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자(노동자의 힘 선전위원)

노동해방실천단은 10월26일 1차 총회에서 해산을 결의했다. 비록 실천단은 해소되었지만, 순회투쟁단은 반제·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 구축을 위해 투쟁했다. 지난 10월18일부터 25일까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은 아산, 안산, 부천, 대전, 군산, 전주, 울산, 부산 등 전국의 각지를 돌며 순회투쟁을 전개했다. 순회투쟁을 통해 전국의 투쟁하는 동지들을 만나면서 ‘투쟁의 주체, 정치의 주체’로 서 가는 모습과, 우리의 공동의 투쟁이 각 지역과 현장에서는 어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노동기본권 쟁취”였다. 결합한 대다수의 사업장에서는 7-80년대 있었던 노동탄압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었고,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맞서 노동자들은 힘들게, 그러나 끊임없이 질기게 투쟁하고 있었다.

가자 우리의 일터로 – 아산

천안역에서 버스를 타고 십여분을 가면 150여일째 파업투쟁을 전개중인 세원테크 공장이 있다. 추수도 끝난 황량한 논밭, 무슨 요새라도 되는 양 겹겹이 쌓인 바리케이트와 전경들로 연대를 간게 아니었다면, 그곳이 공장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세원테크 동지들과의 연대가 순회투쟁단의 첫 연대였다. 세원공장앞에서의 집회가 끝나자 마자 후다닥 점심을 먹고, 세원동지들의 일정에 맞춰 망향휴게소 노조 파업투쟁에 결합했다. 연대 투쟁의 고마움을 담아 박카스와 피로회복제까지 챙겨주셨다. 마침 휴게소에 들렸던 오리온 전기 노동자들이 상경투쟁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함께 연대해서 망향조합원들의 사기는 기세등등 이었다. 그 연대의 힘 때문이었을까. 그날 밤에 망향휴게소 노조는 타결되었다.

실천단이 두 번째로 연대했던 10월22일은 세원테크 집중집회가 있었다. ‘자본가들을 지옥의 불구덩이로 넣겠다’고 엄중경고 하던 세원 동지들의 결의문 낭독 후 천막이 설치되었다. 그즈음에 합의안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고, 조합원 간담회 진행후에 총회를 거쳐 합의안이 통과되었다. 조합원들이 염원하던 부상자 치료비 문제와 노조파괴자들을 회사에서 쫒아내는 큰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수배자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고, 파업투쟁 기간인 5개월간의 위로금은 고작 20만원이 전부였다. 총회를 진행하면서 가대위와 몇몇 조합원들은 울분을 터뜨렸다. 합의안에는 안타까움도 남았지만, 신생노조로서 민주노조사수 투쟁의 작은 승리는 실천단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시급 2천3백원을 받으면서 잔업철야에 뺑이쳤던 기억들, 너무나 힘들어서 고향에 있는 부모님 생각에 울기도 많이 했던 날들, 파업을 통해 동지의 소중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노동자라는 이름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던 소중한 경험들. 뒷풀이에서는 세원동지들의 삶과 힘든 투쟁의 나날들이 웃음과 눈물속에서 펼쳐졌다. 더불어 세원동지들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파업이 끝난 지금 세원자본과의 싸움은 이 5개월간의 파업투쟁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노동해방 실천단이 행운의 실천단이네요. 진작 오셨으면 더 빨리 타결됐을텐데…”라며 술자리에서 껄껄 웃으시던 조합원이 떠오른다. 세원동지들에게 했던 약속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 온 것을 연대하러 왔다고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서울에서, 전국에서 거리의 정치를 펼칠 때 우리는 세원동지들과 연대하고, 단결했다 이야기하겠습니다”

민주노조 건설하자 – 안산

안산에 위치한 한국노총 소속의 신명전기는 “6개월이나 체불된 연월차 수당을 지급하라”며 20분간 작업거부를 했다고 조합원 2명을 부당해고 했다. 노조가 어용이라 민주노동자회 한마음을 중심으로 부당해고 철회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천막농성을 9월30일부터 진행중이다. 조합원 십여명과 연대대오 몇몇으로 진행되던 매주 금요일 퇴근 집회는 모처럼 실천단이 결합해서 활기가 있었다. 안산지역의 사업장은 대개가 중소영세 사업장이고, 백명 이하 사업장이 전체의 60-70%다. 3천여개의 사업장 중에서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한국노총,민주노총 통털어 불과 130여개뿐라고 한다. 지역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명조합원들은 연신 ‘힘 많이 받았어요’라며 연대투쟁에 반가워했다.

안산 지역에서 특이한 점은 ‘파견근로’라고 버젓이 간판을 내건 불법파견업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안산에 이러한 불법파견업체만 200여개를 훨씬 넘어요. 건설현장, 공장, 파출부 등 이러한 파견업체를 거치는 인구만 해도 어림잡아 크게는 10만명 정도는 될거에요.” 지역 활동가들의 고민은 이러한 파견 노동자와 3만이 넘는 이주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라고 한다. 그래도 “전국 순회투쟁을 통해 지역에 힘들 많이 주십시오. 우리도 더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라던 지역동지들의 결의는 더욱 든든하게만 보였다.

30년째 이어지는 외침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부천

“이 천막이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이 투쟁한 천막이에요. 우리도 질기게 투쟁할겁니다” 작년 10월에 결성된 부천시 장애인 종합 복지관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체협상 체결을 위한 투쟁중이다.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노동법에서도 엄연히(?) 보장하는 노동절 휴무와 생리휴가를 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였다. 기막힌 것은 CMC 공권력 투입으로 노조 탄압을 자행하는 카톨릭 신부에 뒤질 새라 장애인 복지관과 성가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성가소비회라는 수녀원이 이러한 노조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현대자동차운전학원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휴일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근무와 체불임금으로 올해 7월 노조를 설립했지만 사측은 직장폐업으로 응수했다. 부천지역의 70%이상이 5인이하 영세사업장으로 현실적으로 노조가 있기 힘들다. 그나마 힘들게 노조를 세워도 단체협상을 체결하기까지는 3개월에서 1년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70년대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의 그 외침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요구입니다”라던 현대자동차학원 조합원은 말이 뼈져린 것은 노동자에겐 기본권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 기막힌 현실 때문이었다.

투쟁하는 철거민이 철거에서 해방된다 – 대전

대전의 한라공조와 대한이연 사업장에서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출근 선전전을 진행했다. 특히 대한이연에서는 공장 문 안쪽에서 선전전을 했다. 공장 문 밖과 안은 불과 몇미터 차이는 아니지만 사업장안에서의 선전전은 의미심장했다. 작은 사업장이지만, 몇 년간의 투쟁의 성과인 셈이다. 실천단은 4개월이 넘게 최저생계비 보장을 요구하며 힘들게 싸우고 있는 비비드 광학과 용두동 철대위 집회에도 결합했다. 대전 중구청 앞에서 100여일이 넘게 노숙투쟁을 전개중인 용두동 철대위는 실천단 일정에서 유일한 철거투쟁이었다. 중구청에서는 ‘가수용단지’로 컨테이너 박스를 주겠다고 하나, 이를 거부하고 어린 아이부터 70세의 할머니까지 40여명의 철대위는 길바닥에서 스티로폴하나 깔고 ‘주거권’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11월1일부터 내년 6월까지는 이 지회를 막기 위해 중구청앞에 허위 집회신고가 되어 있어서 거점을 옮겨야 한다고 한다.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철거민들 대부분이 연령대가 높다보니 가장 걱정되는 것이 건강이었다. 우리 손을 꼭 잡으며 “연대해주셔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시던 할머니들이 따듯한 겨울을 보내야 할텐데…

양키 고홈! 반미 투쟁 – 군산

노동탄압에 맞선 농협노동자들의 투쟁, 경제특구 지정 예정에 맞선 노동기본권 사수 투쟁,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한 환경투쟁, 반제에 맞선 주한미군의 투쟁까지 반제·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의 구축이라는 실천단의 기조가 군산만큼 어울리는 도시도 있을까. 군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역활동가와 함께 기지 주변을 돌아보며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패권 전략에 대해 들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되면, 한미 협정에 의해 기지가 넓어지는 효과도 난다고 한다. LPP(연합토지관리계획) 국회비준일인 10월23일에는 군산 미군기지 253차 수요집회가 열린 날이었다. 5년을 넘긴 이 투쟁의 처음에는 몇몇이서 진행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군기지가 있는 하제마을은 수십년간 미군기에 의한 소음에 고통받아왔음에도 지역주민들이 투쟁에 나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양키 고홈 반미 투쟁”이라는 구호가 나에게는 어색하기만 했지만, 지역의 노동해방 실천단과 주민들, 파업투쟁중인 농협노동자들과 함께 힘찬 집회를 진행했다. 농협 노조 군산지부는 농협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5개월째 파업중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농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동조합의 개혁이다. 11월에 있을 WTO쌀수입 개방 반대 투쟁과 농협 개혁을 위한 전국적 투쟁을 계획하면서 실질적인 노-농 연대투쟁의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가자 총파업으로 – 울산

효성 공장 앞에 도착해 버스를 내리자마자 화섬공장 특유의 매캐한 냄새와 근처의 탁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검은 연기의 공장은 하루에 5번씩 조합원들을 삼켰다 뱉는다. 오후 3시에 퇴근과 출근을 하는 조합원들을 향해 약식집회와 선전전을 진행했다. 공장 앞에서는 30여명의 해고자들이 복직과 위원장 직선제를 통한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전개중이다. 하지만, 유인물을 나눠주는 우리에게 무관심하거나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 등 조합원들은 낮게 움츠려 있었다. 2001년 7월5일 총파업 철회 이후에 지역연대투쟁의 불을 지폈던 효성의 위력적인 투쟁을 조합원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공장안의 조합원이 조직되어야 한다, 그들이 투쟁해야 한다.’ 사측의 공세로 죽어있는 현장에서 민주노조를 사수할 수 있는 길은 그길 뿐이다. 착찹한 마음을 가지고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다. 한진중공업은 3월부터 사측의 교섭회피로 교섭이 한차례 열리지 못해 아직도 임단협 투쟁중이다. 계속되는 구조조정으로 울산공장은 현재 정규직 200여명에 사내하청 400여명이 전부다. 집행부들이 모두 힘들게 열심히 싸우고 있었지만, “이러저러한 투쟁들에는 동의하나 현장이 매우 어렵다”는 말의 반복이 답답하기도 하면서 안타까웠다. 울산의 주력부대인 현대자동차 앞에서의 선전전은 ‘가자 총파업으로!’를 외치며 선전전을 진행했다. 조합원 수도 많기도 했지만, 총파업을 조직하려는 집행부들의 선전전도 우렁찼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울산이 투쟁의 불바다가 되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활동가의 말처럼 노동법개악에 맞선 힘찬 투쟁이 울산에서부터 울려퍼지길 기대해본다.

쓰레기 봉투값 인하하라 – 부산

날씨가 한껏 풀린 순회투쟁의 마지막날. 부산에서는 장애인 투쟁, 학습지 교사노조 투쟁, 환경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부산지역 장애인 이동권 연대는 기자회견후 시장 면담을 요구했다. 시청앞 건물에 다다르자 시청은 셔터를 내려버렸다. 이에 항의하는 실천단과 장애인들에게 장애인총연합회장은 ‘우리끼리 알아서 할테니 연대대오는 싸우려하지 말라’며 도리어 화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서울에서 장애인 이동권 연대는 거침없는 투쟁들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했다. “사람이 적어요”라고 한 장애인은 이야기했지만, 투쟁하고자 하는 장애인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투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공세적인 이동권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야 지역의 이동권 투쟁도 승리할 수 있다.

부산에서 경험한 생소한 투쟁은 ‘청소비리척결·종량제 봉투값 인하’를 촉구하는 지역일반노조의 집회였다.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이곳 해운대에서는 구청이 청소대행업체의 뒤를 봐주면서 노동자에게는 저임금을 강요하고, 시민들에게는 부산에서 가장 비싼 종량제 봉투값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구청 앞에서 ‘인하하라! 인하하라!’를 목청껏 외쳤다. 거리의 시민들은 유인물을 받고, 박수로 답해주기도 했다. 환경노동자들은 지역 일반노조 소속이다. 일반노조는 구성원들이 다양하고, 파업사업장이 많아 생계비 지원 등이 고민이라고 한다. 얼마전에도 일반노조 ‘이프’ 담배노조원이 전원 해고되었다. 지역일반노조가 “세워진지 3년정도 되니까 이제는 사장들끼리 뭉쳐서 대든다”며 한 조합원이 얘기했다. 그래서 어쩌실 거냐니까 대답이 명쾌하다. 실천단이 전국을 돌면서 했던 얘기가 꼭 같은 얘기였다. “사장들끼리 뭉쳐서 대들면? 당연히 노동자는 더 뭉쳐서 투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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