협
상’을 뜻한다고 해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재협상은 추가협상을 뜻한다고 해
명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은 재협상이 아니라 추가협상이라고 정정해야
마땅하다.
은 것을 긍정하는 바탕 위에서, 잘못된 것을 무효화 또는 백지화하지 않고서,
어떻게 원칙적인 내용 부분에 대해 다시 협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재협
상이 참된 것이 되려면 지난번 협약에 대해 무효화부터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
은 재협상은 재협상이 아니라 추가협상이며 재협상이라는 이름을 도용하여 지난
번 불법.비밀 날치기 협약을 정당화하는 행위이다. 선열들이 을사보호조약을 재
협상하자고 했다면 그 당시 민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910년 일제의 조선
병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맺은 을사보호조약
을 재협상을 하자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녔을 것인가? 무효화를 전면에 내
세우지 않을 때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초라한 구걸행위로밖에 되지 않을 것이
다.
이번 사태에 관련하여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에서도 지난 10일 광화문에
서 집회를 가지면서 IMF와의 재협상을 주장했다. 이로써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
연합이 국민회의와 정치적 입장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드
러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은 과연 국민회의처럼 추가협상을
재협상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아닌가이다. 만약 전국연합도 추가협상을 재협상이
라고 말하고 있다면 즉각 말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재협상이 아니라 추가협
상이라고. 그렇지 않고 참으로 재협상을 뜻했다면 지금이라도 재협상을 주장하
기에 앞서 무효화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불법적인 비밀 날치기 협상을 무효화
하고 원칙적인 내용 부분에 대해 재협상하자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사람들을 혼란시키지 않고 주장하는 바의 옳고 그름이 분
명하게 드러날 것이다.(전국연합은 “미국과 일본 등 강대국의 이익을 그대로 반
영한 각서 내용을 즉각 수정해야 한다”고만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이 아니고
운동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추가협상을 주장하는 것은 단지 득이 안 될 뿐이며 우리 민족과 민중
의 이익에 해가 되지는 않는가? 그런 식의 기회주의적인 대응은 초국적 자본-미
국-IMF,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세력들에게 그들의 교활한 침략행위를 정당화
하는 구실을 보태줄 뿐이다. “그들의 요구가 원칙적으로 맞는 것”이라는 주장
이상으로 그들에게 보탬이 되고 우리 민족과 민중에게 피해를 끼치는 말이 있을
수 있을까? 협약 내용이 원칙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한국 자본주의가 확실하게
질서와 체질을 바꾸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불가피하게 가혹한 고통을
가할 수밖에 없다는 저들의 논리를 뒷받침해 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깡드쉬
는 김대중 후보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IMF와의 협약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의)를 내 외신에 공개해 달라고 국민회의에 요청하는 팩스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시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주28)
추가협상 주장은 이렇게 저들의 침략적 행위를 정당화해 주는데 그치지 않는
다. 그들로 하여금 더욱 오만방자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빌미까지 제공해 준
다. 원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옳다면 협약 내용을 지금 문제로 제기하기보다
총파국은 일단 피하고나서 그 다음에 천천히, 그리고 조용조용히 문제제기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 옳을 것이다. 이처럼 추가협상 주장은 일처리의 선후
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저들에게 빌미만 주게 되는 것이다. 어떤 빌미인가? “원칙
적으로 옳은 것이면 감사하게 받아들여야지 무슨 재협상이니 추가협상이니 하면
서 토를 다는가”라고 꾸짖을 수 있는 빌미를! “자꾸 그렇게 토를 달기 때문에
우리가 다소 무리하게 밀어부쳤다”라고 합리화할 수 있는 빌미를! 또는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나라 경제가 총체적으로 파국을 맞는 지점까지 더 철저하게 당
해 봐야만 마땅하다”라고 경멸하는 빌미를! “그래서 우리가 추가로 구제를 하지
않고 돈을 빼내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자신들의 협박을 정당화하는 빌미를!
그러므로 우리의 요구와 주장은 분명해야 한다. “IMF의 비밀 양해각서는 무효
이다!”라고. 이런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기회주의적인 것은 금물이다. 그러면 비
밀 양해각서는 왜 완전히 무효인가? 그 이유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로 협약의 내용이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무효이다! 그렇게 “투명
성”을 좋아하는 자들이 남의 나라를 들어먹는 것에 대해서는 어째서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가? 그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지지도 않은 협약이 어떻게 유효할 수
있는가? 그것도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IMF도 미국도 일본도 대
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민주
주의 국가에서 비밀협약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비밀협약을 체결
했다면 고의적으로 불법행위를 범한 것이 될 것이다. 이면계약이 있다면 무엇인
지, 또 기술적 이행문서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공개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 협약
의 무효임을 가장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한 이면합의나 기술적 이행문서
에 들어 있는 내용이 안고 있을 내용상의 문제점을 떠나서 그러하다.
둘째로 어느 나라의 기본적인 질서(체제와 구조)를 개조하는 내용을 외세와
협상하거나 협약을 맺는 것은 주권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최근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앞다투어 ‘사요나라 일본 주식회사’ ‘굿바이 한국 주식회
사’ 라는 제목 아래 “이젠 미국식 경제모델을 수용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
것은 주권을 남과 흥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을 호도하기 위하여
나라의 체제와 기본질서에 관한 강요를 협약이 아니라 ‘정책권고’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는 ‘양해 각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전부 사기협잡이다.
왜 사기협잡인가? 하나. 경제의 체제와 기본질서에 관한 사항은 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저들의 말마따나 패러다임 차원의 문제이다. 둘. 그들이 한 행
위는 권고가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강요이다. ‘강도(强度)가 조금 높
은 권고’도 아니다.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또 국회의장에게 각서를 받는 권고도
있단 말인가? 셋. 한 나라의 뼈대가 되는 사항을 양해각서라는 이름으로 협상
을 하고 협약을 맺는 것은 내용과 형식의 어느 면에서도 적합성을 가질 수 없
다. 그 내용이 어찌 양해할 수 있는 사항인가? 그것이 어찌 각서 조각이라는 형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인가? 이처럼 저들은 도저히 양해할 수 없는 사안
을, 또 각서라는 형식으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내용을, 패러다임 차원의 문제를, 권고라고 하면서 강요했다.
셋째로 설사 주권에 관한 사항을 국제기구와 협상하고 협약을 맺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국제기구는 주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 즉 국민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국민의 주권에 관하여 서로 협상하는 것이 적법성이 없다고 보지만.)
주권에 관계되는 사안이라면 주권자의 동의가 없이는 그 효력이 인정될 수 없
다. 몇해 전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이 단일한 정치체로 통합되는 것을 내용으
로 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각 나라에서 모두 국민투표에 부쳐져서 비준 여부
를 결정했다. 그런데 덴마크에서는 이 조약에 대한 비준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
었다. 그래서 타협안으로 유럽통화통합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을 조건부로 하여
EU에 참여하는 것으로 협약의 내용을 변경하고서 재투표를 실시하여 겨우 비준
하였다. 한편 스웨덴 의회에서는 이달 4일 99년 1월부터 발효되는 유럽통화동맹
(EMU)에 가입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했는데,
이 결정에서 스웨덴 의회는 만약 유럽통화동맹에 가입하고자 할 경우에는 가입
여부를 반드시 국민투표에 부쳐서 묻기로 그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경제주권
에 관련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스웨덴은 유럽통화동맹에는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주권에 관련된 사안이라면 주권자에 의하여 국민
투표에 의하여 비준을 받아야 옳은 것이다.
그러면 양해각서라는 이름의 이번 협약은 그 내용이 어떤 것인가? 과연 주권
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고 있는가? 이번 협약은 한국경제가 IMF의 신탁통치로 들
어가고 이후 식민지 경제로 재편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국가경제의
모든 사항이, 예산편성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 이르기까지 IMF의 통제
와 감독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초국적 자본이 우리 민족구성원과 아무런 차
별없이(그러나 그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한데) 기업과 주식을 소유하고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나아가 나라 경제를 그들 초국적 자본이 마음놓
고 지배, 장악, 착취, 수탈할 수 있는 질서로, 신자유주의 질서로 개혁 또는 개
조하기로 되어 있다. 이것은 경제 식민지 협약이다. 이런 엄청난 문제가, 경제
주권을 포기하는 문제가 대통령, 대통령 후보자, 국회의장 따위들의 각서 조각
으로 합법화될 수는 없다. 거기에 대법원장의 각서가 첨부되었다고 해도 무효이
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는 마치 이승만이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메모 쪽지 하나
로 국군 통수권을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넘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원천적으
로 무효이다. 우리 겨레의 민족적 자존심이 살아남아 있는 한 이것은 무효이다!
이 명백히 무효인 것을 단순히 치욕이라고만 생각하고 무효라고 생각하지 않
는 것은 예속적인 지배세력들의 정서와 관점일 뿐이다. 우리 노동자.민중의 정
서와 관점으로는 이것은 단지 치욕스러울 뿐 아니라 무효이다. 을사보호조약,
한일합방조약이 치욕이면서 무효이듯이!
이러한 입장을 확고히 하지 못할 때 이후의 모든 주장이나 투쟁은 적반하장
격으로 우리들이 침략자들에게 생떼를 쓰는 것으로 된다. 그래서 저들은 “어쨌
든 너희들이 일단 또는 원칙적으로 인정(긍정)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것에
대해 자꾸만 토를 달고 나아가서는 원칙적인 것까지 뒤집으려 하는가? 너희들은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식으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
을 정당화해 주게 될 것이다.
이 땅의 권력자들은 다들 각서를 쓰고 서약을 하고 했을지 모르지만 나라의
주인인 노동자 민중은 그것을 승인해 준 적이 없다. 따라서 그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내용에 있어서 민족의 자주권을(경제적으로 뿐만 아
니라 정치, 군사, 사회,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경제는 그러한 것들의 물질
적 토대이므로!) 박탈하는 것이며, 그 형식.절차에 있어서 주권자가 아닌 자들
의 약속에 지나지 않으므로! 도대체 대통령 후보자들이 각서를 쓸 무슨 권한이
있단 말인가? 국회의장이 도대체 국가의 대외관계에 관하여 국가를 대표할 어떤
합법적인 권한이 있는가? 이번 일은 저들이 이런 상식에 없는 짓거리들을 한 데
서 보더라도 명백히 무효이다. 이 명백한 무효(無效)를 무효라고 주장하지 못하
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치욕스러운 일이다.
④ 이번 동아시아 금융공황 사태의 공범인 투기성 단기외채에 대해 상환거부
를 주장해야 한다.
이렇게 협약 무효화를 주장하고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면 IMF-미국-초국적 자
본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원칙적인 문제에서부터 재협상 하자고 하면 그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IMF에서 당장 구제금융을 끊을 것이고, 그러면
여타의 국제금융기구(세계은행(IBRD)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서도 구제
금융을 끊을 것이며, 구제금융을 약속한 다른 선진 독점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구제금융 제공을 거부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 나라의 민간 초국적 금융자
본들도 한국에서 완전하게 철수할 것이다. 또 채무를 전부 회수할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그들 나라들과의 무역도 또한 끊어질 것이다. 그러면 수출주도형
인 우리나라 경제는 완전히 마비될 것이다. 재협상하자는 말만 가지고도 한국경
제를 파산시켜 버리자고 협박하고 있는 저들인데 당연히 그런데도 그같은 무모한 주장을 계속 하잔 말인가? 그렇게 하자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이 지점이 아마도 가장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IMF가 구제금융을 끊고 한국경제가 완전 파산을 하게 되면, 초국적 자
본들이 한국경제를 완전히 죽이게 되면, 누구에게 어떤 손해가 오는지를 따져보
자! 또 그에 앞서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와 비슷한 경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또
대응하고 있는지를 좀 두루 살펴보자!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을 차리라는 선
조들이 남겨준 교훈을 되살려 담대한 마음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주위를 살
펴보자.
이번 한국경제의 위기를 흔히들 외환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폭등하고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서 대외적으로
지불불능 상태에 처하게 된 외환위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한꺼풀만 더 들어가
보면 이번 한국경제의 대공황은 단순한 외환위기가 아니다. 즉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일어난 사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경상수지가 몇 년째 적자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경상수지 이외의 부
분에서 즉, 외채 부분에서 더 크게 문제가 곪아터졌던 것이다.
하나, 종금사들이 단기외채를 끌어다가 장기투자 자금으로 대출하거나 러시아
등의 위험도가 높은 곳에 투기성 투자를 했다. 동남아에도 상당액을 투자했다.
그런데 국내 재벌 기업들이 연쇄도산을 하고 동남아 시장에서 금융태풍이 몰아
쳐서 손해를 보고 하면서, 또 러시아에서도 주가가 하락하고 하면서, 종금사들
의 경영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은 부실한 외화
채권에 비해 조건이 빡빡한 외화 부채를 많이 안게 되었다는 점이다.
둘, 국내의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공격경영을 하면서 해외로부터 다액의 외채
를 끌어다 써 왔는데 과잉.중복투자로 또 높은 부채비율로 인해 경영 수지상태
가 악화되면서 ‘외채를 갚기 위한 외채’를 끌어다 쓰게 되었다. 이 또한 단기
외채를 급증시켰다.
셋, 세계경영을 한다면서 무모하게 해외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해외 현지법인
을 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또 다액의 외채를 끌어다 썼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경
영들이 실패하면서 외채가 더욱 불어나게 되었다. 이들이 빌린 외채는 거의가
단기외채이다.
이 세 가지 요인들이 중첩되면서 우리나라의 외채는 지난 몇 년 사이에 급속
히 늘어나서 무려 1천 7백억 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60% 이상
인 1천 1백억 달러가 단기외채로 구성되게 되었다. 재경원에서 한국경제의 기초
가 튼튼하다고 강변한 것은 수출과 생산의 물량적 측면만을 본 것일 뿐이다. 건
전한 양식을 가지고 미시경제적으로 기업의 경영상태를 들여다 보거나 국가경제
의 자본수지 상태를 들여다보면 한국경제는 금년초부터 이미 파탄이 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밑뿌리가 허물어진 상태에서 외채도입으로 눈가림을 해오다가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경영상태가 극히 불안하다는 것을 파악한 초국적 자본들이
동남아 금융태풍을 계기로 투자자금을 회수함으로써(거기에는 시장의 자연적인
움직임과 더불어 초국적 자본 세력의 전략.전술도 분명히 작용했다. 이같은 자
본 이탈은 초국적 금융자본의 첨병인 신용평가기관들이 선도했다.) 한국의 천민
자본주의는 급격히 붕괴로 치닫게 된 것이다.*주29)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 사실은 뒤집어 놓고 보면 초국적 금융
자본이 이자를 벌기 위해서 1천억 달러에 달하는 단기외채를 한국의 천민자본에
게 제공하여 돈놀이를 해 왔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은 공지의 사실이다.*주
30) 그들은 동남아에도 수 천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그 중 상당 부분이 단기성
외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초국적 금융자본은 동남아 시장을 사냥터로 삼
아 투기적으로 자금을 제공하다가 이제 현재의 경제구조 하에서는 더 이상 고리
의 이자 수입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신자유주의가 되어야 더 높은 이윤 이
자가 보장된다!) 일거에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하여 동아시아
경제는 주저앉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동아시아 사태에 대하여 그들 초국적 금융자본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저들에게
는 또 이번 사태가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인가?
그렇게 무모하게 이자를 제공한 자들, 이자놀이를 한 자들, 그리고 갑자기 자
금회수를 함으로써 경제를 붕괴하게 만든 자들에게도 현 사태에 대한 중대한 책
임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을 가지고 말해 보자. 그토록 신용에 의한 대출관
행으로 바꾸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들 자신은 어째서 면밀한 신용평가를 하지
않고 그처럼 거액의 대출을 했는가? 우리나라의 금융 시스템이 담보대출, 대마
불사(大馬不死)의 잘못된 관행에 빠져 있는 것이 분명하듯이 그들의 대출관행도
단기이익 추구, 부화뇌동 대출 등 합리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부분적 합리성은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총체적인 합리성은 없는 것이
아닌가? *주31) 그러므로 그들의 금융 시스템도 뜯어고쳐야만 한다. 그 시스템
은 총체적으로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투기주의적 합리성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다. 그 잘못된 투기적 금융관행이 오늘날 세계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번
동남아 사태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범위에서 볼 때에는 명
백히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일국적 범위에서 볼 때에는 그 주범이 곧 그들이
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이런 의미에서 이번 한국경제의 파산과 관련하여 우리는 굳이 한국의 재벌과
총자본이 주범이냐 그들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범이냐 하는 구별을 짓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적인 범위에서의 주범인 초국적 금융자본과 국내적 범위에
서의 주범인 천민재벌이 합동으로 현 사태를 빚어냈다고 본다. 이와같이 그들은
설사 이번 한국경제 파산의 주범은 아닐 수 있을지 몰라도 공범자인 것만은 부
인할 수 없다. 세계적인 시각에서는 이것이 상식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현 사태
의 주요한 책임의 한 부분을 떠맡아야 옳다. 그 책임을 한국의 자본에게만, 또
는 동남 아시아의 자본에게만 지우는 것은 명백히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지울 것인가?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빚은
모두 갚을 필요가 없다. 그들도 얼마의 돈은 잃는 것이 마땅하다. 정치경제학적
으로 말하여 가치감소를 당해야 마땅하다.(그런데 이런 순리와는 반대로 그들의
자본가치는 오히려 증가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의 자본도 가치감소를 시킬
것인가? 그들 초국적 금융자본도 투기성 돈놀이라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했기 때
문에 그에 상당하는 부분은 갚지 않는 것이 적법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다. 투기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투기적 금융활동으로 인해 파국을 향한
행진이 부추겨지고, 파국이 왔을 때에는 태풍처럼 경제를 무자비하게 휩쓸게 되
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러한 내용을 자본과 재벌이 주장하지 않고 왜 우리 노동자.민중이
주장하여야 하는가? 우리가 자본과 재벌의 앞잡이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이 국내 자본에게 빚으로 안겨 준 것은 결국 우리 노동자.민중이 갚아야 할 부
담으로, 고통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앞장서서 주장하는 것이
다. 지난 80년대에 제3세계 여러 나라에서 외채위기가 발생했을 당시에 그 나라
의 민중들이 “외채 상환 거부”를 주장했던 것도 비슷한 근거와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는 외채의 투기성보다 고리채성이 더 문제가 되었다. 다른 것은 그 정
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3세계 민중의 주장과 요구가 정당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초국적 자본과 채무국들 사이에 채무 이행에 관한 협상이 이루어져
서 상당 부분의 채무가 상환연기 되었다. 그리고 원리금 액수를 깎기도 했다.
미 재부장관의 이름을 딴 베이커-브레디 플랜(Baker and Brady Plan)이라는 것
도 이렇게 정당성이 없는 외채에 대한 채무정리(consolidation) 및 상환조건 조
정의 하나였다.*주32) 조금은 내용이 다르고 또 사후 약방문 격인 이야기이지만
하버드 대 펠드스타인 교수와 MIT 대 돈부시 교수 같은 사람들도 한국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전에 상환불능(Moratorium) 선언부터 고려했어야 한
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33)
이런 전례에 비추어 보아도 우리 노동자.민중이 그와 같은 요구와 주장을 하
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초국적 자본은 이번에 한국 경제로 하여
금 완전히 파국을 맞게 하고서 이를 계기로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질서로 재
편하고자 하는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야욕을 추구하는
자들의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 저들은 우리 노동자.민중을 외채의 올가미에 씌
워놓고서 외채를 갚아나가게 만들기 위해 무자비한 노예적 착취와 수탈과 억압
이라는 굴레를 강요하려 하고 있다. 그 착취와 수탈과 억압의 굴레에 빠지지 않
으려면 외채라는 올가미부터 쓰지 않아야 한다. 그 방법은 외채상환 거부, 그것
뿐이다!
⑤ 범국민 거국정부 수립하라! 동아시아 지역연대를 시급히 구축하라!
우리가 이렇게 나온다면 저들은 두눈에 불을 켜고 아주 단호하게 나올 것이
다. 한국경제를 완전 파산시키겠다고! 당연히 그렇게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러
한 엄포에 우리가 기 죽으면 우리는 이 올가미, 굴레, 족쇄에서 헤어날 수가 없
다. 비지니스 위크(초국적 자본의 표현기관인) 최근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도 전투에 들어가고 있다. 민주노총 정성희 대변인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경제 재구조화가 해고와 임금삭감의 파도를 가져온다면, ‘우리
는 정부와 IMF를 상대로 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그러나 그러한 허세
는 IMF를 움직이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허세부리는 그러한 호통은 한국
의 금융적 회복을 더 길고 고통스럽게 만들게 될 것이다”라고!*주34)
한국경제가 파산하면? 워싱턴 포스트 지는 이미 그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이 신문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10일 ‘한국의 재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나
쁘다’면서 한국 채권에 대한 신용평가를 정크본드(싸구려 채권)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으며, 이는 한국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
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일부 경제분석가 및 국제 투자자들의 말을 인용, “한국
이 달러 고갈에 들어갈 위험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부정적 요소들의 결
합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별도의 기사에서 “한국은 최근
미국과 일본에 대해 한국경제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 세계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협박조의 추가지원 요청을 했으나 미국 금융계와 행정부는 대체
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주35)
이러한 보도는 워싱턴 포스트 만이 아니다. 뉴욕 타임스 지도 12일자에서
“IMF는 한국에 양보 말라”는 제목으로 “이제 국가부도에 대한 얘기가 돌고 있
다”고 홍보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지도 IMF의 정책을 비판하는 척하면서도 기본
적으로는 행동통일을 하고 있다. 이 신문 12일자는 약속은 이행하지 않고 자금
을 또 요청하는 한국에 IMF는 추가자금 제공을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즉 “IMF는 한국의 ‘엄포’에 물러서지 말고, 한국이 프로그램을 적절히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까지 추가자금 제공을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
다.*주36)
이러한 보도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초국적 자본은 이미 모든 사태를 예상하
고 이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지불불능 상태에 빠지고 그로 인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더라도 겁내지 않고 있으므로 한국의 지배세력과 민중은 완전항
복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 지배세력의 엄포에 대해
그것이 허세임을 잘 알고 있으나 실제로 그러한 사태가 올 때 그 사태는 자기들
이 그러한 사태를 유도한 데 따른 것이 아니라 한국 지배세력이 무모한 도전을
한 데 따른 것이라는 논리를 퍼뜨리려는 준비를 벌써부터 치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선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저들의 커다란 약점이 감추어져 있다. 정말 한국에서 지
불불능 사태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1천억 달러의 투자가들의 채권을 초국적
거대은행들이 떠안을 것이다. 다소간의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 자기들 내부의 문제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파국만 아
니라면 동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해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
제가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컨대 미국경제는 이미 동아시아 사태로 불길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아
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성장률이 금년의 3.7∼3.8%에서 내년에는 2%대로
급락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이에 따라 일부 업체들은 벌써부터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일본업체들도 한국의 경제위기가 계
속됨에 따라 수출감소 등의 타격을 입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이같은 영향이 일본경제 전체로 확대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주37) 이렇
게 되면 초국적 자본 안에서 금융자본 분파와 산업자본 분파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산업자본 분파는 자신의 상품시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국경제
와 동아시아 경제를 구제하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태 전개는 세계경제 전체를 심하게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벌써부터 중국에까지 불안의 영향이 미쳐서 중국은 외환관리에 대한 감독 강화
에 들어갔다. 홍콩은 주가가 계속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외환시장도 동
요하고 있다. 나아가 11일과 12일에는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증시가 일제히 동
반 폭락사태를 빚었다. 영국계 투자회사인 한 펀드의 매니저는 “이 모든 것이
한국의 위기상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주38) 또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의
나라들에까지 동아시아의 금융공황이 전이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총파국은 자본주의 세계체제 자체에 상당히 커다란 충격을 가하게 될 것
이 분명하다.
초국적 자본은 이와 같은 세계 자본주의의 불안정과 침체, 나아가 공황이라는
위험부담을 잔뜩 안고 있는 것이다.*주39)
어쨌건 이렇게 파국을 맞게 됨으로써 한국경제는 분명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의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게 되면 한국의 지배질서가 과
연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이것이 문제해결의 진정한 결정적 지점
이다. 독일의 디 자이트 지도 “핵심 문제의 해결은 규정변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인 것이 결정적이다.) 북
한은 남한 지배질서에 더 이상 위협요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
중이 이를 계기로 하여 한국사회를 자주적.진보적인 방향에서 민주변혁을 하자
고 들고 나온다면, 이왕지사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통을 강
요당할 바이라면 수동적으로 당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고통을 감수하면서
차제에 미.일의 정치.경제적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서 해방되자는 운동이 급격히
고양된다면, 그들로서는 참으로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저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이다. 미국은 전 세계의 패권적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패권적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중동에서는
지금 회교국가들이 반미연대를 구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주40) 인도는 초
국적 자본의 개방압력에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주41)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를 장악.지배하지 못하면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 자체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동
아시아를 장악.지배하려면 한국이라는 교두보를 잃으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러므
로 저들로서도 그같은 사태 발전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경우이다. 우리들이 이왕
고통을 겪을 바엔 미국 신제국주의와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는 결의를 가지게
되는 사태야말로 그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치명적
인 약점을 저들은 가지고 있다.
이것을 우리의 최후의 무기로 할 때 미국과 초국적 자본은 타협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우리는 비록 대외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
제에 깊이 편입되어 그 제약과 규정을 받을지라도 경제의 명줄까지 저들에게 다
내어주는 식민지 상태를 면할 수 있다. 우리들이 이러한 각오와 결의를 하는 한
저들은 타협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서게 되면 이것은 동남아, 인도, 서아시아 등 광
범위한 아시아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것은 제3세계 나라들간
의 호혜적이고 평등한 국제협력을 증진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
다. 이것은 우리나라 한 나라의 질서에 끝나지 않고 세계 전체의 질서에 큰 충
격이 될 것이다. 이 전략적 선택을 할 용기와 결의가 없다면 우리들은 경제 식
민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노예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우리
들이 노예의 사슬을 깨뜨리겠다는 결의를 가지게 되면 그들은 우리와 타협하고
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협박도 무한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요구와 주장은 일관되고 강력하게 “IMF 불법 밀실 날치기 협
약은 전면 무효”이다. 그리고 “진정하게 우호적인 관계에서 또 약소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정책권고를 하라”고 IMF에 촉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가능성들이 이미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며칠 후면 ASEAN+3 회담이 열
리기로 되어 있다. 이 회담에서 동아시아 경제들이 상호 협력하여 초국적 금융
자본의 횡포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안들이 논의될 것이다. 이미 우리들의 노력
에 앞서 아세안(ASEAN) 나라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주42)
그런데 정작 최대의 위기를 맞은 우리나라는 여기에 적극 동참하지도 않고 있
다.(총리가 대신 참가한다.) 너무나 친미 일변도이고 너무나 수세적이다. 우리
가 경제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
렇게 되면 한국경제를 파탄시키겠다는 따위의 위협들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
이다. 이런 가능성이 눈앞에 열려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 땅의 정권
과 지배세력은 미국을 상전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눈치와 선처만을 구걸하고 있
다. 그러한 자세 위에서는 노예화 이외의 대안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IMF-미국
-초국적자본의 횡포와 야욕을 완전하게든 불완전하게든 많은 가능성들이 열려 있다.
그런데도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속적 지배세력이 아직도 일본의 뒤를
쫒아 아(亞)제국주의(sub-imperialism)화 하겠다는 환상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또는 냉전 시대의 대미 예속적인 사고구조에 깊이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이 천민적 지배세력을 민주적 노동자 민중 세력으로 교체해야만 우리의 대안
은 현실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김영삼 정권은 즉각 총퇴진되어야 한다. 그 위에
세력교체의 첫 단계로서 범국민 거국정부가 구성되어 이 국가적 위기사태를 책
임지도록 해야 하겠다(이 범국민 거국정부는 지배세력의 패권분파, 비패권분파
및 민중.시민세력 모두가 연립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
은 고용문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합의 정도가 아니라 경제 신탁통치 문제에
대한 거국적 타협과 거국적 대응이다!
□ 주 ———-
1) 제도언론들은 이제야 ‘공황’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예컨대 서울경제신문
은 12월 12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을 “국가경제 ‘총체적 공황'”이라고 달고
있다. 그들은 공황을 파국과 동일시하고 있다. 파국이라 함은 체계(system)가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공황의 한 가지 양
상일 뿐이다.
2) 이러한 환율 폭등은 최근 동아시아 금융공황을 겪고 있는 여러 나라들의 환
율폭등과 통화가치 하락 가운데서도 가장 극심한 것이다. 환율상승으로 인한
통화가치의 하락은 태국의 경우 39%, 인도네시아의 경우 46%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지난해 말에 비해 51%나 폭락한 것이다. 지난 연말 환율은 달러당
844.20원이었다.
3) IBRD의 바레트 대변인은 IMF 구제금융 협정에 따라 이달 안에 세계은행으로
부터 20억 달러를 받을 것이라는 한국측의 발표는 “시기상조”라고 말하며 이
를 부인했다. 매일경제신문 12월 13일자를 참조.
4) “우리는 2선 …. 별도 지원은 곤란”, “일본은 다급한 한국의 외환 형편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IMF 자금이 소진되기 전에 조기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이같은 일본의 냉정한 태도는 다분히 미국의 견제 때문
이라고 일본 대장성 주변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한국의 통화위기가 본격화되
었던 지난 11월 초만 해도 일본은 한국 정부가 일본에 양자 차원에서 별도 지
원을 요청했고, 이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11월 하순 일본의 국제금
융정책을 움직이는 사카키바라 대장성 재무관(차관급)이 은밀하게 워싱턴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고 도쿄의 한국 외교 소식통은 전
했다. ‘IMF의 틀 안에서’란 단서를 달기 시작했다는 것”, “미국이 IMF를 통한
한국의 경제질서 개조를 추진하는 마당에 일본이 한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내
세우긴 힘든 상황이라고 일본 관리들은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 12월 12일자
를 참조
5)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부장관은 IMF와의 협약에서 약속했던 개혁조치를 ‘성
실하게’ 이행하라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IMF합의 이행을 거
부할 가능성에 우려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IMF와 합의한 강력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으며 핵심은 그들이 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것이 현재 우리가 한국과 협의 중인 모든 것”이라
고 말했다. 문화일보 12월 12일자를 참조
6) 중앙일보 12월 12일자를 참조
7)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이러한 의도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어서 미국 학자에
의해서도 비판되었다. 제프리 삭스 미 하버드대 교수는 11일 파이낸셜 타임스
지 기고를 통해 한국에 대한 IMF의 지원조건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충
격적 긴축을 통한 구조조정보다 신용위기를 완화시키며 점진적으로 경제구조
를 바꾸도록 한국에 요구해야 한다”, “IMF가 취해야 할 방법으로 단기적 신용
위기를 해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초긴축 및 급격한 구조조정 요구가 금
융시장을 마비시키고 멀쩡한 기업까지 넘어뜨리는 공황 상황을 야기하고 있
다”고 비판했다. 매일경제신문 12월 12일자를 참조
8) 지난 2일 업무정지 명령을 받은 9개 종금사 대부분이 외화부도 위기에 직면
해 있다.이와 관련, 일부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영업정지 종금사들에 대한 차
입금 조기상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독일계 은행인 도
이치 모건 그렌펠(DMG)은 삼남, 경남, 고려종금 등에 올 초 차입한 1억2천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이번주 내로 중도상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제때에
상환하지 않을 경우 부도선언을 불사하겠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종금사들은 국내 외환시장에서의 외화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
능한 상태여서 채무불이행에 따른 부도처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서울경제신문 12월 12일자를 참조
9) 매일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12월 12일자를 참조
10) 한국일보는 12월 13일자 ‘원유도입 내달 중단위기’ 제하의 기사에서 “국내
은행들이 외화부족을 이유로 수입신용장 개설을 기피하고 현금으로 수입대금
을 내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정유업계마저 외화현금이 없기 때문이다. …. 이
달 들어 유전스(연지급 수입) LC개설을 완전히 중단, 국내 정유업계가 원유를
제대로 도입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또 “통산부는 신용장 개설 후 통상 1
개월여 만에 원유가 국내에 도입되는 점을 감안, 내년 1월 말께부터 국내에
원유부족 사태가 초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외환사정이 호전되지
않으면 원유부족으로 산업과 생활 전반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 같다”
고 말했다.
11) 매일경제신문 12월 12일자를 참조
12) 이와 관련하여, 한국은행의 관계자는 “IMF 구제금융 도입 후 잠시 안정되는
듯 하던 환율이 최근 또 다시 급등하는 등 외환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데에는
정치권의 당리당략적 움직임과 사회단체와 지적이 제기되면서 확산되고 있는 반(反)IMF-반(反)미국 감정이 주요 요인으
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일보 12월 10일자를 참조
13) 동아일보 12월 12일자를 참조
14) 매일경제신문 12월 13일자 참조
15) 은행의 관계자들은 ‘특단의 조치’가 없이는 안 된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특단의 조치란 IMF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IMF의 당초 요구대
로 조기에 금융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
다.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애매모호함이 없이 분명하게 “‘외국인(초국적 금
융자본 : 필자)의 시각’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
다. 매일경제신문 12월 12일자를 참조
16) 문화일보 12월 11일자를 참조
17) 한국일보 12월 12일자를 참조
18) 동아일보 12월 12일자를 참조. 이것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 김대중 후
보는 12일에는 미 워싱턴과 뉴욕을 TV 스크린으로 연결, 국제적 투기꾼인 소
로스 및 미키 캔터 전 미 무역대표부 대표 등과 40여 분간 의견교환을 했다.
여기에서도 김후보는 “우리 정부와 IMF 사이에 체결된 협약을 전적으로 한다”며 협약준수 의사를 거듭 밝혔다. 한국일보 12월 13일자를 참조
19) 워싱턴 포스트는 10일자에서 “투자자들이 한국정부가 발표하는 정보의 진실
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 더욱 문제”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 12월 13일
자를 참조
20) 제프리 삭스의 12월 11일자 파이낸셜 타임스 지 기고논문 중에서 재인용.
매일경제신문 12월 12일자를 참조
21) “마피아는 어떻게 세계경제를 암에 걸리게 하고 있는가”, 미첼 초수도프스
키, ‘신자유주의와 세계 민중의 저항’,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1997.을 참조하시오.
22) 국민일보 12월 11일자를 참조
23) 이를 보여주듯 12월 10일자 문화일보 ‘4자회담의 장애물과 함정’이라는 제
하의 정용석 칼럼에서는 “미.북 평화협정 막아야 한다”, “남북이 주도하고
미.중이 보조하는 구도로 가야 한다”는 말로 국내 지배세력의 이러한 반발을
표출하고 있다.
24) 비지니스 위크 12월 15일자 ‘에디토리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시아
는 시장을 촉진하고 엘리뜨 지배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 심대한 구조적 변화
를 겪어야만 한다”라고. 이처럼 현재의 지배 엘리뜨들을 굴복시킬 들은 하고 있다.
25) 한국일보 12월 12일자 참조
26) 매일경제신문 12월 10일자 삼성경제연구원 박웅서 소장의 글을 참조하시오.
“국민은 이런 공멸의 위기 앞에서는 초단기적 집단이기주의를 덮어두고 위기
관리 경제팀에 힘과 추진력을 실어주어야 한다” 운운.
27) “제4차 대전이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 민중의 저항’,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1997.을 참조
28) 한국경제신문 12월 13일자를 참조. 이 팩스 편지에서 캉드쉬는 “시장이 불
안정한 상황에서 협약에 대한 김후보의 명백한 지지 의사를 널리 알리는 것이
오해를 불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김대중 후보가 캉드
쉬에게 보낸 편지의 공개를 촉구했다. 이처럼 협약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는
데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29) 제프리 삭스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시아는 펀더먼틀(재정, 인플
레, 저축율, 수출 등)의 위기 때문이 아니라, 단기채들이 자기나름의 생각대
로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에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12월 11일자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 중에서. 조선일보 12월 13일자를 참조.
30)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 지는 필립 보우잉의 칼럼에서 “동아시아의 단기
자본 급증은 명백히 서구와 일본 은행들의 소행이었다. 또 금융정책 차원에서
서구 국가들은 자유무역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자본유입의 장벽을 낮추
도록 주장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문화일보 12월 10일자를 참조
31) 매일경제신문 11월 27일자 ‘기자 24시’ “세계화 패러다임의 함정”을 참조하
시오.
32)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필립 암스토롱 외, 제16장 “국제관계”를 참조하
시오.
33) 매일경제신문 12월 10일자를 참조. 두 교수는 “상환불능 선언을 하고나면
외국 금융기관들이 오히려 그들의 자산관리를 위해 협상의 여지를 터 줄 가능
성이 높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34) 비지니스 위크 12월 15일자를 참조.
35) 한국일보 12월 12일자를 참조
36) 조선일보 12월 13일자를 참조
37) 한국경제신문 12월 13일자를 참조
38) 조선일보 12월 13일자를 참조
39) 워싱턴 포스트 지 10일자 로버트 새뮤얼슨의 칼럼을 참조하시오. 그는 “세
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증권폭락과 증권위기, 이로 인한 생산과 취업의 격감
등 여러 징후들이 1930년대의 대공황과 비슷한 면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일반 민중들의 저항을 야기시킬지 모른다”, “이미 한국에서는 국
제통화기금의 까다로운 조건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등등.
40) 회교 회의기구 정상회담이 11일 ‘테헤란 선언’을 채택하고 폐막되었다. 이
선언에서 회교국들은 단결력을 과시하면서 이란과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목표로 미국 의회가 지난해 제정한 ‘다마토 법’의 무효화를 촉구했다. 조선일
보 12월 13일자를 참조.
41) 인데르 구지랄 인도 총리는 최근 “경제 개방 개혁은 신중하게 추진하겠다”
는 방침을 천명했다. 인도의 정책 수뇌부들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이 미국
의 요구에 따른 성급한 시장개방 때문이라는 인식을 단단히 하고 있다. 그래
서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티고 있다. 국민일보
12월 10일자를 참조.
42) 말레이시아 정부 소식통은 아시아의 경제 금융위기로 인해 EAEC(동아시아
경제회의) 창립 논의를 재론할 필요성이 증대했다며, 마하티르 총리는 “장래
의 위기대책으로 EAEC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소식통
은 그러나 일본과 한국이 미국의 반대를 이유로 아세안 9개국과 한 중 일 3개
국이 참여하는 이번 회담을 EAEC 정상회담으로 호칭하는 데 반대해 사실상 회
담 명칭은 ‘아세안+3’ 정상회담이 될 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12월 11일자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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