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르 몽드>지 1998. 2. 10일자

미국 금융 패권의 두 국면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지 20년이 지난 이후, 미국은 자국의 경제성장 기운

을 회복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미국경제의 힘찬 성장에 방해가 되는 장

애물들을 하나씩 허물어뜨려 나갔다. 미국은 특히 이전까지 자신의 동맹국들―

프랑스, 한국, 일본―이 미국의 전 세계적 지배체제 아래서도 “민족 자주

적”(nationaux volontaristes)인 경제운영 모델을 지속할 수 있게끔 허용해 주

었던, 세계체제상의 각종 제도와 관행들 모두를 대거 허물어뜨려 버렸다.

마이클 로리오(Michael Loriaux)*

* 마이클 로리오 교수는 노스웨스턴 대학 국제비교학 연구소 소장이다.

1980년대의 금융개혁은, 국가개입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여타 나라들에서와

같이 프랑스에서도,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정치는 경제적 힘의 냉혹하고 엄정

한 작동 앞에 극히 무력하다”는 느낌이 생겨나게 했다. 그러나 몇몇 소수의 예

리한 관찰자들이 이미 간파했듯이 (정치가 경제 앞에 무력하기만 한 것이 아니

라 : 역자), 지난날의 국가개입주의 정책이나 작금의 탈규제 정책이나 공히 (경

제적인 힘의 엄정한 작동에서 비롯되고 있다기보다 : 역자) ‘미국 패권주의의

작용’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난 냉전시기 동안 미국은,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 나라들에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한 한 촉진하고자 애썼다. 이는 공산주의의 확장에 방파제

를 쌓고자 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이것을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이라 부

른다 : 역주)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태도에 힘입어서

공산주의의 확장을 “봉쇄한” 서유럽과 아시아 나라들에서 장기간에 걸쳐 고도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자, 미국으로 하여금 다른 나라에 대해 지배자로서 군림할

수 있게 한 국력의 원천이었던 경제력의 압도적 우위가 서서히 침식되기 시작했

다. 이러한 사태 진행은 나아가 세계에 대한 미국의 패권적 지배체제 자체를 위

협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양차 대전 중간 시기에(1920년대 초로부터 1930년

대 말까지) ‘영국 지배하의 평화'(Pax Britanica)가 무너져내렸듯이, 1970년대

초에 있은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국제 통화체제의 붕괴(1944년 달러의 금

태환에 기초해서 미국에 의해 설립된 브레튼우즈 체제는 60년대 후반부터 미국

의 베트남 전쟁 수행으로 인한 높은 인플레이션, 무역수지 적자 발생 그리고 팽

창적인 통화정책 등이 작용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71년 달러의 평가절하

압력이 커지면서 미국으로부터 거액의 달러가 유출하고 유로시장에서 달러투매

현상 등 외환투기가 발생했다. 또 미국의 금 준비가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71

년 8월 15일 미국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금 태환을 무기한 중지시켰다. 그리고

그 뒤 4개월 동안 세계의 모든 주요 통화가 변동환율제를 채택함으로써 이 체제

는 붕괴하였다 : 역주)와 1970년대 중.후반에 있은 석유위기는 ‘미국 지배하의

평화'(Pax Americana)의 와해를 예고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곤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고 나서 2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여전히 패권국가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객관적 사실임을 전폭적으로 인정하지 않으

면 안될 것이다. 미국의 금융적 지배권은 가히 완전무결하다. 미국 국내 시장의

크기는 여전히 방대하여 무역이나 통상에 관한 로 하여금 최종 결정권자와 같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모든

나라들이 상품수출을 미국 시장에 대한 판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역주) 또 미국의 군사력과 과학.기술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른 나라

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신의 지배력이 약

화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정책을 통해서 갖은 애를 쓰고 있다.

2차 대전 이후의 두 개의 시기 즉 국가개입주의 나라들의 금융상의 ‘주의주

의'(volountarism : 경제를 시장의 자율기능에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이

러저러한 목적―경제발전 또는 완전고용 등―을 위하여 체계적으로 개입하는 정

책기조를 말한다 : 역주)가 지배적이던 시기(1945∼1975)와 그것에 뒤이어 1980

년대부터 시작된 탈규제화의 시기(1980∼현재)는 각각 미국이 패권을 갖는 세계

질서가 건설되던 시기와 이후 미국의 이러한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던 시기

를 반영한다. 이 질서는, 민간자본이 그 나라의 정치생활의 안정화에 협력하도

록 국가가 자본을 고무하거나 규제하는 것을 이 질서에 가맹한 국가들에게 허용

해 주는, 여러 가지 제도와 법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 제도와

법규들은 또 이 질서에 가맹한 각 국가들로 하여금 “보조금 제공으로 영위되는

가신체제”를 사용하여 반대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장려하는 장치이기도 했

다.(가신체제clientelism란 봉건제의 왕-영주-가신의 관계처럼 정치권 붕당의

우두머리가 최고위의 주인 즉 자본이 하사하는 정치자금을 받아서 이를 휘하의

부하들에게 배분하는 것을 통하여 부하들로 하여금 최고위의 주인 즉 자본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체제를 말한다. 이런 체제 하에서 지배세력에 반대하는 야당에

도 국가의 주선 아래 자본의 정치자금 즉 보조금이 제공되고, 이 보조금은 붕당

의 우두머리로부터 말단의 추종자에게로 하향식으로 배분된다. 우리나라에서 최

근 기업 이윤의 1%를 정치자금으로 거두어 각 정당에 배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것이 실시된다면 “자본의 보조금에 의한 가신체제”의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 방안은 보수야당들로 하여금 자본에 보다 철저히 봉사하게 만드

는 것은 물론이고 체제에 협력하는 진보적인 야당을 육성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

련이 있다. 이 방안이 확정된다면 아마 국민승리21에도 자본의 보조금이 할당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의 변혁성을 완전히 거세하고 그것을 민중의 변혁

적 진출에 대한 방파제가 되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 역주)

이런 큰 틀 안에서 미국과 동맹한 여러 나라들에서 토착의 지배층 즉 민족 부

르조아(산업 및 금융 자본가 계급) 세력이 육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각 민족국

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자유화된 세계시장을 건설하는 데 동참하면서 그와 동시

에 자신의 산업적 기초를 구축하는 것, 즉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경제의 계획화와 금융상의 주의주의를 통해서 경제와 사회를 현대화

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노선 위에서 세계경제를 전면적으로 자유화하고자 하

는 미국의 ‘시초 압력’에 반항했다. 그같은 자유화 압력이 가해지던 초기인 2차

대전 직후에는 분명 그러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당시 미국의 대(對) 유럽 지배

구도 안에서 핵심적 요소로 간주되고 있었다. 왜 그렇게 간주되었는가? 첫째로

미국의 동맹국들의 점령지역인 서독(이 지역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분할점령

하고 있었다. 반면 동쪽 지역은 소련이 점령하고 있었다 : 역주)을 통일하는 문

제가 부분적으로 프랑스의 동의 여부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서 유

럽 내부의 협력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서 프랑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기 때

문이었다.(서유럽에서는 정치적 비중에 있어서 프랑스와 독일이 쌍벽인데, 독일

은 패전국이 되었으므로 프랑스의 정치적 발언권이 아주 높았다 : 역주) 그리고

끝으로 프랑스 공산당이 지니고 있는 중요성 때문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친소련

적이고 계급투쟁에 적극적인 프랑스 공산당이 계급투쟁이나 반미투쟁을 벌임으

로써 프랑스 국내는 물론 서유럽 전체에 걸쳐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할까 염려되

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므로 미국은 결국 ‘경제 자유화’에 반항하는 프랑스에 대해

그것을 강요하기보다 거꾸로 정치적인 지지.지원을 적극 제공하기로 했다. 한편

으로는 마셜 플랜(대규모 경제원조)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국제통화

기금의 부드러운(빡빡하지 않은) 운영을 통해서! “프랑스 모델”이라는 것이 발

전하게 된 것은 이런 맥락 속에서였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는 이른바 ‘프랑스

모델’ 안에서 국가가 외부 금융시장으로부터 국내 금융시장을 차단하는 장벽을

쌓고 자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주의주의’ 정책을 밀고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통해서 이러저러한 핵심 산업부문을 보호할 수 있었으며 나

아가 정치적으로 정해진 목표들(예컨대 드골의 ‘경제 현대화’ : 역주)에 부합하

는 방향으로 민간 자본을 유도할 수 있었다.(이것을 경제계획 이론에서는 ‘유도

적 계획'{indicative planning}이라고 부른다 : 역주) 현대화 추진자를 자임한

프랑스 국가는 금융상의 자주성과 국내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라는 이러한

제도적 전.철도제작 등 : 역주)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버팀목이 되어 주었을 뿐

아니라(이 부문들은 대개 국영기업이다 : 역주) 구 산업들이 사양화하는 것을

늦추었다. 이렇게 하여 시장을 대외적으로 개방하고 수출 주도형으로 나아간 경

제들에서 빈번히 나타난 정치적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프랑스 모델’을 놓고 “프랑스는 예외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고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도 프랑스와 매우 유사한 경우이기 때

문이다.

한국도 프랑스만큼이나 악착스럽게 미국의 자유화 압력에 거역했다. 한국은

중화학 공업의 가속적인 발전에 목을 매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중화학 공업은

강력한 국방력의 불가결한 기초였던 까닭이다. 한국 역시 ‘주의주의적’인 금융

정책을 채택했다. 즉 한국은 자국의 금융시장을 세계 금융시장으로부터 차단,

고립시켰다. 또 외국 자본의 투자를 엄격하게 통제했다. 이런 바탕 위에서 국가

는 국유화된 은행들로 하여금 실물경제(특히 상업보다 산업 : 역주) 부문에 실

질적으로 마이너스의 금리로 자금을 대부해 주도록 조치했다. 이렇게 하여 한국

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를 때 : 역주) 경제-사

회의 근대화 과정을 인위적.주의주의적으로 촉진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

가 주도하여 민족자본가 계급이 태어나게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동차 수리

공장 주인을 다국적 기업의 사장으로 변신하게 하면서!

냉전이라는 급박한 상황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경제자립주의를 단지 “수

동적”으로 참아주게 한 것만이 아니다. 냉전에서 승리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미

국은 한국 자본주의를 “능동적”으로 육성했다. 미국은 한국산 상품에게 자국 시

장을 열어 주었다. 또 한국에게 다액의 원조 금융을 제공했다. 이러한 금융 원

조는 쌍무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었고 다른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을 동참시켜

다자간에 이루어진 것도 있었다. 미국은 또 한반도의 군사적 안보를 위해서 엄

청난 거액을 할애했다.

한편 일본에 관해서 살펴보면, 미국의 대 일본 정책의 기조는 몇 차례 커다란

변화를 보여 왔다. 2차 대전 이전 시기에 일본은 자기 민족의 산업을 급속히 발

전시키고자 국가 주도로 공업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2차

대전 이후 미 점령 당국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장치들을 허물어뜨리고자

애썼다.(일본의 경제력이 급속히 강화되는 것을 견제하고 정치적으로 파쇼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 역주)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점령정책 기조는 한국전쟁의 발

발로 인해 전면적으로 철회되었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미국은 일본 국민들로부터 군사적.정치적으로 보다

긴밀한 협력을 얻어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런데 일본 국민들은 미국과 군사.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데 대해 주저하고 있었다. 일본 국민들은 “소련

제국”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위협받는다고 느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미국

은 일본이 경제 문제에서 국가주의 노선을 계속 견지하는 것에 동의해 주지 않

을 수 없었다. 또 무역에 있어서 미.일간에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해 주어야 했다. 나아가 일본 정부가 미국 자본의 대 일본 투자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과 일본 통화인 엔(¥)을 저평가하는 것도 받아들여 주어야 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후 일본에 대한 시장개장 및 국가개입주의 철회 압력으로 또

다시 바뀐다 : 역주)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점은 이들 세 나라 모두에게 있어서 국가개입주

의는 어떤 측면에서 보거나 미국-패권 질서에 대립하기보다는 그것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미량이나마 경제 민족주의적 경향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주관 하에 대대적으로 조직된, 국제적인 금융 지원 때문이었

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는 경제 “주의주의”(volontarism :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것과 반대로 국가가 목적의식적으로 경제에 관여하는 것

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의 작용에 내맡기지 않고 국가가 경제발전과 완전

고용을 위해 적극적.계획적으로 개입하는 정책노선을 말한다. 이럴 때 만성적으

로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이 구조화하는 경향이 있다 : 역주)에 의해

야기된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인해(이 경우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한다

: 역주) 외환지불 곤란에 봉착한 나라들에 대하여 이를 너그러이 묵인해 준 국

제통화 체제의 호의로부터 오랫동안 혜택을 받아 왔다. 한편 미국은 한국의 경

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서도 그 나라의 보호주의적인 관행을 용인해

주었다. 이러한 호의는 일본이 미국에 대해 외교적 및 군사적으로 협력해 주는

데 대한 대가로서 미국이 수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견 호혜적인 관계는 2차 대전 후 20여 년이 지나면서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 때가 되면서 미국 경제는 다른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 비

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세계경제에 대한 미국의 ‘절대적인 지

배권'(supremacy)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자신이 예전에 지

니고 있었던 힘찬 경제성장 추세를 회복시켜야겠다고 작심하였다. 그리고 경제

성장 추세를 회복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제반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려 나갔

다. 특히 지난 시기에 프랑스, 한국, 일본 등 자신의 동맹국들이 민족자주적인

경제운영 모델을 견지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대외적 조건이었던, 국제경제 체

제의 제도와 관행들을 모조리 혁파했다.

그 경과를 되돌아 보면 이렇다. 1960년대 동안 미국은 베트남 전쟁 비용을 충

당하기 위하여 통화(달러) 팽창 정책을 채택한다. 이렇게 되면서 오랫동안 (세

계경제에 달러를 적절히 공급함으로써 : 역주) 국제통화 체제(달러 본위의)가

차질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보증해 온 나라인 미국은 이처럼 달러를 증발함으로

써 마침내 세계적 범위에서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주범이 되었다. 나아가 1971

년 브레튼우즈 체제(1온스에 35달러의 비율로 달러의 가치는 금에 고정되고, 각

국 통화의 가치는 달러와 일정 비율로 고정된 국제 통화체제이다. 한마디로 달

러를 본위로 하는 고정환율제이다 : 역주)의 붕괴로 귀결된 일련의 국제 통화위

기의 주된 원인 제공자로 되었다. 이렇게 하여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되고 변

동환율제가 도입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변동환율제는 프랑스 같은 나라에 새로운 위험을 유발했다. 즉

인플레이션-환율인상의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다.(변동환율제 하에서 인플레이션

이 발생하면 즉시 환율이 인상되며, 이것은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킨다 : 역주) 이렇게 되면서 프랑스에서는 인플레이션-환율인상의 악순

환이라는 위험을 막는 것이 경제정책의 급선무가 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은

행의 대출을 확대하기보다(이 과정에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력이 발휘되는

것인데 : 역주) 오히려 그것을 규제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여 브레튼우즈 체제

의 붕괴 이후 프랑스에서는 대출 규제가 이 나라 통화정책의 항상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기업들은 주식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보다 은행으

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경제가 빚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런

데 이런 경우 은행 대출에 대한 규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암초 사이를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금융정책은 너무 느슨한 규제와 너무 빡빡한 규제

라는 두 암초 사이를 헤쳐나가야 했다. 왜 그런가? 대출 규제를 너무 느슨하게

할 경우 대출을 규제하는 효과 자체가 있으나마나 하게 된다. 반면 대출 규제를

너무 빡빡하게 할 경우 기업들을 파산의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이런 형국이므

로 정부의 의지로는 이것을 잘 조절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렇게 하여 인플레

이션-환율인상의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한 투쟁은 불가피하게 은행과 기업들의

금융거래를 자동적으로 제어하는 시장의 기능을 강화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

해서는 금융 체계의 자유화가 불가결하게 요청되었다. (게다가 경제 자유화 개

혁은 경제성장을 저하시키는 디플레이션 효과를 나타내기 마련인데 이 효과를

상쇄시키려면 해외 저축과 투자를 다량 프랑스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했으

며, 이를 위해서도 금융시장의 자유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했다.)

프랑스로 하여금 탈규제(자유화)로 나아가게 만든 데 있어서 국제통화 체제의

변화(변동환율제로의)가 유일한 원인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 국가개입주의

에 대해서는 수십년 전부터 이것을 비판하는 세력이 있어 왔다. 그리고 자유화

의 시작은 1966-67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프랑스의 금융체계를 자유

주의적으로 개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은 대외적 조건의 변화 즉 변동

환율제이다. 국제적 지원―구체적으로 미국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 주

의주의는 프랑스에서 성공할 가망성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서 아시아는 자금조달상으로 이 지역 외부의 금융시장으로부터의 구

속을 덜 받고 있으며(국내저축에 의존하거나, 일본으로부터의 자금 공급에 의존

하고 있다 : 역주), 게다가 강력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아

시아는 주의주의적 모델을 프랑스보다 좀더 길게 지탱할 수 있었다.

한편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의 미국의 경제정책은 2차 대전 후 수립된 전

후 경제질서의 분해를 가속화했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1980년부터 시행된 예

산정책은 닉슨의 통화정책이 그러했던 것과 똑같이 미국 경제의 상대적 쇠퇴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을 겨냥했다. 레이건은 경제성장에 흥분제를 투여하기 위하

여(즉 국내 생산을 자극하기 위하여 : 역주) 수입을 억제하는 정책을 선택했

다.(예컨대 한국.일본 등에 수출 자율규제를 요구했다 : 역주) 그와 동시에 내

수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확장했고(예컨대 군비 지출 증대 등 : 역

주) 이로 인해 발생한 재정 적자를 보충하기 위하여 해외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빌려야 했다. 이렇게 하여 미국으로 자금이 몰려 들었고 이것이 달러의 가치를

치켜올렸으며 (이것이 다시 고(高)달러로 미국 상품의 가격경쟁 조건을 불리하

게 만들어서 : 역자) 무역수지 적자를 누적시켰다. 이런 전후 관계 속에서 미국

은 점점 더 자신의 동맹국들과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그래

서 미국 시장은 개방되어 있는 데 반해 유럽 시장은 상대적으로 폐쇄되어 있고,

아시아 시장은 특히 아주 폐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레이건의 이같은 정책은 세계 도처에 금융시장

자유화를 가속화시켰다는 사실이다. 그 방법으로는 직접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방법도 있었고(예컨대 WTO, OECD 등 다자간 협약이나 한.미간, 미.일간의 쌍무

교섭으로 : 역주) 자본 운동의 효과를 통해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방법도 있었

다.(금융시장을 자유화하지 않는 나라에 자본이 투자되지 않거나 이탈하게 함으

로써 시장을 자유화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법으로 : 역주) 이런 상황 속에서

각 나라는 미국 재무성 공채에 대량으로 투자되어 있는 달러 자금이 일부분이라

도 자기네 나라로 흘러들어오게 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를 위해

자기네 나라의 경제를 개방하고 자유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요컨대 각국

은 오직 국제 금융자본에게 더 매력있게 보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은 불가피하게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국가개입

주의 나라들에서의 금융 자유화는 단지 시장기능의 소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개입주의로부터 금융 자유화로의 변경은 패권국인 미국이 채택한 정

교한 정책에 의해 초래되고 있다. 자신의 절대적인 경제 지배권을 회복시키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미국의 정책에 의해서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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