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김대중 예비정권의 등장과 노동자계급의 태도
제공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 차 례 >
1. 들어가면서
2.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가지는 의미
3. 김대중 정권의 노선과 정책
4. 김대중 정권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태도
1. 들어가면서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김대중 정권을 등장시켰다. 보통 정권이 아
니다. 종래 “비토”인물이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또 이 김대중 정권은
보통의 시기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경제 대공황과 IMF 신탁통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는 상황 속에서 등장했다. 김대중 정권이 등장했다는 것, 대공
황과 경제 신탁통치의 와중에서 등장했다는 것이야말로 투.개표에서의 박빙의
대결보다 훨씬 중시해야 할 지점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50년 만의 정권교
체, 36년 만의 비호남(비패권) 세력의 등장이 가지는 실질적 의미이다. 그리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여야간 정권교체라는 외관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무게가 나가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지배세력과 그들의 입인 제도언론들은(재벌언론이 아닌 한겨레신문
조차도) 이러한 지점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정신적 현실이다!
외신들에서 오히려 비록 일면적이고 부분적이지만 이 지점들을 중요하게 언급하
고 있다.
이러한 우민정치적 현실은 우리 노동자.민중으로 하여금 현실을 주체적으로
그리고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유도한다. 이를 위해 지배세력은 부단히 진실
을 은폐 또는 왜곡한다. 그 은폐.왜곡의 장막을 걷어내고 참된 모습을 보아야
한다. 단편적으로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한시적(限時的)으로가 아니라 통시적
(通時的)으로! 그리고 주체적인 지향과 요구에 입각한 주체적인 시각으로 김대
중 정권에 대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가
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그리고 김대중 당선자 개인은 60∼90년대에 걸치는 한
국사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기
를 지배해 왔던 기존의 세력관계와 정치.경제적 체제(regime)와 체계(system)들
이 일대 개편을 맞이하고 있다. 이 개편은 개혁일 수도 있고 혁신일 수도 있다.
심지어 변혁, 대변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역동적인 장(場)에는 국
내적 요소만이 아니라 국제적, 보다 정확하게는 미국과 초국적 자본이라는 요소
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지난 시기의 유산과 앞으로 유력해질 새로운 요소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아니 치열하게 각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대중 정권을 둘
러싼 제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게다가 진실이 은폐.왜곡.조작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게 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의의 또한 매우 크다. 한국 국내적
으로는 물론이고 민족적인 데서 나아가 “세계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 역
사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 복잡한 관계, 이 커다란 의의들이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만 이
중요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노동자.민중은 혼란에 빠지지 않고 또 현혹되지 않
고 자신의 진정한 지향과 이해관계 및 요구에 입각하여 대상을 인식하고, 태도
를 취하고, 대응을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쓰여졌다. 분량이 다소 많고, 때로는 아주 세
부적인 측면들, 지점들, 부분들까지 다루고 있어서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복잡하고 큰 의의를 가지고 있는 사물을 바르게 알고 그에 대해 바르
게 대하기 위하여 부득이 이러한 탐색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당
선되자마자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실질적으로 현재의 정권으로서 인정되면서,
그것도 국내외적으로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 놀라운(?) 현실과 그 정권에 대
하여 바르게 아는 것은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와 전략.전술을 바르게
아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고 시급하다.
2.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가지는 의미 :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민중운동의 정통
성 확보(회복)
(1) 15대 대선은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완성한 것이 아니라 부르조아 민주주의
의 제한적인 실시로써 노동자계급의 진출에 효과적으로 방파제를 쌓은 것
이다.
대공황이 진행되는 한가운데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그리고 국민회의 김
대중 후보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당선되었다. 모두들 극적이라고 말하고 있
다! 극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상당한 정도 예상되었던 바이기도 하다. 그
래서 누구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집권세력조차도 곧바로 선
거결과에 승복하고 있다.
그는 투표율 80.6%, 총유효 투표자 26,041,076명 가운데 득표율 40.3%인
10,326,275표를 얻었다. 그리고 이로써 제도언론들에서 말하고 있듯이 정부수립
이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주1)
그리고 이로써 절차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정치는 민주정치를 향해서 진일보하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정권은 이제
더 이상 지배블럭이나 집권세력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선거를 통한 “심판”
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결과인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해 지배세력과 그 언론들
은 그 의의를 대체로 과도하게, 일면적으로, 그리고 낡은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
고 있다. 동아일보는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자체가 “실질적 민주주의”(강조는
필자) 구현의 신호일 수밖에 없던 우리 정치현실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
다. …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이제 하나의 장(章)을 접고 새로운 장정에 오를
것이며” “‘민의 승리’이자 지역감정, 색깔론 등 전근대적 질곡을 벗어난 ‘시대
적 한계의 극복’으로 평가될 만하다”라고 하면서 그 의의를 매우 “크게” 평가하
고 있다. 김영삼 정권은 심지어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
으며(동아일보 12월 20일자 참조), 중앙일보는 12월 20일자 사설에서 “지금까지
여당내의 교체나 비정상적인 정권교체는 있었지만 여야간에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는 처음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고 하여 김영삼 정권과 같이 과도한 평가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로
같은 시각에서 “선거에 의한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건을 완결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여야간의 정
권교체가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평가될 수 있단 말인가? 정권교체가 과연 그
같이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에 현 시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과제(또
는 목표)는 민주변혁을 위한 “세력교체”임을 주장해 왔고, ‘정권교체’나 ‘세대
교체’는 그에 비해 그 의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우
리의 기본 입장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한다.*주2) 이번에 이루어진 정권교체
는 우리나라의 지배세력과 피지배 민중세력 사이의 세력관계가 교체되는 정권교
체가 아니고 지배세력 내에서의 분파간(패권분파와 비패권 분파간)의 권력관계
가 교체된 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정권교체가 그 나름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 부
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선진 독점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우처럼 정권교체가 정
착되어 있는 곳에서(즉 제도만이 아니라 관행까지 포함시켜서 볼 때 미국이나
일본처럼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거나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일반민
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것과 정권교체라는 것이
제도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일당독재 통치로부터 정권교체가 이
루어지는 데로 나아가는 것은 똑같은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정권교체로써 우리나라에도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실시되는 국면으로의 이행이
실현되었다고, 흔히 말하는 권위주의 독재 ‘통치'(군사독재든 문민독재든)는 이
제 극복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주3) 그리고 이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진일보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
은 80년대 이후 중남미를 비롯하여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제3세계 나라들
에서 진행 또는 추진되어 이행”이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지배세력은 이번 정권교체가 가지는 절차적 민주주의에서의 진일보를
부쩍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 내지는 제한성에 대해서, 아니 보
다 정확히 말해서 비민주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침묵하
고 있다! 이 지점에서도 그들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절차적 민주주의는 단지 좀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민주
주의 근본원리와 배치되는 비민주주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철저히 정치의 “주체”에서 배제시키고 정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가운데, 즉 철저히 지배세력이 내놓은 ‘후보상품’ 중에서 하나를 골라
서 그에게 표를 찍는 역할만을 부여한 가운데 치러진 선거였던 것이다.
이번 선거는 우선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계급에게는 정치활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무권리 상태로 만들어 놓고서 지배세력들끼리만 치른 선거였
다. 국가보안법으로 진보적인 주의.주장이 원천봉쇄된 것은 물론이고 노동조합
의 정치활동의 자유마저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에 의하여 봉쇄되어 있는 가운데
선거를 치렀던 것이다. 금년 초에 개정된 노동법에서 그나마 전향적인 내용이라
고 열거하는 것 중의 하나인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자유’는 사문화되고 있는
가운데 치른 선거였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후보자에 대한 지지활동도
모금활동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배세력의 제 분파들끼리만 경쟁한 선거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법.제도적으로만 노동자계급을 배제시킨 것이 아니다. 관행상
으로도 돈 많이 드는 정치광고 경쟁 중심으로 선거방법을 운영함으로써 돈 없는
노동자.민중 후보를 사실상 배제했다. 또 TV토론에 한 번도 모든 후보가 함께
토론하지 못하게 하면서 3자 토론만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진행함으로써 노동자
후보를,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철저히 배제했다. 이렇게 노동자계급을 철저히 배
제하고 부르조아들만을 경쟁선상에 올려놓고 치른 선거를 두고서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르조아답다.
이번 선거는 그 과정과 결과를 통틀어서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부르조
아의 민주주의, 부르조아들만의 민주주의이다. 노동자계급이 국민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이 시대에 이러한 민주주의를 놓고서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노예들은 철저히 배제시킨 채 노예주인들만이 토의하고 결정한 아테네의
정치를 민주주의 정치라고 말하는 서양의 부르조아들만큼이나 뻔뻔스럽다. 그것
은 노예주들의 공화제이지 민주정치가 아닌 것이다! 신라의 화백제도는 귀족들
의 공화제이지 민주정치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헌법상 민주공화제
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헌법에 어긋나는 선거인 것이다!
이번 선거는 또한 민중 또는 대중을 심하게 ‘대상화시키고’ 소외시키는 가운
데 치러진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통합선거법에 따라 자주적인 시민단체의 정치
적 의사표시가 봉쇄된 가운데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인 제도권 정당들에게만 활
동의 자유를 허용한 가운데 치러진 선거였다. 시민단체들은 후보자에 대한 지지
나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없도록 그 권리가 박탈당했다. 이것은 부르조아 민주
주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기준미달이다.(시민단체들은 부르조아적이지 않은
가?) 국가기구가 아닌 시민사회의 주인된 권리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서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이다.
나아가 이번 선거에서는 TV토론과 정치광고 위주로 선거운동이 치러짐으로서
대중은 선거 과정에 몸으로 함께하며 정치의 주역으로 참여할 최소한의 기회마
저 박탈당하고 오로지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제도와 관행을 그렇
게 끌고 갔다. 이것을 돈 안드는 선거라고 호도하면서! 후보자를 더 잘 평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하면서!*주4)
정치광고가 돈이 안 든단 말인가? 정치광고는 군중을 일당을 주면서, 또는 교
통비를 주면서 동원하는 것보다는 분명히 돈이 적게 들 것이다. 그러면 그처럼
돈으로 동원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청중을 찾아다니면 될 것 아닌가?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이 좁은 나라에서! 이렇게 교통이 발달한 오
늘날에! 선거운동 기간을 더 길게 하면 방방곡곡을 충분히 누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도권 정당들과 언론은 사실상 몇 달 전부터 선거운동을 해 오지 않았
는가? 따라서 돈 안 들게 하기 위해서 군중집회를 줄이고 정치광고로 경쟁했다
는 것은 솔직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광고 경쟁은 오히려 돈 경쟁이다. 그러므
로 진실은 전혀 다른 데에 있다. 사람들이 군중적으로 결집되고 거기에서 대중
의 구호 소리, 박수 소리, 연호 소리가 터져나오게 해서는, 노동자.민중의 가슴
이 울렁거리게 해서는 지배세력에게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노
동자.민중의 정치적 진출이 급격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봉쇄하기
위해서 짧은 선거운동 기간과 정치광고와 TV토론 중심의 선거라는 제도와 관행
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정치광고와 TV토론이 선거운동의 중심으로 되면 대중은 선거
과정에서 주체로 참여할 기회가 더욱 제한된다. 대중은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소외된다. 상품광고를 구경하고서 상품을 고르듯이 선
택하는 역할만을 할 수 있게 제한된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 선거운동 방식을
변화시킨 것이다. 대중은 옳은 아야기를 하면 “옳소” 하고 호응하고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하면 박수를 침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후보자에게 투사시킬 기회
–이런 과정에서 후보자는 제한적이지만 대중에 의해 통제된다!–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러한 수준의 참여조차 박탈하기 위해 선거운동 방식을 변화시킨 것이
다. 이번 선거는 바로 이러한 박탈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선거였다. 대중의 의
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하여! TV토론이 아닌 군중연
설이었다고 가정해 보라. 과연 IMF협약을 무조건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인지! 또 정리해고제를 실시하겠다고 큰소리로 떠들 수 있었을 것
인지! 당장 야유소리가 터져나왔을 것이다. 반면에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하겠
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리해고제만은 방어하겠다, 여러분이 지지해 주고 힘을
실어 달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가정해 보라. 박수가 터져나오고, 즉석 모금이 이
루어졌을 것이다.
이런 기회, 이런 가능성들을 봉쇄하고 대중을 오로지 누구를 찍을 것인지 선
택하는 역할만 하도록 만든 것이 어찌 민주정치의 진전일 수 있는가? 대중은
정치의 주체에서 더욱 멀어지고(대의정치에서는 그나마 선거가 민중 또는 대중
이 주체로서 역할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더욱 대상으로 되고 말았다. 대
중은 후보자라는 정치상품의 소비자가 되었다. 그리고 판촉활동의 대상이 되었
다. “주체”로서 참여하는 역할은 없어지고 “대상”으로서 구매하는 역할만이 남
겨지고 있다. 대중은 저들끼리 치고받는 정치경기의 구경꾼이고 인기투표자일
뿐이다. 정치의 주인은 대중이 아니라 그들이다. 이것이 민중이 주인으로서 역
할하는 “민주”정치로의 진전이란 말인가? 아니다. 이것은 명백히 민주정치의 퇴
보이다.
그들은 이것을 호도하기 위하여 TV토론으로 후보자를 더 잘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인신공격에 치우치긴 했지만 앞으로 개선하면 된다고 말
하고 있다. 그러나 TV토론으로는 연기력과 토론솜씨는 드러날지 모르지만 그의
정치철학과 정치노선, 그리고 그의 인격은 충분히 드러날 수 없다. 도대체 화장
한 안 한 모습을 실물로 보는 것이 더 잘 알 수 있게 하는가?
이번 15대 대선은 이렇게 민중과 대중을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심지어 후보자
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권리까지 박탈한 가운데 치러진 선
거였다. 이런 선거에서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원천적으로 봉쇄되며–국민신당
은 “새롭다”는 신(新)자를 붙였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이 아니다–대중은 수동적
인 존재로 전락한다. 이번 선거는 노동자계급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를 완벽하게 갖추고서 치러진 부르조아들만의 선거였다. 그렇게 노동자계급을 배제하기 위해
시민권의 핵심내용인 지지.반대 의사표시의 자유까지 박탈하자고 담합하고서 치
른 선거였다. 그래서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비특권 민중 모두를 배제시킨 선거
였다. 거기다가 선거유세 과정을 통해 대중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차단하고 오로지 표찍는 역할만을 할 수 있게 철저히 소외시킨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노동자계급의 배제와 대중의 소외를 제도와 관행으로 정착시킨
선거였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우리는 이번 선거 민주주의를 완성.완결시켰다는 제도언론의 시각에 동의할 수가 없다. 이번 선거
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일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여전히 또는 더 철저하게 배제되
었으며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부터 대상으로 소외시키는 것이 매우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분명히 퇴보적인 측면들이다. 그리고 양 측면들을 종합해서
볼 때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일보했다고 한마디로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참된 평가는 무엇인가? 군사독재의 권위주의적 통치만이 존재하고 노
동자계급은 정치적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던 지난 시절의 시대적 현실이나 과
제를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진전된 측면이 많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권위주의
적 통치만이 있던 데서 선거를 통한 심판과 정권교체가 가능한 정치로 변화되었
다는 점에서!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역동적으로 진출하고 있고 진출하게 되어 있
는 현재와 미래의 현실 및 시대적 과제를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후퇴적인 측면
이 더 무겁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제도와 관행에서 노동자계급의 배
제와 대중의 소외가 더 철저히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나아가 정권교체조차도 노
동자계급의 투쟁과 진출에 대해 방파제를 쌓는 과정의 하나로서 이루어진 것이
라는 점에서! 그렇다. 저들은 미래지향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사회.정치적 진
출에 효과적으로 방파제를 쌓은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
라. 여전히 수구.보수 기득권세력이 집권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라. IMF신탁통치
가 집행될 때 노동자계급 주도하에 민중항쟁이 터져나오고 민주변혁을 향한 노
동자.민중의 진출과 정치세력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될 것임은 불보듯한 일이다.
과연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타당한가? 현재와 미래의 잣대인가, 아니면
지난날의 잣대인가? 당연히 전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배세력들의 찬미와 미화
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측면에만 국한시켜 놓고 보더라도 타당하지 않다.
(2) 김대중 정권은 신 보수주의로 개종한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정권이다. :
이로써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민족민주운동은 사후적으로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했다!
이번 15대 대선의 의미를 올바로 평가하자면 민주주의의 절차적 측면들이 어
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측면보다도 이번 선거를 통해서 어떤 정권이 탄생했는가
하는 측면 즉 김대중 정권이 등장했다는 측면을 중심에 놓고 바라봐야 한다. 김
대중 정권은 어떠한 정치적 성격을 갖는 정권이며, 그러한 정권이 지금 시기에
등장한 것은 우리 민족과 민중의 운명에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절차는 정권창출(재창출이든 교체든)의 형식이라면 정
권은 그러한 창출의 내용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인제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김대중 정권이 가지
는 정치적 내용의 차이를 훨씬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김대중 정
권의 등장은 도대체 다른 사람의 정권이 등장하는 것에 비해서 내용적으로 어떠
한 차별성을 지니는가? 그리고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도대체 현재의 상황 속에
서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 것인가? 김영삼과 김대중은 그냥 양김(兩金)일 뿐인
가? 또 하나의 야당이었던 국민신당 이인제가 당선되는 것과 별 대차가 없는 것
일까?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세력관계의 구조변화와 무관한 정권의 교체일 뿐일
까? IMF신탁통치와 무관한 것일까? 단지 국내적인 의미만을 가질 것인가?
이러한 점들이 국내 지배세력과 그 언론들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할
것이다.
참고로 외국언론들의 시각들을 일별해 보자. 자본의 입이 아닌 대중적 신문인
르몽드 지는 김대중의 당선을 한마디로 “반체제 인사”의 집권이라고 표현했다.
20일자 르 몽드 지는 “한국의 유권자들은 근심스럽게도 반체제인사인 김대중 씨
를 권력의 대안으로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정치 성숙의 실례를 제시했다”고 평가
하면서 “이제 권좌에 오른 어제의 반체제인사는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적합한
인물인가. 16년간의 가택연금과 투옥 그리고 두 번에 걸친 암살기도에 맞서 싸
웠다는 사실이 그에게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40년간 한국을 통치해
오다 결국 이 나라를 무릎꿇게 한 정당 및 엘리뜨 계층과의 필요한 단절을 구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러한 단절은 부도 이상으로 미래의 장애가 되는
신뢰의 위기에서 한국이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주5) 또
공영언론으로서 세계적으로 공정성을 인정받고 있는 영국의 BBC TV는 “김 후보
가 반체제 재야인사에서 대통령으로 되는 위대한 승리를 일궈냈다”고 평가했
다.*주6)
이들의 평가는 국내언론들이 고작 절차적인 측면에서 의의를 평가하고 있거나
거기에다 호남출신 대통령의 등장을 덧붙이고 있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이
들은 김대중 정권을 반체제 인사의 집권으로 이해하면서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
및 국가의 위기와 관련지어 그 의의를 평가하고 있다. 객관적이고자 하면 최소
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내 언론은 이번 정권교체가 36년, 나아가
50년만의 사건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36년, 50년 동안 지속되
어 온 이땅의 지배구조는 어떠한 것이었으며 그 속에서 김대중은 어떤 존재였는
가 하는 점에 대해서서는 입을 닫고 있다. 그저 피상적인 경력만 이야기하고 있
다. 그런 가운데 ‘건국이래 첫 정권교체’의 의미를 말하는 것은 알맹이가 없는
추상적인 말장난일 뿐이다.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정권의 성격에 대해 살펴 보자. 과연 그의 집권은
반체제세력의 집권인가? 김영삼의 집권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차원이 다른 성격
과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김영삼도 군사독재와 유신체제에 반대해서 투쟁했음이 사실이다. 이것은 그가
3당야합을 해서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김영삼 정
권은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고 자부했고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굴에 들어
갔다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가 이렇게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았지만(이른바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연합으로!) 지난날 군사독재 세력에 반대해서 투
쟁한 것과 집권 후 정치군부를 제거하고 군사독재의 정치적 정통성을 청산하는
데(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로!) 노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범위 내
에서 그도 민주화운동의 한 부분이었음이 사실이다.
그러면 그는 어떤 민주화운동 세력이었는가? 그는 체제내적인 민주화운동 세
력을 대표했다. 그는 정통 야당총재로 상징되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기를 좋
아했다.*주7) 그는 반체제 인사로 간주되지 않았고 반체제 인사가 겪어야 했던
투옥과 같은 “고통”을 강요당하지 않았다. 그는 체제내적인 반대당의 대표였다.
그는 정치군부와는 멀었지만 재벌들과는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국내외 지배세
력으로부터 소외되기는 했어도 배제되고 기피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색깔이 칠
해지지도 않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가 영남지역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경위야 어쨌건 그의 위상은 체제내적 반대당의 대표였다.
그러나 김대중은 달랐다. 그는 체제내적 반대당의 대표가 되지 못하는 대신
민중의 정치적 대표가 되었다. 본인이 어느쪽을 원했는지는 모르지만 현실은 그
를 체제내적 반대당의 대표가 아니라 민중의 정치적 대표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패권세력으로부터 기피인물이 되었고 붉은 색깔이 칠해졌다. 그
는 “정치적”인 탄압을 받았다기보다는 “체제적”인 탄압을 받았다.*주8)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비특권적 대중 즉 민중의 대변자였다. 좀더 분
석적으로 말하면 그는 소부르조아적 정치운동―지난 군사독재 시기에 소부르조
아는 심하게 소외되어 있었고 따라서 급진적일 수밖에 없었다―의 기수였다. 그
리고 아직 노동자 계급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성장.성숙하지 못하여 소부르
조아적인 것(이념과 인물)이 민중운동을 주도하던 당시의 민중운동을 정치적으
로 대표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당시의 지배블럭에게는 가장 위협적이었고 체제
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그가 지배블럭이
엘리뜨 집단에서 전략적으로 배제한 호남지역 출신이라는 것도 또한 분명히 중
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김대중이 이러했던 반면에 김영삼은 민중과 더불어 지배세력에 정면으로 맞서
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는 소부르조아적인 것이 아니라 부르조아적이었다.
그야말로 보수야당의 대표주자였다. 그는 군사독재에 대한 반대세력임은 분명했
지만 민중세력의 대표라고 말하기에는 보수야당의 대표가 그럴 수밖에 없듯이
자본가계급에 강한 일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김대중은 배제되고 소
외된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는 우선 식민지 군사독재의 분할통치 전략에 따라
인위적으로 소외된 호남지역 주민의 대표자였다. 거기다가 그는 동학농민운동이
라든가 4.19 혁명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그러한 연장선에서 60∼70년대의 진보
적인 학생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서 정치운동을 해 왔다. 그가 이렇게 진
보적인 민중운동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닌 소부르조아 급진주의적 진
보성에서 기인하는 점도 있지만 특히 71년의 대통령 선거가 그를 비특권적 대중
을 대표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71년 대선에서 그는 연방제통일, 예
비군 폐지, 노동3권 보장 등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고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박
정희 체제를 위협했다. 그것이 유신으로 이어지면서 그는 제도정치권에서 배제
된 반체제 인사가 되었다. 그 이후 유신 치하 10여 년간 계속되는 탄압과 박해
속에서 그는 반체제 민주화운동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고 특히 80
년 광주민중항쟁으로 인해 그러한 위상은 더욱 확고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그것
이 그의 정체성으로 되었다. 이러한 지점을 주목하여 87년 대선 당시 민통련에
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므로 김대중을 지지하자는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이 나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평가는 민통련만의 것인가. 그렇지 않다. 국내 지배세력 또한
그렇게 평가했다. 그는 유신 이후 계속해서, 가까이는 보수화 노선을 내세웠던
92년 대선까지도 국내 지배세력의 비토대상이었다. 심지어 이번 대선에서 당선
된 이후에도 수구세력의 대변지인 조선일보는 “김대중 시대 각계 반응―관가”라
는 제하의 기사에서 “일반 공무원들은 당선자의 진보적인 정치노선에 우려를 표
시, 특히 대북 및 사회복지 정책에 격변이 예상된다”며 “정권 담당 경험이 있는
인사들이 중심을 잡아주기 바란다”며 그에 대한 견제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또
“검찰권 운영 방향에 대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야당이 집권했으므로 공안수사
의 방향이나 사법처리 기준 등이 대폭 완화될 것이며, 특히 공안 분야 수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여 수구세력들을 충동질하
고 있다. 문화일보도 20일자에서 “향후 국정운영은 기존의 기득권층보다는 서민
층을 대상으로 한 ‘진보성’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도 “김대중 씨에게는 ‘급진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평가
하고 있다.*주9)
이와 같은 데서도 엿볼 수 있듯이 김대중 당선자는 소부르조아 급진주의자로
서 제한적인 진보성을 가지고서 정치활동을 해 왔고 이것은 4.19, 6.3, 반(反)
유신, 반(反)5.6공을 거치며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민중적 민주화운동(제도권
야당으로서 단지 군사독재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체제와 세력관계에 대
해 변혁 지향성을 가지는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이러한 변혁지향성을 흔히 반체
제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소부르조아계급적인 내용이 지도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변혁지향성에 있어서 불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운동은 보다
정확히는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민족민주운동이었다)의 내용이었다. 그는 이 운
동의 대표자였다. 그는 제도권 안과 제도권 밖을 넘나들고 망라하며 이 운동을
이끌었다.
김대중의 당선은 이러한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민족민주운동이 정치적으로 정
통성을 뒤늦게 확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광주민중항쟁의 정치적 대표자가
대통령이 되었으므로, 60~80년대 민족민주운동의 실질적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
었으므로 소부르조아 민족민주운동은 국가적으로 그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광주민중항쟁은 김영삼 정권 하에서 이미 그 정당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것
은 4.19가 단지 저항권 행사로서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을 넘어 정통성을 가지는
것으로 인정받았던 만큼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아직 국가기념일로 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정통성을 가지게 되었
다. 그 운동의 정치적 대표자가 국가의 대표자가 되었으므로! 그리고 이렇게 됨
으로써 교과서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위시하여 80년대의 가열찼던 민족민주운동
이, 그리고 70년대의 반유신운동이, 60년대의 반군사독재운동이 모두 정당한 동
시에 정통성 있는 운동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정통성(경제.
사회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역사적 정통성이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
치적 정통성은 역사적 정통성에 있어서 결정적이다!)은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통
치가 아니라 군사독재에 정면으로 대립.투쟁했던 변혁지향적인 민족민주운동의
몫이 되었다. 마치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나서 항일 독립운동이 정치적으로 정통
성을 가지게 되었듯이! 사후적인 것이지만 변혁지향적인 민족민주운동의 이러한
정통성의 확보는 엄청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역사는 김영삼의 역사 바로세우기
에 의해서가 아니라 김대중 정권의 등장에 의해 바르게 세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청산되기 시작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탄생이 가지는 의미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재야운동이 사후적으로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문익환 목사가, 임수경
씨가, 그리고 김근태 씨가! 그밖에 감옥을 들락거린 재야인사들이! 이 재야인
사들이 이제 정권을 잡고 국가를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현재
의 재야인사가 아니라 지난날의 재야인사들이다. 그래서 지금은 재야출신들이
다.) 이러한 세력관계의 변화야말로 이번 정권교체가 김영삼 정권교체와 구별되
는 진짜 내용물이다. 김영삼이 3당합당을 하지 않고 야당에 머물러 있으면서 당
선되었다고 해도 그는 이러한 성격을 도저히 가질 수가 없다.
그러면 이러한 세력관계의 변화는 우리들이 말하는 바 세력교체인가? 결론적
으로 말하여 그렇지 않다. 이것은 한국에 있어서 계급적 지형의 변화에 따라 소
부르조아 정파가 정치적으로 친노동과 친자본으로 분화되어 가는 가운데 김대중
은 친자본을 선택하여 체제내화했고, 반체제 재야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체제
내 보수야당의 자격으로서 집권에 성공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90년대에 들
어와서는 체제내의 비패권분파의 대표자였을 뿐이다. 마치 김영삼이 지난 군사
독재 시절에 그러했듯이. 그리고 이번에 이 비패권분파가 패권분파를 누르고 집
권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비패권 분파의 집권은 패권분파와 비패권분파가 연합한 김영삼
정권의 집권과는 어떻게 다른가? 민족민주운동의 정통성 확보라는 점 이외에는
차이가 없는 것일까?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한국의 지배세력은 패권집단, 파워블럭 또는 지배블럭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지배세력 안에서 재벌과 특권관료(그리고 5.6공까지는 정치군부가 주도하며)가
중소자본과 특권적 중간층까지 정치적으로 소외시키고 패권적으로 이끌어 왔다.
지배세력(부르조아) 내에서도 공화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민중에 대해서는 일방
적으로 명령하고 지시하는 권위주의 통치 그 자체였다. 대통령은 공공연히 통치
권자라고 불리었다. 민주주의 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지배 전략으
로서 지역 차별과 배제를 주요한 수단으로 하여 영남(그 중 TK)을 중핵으로 여
타 지역을 포괄하면서 호남지역을 배제하는 차별 구도를 형성.구축했다. 이 지
배구조는 친일파 관료와 매판자본(삼성의 이병철이 대표적이다)에 의한 이승만
정권의 지배블럭을 5.16 이후 계승하고 혁신하면서 형성되었다. 군부를 주도분
파로 한 국가기구가 자본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는 군부-특권관료-재벌의 3결합
에다 TK(영남)을 중핵으로 여타 지역을 포괄하고(또는 소외시키고) 호남을 배제
하는 인맥관계로써 파워 엘리뜨로 재편한 것이다.(이러한 지배블럭의 형성은 단
절이 아니라 계승이다. 기존의 지배블럭은 부정.배제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긍
정.포함되었다. 그리고 변혁이 아니라 혁신이다. 매판적이고 전근대적인 것을
부정하고 산업적이고 근대적인 것을 지향했으나 그 부정과 지향은 불철저하고
기만적이었으므로! 그 실체가 다름아닌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허구적 민족주의와
천민재벌이 보여주는 부실한 세계경영이다. 이제 이 지배구조는 36년만에 붕괴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배구조를 계승하면서 혁신하는 과제를 또다시 김대
중 정권이 이어받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따라서 짧게는 5.16 이후 36년, 길게는 건국 이후 50년을 이어
져 온 것으로서 한국사회의 권력관계 또는 세력관계의 기본 틀이다. 50년 만의
정권교체 또는 36년만의 비영남 정권의 등장은 이러한 기본 틀의 와해를 의미하
는 것이다. 이러한 틀이 비록 세력교체를 통해 변혁되지는 못했지만 정권교체를
통해서,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해서 허물어지고 개혁되는 것을 의미한다. 김영
삼 정권은 개혁을 상표로 내걸었지만 이것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소수파로서 지
배블럭과 연합했다. 그러므로 군부.관료 분파와 민간 재벌 분파 사이에서 주도
권을 민간 재벌 분파 쪽으로 넘기는 주도권 이전을 추진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천민재벌에게 고삐를 풀어주는 것으로 되면서 한국자본주
의를 무너져 내리게 했을 뿐이다, 새로운 성격의 지배블럭을 창출하는 혁신적인
개혁을 그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실패했다. 김대중 정권은 이 지점에서
등장했다. 그는 낡은 지배블럭 구조를 허물게 되어 있다. 본인의 주관적 의사와
상관 없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것은 이미 무너져내리고 있으므로! 언론들은 그
의 정치적 진보성 때문에 재벌을 해체하고 정경유착을 단절할 것처럼 이야기하
고 있으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재벌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정경유착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만큼 되었기 때문에, 그는 이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
배세력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민중이 변혁적으로 진출하여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 일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이러한 역
사적 임무를 띄고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지배구조를 변혁하지 않고 개혁할 것인가? 지배세력 안
에서 패권블럭을 해체시키고 경쟁에서 동등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역간에 등
권(等權)을 부여하는 것을 계기로 하여 특권관료-재벌의 패권적 결탁구조를 깨
뜨리는 것이다.*주10) 산될 것이다. 중소자본에게 약간의 권력이 배분될 것이다. 국가관료와 재벌의
권력(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소시민 이하 민중의 권
력―배제.억압되었던―도 다소간 신장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가계급이
지배세력이고 독점자본이 그 안에서 패권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낡은 지배
블럭은 허물어지겠지만 그것은 변혁이 아니고 혁신적인 개혁에 머물 것이다.
5.16 이후 박정희 정권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하여 새로이 합리적이고 근대화
된 파워블럭이 기존의 파워블럭을 계승하고 혁신하여 등장할 것이다. 신자유주
의적인 파워블럭이! 금융자본 분파가 주도하고 산업자본 분파가 함께하는 블록
이! 미국의 파워 블록과 유사한 형태가! 신보수주의적인 파워블럭이!*주11)
재벌들은 이런 방향에서 철저히 개조될 것이다. 사회의 체계(구조와 순환의 종
합인)와 체제(제도와 권력의 종합인)도 마찬가지로 철저히 개조될 것이다. 그러
나 어디까지나 변혁 또는 변혁지향이 아니라 개혁 또는 혁신적인 개혁으로!
이것이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가지는 의의이다. 쉽게 말하면 보수적이지만 수
구적이지 않은 것이 정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와 공안
탄압을 통치의 주무기로 삼던 시대는 지난 일로 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도 정
권적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안기부도 그러한 목적을 위
해 사용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이런 점에서 김영삼 정권과는 확실히 다를 것
이다.*주12)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는 한국의 만델라(남아공)가 되고, 토니 블
레어(영국)가 되고, 세디요(멕시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집행자
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김대중 정권은 노동자의 벗이고 민중의 전진에 있어서 디딤돌인가 아니면
신제국주의의 포로이고 민주변혁에 대한 방파제인가?
지금까지는 문제를 평면적으로 고찰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측면
과 부정적인 측면을 병렬하고서 서로 비교했다는 말이다. 물론 과거의 가치기준
에 따른 평가와 미래의 가치기준에 따른 평가를 대비시킴으로써 시간 개념을 도
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개념은 매우 정태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시간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김대중 정권
의 등장이라는 사물을 고찰하고자 한다. 동태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인 전망과의
관련성 속에서!(In Historical Perspective)
만약 김대중 정권이 87년에 당선되었다면, 또 이번에도 87년과 똑같은 정치노
선을 가지고서 선거를 하여 당선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87년에 당선되었다
면 아마도 민주변혁을 향한 대장정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87년 당시 그는
재벌을 해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니까! 그리고 그 당시 노동자.민중은 민주
변혁적인 방향으로 역동적으로 진출하고 있었으니까! 노동자.민중은 매우 전투
적으로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한 복잡한 사정
이 어찌되었건 그는 당시 집권하지 못했고 군사독재는 연장되었다.
그리고 그 때 이후 노동자계급은 역동적으로 유력한 사회.정치세력으로 등장
하기 시작했다. 지배세력은 소부르조아 급진주의를 제압하는 것과 더불어 노동
자계급의 진출을 저지하는 것을 계급적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지
난 시기와는 분명히 다른 정치지형이었다. 이러할 때 참으로 역사의 진보 편에
서 있는 사람이나 세력이라면 노동자계급과 연합하고 점차 그 주도성을 노동자
계급에게 넘겨주는 방향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노동자계급과 소
부르조아세력은 하나로 동맹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민
주변혁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앞당길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독자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 소부르조아
운동이 그것에 대해 주도성을 가질 수는 있어도 지도할 수는 없게 된다. 그것은
소부르조아 계급이 가지는 사상적 협소성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
지였다. 소부르조아계급은 87년 대투쟁 이후 노동자대중이 계급적으로 진출하면
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지도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주13) 이 때를 전후로
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노.자 간의 대립이 사회의 주요한 대립으로 떠오르고 있
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이 주도성과 나아가 지도성을 발휘하기까지는
양자간의 연합의 형태가 등장하는 것이 올바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여전히
외세에 종속 내지는 예속된 조건하에서 권위주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
였기 때문에! 이것이 노동자계급의 주도성과 지도성으로 바뀌는 것은 노동자계
급의 정치적 역량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발전하는 다.
그러나 김대중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받아안지 않았다. 평면적으로 평가한
다면 노동자계급은 매우 유치했다. 그 투쟁 경력도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운동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이제 막 커다란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해 나가는
방향으로 역동적으로 진출하시 시작한 단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을 중심
으로 하는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운동과 연합하려고 하기보다
는 그것이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는 것을 견제하고 자신의 지도하에 묶어두려고
하였다. 이것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경우가 90년 봄 강경대 군 사망 정국이다.
강경대 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중시하는 반면 전노협 박창수 부위원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평민당 자신은 물론이고 소부르조아 급진주의가 주도하던 재야를 통해
서도 “차별”이 가해졌다. 이렇게 되면서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운동과 노동운동
은 멀어지게 되었다. 노동운동 내에 있는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조류는 끊임없이
노동운동 내에서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였다. 이것은 전노협의 확대에 적지않은
장애를 조성했다. 이것이 김대중이 가지는 역사적 한계이다.*주14)
그의 이러한 역사적 한계는 92년 대선에서의 뉴 DJ plan으로 이어진다. 그는
노동자계급과 연합하는 길이 아니라 보수화하여 친자본의 입장을 분명히하는 쪽
으로 기울어졌다. 물론 이것을 전술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전술이라는 면분으로 전략을 변경한 것이었다. 그는 92년 대선에
서는 재벌과 종소기업의 역할분담론으로 재벌해체론을 후퇴시킨다. 재야 민민운
동과도 정치연합이 아니라 정책연합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른바 북풍
을 맞아 전국연합이 침탈되는 가운데 집권에 실패한다.
나아가 정책연합에 중점을 두었다면 북풍을 덜 맞았을 것이고 표도 전국적으로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엇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단히 재야 민중운동을 소부르조아 급
진주의가 주도하도록 작용했고 이 운동을 자신의 지도하에 거느리고자 했다(예
컨대 전국연합 안에서도 소부르조아 급진주의적인 부분을 이용해서 전노협의 위
상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그리고서 자신은 친자본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흔히들 보수화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이 때부터 친노동이냐 친자본이냐의 사이에서 친(親)자본적인 방향
을 확실히 드러냈던 것이다.(친노동은 친북한처럼 여전히 반체제적으로 평가되
고 있었다. 그리하여 급진 민족주의적인 학생운동과 계급적인 노동운동은 고안
탄압의 주요한 두 당사자였다.) 그가 남북문제에서 또는 대미 문제에서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던 것이다. 92년 대선에서 전국연합이 김대중과의 정책연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세력의 대부분이 김대중후보의 지지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부는 백기완 선생을 후보로 내세
워 독자적으로 선거에 임했다) 이때부터 그는 사실상 지배세력 내 비(非)패권분
파의 대표자로 변신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이렇게 체제내화하면서도 여전히 소부르조아 계급이
주도하는 민중운동을 이끌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직 노동자계급이 정치
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들을 이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노동자계급
과 연합하려 하지 않는 한 재야 민중운동 안에서도 노동자계급은 소부르조아 계
급과 연합하거나 주도할 수가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그만큼 컸다. 노동운동과 소부르조아적인 민중운동은 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농민.도시 빈민.청년 학생.도시 소시민 등의 운동을 자신의 헤게모니 하에
두면서 지배세력 내 비패권분파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92년 선거에서
실패했다. 보수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세력은 민족민주운동을 이끌고 있는 그
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는 워낙 뿌리가 오래된 것이어서 92년 대선 이후에도 쉽게 극복되
지 못하였다. 그의 정계복귀는 예상되어 있었다. 그는 아.태재단 이사장으로 정
치활동을 재개했고, 국민회의를 창당하여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더욱 보수
화하였다.
이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보다 확실하게 보수화하는 것, 민중운동과
단절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오로지 단순한 지지만
이 긍정되었다. 그 때부터는 재야와 함께하면 오히려 표가 떨어진다는 것이 김
대중의 공식반응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공공연하게 ‘지역간의
모순’을 한국사회의 주요모순이라고 설정했다.*주15) 그러면서 수구적인 세력
인 김종필과 연대하였고 정치적 내용에 있어서 더욱 보수화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민중운동으로부터 자신을 절연하지는 않았다. 그것
의 실현 방법으로서 보수화를 정당화했다. 그렇게 해야만 광범한 지지세력을 주
변에 묶어들 수 있었다. 이것이 김대중이 가지는 복잡성의 한 부분이다.*주16)
한편 한국사회는 내적으로 노.자의 모순이 격화되고 지배블럭에 정통성에 위
기가 오고 있었다.*주17) 또 이 과정과 맞물려서 밖으로는 신제국주의가 한국
에 신자유주의 질서를 전면적으로 부과하려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서는 지배구조의 혁신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조건에서 그의 선택은 보수세력으로의 확실한 변신과 더불어 신제국주의 이해관
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준비”되
어 온 것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준비된 대통령”이란 수사는 공연한 빈말이 아
니었다. 이를 위해 그는 권위주의적인 김종필과 제휴했고 구(舊)보수주의적인
자신의 정치노선을 신자유주의 혹은 신보수주의로 개종했다. 그럼으로써 수구적
인 세력과 제휴하고 신제국주의의 암묵적 지원을 받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집
행자로서 이번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다.*주18)
이렇게 김대중은 변화하였다. 소부르조아 급진주의에서 보수주의(즉 구보수주
의)로 그리고 신보수주의(즉 신자유주의)로. 이처럼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민중
운동가로서의 그의 정치적 색조는 심하게 탈색되었다. 그러나 그는 극적으로 대
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일련의 과정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번에
당선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이념목표
를 전면에 내걸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당선과 집권은 권력추구 행위로밖
에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한 대통령 병자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이
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소부르조아 급진주의의 정치적 지향은
위에서 말했듯이 부르조아 민주주의로(구보수주의로) 그리고 마침내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로 이행했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미국 주도의 신제국주의 질서에
수직적으로 편입된 세계화 속의 신자유주의로 되고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 원리
하에 우리나라를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개편하는 수술의 집도의사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적임자로 준비된 것이다. 그는 그것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
다. 그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이렇게 하여 탈색되었을 뿐 아니라 수사에 불
과하게 되었다. 설사 그것이 살아 있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의 하위 또는 하하
위에 놓인 목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김대중 실질
정권의 현실이자 우리 민족.민중의 현실이다. 우리의 감정과 관점은 그래서 참
으로 착잡하다. 복잡한 것이 아니라 착잡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여는 기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뒷
전에 감추고 갑자기 소부르조아 급진주의의 수사로써 정권을 시작하고 있다. 이
것이 우리들이 김대중 정권에 대해 가지는 정서와 관점의 복잡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그는 이처럼 복잡하다. 따라서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도 또한
복잡하다.*주19)
이 복잡한 것들을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그의 노선을 구체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소부르조아 급진주의의 이념인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병
행을 천명했다. 이 둘을 검토하고 이어서 그가 최근 경제공황 및 IMF신탁통치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를 검토해 보자. 그러면 그가 사회.역사적으로 어떠한 역
할을 수해하는 존재인지가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이에 대
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도 선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를 정립해 보자.
3. 김대중 정권의 노선과 정책
(1) 그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가 접목된 저강도 권위주의이다!
김대중 당선자는 19일 당선 기자회견의 제목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으로 정
하였다. 이러한 회견 제목만으로 보더라도 그가 민주주의를 매우 중시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또 정권의 정당성 내지 정통성의 근거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
선적으로 민주주의의 신장에다 두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이 성취해 낸 정권교체
는 우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이 나라에서
는 경제발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6. 25의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했던
국민들이기에 우선 잘 살아야겠다는 공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
치로 인해 민주정치가 오래도록 큰 희생을 치러 왔습니다. 사실 해 모든 것이 희생되는 그런 정치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사회전반에 여
러 가지 파행적인 왜곡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정경유착이나 관치경제가 그렇고,
부정부패가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중소기업의 희생은 계속되었고, 서민의 권익
은 보호되지 못했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배려도 크게 부족했습니다.
….. 이제 새 정부 출범으로 민주주의와 경제가 함께 발전하는 시대를 맞게 되
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기업을 권력의 사슬로부터, 권력의 비호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킬 것입니다. 앞으로 시장경제에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계화 시대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김대중 정권이 생각하고 있는 민주주의이다. 그 민주주의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조금 더 계속 인용해
보자.
“경제의 목적은 국민의 행복에 있습니다. 그런 만큼 서민의 권익을 철저히 보
호하여 우리 경제가 민주적 시장경제로 발전해 나가는 그러한 시대를 열겠습니
다”
여기에 이르면 김대중 당선자의 민주주의란 곧 민주적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임
을 알 수 있다. 그의 정치노선을 비교적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는 한겨레신문이
이 기자회견의 제목을 “민주적 시장경제 역점”이라고 달고 있는 데서도 이것이
핵심적인 지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같이 그의 민주주의는 시장경제를 수식
(修飾)하는 정도의, 분칠하는 정도의 민주주의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벌써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자
본이 자유롭게 자신의 힘을 발휘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제도가 시장경제이
다. 이 시장경제 하에서는 노동자와 서민대중의 삶의 질은 저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세계화 그런데 이러한 세계화 시대의 시장경제로서 서민의 권익을 철저히 보호하여
경제의 목적인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겠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절차적인 측면
에서는 개선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개선될 수 없다. 재
벌이 해체된다고 해도 그 대신 기업 인수.합병과 정리해고제가 이루어지는 상황
하에서, 초긴축이 이루어지는 상황 하에서(이런 상황에서 사회보장제도의 확충
은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실질적 민주주의, 노동자와 서민대중의 삶의 질은 크
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말에서의 민주라는 이
수식과 분칠은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비슷하지도 못하다. 아니, 그 둘은 오
히려 정면으로 상충하는 관계이다.
이와 같이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허구라는 것은 그의 당선 기자회견을 통해 확실하게 천명되었고 예
고되었다. 이 분명한 사실에 눈을 감으면 우리는 희망을 갖는 대신 환상을 가지
게 된다. 이러한 기본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그러면 그는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전망해 보자. 그의 당선 기자회견을
근거로 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노동자.민중의 이해관계에 비추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들로서 대체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열거할 수 있겠다. 그 하나는
국가보안법 문제이다. 그 둘은 인권과 양심수 문제이다. 그 셋은 절차적 민주주
의 문제이다. 그 넷은 실질적 민주주의 문제이다. 그 다섯은 민주적 세력관계
문제이다.(이것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중첩되어 있기도 하다. 이렇
게 구분하는 것은 측면의 다양성만이 아니라 바라보는 각도의 다양성까지 총체
적으로 포괄하고 구분한 것이다.)
첫째로 김대중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보안법의 개폐는
우리나라에서 일반민주주의를 실시하느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잣대이다.*주20)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것은 간첩죄가 아닌 한 진보적인 정치적 의견을 자유
롭게 피력하고, 그러한 내용의 결사를 하고, 언론.출판을 하고, 집회.시위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우리는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그리고 상호의 존재를 정
면으로 부인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일반민주주의를 “완전하게” 실시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즉 반국가단체(구체적으로는 북한)를 지
지하는 활동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바
로 이런 점을 빌미로 진보적인 생각을 하거나 의견발표를 하거나 하는 것 일체
를 심하게 억압해 왔다. 나아가 정권이 민중운동이나 야당을 정략적 목적으로
탄압하는 구실로서 사용되기도 했다.(한국통신 사태에서 정략적 목적의 탄압과
보복으로 전국노운협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한 것은 그 일례이다) 이만큼 국가
보안법 폐지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일반민주주의가 이루어졌느냐 아니냐를 판가
름하는 시금석이다.
그러면 이에 대한 김대중 당선자의 입장은 어떠한가? 87년과 92년 대선 당시
까지만 해도 그는 국가보안법을 민주질서 수호법으로 대체하는 것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약에 그런 내용이 없었다. 선거 과정에서나 당
선 기자회견에서도 일체 언급이 없었다.
물론 앞에서 인용한 19일자 뉴욕 타임스 사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이
문제에 관하여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미
국 정부 측에서도 북.미관계를 고려하여 동의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이 건재하는 한, 또 새로이 국내로 들어오는 초국적 자본이 이것의 개
폐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한, 그것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투쟁을 통해 노
동자.민중이 정치적으로, 변혁적으로 진출하는 것만이 그러한 개폐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의 경우에도 야당시절에는 한 때 이 악법이 폐지를 주장
했다. 그러나 3당야합과 국내 패권세력의 반대로 그의 지난날의 약속은 휴지가
되었다. 이처럼 보안법을 유지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신장과 관련하여 어
떠한 낙관도 허용하지 않는 정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초국적 자본-미국이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고자 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는 데
가장 유효한 무기가 국가보안법인데 그들이 과연 그것을 쉽게 버리겠는가? 없
어도 새로 만들려고 하지 않겠는가?
둘째, 양심수 석방 및 인권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
에 관한 질문이 있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례를 참고로 하고 법에 따
라서 전향적으로 다루겠다”라고. 그리고 그는 “전향적으로”를 강조했다. 그러나
전례란 무엇인가? 민간 파시즘이 아닌가? 법에 따라서란 무엇인가? 국가보안
법은 물론이고 지난 번에 날치기 통과한 안기부법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이것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김대중 정권이 김영삼 정권보다는 전향적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마 그러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향적”인 것의 정도가 얼마일지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과 양심수 석방 문제를 검토했
으나 그 범위에 대한 견해 차이로 김대중 당선자가 정식으로 대통령으로 집권한
이후에 행하기로 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로 볼 때 김영삼 정권보다 휠씬 폭넓
게 하려는 의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를 서둘러 사면하고
석방하는 것을 보면, 즉 정치적 현실(당위보다는)을 중심에 놓고 제반 사안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양심수 석방과 양심수 전과자(?)들의 사면.복권 문제 또한
그러한 정치적 현실에 의해 크게 다. 보도에 의하면 경제활동 장려 차원에서 취임 전인 내년 1월께 각종 경제사
범에 대해서는 대사면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주21) 그런데 어째서 양심수에 대
해서는 언제 석방하겠다는 이야기나 언제, 어떤 범위로 사면.복권하겠다는 이야
기가 공식적으로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것인가? 양심수들이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데도! 이것이 50년 만의 정권교체, 36년 만에 이루어진 비패권 민주세력의 집권
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셋째,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선거에 대해서는 이번 15대 대
선에서 이미 노동자계급 배제, 대중의 소외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했
다. 김대중 정권 하에서 이것이 더욱 확고하게 정착될 것이다. 돈 안드는 선거
라고 하면서! 후보자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안방에 앉아서 편하게 고
를 수 있다고 하면서!
한편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김대중 당선자는 아주 적극적이다. 그는 참
여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고 매우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
여민주사회 시민연대”같은 진보적인 시민운동단체를 연상시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참여”는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정치의 기반 위에 마련된 국민의 단결된 힘만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국민이 나라의 운영에 함께하는 참여민주주
의를 정착시키겠습니다. TV를 통한 국민과의 대화를 연 2회 이상 실시하겠습니
다. 국민 여러분의 의견과 요구를 직접 국정 운영에 반영하고, 국민이 맡아주셔
야 할 일을 직접 국민에게 요청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회견문의 말미에서 다시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에게 국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부
패를 철저히 척결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겠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하
지만 국민 여러분이 참여정치의 주역이 되도록 할 것이며, 국민과의 대화정치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회견 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
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그는 구체적으로 “준
비”된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①연 2회 이상 TV를 통해 국민과 대화하겠다는 것
②국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이외에 ①국회 상임위원회를 연중 여는 것 ②
행정개혁을 통해 규제.간섭을 철폐하는 것 ③인사권을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
고 지방경찰청 창설로 자방자치체가 치안을 확실하게 책임지게 하는 것 등 지방
자치의 강화를 열거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참여민주주의란 실제로는 통치자가 국민의 의견과 요구를 조금
더 참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것은 예컨대 중요한 사안은 국민투
표에 물어서 국민대중에게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대중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 참여가 아니라 참고하는 참여인 것이다. 이것은 기업에
서 ‘노동자의 경영참여’라고 하면서 결정권은 허용하는 것(이것을 경영자가 참고로 하는 것!), 그렇게 해서 노동자를 경영자
의 헤게모니 아래로 보다 효율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이것은
참된 의미에서 참여민주주의가 아니다! 효율적인 권위주의 통치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민주주의의 방도로서 열거하고 있는 규체 철폐, 지방화 등 그밖
의 것은 민족국가를 무력화시키려는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치’의 패러다
임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신장이 아니다. 그것은 분권화일 뿐 지방
자치가 곧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다. 지자제 하에서도 대중은 여전히 피치자에 지
나지 않고 있다. 중요 사안에 대한 대중의 직접적인 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즉 대중민주주의가 아닌 한! 한편 노동자.민중에 대한 억압적 규제는 철폐
하고 자본에 대한 통제적 규제는 강화되어야 민주주의는 신장된다. 자본은 갈수
록 강대해지고 있으며 또 갈수록 투기적으로 되거나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
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세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
나 김대중 당선자는 “기업의 천국을 만들겠다”, “기업을 권력의 사슬로부터 해
방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권력의 사슬로부터 일순위로 해방되어야 할
것이 기업인가, 노동자.민중인가? 아니면 양심수와 진보적 운동세력인가? 설
사 국가부도의 위기 앞에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고려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자기합리화를 인정한다고 해도―이러한 고려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
속되어야 할 것인데!―우리 노동자계급은 이 말을 납득하기 어렵다.
이렇게 볼 때 절차적인 면에서의 김대중 정권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패러
다임의 민주주의, 즉 민중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배세력의 헤게모니 아래로 통합
시켜 낼 “대상”으로 삼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개선은
적고 변화만이 크다. 그리고 그 변화는 민중을 주체로, 주인으로 삼는 것과는
정 반대의 방향이다. 즉 절차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인 대중민주주의와 정 반대
의 방향이다.
넷째로, 실질적 민주주의는 그러면 어떠한가? 김대중 당선자는 “서민의 권익
을 철저히 보호하겠다”, “일할 능력이 없거나 자활능력이 없는 노인이나, 장애
인 그리고 극빈자들에게는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 어
느 누구도 나라로부터 민에게 있어서 최대의 복지는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입니
다.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는 노인과 장애인들에게도 고용의 기회를 보장하겠습
니다. 새 정부는 실업문제 해결에 최대 역점을 두고 적극 나설 것입니다”라고
하여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단지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생활보호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실업자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없다. 서구의 경우에도 1930년대 임지는 실업보험제도가 도입.정착되었다. 우리의 경우 그것에 버금가는 대공황
이 시작되었고 앞으로 수십 %대의 실업자가 만성적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것이 신자유주의의 착취방식이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개조하겠다면서 실업자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막말로
수많은 노동자.민중으로 하여금 굶어죽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이처럼 실
질적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그의 정책노선은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김대중 정권측은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일자리를 주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
느냐”라고. 만약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모두 제공한다면 실업보
험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 앞에는 수년
에 걸치는 대공황이 예고되어 있다. 또 그 이후에 그들이 들여놓으려고 하는 신
자유주의.신보수주의 질서는 많은 산업예비군을 확보하고 유연화-착취하는 것을
그 원리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진실하려면 신자유주의를 버리든가 일자리
보장을 버리든가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한다. 그리고 십중팔구는 일자리 보장을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업자의 소득보장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데도 그는 실업자에 대한 소득보장에 대해 아예 당면의 문제로서 인정하지조차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기왕에 있던 사회보장제도도 축소하는 판이니 신
자유주의로 개종한 그로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김대중 정권 하에서는 이렇
게 실질적 민주주의는 전진하기는커녕 후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역대 가장
진보적(?)이라는 정권 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설이 나타나게 되
어 있는 것이다!
다섯째, 노동자.민중이 나라와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하는 데 있어서 그
밑받침이 되는 것이 세력관계의 변화이다. 노동자.민중의 사회적.정치적 세력이
강화되어 가는 만큼 실질적 민주주의도, 절차적 민주주의도, 인권도 신장되어
가는 것이다. 일반민주주의의 기준인 국가보안법 폐지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밑받침이 되는 부분에 대하여 김 당선자는 어떤 전망과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김대중 정권을 경과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세력은 과연 강화될 것인가?
노동자.민중의 능동적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 한 세력관계는 오히려 후퇴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적인 전면개방으로 한국경제는 미국 및 초국적 자
본의 경제에 완전히 통합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초국적
자본이 식민지적으로 국내에 들어와(내국인과 동등하게! 그리고 경제의 명줄인
돈줄을 장악하고서!) 지배세력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배세력의
힘은 재벌과 특권관료가 합쳐진 현재의 지배블럭의 그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초국적 자본은 지금보다 더욱 노동자.민중의 힘을 약화
시키는 방향에서 국가기구가 역할하도록 통제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물적 토
대 즉 민족경제가 뿌리째 침식된 민족국가는 그러한 초국적 자본의 요구를 받아
들이고 집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의 조직력은 확대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투쟁력도 강화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의 유연화
자체가 고용불안과 노동자의 차별화.파편화를 통해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
키는 수단이며 단체행동에 대한 법적.제도적 제약을 수반한다. 즉 노동자의 단
결력과 투쟁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도 그 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조직력.투쟁력의 강화와 정치세력
화는 오직 노동자.민중이 얼마나 광범하게 단결하고 전투적으로 투쟁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범하게 단결하고 전투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
이 변혁지향적으로 그리고 획기적으로 거대하게 정치세력화되는 시점까지는 자
본측의 일방적 우위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적 통치의 기조 하에 신자유주의적인 분할통치(지방화)와 헤게모니 확
보의 효율화(대화정치)가 행해지는 “저강도 권위주의”*주22)가 될 것이다.
(2) “경제 개발”은 신자유주의 식민지 경제에서의 자본축적 활성화 노선이다.
김대중 당선자는 민주와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 동시병행적 발전을 추구하겠
다고 천명했다. 핵심 측근들도 한결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민
주주의와 경제발전은 4.19 이후 폭발적으로 고양된 소부르조아 민중운동의 양대
지향목표였다.(거기에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통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
중 속에서 이러한 소부르조아적 지향이 지배적이었던 80년대까지는 우리나라 민
중운동의 지향목표가 되어 왔다. 5.16 이후 재편된 지배블럭은 이것을 왜곡된
방향에서 수용했는데 그것이 “국가”와 “경제성장”(그리고 “반북”!)이었다. 5.16
이후의 우리나라 정치사는 이 양대 흐름의 투쟁사였다. 김대중 당선자는 그 중
민중운동의 편이었고 그 대표였다.(전자의 대표가 박정희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김종필과 전두환으로 분할 계승되었다.)
김대중 당선자는 소부르조아 민중운동이 정통성을 확보(뒤늦게 확보했으므로
회복이기도 하다!)했음을 천명한 것이다. “경제성장”이 아니라 “경제발전”(식민
지적 매판성 및 천민성의 극복과 공업 생산력의 향상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자는
것을 의미하는)이, 그리고 이것과 민주주의의 조화롭고, 병행적인 추구가 천명
된 것이다. 이는 60∼80년대 민중운동의 승리의 선언이다. 그러나 때늦은 승리
이다. 지금은 경제발전이 중심적인 지향목표인 시대가 아니다. 소부르조아적인
것이 민중의 지향 속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점
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경제발전”을 정권의 중심적 지향목표로 내건 것은 시대
에 뒤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은 노동자계급이 역사 진보의 중심세
력이 된 시대, 경제와 관련해서는 노동자.민중의 “삶의 질”이 중심적 지향목표
인 시대인 것이다. 경제발전은 이제 그것에 종속되는 하위의 목표로 뒤바뀐 시
대인 것이다.*주23)
여기에서도 김대중 당선자의 승리는 사후적인 승리, 차 지나간 다음에 손드는
승리이며 미래에 관련해서는 “낡은 것의 지배”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또 지난
시기의 소부르조아의 지향목표인 이 낡은 것이 신제국주의의 가장 새로운 것(신
자유주의)에 포섭되어 이 땅에 새로운 지배질서를 부과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경제발전론”에는 자립적이고(매판적이지만 않다면 개방적인
것도 부정되지는 않는다) 민주적인 공업화(비(非)제국주의적이고 복지국가적인
선진 자본주의)라는 60∼80년대의 소부르조아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수사(修辭)만이 전면에 내걸려 있을 뿐이다. 그 편린들 만이 엿보일 뿐이다. 그
러면 그가 말하는 경제발전은 무엇인가? 여전히 선진자본주의가 되겠다는 것인
가?(지난 시기 지배세력의 지향목표는 중진자본주의를 거쳐 선진자본주의가 되
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현실은 천민자본주의이다! 그러므로 천민자본주의로
서 아-제국주의적인 선진자본주의가 되겠다는 것이 그들의 실제 목표였다!) 지
금 그러한 이야기를 할 계제가 못될 뿐 아니라(공황과 파국 앞에서) 이것은 새
로운 식민지 경제질서에서의 부르조아(그는 이미 보수화되어 부르조아계급, 지
배세력의 대표가 되었는데!)의 목표일 수가 없다. 신제국주의는 그것을 허용하
지 않는다. 신제국주의는 지금 미국의 식민지 경제로의 완전한 통합을 꾀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대중 정권은 그것을 내세울 수 없다. 국내 지배세력 또한 마
찬가지이다.
그리하여 현시기 한국 부르조아와 김대중 정권의 지향목표는 경제의 “활성화”
이다. 이제 한국 자본주의는 선진 자본주의로의 도약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완전
히 편입된 속에서의 자본축적의 순조로운 진행이 그 지향목표가 된 것이다. 그
가 “기업의 천국으로 만들겠다”, “나라경제를 젊고 활기차게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은 “IMF 신탁통
치”를 통한 “시장경제로의 재편”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한 “체질 개조”이다. 이
러한 체질 개조를 통한 자본축적의 회복이다. 이것이 그토록 흔히 말하는 “신탁
통치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이와 관련된 부분을 조금 인용해 보자.
“우리는 모든 기업을 권력의 사슬로부터, 권력의 비호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킬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시장에 적응해서 세계적 경쟁 속에서 이겨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계화 시대의 현실입니다.”
“새 정부는 철저한 경제개혁으로 IMF 구제금융이 하루 빨리 필요없게 되는 희
망찬 앞날을 열 것입니다. 다시한번 밝히지만 우리는 IMF와 적극적으로 협력(그
렇다! 하청회사도 협력회사라고 불리고 있다. 따라서 IMF 신탁통치가 IMF와의
협력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해 나갈 것입니다. IMF와
현 정부가 협의(그렇다! 그들에게서는 강요도 협의다!)한 사항은 충실히 지킬
것입니다. 이를 위해 관계법안을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할 것입니
다.”
“경제분야에 있어서 저는 IMF와 협의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것을 다
시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습니
다.”
“철저히 시장경제를 시행할 것이고, 시장을 대담히 개방하겠습니다. 기업인들
이 희망을 갖고 활동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의
천국으로 만들겠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외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 내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겠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인가? 그들이 언제 억압받았던
가? 차별받았던가? 제한을 받았을 지언정 차별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주인이
아닌 자를 주인과 구별하는 것이 차별인가? 왜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동등한 대
우를 보장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하면서 왜 외국인 노동자는 내보내라고 하는가?
이같은 노선 천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이미 지난 시기의 소부르조아적
과제인 경제발전, 선진 자본주의화(비제국주의적인 근대화이다!)를 추구하고 있
지 않다. 그것은 수사에 불과하다. 편린도 많지 않다. 굳이 찾아내면 중소기업
에 대한 강조 정도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더 이상 중소기업이 대기업
의 횡포에 희생되지 않도록 공정한 경쟁을 정착시키겠습니다. 21세기는 중소기
업의 시대입니다. 중소기업을 21세기 우리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로 적극 육성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임창렬 경제부총리로부터 경제상황에 대한 업무보
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중소기업과 벤쳐기업에 대한 특별지원”을 강조했다.*주
24)
이와같이 그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로 경제의 체제(제도와 권력)와 체계(구조
와 순환)를 개편하는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신자유주의
자는 아니다. 정통적 앵글로 색슨의 신자유주의와는 달리 고용 및 복지를 신자
유주의와 동시에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신자유주의에서는 고용을 줄이고 복지
를 삭감하는데) 이런 점들이 그에 대한 인식을 복잡하게 하고 나아가 혼란스럽
게 만들고 있다.
김대중과 국민회의의 정치노선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진보성을 띨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렇게
예상하고 있다. “김 당선자는 스스로 ‘중도우파’라고 밝히고 있으나 김 당선자
의 이같은 평소 지론을 근거로 본다면 향후 국정운영은 기존의 기득권보다는 서
민층을 대상으로 한 ‘진보성’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주25) “김
대중 승리의 또다른 의미는 그의 ‘진보성’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은 스스
로를 ‘중도’ 또는 ‘중도우파’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김대중 당선자가 주요 정치
세력 중 상대적인 진보성을 갖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보적 정치인의 집
권과 정권교체가 동시에 이루어짐으로써 변화의 예상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
다”라고.*주26)
과연 그러할 것인가? 이렇게 김대중 정권의 ‘진보성’을 강조하는 부분들은
대개 수구적인 분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될까 우려하여 또는
그의 헤게모니를 제한하기 위하여 김대중의 그러한 측면을 고의로 강조하고 있
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쪽에서는 또는 그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그와 반대이다. “그가 기자회견문에서 중소기업과 서민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최소 2년 간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잘못과 책임이 없는 이들에
게도 똑같이 고통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국
제통화기금에 충성을 맹약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 프로그램은 분명 고통을 동
반하지만,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 이
견이 거의 없다. 그는 이 과정에서 거침없이 불거져 나오는 값싼 민족주의를 경
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경제분야에 관한 한 DJ는 고통을 요구하는 지독하게 인
기없는 노선을 걷는 것만이 자신을 구국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길이다”라
고.*주27)
김대중 정권은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는 이미 사실상 파산
했고, 국내 지배세력은 대안적인 노선을 마련하고 추진할 능력을 상실했으며,
초국적 자본은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내년 2월에 발족하는 새 정권의 전도는 매우
험난하며, 김씨는 아마도 과거 어떤 대통령보다도 곤란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
고 지적하면서 “‘제2의 국치’라고 부르는 경제위기는 선거전에서 야당을 밀어준
뒷바람이 됐지만 이제는 새 대통령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
다.*주28) 미 ABC 방송도 “새 대통령은 IMF 이행계획과 관련, 경제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주29) 독일의 공영 ARD TV도 비
슷하게 보고 있다. 이 방송은 “현재의 경제위기가 지속될 경우 심각한 사회갈등
이 유발될 수도 있다”고 예상하면서 “김 당선자로서는 IMF와의 협상 결과를 수
용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활동의 여지가 제한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주
30)
이처럼 그가 진보성을 발휘할 수 없다는―주관적으로 어떠한 지향이나 의사를
가지고 있느냐에 상관 없이―것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아주 분명하다. IMF 신탁
통치에 반대하고 그들과 원칙문제를 가지고 재협상을 해내지 못하는 한! 이 너
무나 분명한 현실에 대해 호도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진실되지 못한 일이다! 신
뢰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미국과 초국적 자본의 압박은 아주 노골적이다. 영국의 초국적 금융자본
을 대변하는 파이낸셜 타임스 지는 사설에서 “김 당선자가 국정 운영에서 성공
하는 길은 즉각 행동에 나서 경제 구조조정을 단호하게 주도하고 고통이 집권
초 1∼2년 동안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서두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또 이렇게 해야만 김 당선자가 매우 중요한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만약 우유부단하게 행동할 경우 한국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떨
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주31) 이처럼 초국적 자본은 아주 분명하다. 미
국의 포츈지는 12월 29일자에서 더욱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한국의 노조는 지
나치게 다”, “노동시장 경직성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소해야 한다”라고. 또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대중 당선자가 경제운용의
실권을 장악, 하루빨리 새 정부의 금융 등 경제정책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초국적 금융자본 : 필자)은 특히 김 당선자
에게 노사정책 등에 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줄 것을 바라고 있으며(그렇다! 투
명하게! : 필자),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정리해고 입법화와 부실은행 퇴출 등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주32)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 대사는 더욱 더 분명하게 그들의 요구사항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소상하게 주문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지 등 미국언론들
은 월 스트리트가 김 당선자의 승리에 우려를 보내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또
김 당선자의 친노조 성향 등 경력을 들어 그가 IMF 등이 요구하는 개혁을 할 수
있을지 회의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것들 모두 지금까지 알려진 이미지 상의
문제다. 또 실제 김 당선자는 노동운동의 지지자였다. 는 노동조합을 향해 ‘국가 장래를 위해 당분간 희생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위
치에 있는 유일한 정치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김 당선자는 노조에게 ‘나는 지
금껏 당신들을 지지했고 또 여러분이 나를 뽑아준 만큼 이제 위기에 빠진 경제
를 위해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고통을 나눠갖자’고 요구해야
한다. 한국경제를 위해 노조는 과거처럼 높은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하기 곤란하
다. 또 대량 정리해고 등을 각오해야 한다. 김 당선자는 이런 요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고!*주33)
이러한 움직임들은 전혀 새삼스러운 것도 놀라운 것도 없다. 이미 시나리오에
들어 있던 것들이다. IMF-한국정부의 협약(의향서 및 양해각서)를 보면 위기타
개 전략을 7가지로 잡고 있는데 그 중 1.이 재벌체제 개혁, 2.가 금융제도 개혁
이며, 3.이 노동시장 개혁(그 구체적인 내용은 숨겨 놓았다!)이다. 그렇게 중요
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무역자유화 및 자본시장 개방이 그 다음
순서인 4번으로 되어 있다. 5. 재정긴축 6.경제행정 개혁 7.정확한 경제정보 공
개―이것이 그들의 전략이다.*주34) 그리고 이러한 내 집행인이 김대중 정권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전술에 따라 미국과 초국적
자본은 김대중 당선자에게 신속.과감하게 전략 집행을 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
고 다른 무엇보다도 정리해고제를 비롯한 유연화-착취 제도의 도입 의지를 확실
히 하라고 압박했다. 대선 기간 중에 그가 대중에게 공약했던 것처럼 6개월 해
고 동결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시하라고!
그리고 이 또한 예상된 것이고 준비된 것으로서 김대중 당선자는 신속하고 과
감하게 이러한 제안을 수용했다. 정리해고제를 실시하겠다고! 노.사.정 국민협
약을 추진하겠다고!*주35)
이 때를 전후하여 초국적 자본은 압박을 더욱 가중했다. 초국적 자본의 첨병
인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완전한 정크본드로 떨구어 버렸던
것이다.*주36)
이러한 압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김대중 당선자는 23일 태도를 표변했다. 외
환위기, 외채위기가 예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외채가 2,500∼
3000억 달러에 달한다고!*주37) 그것을 과연 몰랐을까? 국민회의가 안기부 빰
치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박상천 총무가 벌써 20일자 TV 심야토론에서 외채가 2,000억이 넘는다고 말했는데! 어쨌든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김대중 당선
자는 실질적인 정권으로서, 그리고 초국적 자본의 국내 집행인으로서 역할하기
시작했다. 노동단체를 방문하여 ‘사회적 합의’에 참여할 것과 정리해고제를 수
용할 것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그와 동시에 김대중 당선자 측은
“금융기관이나 한계기업을 인수.합병할 때에 ‘고용승계 의무’를 폐지하는 등을
취임 전 임시국회에서 법제화하기로 하는 등 IMF 요구사항에 대한 실행계획
(Action Program)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또 부실 종금사의 즉각 폐쇄와 2개 시
중은행의 조기 민영화 등도 긍정 검토하는 등 해외자본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방침이다.*주38)
이상 최근의 움직임들을 통해서 우리는 김대중 정권이 IMF-미국-초국적 자본
에 대해 기본적으로 그들의 세계화-신자유주의-신제국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노
선 위에 서 있을 뿐 아니라 한국경제의 대공황-경제 신탁통치라는 현재의 조성
된 정세 하에서 그들의 국내 집행인으로 역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그가 바라는 바는 아닐지라도! 그러므로 그가 천명한 “경제발전”은
사실은 경제발전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 특히 미`일의 신제국주의에 완전
하고 철저하게 통합되는 경제식민지로 한국경제를 개조(제도-권력-체제적으로,
또 구조-순환-체계적으로) 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처럼 36년간 지배세력과 대치해 왔던 소부르조아 급진주의는 파산하고 있
다! 김대중 정권은 초국적 자본의 포로가 되고 내외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
며 노동자계급과 대면하고 있다! 그는 지난날 노동자계급의 동지였고, 최근까지
도 비적대적인 사이(경쟁하는 관계!)였지만 그들과 우리 노동자계급은 이제 상
호 대립.투쟁하는 관계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어찌 우리의 정서와 관점이 복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4. 김대중 정권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태도
(1) 김대중 정권의 성격과 그 등장의 의의
이상에서 여러 각도, 여러 측면에 걸쳐서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갖는 의미 및
김대중 정권의 성격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 여러 각도, 여러 측면들을 총괄하
면 어떻게 될 것인가?
김대중 정권은 지난 시기, 지난 시대의(60∼80년대) 지배적인 힘.세력.경향에
대해 대립하는 힘.세력.경향을 대표한다. 어것은 지난 시기, 지난 시대에는 우
위에 있지 못했고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시기, 지난
시대의 지배적인 힘.세력.경향이 붕괴되고 새로운 힘.세력.경향이 지배적으로
변화되는 국면에 그의 정권은 등장했다. 그리고 그의 정권이 등장함으로써 지난
시기, 지난 시대에 피지배적인 위치에서 저항해 왔던 힘.세력.경향(소부르조아
급진주의적인 것)은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으며 정통성을 가지게 되었
다.(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서)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민
중운동과 정면으로 대치했던 군사독재는 그 정통성을 내놓게 된 것이다.(물론
완전하게는 아니다. 김종필, 박태준을 보라! 그러나 소부르조아 급진주의가 정
통성에서 우위를 확보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시기, 지난 시대의 최근 국면(90년대 이후)에서 국내외적으로 새
로운 시기, 새로운 시대를 향한 새로운 힘.세력.경향이 등장해 왔다. 국내적으
로 볼 때 노동자계급이 피지배 민중세력의 주도적 부분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것을 대표하거나 대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 국면에서
피지배 민중세력 측으로부터 지배세력 측으로 즉 자본측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보수화!) 노동자계급이 피지배계급의 주도적인 부분으로 진출하는 시기에 소부
르조아의 상층 부분이 흔히 그러하듯이!
그리고 이 국면에서 그는 구(舊)보수주의로부터 지배세력 측의 새로운 패러다
임인 신자유주의로(신보수주의로!) 획기적으로 자신을 혁신했다. 나아가 신제국
주의의 포로가 되었다. 그들의 도움(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노골적이든 암묵적
이든)을 받지 않고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제국주의는 경제적으
로 한국의 민족경제를 붕괴시켜 놓고 한국의 지배세력에게 한국경제를 신제국주
의의 식민지 경제로 재편하도록 압박했다. 지배세력은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권으로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피지배세력의 제압이
다. 신제국주의는 그에게 한국의 지배세력의 대표자로서 이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라고 촉구.압박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이와 같은 상황으로 인하여 법적으로 정권을 인수하기도 전에
실질적으로 정권이 되었다. 이 실질적인 정권은 초국적 자본을 위한, 새로와진
(기존의 패권적 지배블럭이 와해된) 국내 지배세력의 새로운 지배구조(신자유주
의적인 것을 접목한)를 건설하는, 또는 그의 표현처럼 재건하는 정권이다. 그
재건이라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미.일 초국적 자본의 식민지경제로 통합되는 것
이고, 대내적으로는 자본이 국가기구의 공적인 성격을 제거하고, 그것의 우위에
서서 그리고 국가기구를 억압의 “도구”로 삼아 노동자.민중을 지배하는 것이다.
또 노동자계급에 대해 타협을 거부하고 위압적으로 그리고 자유자재로(유연하
게!) 착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계는 식민지적인 관계임으로 인하여
제한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구 시대의 권위주의적인 성격(이것을 상
징하는 말이 “통치”이다!)과 노동자 배제적인 방식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다.
한마디로 압축하여 지난날 소부르조아 급진주의 민중운동 세력의 상층부분이
천민자본주의가 독점을 완성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노동자계급이 역동적으로 진
출하며, 신제국주의-신자유주의가 지배적으로 되는 세계적 조류 속에서 지배세
력 편으로 분해되어 넘어갔다. 그리고 신제국주의.신자유주의의 포로가 됨으로
써 저강도 권위주의 정권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권위주의적임으로 인
해 노동자.민중과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권의 이같은 성격은 그러면 이러한 국내적(또는 좀더 범위를 넓혀서
동아시아적) 차원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한국 지식인을 상징하는 사회과
학원장의 말을 들어 보자.
“냉전이 종식된 이후 탄생한 빌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대외정책의 목표를 ‘민
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대’라고 선언했다. ….. 미국은 원래 동구와 옛 소련
지역의 체제 변혁을 염두에 두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대’를 주장하고 나
왔지만 아직 이 두 목표가 동시에 실현될 수 있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
다. ….. 한국의 현 상황은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세계 질서의 첫 번째의 시범
케이스가 된 것이다. 한국의 대실험이 실패한다면 미국의 세계전략은 그 기본전
제에서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며, 반면 한국이 보다 성숙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면 한국의 예는 세계질서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주39)
여기에서 보듯이 김대중 정권은 미국 세계전략의 시금석이다. 김대중 당선자
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에 쓰실려고 하느님이 나를 살려
주신 것 같다”고 했는데 이 말에서 하느님을 미국이라고 바꾸어 놓으면 딱 들어
맞을 것 같다. 미국은 지금 김대중 정권을 미국의 세계전략을 관철하는데 적절
한 수단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지배세력과 김대중 정권은 그
것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미국의 이 전략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변수는 노동자계급이다. 여기에서 미국 및 김대중 정권(국내
지배세력을 대표하는)과 노동자계급은 상호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와
노동자계급은 자난날에는 동지였으나 노동자계급의 호 분리과정을 거쳐 지금의 적수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과 측면에 관한
한 그러하다.
이처럼 김대중 정권은 국내적으로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대개
혁을, 세계적으로는 신제국주의에의 통합과 미국 전략의 모범적 집행을 추진하
게 되어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민족 내부 문제에 있어서도 특별한 역할을 하
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 뉴욕 타임스 지는 한 백악관 외교정책
보좌관의 말을 인용, “누구보다 북한을 잘 다룰 수 있는 인물이 등장했다”며 김
대중 정권의 등장은 “한.미간 역동적 동반자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먼저 그(김대중)는 경제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이해관
계가 아주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들은 한국을 미국의 경제식민지로 통합한
이후에 남.북이 평화공존 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이로써 한반도 전체를 자신들의
영향권 안에 두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북한으로부터 남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
적.경제적 지배권을 인정하게 하고 그 대신 미국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한다. 또
북한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개입력을 증대시켜서 미국의 영향권 안에 놓여 있게
한다. 이것이 미국의 한반도 전략의 개요이다!)
이렇게 개편해 가는 데 있어서도 김대중 정권은 아주 적합하다. 그는 소부르
조아 민중운동의 기수로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기 때문이
다. 그리고 지배세력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보수화과정을 거치면서는 1민족 2
국가 체제를 긍정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번 당선 기자회견에
서 김대중 당선자는 91년 12월 조인된 남북 기본합의서는 남북한 양쪽이 함께
준수해야 할 “국제적”인 조약이라고 못박고 있다.(물론 현실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이다. 하지만 “국제적”이라는 말은 우리 민중의 정서와 맞지 않다!) 그리고
이 남북 기본합의서에 기초한 대화의 재개를 제안하면서 특사교환을 재개한 후
정상회담을 할 의향을 밝히고 있다.*주40) 그리고 통일에 관해서는 “현재 우리
의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며,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입니다. 통일은
그 이후 점진적으로 실현해야 할 문제입니다”라고 하여 미국의 전략 및 정책과
아주 비슷한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김대중 정권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하에서 민족문제를 풀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한 정책이
지니는 긍정성(평화를 가져온다는!)과 부정성(남북을 포함한 민족 전체가 미국
의 신제국주의적 지배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되고 이것이 구조화된다는!)을 김
대중 정권도 고스란히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전 민족적 차원에서 김대중 정
권의 등장이 가지는 의미이다.
이상에서 요약한 것이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가지는 의의가 복잡하다고 말하
는 것의 실체이다. 그리고 그 의의가 크다는 말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이 실체
에 근거해서 볼 때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가지는 의의는 그다지 복잡할 것이 없
다. 그리고 그 의의는 크기는 하지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부정성이 더
무게가 나간다! 그리고 결코 변혁적이지 않다!
(2) 확고하게 주체적 입장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과학적 인식에 근거해서! 그
리고 인간해방을 향하여!
과거는 중요하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역사적으로 계승.발전하기 80년대의 엄혹한 시기에 민중과 함께했던 사실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
고 그에 따르는 민중의 애정도 함께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에서 그 위치가 변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는 지금은 노동자.민중의 협력자인 측면도 있지
만 그 이상으로 적수나 경쟁자로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될 경향을 가지고 있
다. 초국적 자본, 그 초국적 자본의 포로가 된 한국 지배세력 및 그 지배세력의
대표인 그와 초국적 자본 및 국내 독점자본의 이중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상호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경쟁적이건 적대적이건. 따라
서 앞으로 불가피하게 나쁜 감정를 키워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불가피하게도 그에 대해 애증을 함께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감정의
이러한 복잡성은 시간이 갈수록 단순성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이러한 정서를 바탕으로 그를 대하는 태도를 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서는 결
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위에서 보듯이 노동자계급은 김대중 정권에 대하여 흑백식으로 어떠한 태도를
가질 수 없다. 정서적으로 일면 애정, 일면 증오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런 정서를 가지고 상대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첫째, 김대중
정권은 낡은 지배(자본이든 정치권력이든)구조를 깨뜨려 나갈 것이다. 역사의
진보를 위해 그것은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 과제는 그가 정권을 잡
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 세력은 부단히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고 개혁에 대해 반발할 것이다. 낡은 지배구조를 최대한 온
존.유지시키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깨뜨리는 데 노동자.민중은 김대중 정
권과 기꺼이 협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식민지적 질서를 강요하는 것과 부르조아 민주주의적으로 또는 저강도
권위주의적으로 노동자계급을 배제하고 무력화시키는 것에 관련해서는 아무리
김대중 정권이라 하더라도 단호하게 투쟁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낡은 권위주의
적인 지배구조를 온존하려는 부분에 대해서도 투쟁해야 할 것이다. 그는 권위주
의적인 구(舊) 질서를 민주주의적으로 변혁하려는 노선과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투쟁은 일반민주주의 요구투쟁이다!
그리고 셋째, 민족 평화.통일 문제와 민주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의 친미적
인 신자유주의 노선과 우리의 진보적 노선은 날카롭게 경쟁적으로 대립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태도 역시 이같이 복잡하다. 어떤 부분 어떤 측면에서는 협력하고, 어
떤 부분 어떤 측면에서는 경쟁하고, 어떤 부분 어떤 측면에서는 투쟁하는 관계
를 예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질서할 정도로, 혼돈스러울 정도로 복잡하지
는 않다. 종래의 2분법 내지 평면적인 것에 비해서 3분법 내지 입체적으로 고도
화되는 정도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 노동자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해 애증이 복합
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정서의 물질적(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근
거를 인정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감정에 사로잡혀서 태도를 취하여서는 안된
다는 점이다. 그 감정을 부정해서는 안되지만 그 감정을 이성으로써 다스릴 줄
아는 냉철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질적 조건에 근거해서 부단히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 냉철함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가? 그 이성이란 무엇인가? 답은 주체성이
다. 그리고 과학성이다.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주체성이다. 노동자계급은 이제 민
중을 대표한다. 낡은 질서를 새로운 질서로 변혁하고, 인간이 해방되는 세상으
로 만들어가는 견인차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 나가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와 신
제국주의, 외세와 국내 지배세력과 대립.투쟁하는 속에서 전진해 간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고 21세기의 시대정신
이다. 이 추세와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세력으로서의 의연함, 당당함, 자신감,
진취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지 않되 과거의 포로가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성 위에서 그의 현재의 행위 하나 하나에 대해서 그것이 노동자계
급의 이해, 민중의 이해, 민족의 이해에 대해서 나아가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
또 현재의 이해에 대해서, 미래의 이해에 대해서 어떤 관계와 의미를 가지는지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그 평가에 의거하여 그에 대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
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주체적인 것이다. 이처럼 과학적이지 못하고는 주체
적인 것은 견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인간의 일은 완전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현 정세는 유동적
이다. 폭발적으로 유동적이다. 그는 신제국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고 신자유주의
로 변신하고 있는 국내 지배세력의 대표자이지만, 그래서 그 역시 포로가 되어
있고 변신하고 있지만, 노동자.민중의 역동적 진출 여하에 따라서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자신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저들의 예상
이상으로 힘차게 분출하여 더 이상 대립이 격화되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유리하
지 않다고 판단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는 계속 침략과 공격을 밀어붙여야 할지
타협해야 할지를 저울질하는 국면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김
대중 정권은 노동자.민중의 요구와 주장에 신제국주의.신자유주의 세력보다 상
대적으로 타협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노동자계급은 이런 가
능성까지도 내다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까지 고려한다면 노동자계급은 참으로 복잡한 상대를 맞이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시사저널이 말하고 있듯이 “그의 당선이 시사하는 의미는 단순히 정권교체라
는 과 식민지 체제가 새롭게 재편되기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이러한 재편
의 국내 집행인이다는 점에서 그의 등장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러나 그
“크다”는 것은 곧 “긍정적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부정적이다”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리고 지난날의 동지이고 미래의 경쟁자 또는 적수라는 점에
서 다소간 복잡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복잡성은 ‘혼돈의 시대’, ‘복잡성의 시
대’에서는 단순한 축에 속한다!
다시한번 더 주체적으로! 다시한번 더 과학적으로! 그리고 인간해방을 향하
여!
□ 주 ———-
1)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한마디로 여야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다는 헌정
사적 의의를 지닌다” “물론 김영삼 정권이 ‘문민정부’를 표방하긴 했지만, 그
것 역시 신군부의 민정당 등과 합당을 통한 정권의 재창출이란 점에서 ‘정권
교체’라 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국민일보는 “건국 이래 50년 만에 처음으
로 평화적 방법에 의해 정당간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헌정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김대중 씨의 대통령 당선은 이와 함께 36년간 영남 출신 대통령만이
배출됨으로써 호남 지역 사람들이 갖고 있던 소외감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2) 대중의 정서로 보면 아직 그렇지 못할지 모르지만 노동자.민중의 현실로 보
면 분명히 그러하다. 그리고 세력교체를 위해서는 선거가 아닌 대중의 정치투
쟁이 주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3) 프랑스의 일간 리베라시옹(Liberation) 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승리를
쟁취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영원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후보를 정의롭게 선출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인연을 맺고 지난 50년 간
에 걸친 권위주의적 체제를 끝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2월 20일자 참조.
4) 시사저널 1988년 1월 1일자에서는 자신들의 이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
거전문 자유기고가라는 일본인 요코에 구미를 내세워 TV토론이 이번 대선을
아시아 다른 나라의 선거나 한국의 과거 선거에 비해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우리나라 대선처럼 TV토론을 수십 차례(신한국당
경선 이후에만 무려 54회!), 그것도 지방에서까지 실시하면서 선거운동을 거
디어 선거’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TV토론은 단 두 차례 열리게 되어 있을 뿐이
다. 핵심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한두번 토론을 벌이는 것이라면 몰라도 대중의
참여 기회를 박탈하고 구경꾼으로만 전락시키는 TV토론 위주의 선거방식이 선
거민주주의의 진전이기는커녕 명백한 후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
이다.
5) 한국일보 12월 21일자 참조.
6) 12월 19일 문화일보 참조.
7) “지금까지 김대중 씨는 ‘김대중 후보’가 더 어울린다. 김 대통령은 ‘김영삼
총재’가 어울리듯이 말이다” 이용수(전 미 CIA 요원), ‘제럴드 리의 코리아
파일’ 가운데 “현재의 DJ는 안 된다”에서, p.249, 1996년 6월
8) NYT지는 19일자 사설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서울의) 미대사관은 그가 과격
분자라는 이유로 독립기념일 행사에 그를 초청하지 않았다. 한국의 군 장성들
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고 언급했다.
동아일보 12월 20일자 참조. 또 일간 리베라시옹 지는 김대중 당선자를 “민주
주의의 순교자”였다고 말하고 “그는 과거 친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그리고 부
정선거 때문에 두 차례나 승리를 빼앗긴 적이 있다”고 말했다. 12월 20일자
조선일보 참조. 또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인 이재호는 이렇게 워싱턴의 분위
기를 전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김 당선자와 미국의 관계는 특수
했다. 김 당선자는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지난 30여 년간 미국이 한국
의 군사독재를 견제하고 민주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활용해 온 주된 수단 중의
하나였다. ‘DJ가 있고, DJ 뒤에 미국이 있다’는 암시만으로도 미국은 박정희,
전두환 전대통령의 전횡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권위주의를 견제하고 민주주
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미국이 의지하고 협조했던 인물이 청와대의 주인이 됐
다는 사실은 미국이 추구하는 정치적 자유의 확대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인은 생각하고 있다” 동아일보 12월 21일자 참조.
9) 이러한 지점을 과장하여 아사히신문은 “한국민 ‘변혁’을 택했다”는 제목을
달았다. 동아일보 12월 21일자 참조.
10) 문화일보는 “그 동안 국정운영에서 소외되었던 호남출신 엘리뜨들이 국정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 지에 의하면 “프랑스의 한국 관측통들은 이회창후보의 패배는 한국
기득권층의 현실인식과 대안제시 능력의 한계에 부닥친 결과이며 이는 기득권
층의 붕괴로까지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12월
19일자 문화일보 참조.
11) 중앙일보 12월 20일자는 당선 기자회견을 평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를 위해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 요지였다. 그래야
만 살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를 두고 측근들은 ‘신보수주의’라고 규정했
다. 사실 신보수주의는 김 당선자가 처한 환경을 그대로 대변한다. 우선은 경
제다. 김 당선자가 해야 할 일은 경제위기 극복이다” 라고.
12) NYT는 19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다.”그를 감옥에 넣는 데 근거가 됐던
보안법과 이들 정치범을 김 당선자가 어떻게 처리할지는 불분명하다” “선거
기간에 그는 과격분자라고 불릴 것을 우려해 이 문제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
다. 그러나 정치범 경험이 있는 그는 아마도 (정권)반대자들에 대해 보다 관
용스러운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13) 87년 대선 당시 노동자 선대본은 평민당 김대중과 백기완 후보 사이에서 등
거리를 유지했다.
14) 그래서 전노협과 평민당의 관계는 아주 미묘했다. 평민당은 전노협을 지원
하면서 지지하는(무조건적인 것이든 다소간 비판적인 것이든) 관계하에 두려
고 했으나 전노협은 소부르조아 급진주의인 평민당의 지도권 아래로 들어가지
않았다. 전노협에서는 노동운동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소부르조아적 경향성을 가진 부분들은 전노협에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나중에 생산직 중심의 전투적이
고 변혁지향적인 전노협 주도하에 민주노총이 건설되지 못하고 사무직 중심의
개혁주의적인 업종회의 주도하에 민주노총이 건설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민주
노총이 건설된던 당시 한겨레신문은 민주노총의 정통성이 업종회의에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15) 사실 지역모순이란 노동자와 근로민중 안에서 직접적으로 지역간 차별이 심
하게 가해진 데 따른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노동자나 농민의 계급적 처
지 면에서는 지역간에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차별이 두드러진 것은 없다. 지
역모순의 주된 성격은 지역간의 불균등한 개발에 따른 불만과 지배 엘리뜨 내
부의 심한 인사배제로 인한 강한 불만이다. 이 불만감이 엘리뜨나 지배층으로
부터 일반민중에게까지 확대되고 대통령선거를 거치며 정치적으로 과잉한 결
정력을 가지게 되었다.이는 박정희 정권이 선거 전술로 영호남 지역감정을 유
발함으로써 특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바탕 위에 전두환의 신군부는 쿠데
타 전략으로서 김대중과 김대중의 정치적 본거지인 광주.전남 지역을 희생양
으로 삼고자 5.18 학살극을 자행했다. 그리고 이에 처절하게 저항한 광주민중
항쟁을 계기로 지역모순은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경상도의 일반민중들은 이
때부터 패권세력의 정치적 포로가 되었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반이성적
으로 움직였다. 김대중과 호남 사람들을 나쁘다고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역사
적으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 되므로 자기 방어를 위해 지역감정에 사
로잡히게 되었다. ‘우리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라기 보다 ‘전라도에
정권을 줘서는 안된다’는 정서인 것이다. 반면 호남 민중들은 소부르조아 민
중운동의 주도하에 급진화되었다. 김대중은 이렇게 급진화된 호남민중과 소부
르조아 민중운동을 대표했다. 그리고 그것은 날이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기 시
작했다. 노동자계급이 추세적으로 독자성을 가지고 진출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이에 김대중은 전술적 수준의 보수화인 뉴디제이 플랜으로부터 전략적 수
준의 보수화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비패권분파이지만 지배세력의
일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하면서 지역모순을 우리나라 정치의 주요모순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진보적 지식인인 황태연 교수가 이것을 이론화해서 정당화
했다.
16) 시사저널은 98년 1월 1일자 커버스토리로 김대중의 당선을 다루면서 “그의
당선이 시사하는 의미는 단순히 정권교체라는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도 크고 복잡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내용이 다르기는 하지만 크
고 복잡하다는 점만은 똑 같다.
17) 이 위기는 작년 말에서 금년 초에 걸친 노동자 총파업으로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보사건이 터져나왔고 이후 김현철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그 때
이후 정권만이 아니라라 지배세력 전체가 민중에 대한 헤게모니를 거의 상실
했다. 그리고 11월부터 완전히 붕괴시켰다. 그들은 오로지 노골적인 기득권 의식과 극단적인 지역감
정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패배했다. “프랑스의 관측통들은 이회
창 후보의 패배는 한국 기득권층의 붕괴로까지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문화일보 12월 19일자 참조.
18) 이러한 김대중의 변화가 최근의 경제공황 정세에서의 전술적인 대응만이 아
니라 상당히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온 것이라는 사실은 김대중이 선택한 정치
초년생인 전북 도지사 유종근의 활약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홍콩에서 발행되
는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18일자 기사에서 유종근을 IMF식 개혁의 선구
자이며 한국이 직면한 경제개혁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격찬했다. 또 그의 당선
직후 미 국무부는 김대중 씨의 대통령 당선으로 한.미 양국이 최상의 생산적
인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를 선택한 한국민을 진심으로 축하한
다는 이례적인 대변인 논평을 했다. 문화일보 12월 20일자 참조. 또 우리는
장래에 김 당선자와 훌륭하고 생산적인 관계를 고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
는 19일 ‘한국 태통령 선출’이라는 사설에서 “지난 수십년간 지배해온 정치
엘리뜨의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미 CIA는 96년부터 한국의 차기정권
창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이같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내비쳤
다. 그들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안보에 관련하여 촉각을 예민하게 세우고 있다
는 것을 시사했다. 그리고 김대중이 비토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우 강조하
고 있다. 미국 CIA요원을 지낸 이용수는 97년초에 펴낸 책에서 ‘미국과 한국
대선 사실이 아닌 네가지 상식’이라는 부분에서 김대중이 비토세력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동서냉전체제가 무너지고 한반도가 변화하는 현시점에서 미국은
김대중씨의 당선에 대해 염려한다든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든지 하는 시선
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다”고 쓰고 있다. <이용수 파일: 미국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1997) 참조. 또한 김대중의 미국 로비 창구역
할을 해온 이영작 박사(아.태평화재단 미주지부장)은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
서 “미국 CIA간부가 94년 김대중을 만나 정계복귀를 종용했다”고 밝히고 있
다. 주간현대 97년 12월 10일자 참조.
19) 그도 이러한 지점이 마음에 걸렸던지 당선 기자회견이 있던 19일, 수유리
4.19 국립묘역을 방문해 헌화하는 자리에서 시인 고은, 문동환 목사, 임수경
씨 등 재야인사들에게 “일생을 민주주의 편에서 싸워 왔다. 정치를 못하면 못
했지 약속은 지킨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2월 20일자 참조.
20) 일반민주주의란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 민중에게 시민적 기본권을 보
장하는 것을 말한다. 부르조아 민주주의는 그것을 제한하는 민주주의이다.
21) 중앙일보 12월 23일자 참조.
22) 권위주의 통치의 기조 하에서 절차적 민주주의 요소를 조금 증대―개선이
아니다―시키는 것이다.
23) 한스 피터 마르틴·하랄드 슈만(강수돌 옮김), 세계화의 덫 :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 영림카디널, 1997.을 보시오.
24) 중앙일보 12월 21일자 참조.
25) 문화일보 12월 20일자 참조.
26) 조선일보 12월 20일자 참조.
27) 시사저널 98년 1월 1일자 참조.
28) 문화일보 12월 20일자 참조.
29) 문화일보 12월 19일자 참조.
30) 동아일보 12월 20일자 참조.
31) 국민일보 12월 20일자 참조.
32) 동아일보 12월 22일자 참조.
33) 조선일보 12월 22일자 참조.
34) IMF에서 인터넷에 공개한 <양해각서>의 내용 중에는 우리 정부가 언론에 공
식발표한 <양해각서> 내용에는 없는 ‘위기타개전략’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여
기에서는 노동시장 개혁이 세 번째로 중요한 것으로서 언급되고 있다.
35) 그는 22일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 대사 및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차관 등
미 정부 대표단과 IMF 관련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리해고제를
원칙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자리에서 립튼 “IMF협약에는 없는 내용이고(보다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은
내용이지만 : 필자)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언급하기 어려운 것이 노
동시장 문제이다. 만약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유지에 힘쓴다면 결과는 심각하
다. 임금 수준과 고용인력 숫자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 둘다 충족하
기가 불가능하다. 한가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노동시장과 관련한 정책이 필
요하고 노동계도 실업과 임금 문제에 관해 얼마만큼 양보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또 “IMF의 계획이 불충분한 부분도 있다. 이를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얘
기할 필요가 있다”며 더욱 강도높은 경제식민지화 추진 의지를 표시했다. 한
국일보 12월 23일자 참조.
36)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무디스(Moody’s)사는 22일 한국의 대외신
용 등급(장기)을 종전 ‘Baa2’에서 ‘Ba1’으로 두 단계 하향조정했다. 국가신용
도를 적용받는 국책은행의 신용등급도 함께 하락했으며 20개 은행과 9개 기업
의 신용등급도 그 이하 수준으로 추락했다. ‘Ba1’ 등급을 받은 국가, 금융기
관, 기업의 채권은 “완벽한” 정크본드(위험채권, 투기채권) 취급을 받게 된
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정부나 금융기관들은 앞으로 해외에서 돈 빌리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또 정부가 추진중이던 1백억 달러 규모의 외화표
시 채권발행도 그 성사가 불투명해진다. 또 미국의 신용평가획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역시 22일 한국의 채권에 대한 장기 외환표시 신용등급을
‘BBB-‘에서 ‘B+’로 하향조정해서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또 원화의
신용등급도 ‘A-‘에서 ‘BBB-‘로 하향조정했다. 신용등급의 이같은 하향조정이
알려지자 23일 곧바로 주가는 이 마비되었다. 23일 주가는 사상최대인 7.5% 포인트가 폭락해서 366.36까지
떨어졌다. 환율은 한때 사상최대인 달러당 1,995원까지 폭등했다가 1,962원에
마감됐다.(하루 상승폭이 사상최대로 279원 50전이나 되었다) 자금시장에서는
채권매매가 사실상 중단되었는데 회사채 수익율은 전날보다 1.11% 포인트 오
른 연 31.11%로, 3개월 짜리 CP 할인율은 전날보다 8% 포인트 오른 연 33%까
지 금리가 치솟았다. 이렇게 외환위기와 금융시장의 마비현상이 발생하자 모
든 언론에서는 국가부도 위기를 우려하며 입을 맞춘 듯이 김대중 당선자의 결
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한국일보 12월 23일자, 중앙일보 12월
24일자, 한국경제신문 12월 24일자 참조.
37) 정부에서 공식집계한 액수에다가 9월 말 현재 국내은행의 해외지점이 차입
한 656억 달러, 국내기업 해외지사가 차입한 현지금융 4백억 달러 및 기타 공
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외채는 2,500∼3000억 달러가 된다.
동아일보 12월 24일자 참조.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의 외채 총액이 해외법
인이 지고 있는 외채를 포함할 경우 26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12월 23일자 참조.
38) 중앙일보 12월 24일자 참조.
39) 중앙일보 12월 22일자 김경원 칼럼 참조.
40) 동아일보 12월 20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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