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보론> 공황은 세계화되고 있다!!

뉴욕 금융시장에서 단기외채를 중장기 외채로 전환하는 협상이 타결되었다.

그리고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주가가 급등하고 환율이 급락세를 보였다.*

주1) 이제 공황은 끝난 것처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오기 이전에도 1월 하순동

안 금융공황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그러나 실물부문의 공황은 이런 속에

서도 계속 진행되었으며 다른 한편 세계적 범위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다시한번 공황의 총체적 상황인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생겼다. 결론은 공황은 끝

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실물부문으로 국제적으로는 세

계공황으로 확대.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속에서 자본측은 최우선적으로 노

동시장 유연화를 관철시키고자 하고 있다. 이것이 1998년 2월의 상황이다.

1. 공황은 세계화되고 있다.

1월 중순을 고비로 하여 세계의 언론들은 이번 동아시아 경제공황을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공황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1930년 공

황과 같은 세계 대공황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높다고 내다보기 시작했다. 금융자

산이 투기에 의해 가치가 부풀려져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가 오면 그것이 풍선

터지듯이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일지 꼭 집어서 예측

할 수는 없으나 이번 동아시아 공황의 파장이 확대되고 심화되는 과정 속에서

그러한 계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주2)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부터 우리의 시야를 동아시아에서부터 세계로

넓혀야 할 것 같다. 또 경제 대공황과 IMF 신탁통치에 대한 대응방향에 관한 우

리들의 사고도 그 폭이 더욱 넓어지고 그 깊이가 더욱 깊어져야 할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파장도 더욱 넓어져 가고 있다. 공황이 심화되고 있는 양

상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심각하다. 수하르토는 지난 1월 15일 IMF-미국-초국

적 자본에 굴복하여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로 합의 했지만 곪을대로 곪은 이 나라

경제는 계속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조만간 민간기업들의

외채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는 총외

채가 1400억 달러 상당인데 그 중 민간(비은행) 기업체의 외채가 650∼750억 달

러이고 이 가운데 대부분이 단기외채이다. 이것을 정부가 보증하기도 어렵기 때

문에(은행빚과 달리 민간기업의 부채이므로) 지불을 2-3년간 유예하겠다는 것이

다. 라이우스 프라위로 대통령 보좌관이 지난 27일 그렇게 밝혔다.*주3)

이렇게 지불유예가 되면 인도네시아와 외국과의 금융거래는 현금거래 이외에

신용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 즉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

다. 그렇게까지 되지 않더라도 금융시스템의 규모가 크게 축소될 것이다. 그리

고 이것은 동아시아 금융시스템에도 적지 않은 불안정을 야기함과 동시에 규모

를 축소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은행들이 신용공여에 신중해짐으로써) 이미

동아시아에 들어와 있는 초국적 금융자본 2,970억 달러 가운데 1천 억 달러 가

량이 빠져나갔는데 이렇게 되면 조만간 1천5백 억 달러대로 떨어진 절반 규모로

될 것이다.*주4) 이렇게 국제금융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수축되는 과정에서 각

국,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여러 가지 마비증세가 나타날 것이다.

거기다가 이러한 경제공황은 필연적으로 사회.정치적 파장을 수반한다. 인도

네시아는 지금 혁명전야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수하르토는 국민 내부의 화

합을 외치고 있으나 실업자가 1천만 명 이상이고 하층 민중의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인데 이것이 종족 갈등으로 이어진다면?(IMF는 올해 예상 실업자가 불완전

고용을 빼고도 무려 1천3백5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주5)

이렇게 인도네시아의 공황이 심화되면서 인접한 말레이시아가 온전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만약 말레이시아까지 파급된다면 이 지역에서 이슬람 민중과 자본

가 계급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화교세력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동남아시아 지역의 역학관계는 아주 복잡해질 것이다.(이슬람 대

화교, 이슬람 대 미국 등의 대립이 병존하는) 클린턴 행정부가 IMF 추가 출연금

에 대해 의회의 지지를 설득하면서 구제금융 제공이 안보상의 이익 때문임을 거

듭 강조하고 있는 것도 심상하게 보아넘길 문제가 아니다.

꼭 그같은 정치위기가 아니더라도 동남아시아의 상황은 경제적으로만 해도 매

우 심각하다. 그리고 계속 악화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지는 “동남아 국가

들은 외환위기로 자국의 통화가치가 크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만큼

수출이 늘고 있지 않다”고 보도하면서, “태국의 경우 지난 해 12월 수출 증가율

은 7%에 그쳐 지난 95년 멕시코의 30% 증가율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인도네시

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6개월 간 루피아화는 달러 대비로 80% 떨어졌

지만 수출은 오히려 감소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신문은 이같이 통화가치 평

가절하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부진한 원인을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입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 “자국의 통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원자재 수입을 위한 달러가 부족해서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수입원자재

가격이 올라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또한 국내

자금 부족으로 기업의 연쇄도산이 나타나고, 아시아 역내 수출의 붕괴가 이 지

역의 거래질서를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도 수출 부진의 한 원인”이라고 지

적했다.*주6)

한편 동아시아 공황은 이제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

했다. 29일 캐나다 달러는 전날 미 달러당 1.4601에서 1.477수준으로 하락하면

서 캐나다 달러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낮은 시세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아시

아 금융위기의 영향권에 본격 진입한 캐나다에서 급격한 자금이탈 현상이 나타

나고 있으나 중앙은행이 적극 나서고 있지 않아서 앞으로 금융불안이 가속될 것

으로 보고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미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캐나다 수입품에 대한 수요가 줄고, 이로

인해 외환 보유고가 줄어들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주7)

아시아 공황은 이렇게 선진 독점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제(금융.실물 등에 공

히)에 서서히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각국 내부에서 또 각국

상호간에 이번 사태를 놓고 책임과 부담을 떠넘기려는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미국과 EU측이 입을 맞추어 일본을 공격하는 양상이 나타났

다. EU와 미국의 대표들은 동아시아 공황에 대해 일본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

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일본 재무차관 사카키바라는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위기” “금융시장 완전 자유화가 몰고

온 파장이기 때문에 그 처방은 자본유입을 관리하는 방법을 찾는 것”, “자본이

동을 감시하는 국제금융기구를 만드는 것이 한 방법”이라는 일면 매우 진보적인

(?) 논리롤 대응하고 있다.*주8) 일본은 지금 수뢰문제로 미스즈까 히로시 대장

성 장관이 사임하고(1월 28일) 자살자(오스키 요이치 대장성 은행국 총무과 금

융거래 관리관)가 나오는 등 극히 어수선하다. 일본은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처

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서구계가 합세하여 일본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격에서도 미국이 가장 공격적이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 금융 뿐 아니라

상품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샬린 바세프스키 미 무역 대표는 29일 열린

미.중 경제위원회에서 “일본이 내수를 진작시키고 규제를 철폐해 시장을 열어야

한다”, “일본이 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아시아 위기 타개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

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으며 부대표인 스탠리 피셔도 28일 미 상원 인준 청문회

에서 “일본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규제철폐와 시장개방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

다”, “이를 결코 수용하지 않겠다”는 공격적인 자세를 분명히했다.*주9)

미국과 EU 등 서구측도 내부 문제가 심각해져 가고 있다. 유럽의 강대국 독일

도 세계적인 경기퇴조의 영향을 받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지의 보도

에 의하면, 1월 말 현재 독일의 실업자 수는 490만 명으로 지난달의 452만 명보

다 한달 사이에 38만 명이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을 동아시아 공황의 직접

적 결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동아시아 공황이 세계 자본주의 전반에 축소

작용을 미치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주10)

이런 가운데 29일부터 열리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사교장인 다보스 포럼에

서는 세계경제에 대해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장밋빛이었던 작년과

는 딴판이다. 이곳에 모인 자본의 대표들은 아시아 경제의 붕괴가 세계의 다른

신흥시장들에도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아시아 위기로 투자가들이 조

심스런 태도를 보여 아프리카 등 다른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도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주11)

한편 미국내에서도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미 하원에서는 지금 IMF에 대해

180억 달러를 신규 출연하는 문제를 놓고 IMF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데 공화당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이 제휴하여 지원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실패한 대외투자(금융자본의 : 필자)를 위해 납세자가(필자) 비용을 부담해서

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는 “아시아 금융위기

가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제조업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안

보면에서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들어 의회의 강력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

다”,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큰 고객이며 전략적 동반자”라고 강조하고 있

다.*주12) “아직도 공황의 우려는 가시지 않는 등 이례적으로 심각한 불안을 보

이고 있다”, “아시아 위기는 일본과 중남미 그리고 동유럽을 강타할 수 있으며

이것은 차례로 미국을 포함한 세계 전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

했다. 한편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29일 미 상원 예산위원회

에 출석하여, 미국 경제에 대한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여파는 아직 미미한 단계이지만 6월 말까지는 미국 수출품에 대한 수요 감

소와 저가 수입품으로 인한 경쟁 격화 등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가 분명해질 것”

이라고 내다봤다.*주13)

그리고 이 발언들은 동아시아 공황의 여파가 미국의 산업자본에 미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렇게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AFL-CIO는 구제금융을

노동권 및 인권에 연계시켜 제공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하도록 촉

구하겠다고 선언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AFL-CIO는 “IMF의 최대 지분을 보유하

고 있는 미국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모든 수단을 IMF 운영방법의 변화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IMF의 임무는 사회적.경제적 목적을 폭넓게 달

성하도록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자기혁신을 추진

하면서 진보적 인텔리켄차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 노동운동이 서서히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주14)

우리는 작년 한국경제의 공황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어 오다가 결국 연말에

가서 대대적으로 터져 오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은 그같은 과정이 전 세계적 범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세계 대공황이 가능성을 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 독점자본은 자신의 개별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어떠한 효과적인 대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 대공황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그러한 방

향으로 도도히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 주 ———-

1) 한국일보 1월 31일자 참조.

2) 필립 S. 골럽, “지금은 세계화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기이다–걷잡을 수 없

이 파급되는 아시아 금융위기”, 르 몽드 디쁠로마띠끄, 1998년 1월호 참조.

3) 한겨레신문 1월 31일자, 한국일보 1월 27일자 참조.

4) 국제금융연구소에서 그같이 발표했다고 한다. 국민일보 1월 31일자 참조.

5) 각국 정부의 자문역을 맡아온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 데이비드 레일은 호주

ABC 방송과의 회견을 통해 아시아 경제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국제적인

(사태)확산이 가장 이상한 사례라고 지적하고 “(인도네시아는) 이같이 불황이

지속되면 경제적 불황의 위기가 아니라 혁명으로 절정에 달할 종족분규의 위

험에 당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자문역을 맡고 있는 제프

리 삭스 하바드대 교수도 같은 의견으로서 “3개월 전만 해도 위기관리가 가능

했으나 그간 매우 서투르게 위기관리를 해 왔으며 특히 국제사회(서구 사회를

미국은 이렇게 부른다 : 사무엘 헌팅턴,『문명의 충돌』참조)가 그러했다”고

평가했다. 문화일보 1월 31일자 참조.

6) 매일경제신문 1월 27일자 참조.

7) 매일경제신문 1월 31일자 참조.

8) 동아일보 2월 1일자 참조.

9) 국민일보 1월 30일자 참조.

10) 한겨레신문 1월 31일자 참조.

11) 국민일보 1월 31일자 참조.

12) 국민일보 1월 30일자 및 동아일보 2월 1일자 참조.

13) 문화일보 1월 30일자 참조.

14) 경향신문 2월 1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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