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보론 1> IMF-미국-초국적 자본이 밀리고 있다!!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오만하고 기세등등하던 공세가 주춤거리고 있다. 주
춤거리는 정도를 넘어서 공세에서 수세로, 밀어붙이던 데서 밀리는 데로 뒤바뀌
고 있다. 느닷없이 한국에 대한 IMF 의향서(협약) 내용이 수정되었다고 발표되
고 있다. 또 그 동안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던 말이 180
도 바뀌어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해 주고 있다.
한편 IMF의 초긴축은 애당초 잘못된 처방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초국적 자
본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 동안 IMF와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
문에 지원(?)할 필요가 없다며 기고만장해 하던 미국이 갑자기 인도네시아에 긴
급히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180도 선회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더욱
주목할 점으로는 안보상의 문제가 경제문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심각해 졌다며
미국의 국방부 장관 코언이 동아시아 나들이를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선회들이 지난 주말에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느닷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사태의 실체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은 어안이 벙벙하기만
하다. 또는 “이제 한숨 돌리게 되나 보다”라는 식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 이 선회는 마치 구경꾼처럼 쳐다볼 문제가 아니다. 대단치
않은 문제가 아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 그에 대해 우리 노동자.민중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왜 이런 변화가, 이런 선회가 초래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
다. 그래야만 또다시 정세가 반전되었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IMF 신탁통치를 극복할 수 있는 전망, 과학적인 전망을 내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변화는, 이러한 선회는 동아시아 노동자.민중의 저
항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이 저항으로 인해 IMF-미국-초국적 자본으로서는 자
신들의 목표를 관철시키기는커녕 자칫하면 큰 타격을 입을 상황이 조성되고 있
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를 급선회하고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고찰해 보자!
<1> 논조의 급선회!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던 국제금융기구의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
들, 국제금융 전문가들, 언론들의 논조가 지난 주말을 고비로 하여 일제히 선회
하고 있다.*주1) IMF가 “권고”한 초긴축은 문제가 있다고! 한국은 IMF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한국경제는 곧 좋아질 것이라고! 한국의 외환위기는 곧 끝날
것이라고! 이러한 움직임을 집약해 주고 있는 기사를 옮겨 보자.
— IMF “한국경제 곧 회복단계 진입”
“IMF는 한국경제가 현재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 곧 회복단계에 진입할 것으
로 보고 있다고 IMF 소식통이 9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IMF는 한국경제가 과거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 회복하는 놀랄 만한 힘을 발휘했다는 점
을 주목하고 있으며 이미 이러한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IMF는 한국의 수출이 환율상승 등으로 크게 증가할 전망이며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를 앞으로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외환사정이 크게 좋아지고 전반적인 경제사정도 신속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한편 국제금융계 소식통은 한국이 IMF 이행조건을 신
속히 진행시키고 있으며 19일부터 뉴욕에서 채권단과 가질 외채 구조조정 협상
이 마무리되면 단기외채의 중장기 전환은 물론 외환 보유액 확대를 위한 외화를
조달할 수 있게 한국의 외환위기가 수습될 것이라고 말했다.”*주2)
왜 이러는가? 아직 재벌개혁도 되지 않았고, 대표급의 재벌을 무너뜨리지도
못했는데…. 기업사냥을 하나도 성사시키지 못했는데….*주3) 재벌들이 “한
나라당과 손잡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개혁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이고 있
는데…. 정리해고제도 실시되지 않았는데….. 금융기관 인수.합병 시 정리해
고제조차 관철시키지 못했는데….. 노.사.정 협의체조차 구성하지 못했는
데…. 그래서 김대중 당선자측에서 “노.사.정 위(委) 이렇게 어렵나”라고 한숨
짓고 있는데……*주4) 이런 속에서 초국적 자본들이 느닷없이 수출이 늘어나
야 하고 실물경제가 붕괴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들이 언제 한국
경제의 수출과 실물부문 붕괴를 걱정했는가? 오히려 한계기업들이 무너져야 하
고 더욱 고통을 겪어야 한다며 고압적으로 임해 오던 그들이 아닌가?
이러한 사태의 급변 앞에서 “그러면 그렇지. 고마운 IMF 총재나 미국 사람들
이 우리를 죽일 리야 있겠느냐”라고 감사해 할 것인가? 뒤늦게라도 생각을 바꾸
어주어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토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그들이 하고 있는 말들을 추려보자.
첫째는 IMF의 책임자가 한국의 IMF협약 이행에 대해 아주 좋게 평가해 주고
있다. 스탠리 피셔 IMF 수석 부총재는 지난 9일 한국금융연구원 박영철 원장과
가진 “긴급”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의 IMF 프로그램 합의사항 이행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한
국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단기외채의 장기외채 전환이 성사되면 한국은 외환위
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외채의 장기외채 전환이 이루어지고 나
면, 앞으로 소폭 하락하고, 연이어 가산금리 수준의 본격적인 하향조정이 일어나게 될 것이
다.” “앞으로 3∼4개월 내에 과거와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의 환율과 금리
가 점진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다만 금융시장 개혁은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으
나, 노동시장이나 재벌개혁은 금융개혁만큼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주
5)
이처럼 캉드쉬 다음의 IMF 실권자가 한국의 IMF 협약 이행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3∼4개월만 지나면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미국의 유력한 의회 지도자도 한국이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추
켜 주고 있다. 아.태 의회 포럼(APPF) 참석차 방한한 윌리엄 로스 미 상원 재무
위원장은 지난 9일 방한 후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국 정부와 새 지도부가 금융위기에 매우 훌륭하게 대처해 왔다.” “한국 정부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투자가들에게 신뢰를 줄 것으로 확신
한다.” “(미 행정부가 한국에 대해 금융지원을 해 주기로 한 것은) 아시아 금융
위기의 중요성에 비춰 적절한 조치였다.” “미 의회가 휴회 중이다. 전체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결국 초당적인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에 대
해 : 필자) 결정될 것이다.”
그 동안 그토록 “신뢰가 없다”고 하더니 이렇게 단 며칠 사이에 “신뢰가 있
다”고 하면서 좋게 평가를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정리해고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투자가들의 신뢰를 잃게 되어서 미 의회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에 대해 반대를 하게 만들 것이라고 위협하던 지배세력의 협박은 윌리엄 로
스의 이 말로써 완전히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미 우리에게 신뢰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그들의 신뢰 여부는 도무지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다!)
로스 위원장은 나아가 한국에 대해 이렇게 신뢰가 있다고 말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말해 주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미국의 국익에
큰 중요성을 가지며, 미국이 한국 금융위기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유
도 여기에 있다”라고.
셋째로, 초국적 자본의 집행위원회의 또 하나인 세계은행(IBRD)에서도 IMF의
초긴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한국을 너무 세게 몰아붙이고
있다고! 우리들의 이야기와는 기본적으로 다르지만(우리는 IMF의 개입과 신탁통
치를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국내 지배세력이 가지고 있는 생각, 하고 싶은 말
을 그들이 대신해 주고 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핵심 경제참모로 알려져
있는 조세프 스티글리츠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는 최근 세계은행 이사회와 유럽
경제학회 모임 등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高)금리와 재정긴축, 세율인상
정책 등을 축으로 하는 한국과 동남 아시아 국가에 대한 IMF의 자금지원은 그
조건이 너무 가혹하다”라고. 또 월 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같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도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거시경제(국민경제 전체) 상의 불균
형이 아니고 과다한 단기외채와 불건전한 금융관행 및 기업관행이라는 미시적인
(개별 기업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는 했다. 그러나 한 통속들의 동
아리 안에서 주고 받아야 할 이러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주 이례
적인 일이다.*주6)
물론 그 동안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 교수 등 초국적 자본의 일부 온건파 이론
가들과 영국계 초국적 자본을 대변하는 파이낸셜 타임스 지 등에서 초국적 금융
자본 강경파의 전략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초국적 금융자본의 집
행위원회 안으로부터 이런 목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와서 공론화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주목을 끌 만하다.*주7)
국제 금융계 주변에서는 그의 이 공개비판에 대해 대체로 IMF의 긴축정책을
완화하려는 출발로 보고 있다. 또 IMF로서는 스스로 입장을 번복하기보다는 이
처럼 자매기관의 입을 빌려 공론이 제기되는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고 점진적으
로 전략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어쨌건 초국적 자본 안에
서 강경파의 기세가 수그러들고 온건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은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선회는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의 경우처럼 단기외채를 장기외채로 전
환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거나, 윌리엄 로스 미 상원 재무위원장의 경우처럼
“아직 전체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하다. 그러
나 쏟아 놓는 말의 기조는 확실히 달라졌다. 신뢰 없음에서 신뢰 있음으로! “고
통을 맛보아야 한다”에서 “살려야 한다”로!
<2> 조치의 급선회
금요일인 지난 9일 IMF가 한국 정부와 협의하여 종전의 IMF 협약을 상당 부분
수정했다는 내용이 전격 발표되었다. 그 동안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없었음은 물론이고 그러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합의내용이 발표되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주8) 정리해고제 도입을 위한 노.사.정 협의체 구성도 잘 안 되고 있
는데! 재벌들은 재벌개혁을 미루어야 한다고 버티고 있는데! 그 이유와 원인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무엇이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알아 보자.
*주9)
┌────────────┬────────┬──────┐
│ 지 표 │ 당 초 │ 수 정 │
├────────────┼────────┼──────┤
│ 성 장 률 │ 3% │ 1-2% │
├────────────┼────────┼──────┤
│ 물 가 │ 5% 이내 │ 9% 수준 │
├────────────┼────────┼──────┤
│ 통화 (총유동성 증가율) │ 9% │ 13% │
├────────────┼────────┼──────┤
│ 재 정 │ GDP │ 적자 용인 │
│ │ 0.2%(8,000억원)│ │
│ │ 흑자유지 │ │
└────────────┴────────┴──────┘
첫째는 금융 초긴축을 완화시킨다는 내용이다. IMF는 지난번 협약(강요한 양
해각서)에서 연간 9%로 설정했던 한국은행 본원통화(한국은행권) 공급 증가 목
표치를 1분기 중에 14.9%(연간 13∼14%)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행권이 1조 원 가량(작년 12월 말 22조 5천 억 원에서 금년 3월 말 23조
5천 억 원으로) 늘어나고 기업의 자금사정은 다소 호전된다.*주10)
둘째는 금리를 낮추어 준다는 내용이다. IMF는 지난번에 “연 30% 이상으로 유
지한다”고 되어 있던 콜(금융기관 간의 하루짜리 초단기 자금거래) 금리 목표를
이번에는 “높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라고 변경했다. 이는 콜 금리가 30%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써 회사채 금리 등 시중금리가 있게 된다. 그리고 이로써 기업의 이자 부담이 약간 덜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러나 어디까지나 약간 만이다!
셋째는 재정 부문에서 적자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지난번 협약에서는 8천
억 원의 흑자를 내도록 강요했던 것을 변경해서 재정적자를 약간 내는 것을 용
인하기로 한 것이다.
넷째는 은행들의 수출환어음 매입을 촉진하기 위해 외환 보유고가 확충되는
대로 30억 달러의 외화를 지원하고 금리를 현행 12∼13%에서 8% 수준으로 낮추
기로 한 내용이다.
그러면 공짜로 이렇게 완화해 주었는가? 대신 다음과 같은 실속을 챙겨갔다.
첫째, 외국 채권은행들과 협의해서 신속히 단기채무 만기를 연장하고, 신디케
이트 론(국제 협조융자)과 채권발행을 통해 국제 자금시장에서 자금조달을 확대
한다; 또 이때 채권은행단들의 정부지급보증 요구(단기외채를 장기외채로 전환
할 시에)를 적극 “고려”하기로, 즉 실제로는 전폭 수용하기로 했다.
둘째, 이달 15일까지 제일.서울 두 은행이 감자(減資)를 실시하도록 하고 그
시기와 구체적인 방법을 추후 발표하기로 했다.
셋째, 2월 중순까지 계획 및 대차대조표 실사(實査)에 참여한다; 그리고 모든 종금사들은 수정된 경
영개선 계획서를 제출한다; 정부는 제일.서울 두 은행을 잠정 인수하고 경영진
을 퇴진시키기로 했다.
넷째, 한국은행이 시중 금융기관에 외화예금의 축소 등 단순한 어려움 때문에
외화를 지원할 경우 조속히(통상 한달 이내) 상환받도록 한다; 한국은행은 시중
은행에 외화를 빌려줄 때는 금리를 현재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10%에서 리보
+15%로 인상한다; 이미 빌려준 긴급 외화자금에 적용되는 벌칙성 금리도 현재
리보+4%에서 2월 15일까지 단계적으로 리보+8%로 올린다; 한국은행은 은행들의
외화자금 지원요구 사항에 대해 매일 점검하고 사후 거래증명을 통해 검사를 강
화한다; 한국은행 지원에 계속 의존하는 은행은 유동성이 떨어지는 외화자산을
팔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이상으로써 알 수 있듯이 IMF는 한국경제가 외환지급 불능과 재정.금융의 초
긴축으로 인하여 경제 체계(시스템) 자체가 파국을 맞아 붕괴하는 것은 막겠다
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국가적 파국을 무기로 삼아 위협하
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파국이 와서 체계 자체가 마비되면 그것은 한국경제를 못쓰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저들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며, 나아가 미국의
신제국주의적 지배체제에 파열구를 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철저히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
철시켜 나가고 있다. 부실한 은행들과 종금사들을 무너지게 하고, 그것들을 일
단 정부가 책임지고 있다가 정리해고제 도입 등 여건이 갖추어지면 자기들에게
넘기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정리해고제를 관철시키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
에 서둘러 먹어주는 대신에 값싸고 안전하게(이른바 거래비용이 적게) 먹어줄
수 있는 여건 정비를 하라는 것이다! 부실은행을 더 값싸게 만들어라!(감자하라
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은행에 외화를 빌려주지 말고, 빌려 주더라도 금리
를 매우 높게 해서 은행들이 외화부도가 나게 하라! 종금사들은 초국적 자본이
직접 조사하여 판을 정리하겠다! 고 강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지배세력과 그들의 언론들은 “최악의 돈 가뭄 해소–‘한 줄기
빛'”*주11)라고 감지덕지해 하고 있다. 다 죽은 줄 알았다가 숨쉴 틈을 준 것이
니까 그럴만도 하겠다. 그러나 IMF-미국-초국적 자본은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밀려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렇게 전술을 재조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도 국내 금융기관과 금융시장
을 장악하겠다는 야욕을 더욱 철저하게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는 “금융개혁은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는 것이
다.
<3> 동아시아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고조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움직임은 지난 주부터 갑
자기 이상한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누구도 왜 그러한 변화가 초래되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반드시 원인이 있는 법이다. 그 원인, 그 이유, 그 비밀은 도대체 무엇
인가?
그 답은 오히려 간단하다. 첫째,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IMF-미국-초국적 자본
에 대해 끓어오르는 동아시아 노동자.민중의 저항이다. 둘째, 그리고 첫째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초국적 금융자본 내에서의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이 충돌은 터
져 나올 가능성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동아시아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함
께 격화되어 터져나오고 있다.
동아시아 민중의 저항이라니? 어디에 폭동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폭동이 일
어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신제국주의 지배 전략에 파열구가 날 위험이 임박했
다. 아니 파열구가 나고 있다! 지난 주부터 동아시아의 금융공황 사태는 그 동
안 한국을 그 초점으로 하던 것이 갑자기 인도네시아를 초점으로 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 지는 이 지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 신문은
최근 칼럼에서(칼럼니스트 필립 보링)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걱정은 더 이상 하지 말라. 이제 동아시아의 가장 큰 문제를 안
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 악화한다면
서유럽과 일본의 금융 체계에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물론 인도네시아 자
체와 인근 지역에 미칠 파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단지 내부의 안정뿐 아니라
30년 간에 걸친 ‘신(新)질서’ 통치 하의 개방된 경제체제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이다.” “지금 일고 있는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 것이다. 수하르토 대통령 아래서 경제성장과 함께 오랫동
안 희미해졌던 경제적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마르코스가
지배하던 시절의 필리핀과 같지 않다. 외부 세계가 인도네시아 내부 문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도 없다. 그러나 위험은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라
고.*주12)
이에서 보듯이 지금 인도네시아에는 냉전 시기에 형성해 놓은 수하르토 지배
체제가 동아시아 금융공황과 IMF의 구조조정 강요를 계기로 하여 무너지기 직전
에 있다. 그리고 이 나라 노동자.민중이 지금 이것을 무너뜨리고 민족 자주적이
고 민주적인 체제를 수립하고자 꿈틀거리고 있다. 아니 이미 대중행동이 본격화
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초국적 자본은 무모하게 몽땅 먹어주려고 하다가 참담
하게 몽땅 잃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IMF-미국-초국적 자본에 초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둘러 신탁통치의 강도(强度)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6일 수하르토 정부가 IMF의 지시를 어기고 팽창예산을
편성.발표했다. IMF는 긴축예산을 편성하라고 지시했는데(인도네시아는 지난해
10월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새해 예산의 GDP 1%의 흑자를 내기로 약속했었다),
수하르토는 예상을 깨고 지난해에 비해 32%나 늘어난 팽창예산을 편성.발표했
다. 그러자 IMF측은 인도네시아를 믿을 수 없다고 비난했고 추가지원을 중단하
겠다고 위협했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초국적 자본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그
러자 이 나라에는 외환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할 것이라는 설(說)이 파다
해졌고 심리적인 공황상태가 초래되었다. 급기야 생필품 사재기가 벌어졌다. 그
리고 이러한 생필품 사재기에 대해 군부는 10일, 사형처벌까지도 가능한 국가전
복죄를 적용하겠다고 민중을 협박했다. 그런 속에서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쌀과
설탕, 우유 등이 이미 동이 난 상태이고 주식인 쌀의 경우 남(南) 수마트라의
수도인 팔렘방 시 등지에서는 가격이 3배나 올랐으며, 돈을 주고도 아예 구할
수 없는 지역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이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에서 정부를 규탄하고 “대통령 교
체”,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8일
에는 학생단체들과 회교단체들이 수하르토 7선을 반대하기 위해 정치권이 노력
해 주기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수카르노 전 대통령(이 나라 건국의 아
버지인 민족주의자)의 딸이자 재야 지도자인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여사는
10일 국민들에게 수하르토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자신을
당선 가능성이 있는 차기 대선 후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주13)
한편 이 나라는 인구 90%인 2억 명이 회교도이며 회교가 민중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교권에서 현정부의 실정(失政)을 맹렬히 비난하
고 있다. 아미민 라이스 회교 지도자는 “3월 11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수
하르토를 재차 지명하지 말라”고 촉구했으며, 이같은 반정부 분위기는 전직 장
성과 정치인, 학생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노동자들의 상태와 이들의 움직임이다. 인도네시아 상공
회의소의 한 관계자는 “완전실업자 수가 지난달 이미 7백만 명을 넘어섰으며 연
말까지 백만 명의 추가 실업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게다가 최근 수년간 계속
된 가뭄과 살인적인 물가폭등으로 폭동 가능성까지 예상되고 있다. 동부 지방의
한 도시에서 지난해 동안 6백 명이 기아로 사망하는 등 기아 인구가 급속히 늘
고 있고, 지난해 생필품 가격이 30∼50% 상승하여 민중의 불만이 위험수위까지
도달해 있다. 아직까지 대규모 노동자 시위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난달부터 항
공기 제조업체와 연초공장을 중심으로 1만~3만 명 규모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군.경은 주요 시위 현장에 파견된 진압 병력에 실
탄을 지급하는 등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주14) 이렇게 되자 시중에는 쿠데
타 설이 나도는가 하면 금융.증권 시장에서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쿠데타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하려 한다는 풍문이 나돌았고, 수하르토의 수족인 장관들은 이 풍
문을 부인하기에 급급해 했다. 이렇게 대세가 흘러가면서 수하르토 자신도 이러
한 노동자.민중의 저항기세에 밀려 “하야할 용의가 있다”며 한발 물러서고 있
다. 그의 이복 동생인 부르보수테조가 10일 이같이 밝혔다는 것이다.*주15)
이렇게 수하르토 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속에서 이 붕괴가 민족적이고 민
주적인 체제의 등장으로 귀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IMF-미국은 초비상으로 움
직이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8일 전용 토에게 전화를 걸어 대책을 협의하는가 하면(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도 수하
르토와 통화를 하고 대책을 협의했다.) 사태를 파악하고 현지에서 지휘하기 위
해서 ‘현지 조사단’이라는 이름의 긴급대책반을 긴급히 파견키로 했다. 이 조사
단에는 서머스 재무부 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금융전문팀과 “국가안보회의” 위
원들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경제 관계자들만이 아니라 윌리엄
코언 국방부 장관도 다음 주 중에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IMF도
이러한 사태에 대비하여 12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미셀 캉드쉬 총재와 스탠리
피셔 부총재 등이 인도네시아에 들러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피셔 부총재는
곧장 인도네시아로 향발하고, 캉드쉬는 11일 한국에서 김대중 차기 대통령과 회
담을 가진 후 인도네시아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주16)
또 지금까지 IMF와의 협약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므로 구제금융 지원을
끊어야 한다고 위협하던 IMF-미국-초국적 자본은 태도를 돌변하여 오는 3월 15
일 에 지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3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주17)
이에서 보듯이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무모한 욕심은 동아시아 금융공황 사
태가 발생한 지 반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노동자.민중의 저항으로 인해 지배체
제의 정치위기로 비화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의 신제국주의 지배질서에 파열구
가 날 위험으로 내달리고 있다.(이것이 IMF-미국-초국적 자본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사태가 이렇게 되자 부랴부랴 종래의 강경한 정책을 다소간
누그려뜨려서 민중의 진출에 방파제를 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국가안
보위원들이 대거 달려가고 국방장관이 주18)
그리고 이러한 상황전개가 IMF로 하여금 한국에 대해서도 서둘러 협약을 부분
적으로 수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IMF 협약이 느닷없이 수정된
데는 이런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도네시아에 그치지 않고 있다. 태국에서도 얼마 전 IMF협
약에 대한 재협상이 공식화되고 있다. 태국의 신 정부는 이것을 위해 미국-IMF
를 방문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월 5일 태국 정부는 타린 남마래
민 태국 재무장관이 IMF와 협의한 규제금융 지원조건을 재협상하기 위해 이달
중 미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합히싯 우엣잣지와 총리실 장관은 타린 재무장
관이 방미 기간 중 IMF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지난해 8월 1백 7억 달러의 금융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합의한 일부 이행조건을 재협상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
라고 말했다. 한편 추안 릭파이 택구 총리는 “바트화의 하락과 경기위축의 심화
로 국내 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재정흑자 등 IMF와 합의한 일부 조건의
이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타린 장관이 이들 조건의 재검토를 요청
할 것”이라고 말했다.*주19)
태국 정부는 왜 이렇게 재협상을 제기하고 나서게 되었는가? 이곳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다. 태국의 경우 실업자 수는 이미 150만 명에 달했으며
연말이 되면 실업자 수가 3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태국 정부는
△노점상 등 소규모 자영업 활성화 △농촌지역 고용 확대 △외국인 근로자 추방
등 실업 대책을 제시했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는 실효를 내지 못하
고 있다. 이에 태국 노동조합은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정부가 실업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발표하지 않을 경우 총파업을 다.*주20)
그리고 그와 더불어 그들이 크게 우려하는 것이 한국의 노동자들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IMF의 강요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계획대로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박영철 금융연수원장은 스탠리 피셔와의 전
화대담에서 “노동계에선 (긴축으로 인한: 필자) 고금리가 실업증가를 초래하는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노조는 IMF 프로그램 이행을 문제삼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고 나서고 있다.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전략을 관철시키는 데 있어 가장 장애
가 되는 것은 그것에 의해 가장 피해를 입게 되어 있는 노동자이다. 그렇다. 노
동자들과 IMF가 대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노동자들이 IMF-미국-초국적 자
본,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지 않는 한 논리적으로는 그들이
우위를 점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
고 저들은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떨까?
그러나 그들은 토론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을 내비치
고 있다. 동아시아 순방 길에 오르는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경제위기가 심
화되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지원을 다짐하면서 “노동문제” 등에
대한 책임있는 대처를 촉구할 것이라고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9일 밝혔다
고 한다. 코언 미 국방장관은 이번에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에
서 경제위기로 인해 안보상의 불안감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미국측의 계속
적인 안보 지원을 다짐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한다. 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안보상의 지원을!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이야기인가?*주21)
한편 이렇게 동아시아 민중의 저항에 밀려서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전략이
벽에 부딪치면서 초국적 자본 내부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뉴욕의 증권시장은
인도네시아 사태의 영향으로 나흘 연속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9일
하루동안 222.20포인트나 떨어져서 7,580.42로 폐장했는데, 이날 하루의 하락폭
은 뉴욕 증권시장 개장 이래 네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최근 기록으로는 554
포인트가 떨어진 작년 10월 27일 이후 최대라고 한다.*주22) 주식시장의 이러한
동요는 왜 일어나고 있는가? 동아시아 금융공황, 경제공황이 미국의 산업자본이
시장을 축소시킴으로써 이윤을 떨어뜨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초국
적 산업자본 분파들이 초국적 금융자본 분파의 강경한 정책을 비판하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IMF 강경책에 대한 온건론의 비판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금융자본 가운데에서도 패권적 지위를 갖지 못한 중간급 은행들은
자기들의 채권이 공중으로 날아갈까 보아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내
부 갈 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또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도네시아 경제
가 붕괴하면 인도네시아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일본 금융산업이 붕괴위기에
처할 위험성이 아주 높으며, 특히 취약한 금융 시스템을 뜯어고치기 위한 구조
조정이 한창인 일본이 인도네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으로 궁지에 몰
릴 경우 미국경제 전체가 엄청난 불안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미 재무
부 발행 채권만 2천9백 억 달러나 보유하고 있는데 유사 시 일본이 미국 채권
판매에 나서게 되면 미국 금융시장이 공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
고 세계공황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국가부도는 IMF의 실패를 의미
하고, 이것은 IMF를 믿고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 민간은
행들로 하여금 마음을 돌려서 한국까지도 국가부도로 몰고갈 것이 훤히 예견되
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파국은 미국의 정치.군사적 세계지배 전략에 심각한 장
애를 초래할 것이다.
이처럼 국가부도가 나는 것은 우리에게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IMF-미국-
초국적 자본에게도 못지 않게 부담이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동아시아 나라들에
서 정치적 변혁까지 초래된다면 IMF-미국의 전략은 완전히 파탄이 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상황이 지금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논리의 선회, 한국에 대한 요구
강도의 완화 등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아니 원인으로 하여 나타나고 있다.
결코 선심으로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4> 고문 통치는 안 된다! 재벌이 진 외채를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것도 안된
다!
한편 지난 주 동안 이상한(?) 일들이 많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고정관념이나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나라당의 조순 총재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외채에 대한 정부보증을 신
중히 하라고! “외국은행의 한국 정부에 대한 지급 보증 요구는 국제금융 원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IMF 협약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항”이라고 지적하면
서! “외국은행이 우리 기업이나 은행에 돈을 빌려줘 부실채권이 생겼다면 빌려
준 측에도 응분의 책임이 있는 만큼 마땅히 손해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면서!
어쩌면 우리들이 주장해 왔던 것과 똑같은지 놀라울 정도다. 그런데 지금 월가에서는 자신들이 빌려준 단기외채 수백억 달러를 장기외채로
전환해서 국가부도를 막아주되, 금리를 10% 수준으로 엄청나게 높게 정하고, 그
위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라고 하면서 초국적 금융자본들 내부에서 협의가 활
발하게 진행되고 있다.(JP모건사가 주동자가 되어서!) 또 정부 보증이 곤란하면
한국은행이 보증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 독점자본주의의 나
라들의 채권은행들의 외채지급 보증 요구 규모가 지난 연말 법으로 정한 2백억
달러를 넘어설 경우, 그 초과분은 한국은행의 지급보증으로 보충하게 될 것이
다.(미국 월가의 은행들뿐 아니라 일본의 은행들도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이와 별도로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기업과 은행에 달러를 빌려줘서 단기 외채
를 갚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주23) 그리고 이러한 협의.결정의 결과를 한국
정부는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되어 있다. 이번 IMF의 양해각서 수정에서도 내
면적으로는 그같은 내용을 조건부로 하고 있다.(그들이 발표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보증하든, 정부가 보증하든 또는 정부가 달러 표
시 채권을 발행하든 그것은 초국적 금융자본이 국가부도를 막아주는 체 생색을 내고 있지만 실은 지불유
예 선언이나 지불불능 선언이 발표되면 그들의 채권(債權)이 떼이게 될 것이
다.(이 경우 돈을 빌린 것은 시중은행이나 기업이므로 그들이 우리 국민에게 청
구할 권리는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들은 지불불능이나 지불유예 사태를 극히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초국적 자본은 마치 외환 지불불능 또는 지불유예 사
태가 오면 국가부도가 나고 우리의 국가경제가 망한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이 부도가 나면 국가가 부도난다는 듯이! 자기들이 진 빚을 노동자.민중에게 떠
넘기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외채는 정부의 외채가 아니라 주로 민간 기업이나 은행의 외채이
므로 지급할 능력이 없으면 부도를 내게 해야 한다. 그리고 고리채 돈놀이를 한
초국적 금융자본도 손해를 보게 해야 한다. 그것을 국가가 맡아서(정부든 한국
은행이든 국가기구이다!) 국민에게 그 부담과 고통을 짊어지라고 하는 것은 말
이 되지 않는다. 어째서 우리들이 재벌이 저지른 빚을, 재벌의 사금고 역할을
한 은행들이 진 빚을 떠맡아야 하는가? 정리해고를 당하고, 임금삭감을 당하고,
세금폭등을 당하고, 물가폭등을 당하면서!
정부와 지배세력은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라! 그리고 채무탕감 협상을 하라!
더 이상 노동자.민중에게 고통을 떠넘기지 말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기
만하지 말라!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외국인 경제고문을 두기로 하고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을 초빙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이 정인용 한국 국제금융대사에게 그렇게 요구했다고
한다. 김대중 당선자측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볼커 경제고문을 새 정부의 대통
령 위에 둘지, 한국은행 총재 위에다 둘지를 검토해 왔으나 한국은행 총재 고문
이 적절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는 것이다.*주24)
이것이 현대판 고문 통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캉드쉬를 경제 총독으로 앉히고
볼커를 경제 고문으로 앉혀 경제 식민통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일
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던 이조 말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지점에
대해 무슨 긴 말이 필요하겠는가?
□ 주 ———-
1) 요즈음 세상에서는 얼핏하면 전문가를 들먹인다. 그런데 전문가란 대개가 기
술주의 전문가이고 기술관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들은 주어진 틀 안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실현하는 데 전문화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의 틀을
변혁하고 노동자.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데에는 깡통이다. 이 기술주
의, 기술관료주의, 전문가주의에 대해서는 안젤리스, “정치로부터의 경제의
자율성과 세계화”, ‘신자유주의와 세계 민중의 저항’,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
노조운동연구소, 1997.을 참조하시오.
2) 문화일보 1월 10일자 참조.
3)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현대그룹의 현대자동차, 선경그룹의 SK텔레콤, 포항제
철 등의 경우 외국인 소유의 주식 지분이 국내 최대주주의 공식 소유지분에
버금가거나, 그것을 넘어서서 경영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 가운데
삼성그룹은 외국자본 기업사냥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 문화일보 1월 10일
자 참조.
4) 인용부분은 동아일보 1월 11일자 사설 및 1면 머릿기사 제목에서.
5) 조선일보 1월 10일자를 참조.
6) 스티글리츠의 이 비판에 대해 서머스 미 제무부 부장관은 “아시아 금융위기
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긴축정책이 필요하다는 IMF측의 해법에 전적으
로 동의한다”며 IMF를 강력히 옹호했다.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도 “일
부 국가들이 IMF와 합의한 경제개혁 조건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구
제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조건이 악화될 것”이라며 미 재무부의 입장을 두둔
했다. 그러나 어쨌든 파열음이 밖으로 새 나오고 있다. 하기야 이것마저도 짜
고치는 고돌이일 가능성이 있다.
7) 조선일보 1월 10일자를 참조.
8) 지난 7일 IMF는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 요구했던 재정 관련 목표치를
수정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슬쩍 흘렸다. 당시 익명을 요구한 IMF의
한 고위 관리는 “아시아 경제위기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
황으로 발전하고 있어 재정목표치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른 관계자는 “금융산업 개혁, 국제적 회계기준 도입, 시장개방 등 여타
요구사항들에 대해서는 ‘신성불가침’이어서 재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월 8일자 참조.
9) 한국일보 1월 10일자 참조
10) 총(總)유동성은 연말까지 증가율을 13%로 억제, 1/4분기 중 13∼14%로 운
용.
11) 조선일보 1월 10일자 참조
12) 문화일보 1월 10일자 참조
13) 문화일보 1월 10일자 및 중앙일보 1월 11일자 참조
14) 한국일보 1월 8일자 참조.
15) 한국일보 1월 10일자 및 11일자, 동아일보 1월 11일자 참조
16) 한국일보 1월 10일자, “미, 인도네시아 사태 긴급 개입” 제하의 기사 및 한
국경제신문 1월 10일자를 참조.
17) 중앙일보 1월 11일자 참조
18) 미 정부는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의 ‘군부 쿠데타 가능성’까지도 상정하는가
하면 한국의 국내.대북.대미 상황은 특히 주의깊게 지켜보아 온 것으로 최근
뉴욕 타임스 지는 전하고 있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부 장관도 TV 대담 등에
나와 “아시아 위기 극복에 미국의 경제.안보 이해가 다 걸려 있다”고 강조하
고 있다. 지난해말 백안관 상황실에서의 회의 후 미국이 아시아 위기를 단순
한 경제현상이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얘기다. 뉴욕 타임스 지
는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용했다. “새로운
시대의대외정책 결정이었다. 상황 평가가 중앙정보국의 것이 아니라 뉴욕의
금융기관인 JP 모건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1월 6일자 참조.
19) 중앙일보 1월 6일자 참조.
20) 한국일보 1월 8일자 참조.
21) 동아일보 1월 10일자 참조.
22) 동아일보 1월 11일자 참조
23) 미국, 일본, 유럽의 주요 채권은행들은 8일 뉴욕의 시티은행 본점에서 회의
를 열고 만기 도래하는 단기 외채 280억 달러의 상환을 3월말까지(90일간) 연
장하는 대신에 한국이 250∼300억 달러의 정부 보증 채권을 발행, 이 중 100
억 달러는 외환보유고 증액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단기 부채 상환에 충당하기
로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한국일보 1월 10일자 참조.
24) 중앙일보 1월 11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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