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신자유주의 공세를 무너뜨릴 저항의 연대를 조직하라*

* 이 글은 중앙대학교 학보사의 청탁에 의해 ‘중대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 제공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1)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초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신자유주의는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개념이 정립된 용어가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로마 교황이, 쿠바의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80만 군중이 운집한 앞에서

이것을 비판한 것을 보면 매우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그러면 이

렇게 사람들 입에 널리 올려지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극히 간추려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이론(“신고전파 경제이론”)

에 입각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전략(“신보수주의” 및 “신제국주의”)을 통하

여, 도달하고자 하고(전망목표로서) 또 만들어 가고 있는(현실로서) 신자유주의

운동이다. 누구의 운동인가? 초국적-자본의 운동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또

한 “초국적-자본 세력”이다. 그리고 이렇게 초국적 독점자본 세력의 운동이므로

보다 정확하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다. 그리고 의가 확장운동을 해 가는 과정을 사람들은 “세계화”라고 이름하고 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자본주의인가? 첫째로 그것은 세계적 범위를 가지고 경영

되는 자본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 민중을 지

배의 대상으로(노동력으로 또는 상품-소비자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초국

적”이고, 그 경제력 또한 실로 막강하다. 물론 아직 국적(민족국가의)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둘째로 그것은 자본의 이윤추구 논리, 축적 논리―이것을 흔히 “경제논리”라

고 하는데―가 무제한적으로 관철되는 자본주의이다. 시장이 신성화되고 자유시

장―경쟁하는 장마당이 아니고 초국적-자본의 과점적 쟁패의 무대이다. 그래서

기본이 “빅 쓰리”(Big 3)이다―의 활개짓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용인하지 않는

초-자유주의이고, 극단적으로 반동적인 자본주의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소득만이 아니라 고용

에 대한, 경제만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무시무시한 위협이다.

2) 신자유주의는 거짓과 파괴로써 인류, 민족, 계급을 공격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의의 확장-운동 과정)는 “기정 사실”이 아니다. 초국적 자본의 대변자들은 마

치 신자유주의 질서가, 세계화가 이미 완성된 현실인 것처럼 또는 거스를 수 없

는 숙명적 추세인 것처럼 사람들을 기만한다. 그러나 세계화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이 장애물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세계화는 완성은커녕 확장될 수조차 없

다. 어림도 없다!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완성되어 가는 국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영역의 확장을

위하여 그 공세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국면이다. 전 세계를 자본주의 질서로 만

들기에는 그 동안에는 자본의 지배능력에 제한성이 있었고, 전 세계 민중의 자

주적 역량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소련.동구의 현실-사회주의가 무

너지고, 또 초국적-독점자본이 “정보화”를 통해 지배력(물질-기술적, 조직-기술

적 생산성)을 고도화하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그것을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신자유주의는 90년대에 들어와서야 그 공세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종래에는 중남미와 동구권에 집중하던 데서 최근에는

그 범위를 넓혀 는 90년대 들어 서서히 공격이 가해져 오다가 이번 연쇄 금융공황을 계기로 물

밀듯이 밀어닥치고 있다. 한편 자신의 직할지인 선진-자본주의에서는 유럽-통합

(화폐 통합과 중앙은행 설립으로)으로,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의 공고화

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명실공히 전 지구적 범위

에 걸쳐 전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군사적인 것, 문화적인 것, 경제적인 것이 입체적으로

구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주된 무기는 최전방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금융자본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투기자본이 돌격

대로 준동하고 있다. 이 초국적 금융자본이 “개방”압력과 “개혁”압력으로 민족

경제의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초국적-자본에 대한 일체의 규제를 폐지시킨다.

파괴가 시작된다! 그러면 그 다음으로 상품자본, 생산자본이 쇄도한다. 그리고

문화적인 것이 가세하여 사람들을 초국적 자본의 임금노예로 굴종하도록(“고통

을 참는 자에게 희망이 있다”면서!) 꼬드기고, 또 상품-구매자로서 햄버거 가게

앞에 줄을 서도록 세뇌한다. 이러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자는 군사력으로 제

압한다.

그러나 이 점만 보면 신자유주의가 지난날의 제국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구별

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침략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개조하는 데까

지 나아가고자 한다. 각 나라의 내부-질서―경제나 정치만이 아니라 생활양식까

지, 나아가 문명까지―를 개조하려 든다. 그리고 이렇게 개조해 나가는 데 있어

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노동자 계급을 파괴하고자 한다. 그 일환이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이다.

지난 3월 19일 언론에 보도된 주한 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복수노조 허용 철회, 퇴직금 제도 폐지, 파업시

대체근로자 고용,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 제약 등을 “노동관행의 개혁안”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초국적 자본의 유연화 공세는 단지 “경영상의

이유”로 고용-규모를 좀더 원할하게 조절할 수 있게 하자는 데 그 목표가 국한

되어 있지 않다. 그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서 노동운동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이를 통해 노동자를 개개의 노동자로 파편화시킴으로써, 노동자 계급의 파괴까

지를 노리고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국민의 80%를 항상 심한 고통 속에 몰아

넣는다. 또 그 일부는 아예 체계적으로 사회에서 배제시킨다. 그래서 감옥이 급

격히 늘어난다.

파괴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이 땅의 노동자.민중을 앵글로-색슨식 인간형

(심성까지 자본에 깊숙히 예속되어 개인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으로 된)으로 개

조하고자 한다. 이것은 말이 개조이지 인간성의 파괴이다! 이것이 이른바 “신문

명 건설”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하여 초국적-자본의 영구적인 지배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3) 투쟁만이 아니라 저항이 불가피하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타협을 거부하는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 약소민족에

대해서나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나 공히 그러하다. 그 공격은 차라리 야만적이다.

민족국가를 한편으로는 껍데기만 남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히 자본의

민중억압 도구로 역할하도록 재편하려는 악랄함을 보인다. 또 노동자 계급을 해

체하려 하고 나아가 인간성을 파괴하려는 악랄함까지 보이고 있다. 야만적인 동

시에 실로 무모한 공격성이다! 그러므로 해서 “투쟁” 정도가 아니라 “저항”이

불가피해진다.

이 저항은 어떤 이데올로기에 고무되어서 일어난다기보다 인간성의 발로에서

지극히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다. 전 세계 민중은 인간으로서의 생존, 생명을

위협받는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투쟁하게 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생

존권적인 투쟁조차 지배세력이 적대적으로 폭압함으로 인해 저항으로 된다.

어떤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저항하는가? 영국의 리버풀 부두 노동자들의 경우

에서 보듯이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파견근로자와 임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선두에 나선다. 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실업자 대행진

에서 보듯이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실업자들이 투쟁으로

나선다. 그리고 실업자 축에서조차도 배제당한 사람들―이민 노동자들, 인디안

원주민들이 투쟁에 나선다. 심지어 동성애주의자들도 사회적인 배제에 맞서 투

쟁한다. 이렇게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이 저항의 기치를 들어올린다. 거기에 노

동자 대중이 어깨를 건다.

신자유주의는 또 생계농업 대신 수출농업(축산이나 커피재배)으로, 또 농산물

수입으로 농가경제를 파탄낸다. 그리하여 생존의 벼랑에 몰린 농민들이 투쟁으

로 나선다. 도시에서는 빈민층이 늘어나고 이들이 또한 빈곤에 항의하며 또는

자본의 도시개발에 맞서 투쟁으로 나선다.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들과, 그들을 보며 자신의 암울한 운명을 내다보는 예비노동자인 학생들이 또한

저항으로 나선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민족국가를

무력화시키면서 제3세계에서 미약하나마 성장하던 소시민들도 고통으로 몰아넣

는다. 그리하여 도시의 소시민들―비특권적 중산층―이 체제내적인 세력으로부

터 저항세력으로 돌아서게 된다. 한편 선진-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생활

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한동안 순응하기만 하던 노동조합이 마침내 저항을

개시한다. 95년 프랑스 노동자 총파업과 97년 미국 화물트럭 노동자들의 눈부신

승리가 이것을 확인시켜 준다.

이렇게 되면서 전 세계의 양심세력이 또한 이 투쟁에 동참하게 된다. 신자유

주의 세계의 자연파괴가 초래하는 환경재앙을 보면서 생태주의 운동들이 확대.

강화된다.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대거 노동력으로 끌어내고(이것은 노동력 공급

확대의 원천이 고갈된 선진-자본주의에서 노동력 공급을 확보하는 유효한 방법

이다) 초과착취함으로써 여성해방운동이 새롭게 활성화된다.

4) 각기 고립된, 자연발생적 저항만으로는 안 된다.

이렇게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지배세력은 세계적 차원에서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빅 쓰리로)

민중은 극히 분산되어 있다. 이런 대결 구도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복잡한 이론의 뒷받침 없이도 세계적인 민중

연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연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어느 지역의

민중의 저항에 대하여 전 세계적으로 지지.지원하는 것이다. 멕시코 치아파스

주 원주민(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저항에 대한 범세계적인 연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저항을 계기로 하여 ‘인간성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

륙간 모임’이 이미 두 차례 열린 바 있다. 그리고 이 연대의 힘으로 멕시코 정

부로 하여금 저항세력에 대해 무자비하게 압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97년

정초 우리나라 노동자 총파업에 대한 범세계적인 지지도 이런 경우의 하나이다.

이것이 탄압을 억제하는 힘을 발휘했다.

다른 하나는 상설적인 국제 연대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다. 지난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자유무역과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지구

적 민중행동 : PGA”이라는 전 세계적인 민중운동단체 네트워크 제1차 국제회의

가 열린 바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오는 4월 2일에 “PGA 국제회의 보고와

신자유주의 대응을 위한 토론회”가 있을 예정이다. 오늘날에는 초국적-자본이

전 세계적 지배를 위해 정보.통신을 발달시키고 있는데, 이처럼 이것을 능동적

으로 이용하면서(정보 네트워크 방식으로) 세계적 범위의 연대가 구축되어 가고

있다.

한편 이러한 “세계적”인 연대는 아직 “대륙적”인 연대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인간성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륙간 모임’은 아직

아시아 대륙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륙적 연대는 오늘날 교통의

발달에 비추어 보면 “투쟁 현장으로 달려가서 함께하는 연대”를 가능케 할 것이

다. 그리고 같은 대륙 안에서는 설사 민족은 다르더라도 종교적, 문화적 친근성

이 높고 인적인 교류도 활발하므로(가야 시대에 이미 왕비가 인도에서 왔다는

데!), 보다 대중적인 연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도에서 우리나

라에 이르는 아시아 대륙 연대의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것은

이 지역에 많은 자본을 내보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민중운동에게 특별

히 부여되어 있는 책무라고 할 것이다.

5) 국제연대에 앞서 국내 민중연대, 선거의 연대가 아니라 저항의 연대가 절

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전 지구적 범위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국제연

대가 부쩍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지극히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 세계적 연대는 민족국가 내부의 노동

자.민중의 저항과 연대가 없이는 매우 공허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지구촌이 아

무리 세계화되고 있다고 해도 민중의 ‘공동체적인 삶’은 여전히 한 민족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튼튼히 그 기

초로 하지 않는 국제연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별반 위협이 되지 못한다. 멕시

코의 경우에도 사파티스타 원주민들의 과감한 저항을 기초로 하면서, 이에 대한

멕시코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투쟁이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원군이 되었

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지금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를 계기로 하여 신자유주의 공

세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근본적 개혁이라고 기만하면서 온갖

파괴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이 “변혁”을 외치고 있다. 그들이 “해방”을 입에 올

리고 있다. 그들이 “천국”을 약속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기자회견을

보면 “기업하는 천국을 만들겠다” “기업을 규제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중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야만 미래가

있다”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은 이미 고통 정도가 아니라

고난으로, 미래가 아니라 죽음으로, 생존과 생명의 파괴로 내몰리고 있다. 희망

은커녕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통곡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광기마저 번득이며 더욱 거세게 공격해 오고 있다.

파괴는 이미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실업자가 이미 1백만 명을 넘어섰다.(일

주일에 한 시간만 일해도 실업자가 아닌 통계기준으로) 앞으로 실물부문으로 공

황이 확대되면–조만간 그렇게 될 것인데–그 수는 2, 3백만 명이 된다고 이미 서울역 대합실에 “집 없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더 이상 무슨 긴 설

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민주노총에서는 어느 위원장 후보자가 5월 1일 노동자 총파업, 총궐기 투쟁을

제안하고 있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 등의 노동악법을 전면 무효화할

것, 재벌개혁 등의 민주개혁 과제를 즉각적으로 시행할 것, 실업자에 대한 실질

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 굴욕적인 IMF 구제금융 이행조건을 백지화하고 전면적

으로 재협상할 것, 경제 청문회를 실시하고 경제파탄 책임자를 처벌할 것, 부당

노동행위 금지와 해고자 원직복직 및 양심수 전원석방을 실시할 것 등을 요구로

제시하고 있다.(한국통신노조에서는 이미 이 총파업을 지지하기로 입장을 발표

했다) 그리고 “경제주권 및 민중생존권 사수 범국민 대책위원회”라는 민중연대

기구의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제시나 제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동양엘리베이터

노조, 경원세기 노조를 비롯하여 도처의 단위 사업장에서 생존권 사수를 위하여

사활을 건 파업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중연대는 이러한 투쟁들과의 연대에 일차적인 중점

을 두어야 한다. 이 투쟁들은 거의 모두가 생존권적이고 기본권적인 요구에 관

한 것이다. 임금삭감 및 체불, 정리해고, 파견근로 도입, 단협 불이행과 노조

탄압, 단협개악 강요를 비롯하여 노동법 개악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 없이! 그리

고 법도 없고, 안면도 몰수하고! 그래서 투쟁은 지금 주로 노동자들에게 터져나

오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실업 노동자로 확대될 것이다. 이를 위해 실업자 동

맹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이미 전국건설노동실업자동맹이 20일 결성되었다) 투

쟁은 앞으로 도시빈민으로, 농민으로 확대될 테지만, 지금은 이처럼 주로 노동

자들이 저항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은 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

로 전투적 연대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이 끝난 다음에 농민이 투

쟁하고 그 다음에 도시빈민이 투쟁하는 식이 되어서는 이 절대절명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이번 결전에서 노동자가 패배한다면 당분간은 저항다운 저항

은 어려워진다!

한편 그 동안의 민중연대는 이러한 “투쟁과 저항의 연대”가 아니라 “캠페인과

선거의 연대”가 중심이 되어 왔다. 전국연합이 그러했고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투쟁하는 민중의 연대를 중심축으로 하지 않을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대중행동은 기껏 언론보도에나 초점을 맞춘 캠페인성 행동으로 떨어

지고 만다. IMF협약 체결 당시 그랬다. 특히 선거에 나가서 표얻는 것을 중심으

로 하는 부분들이 이끌고 가는 민중연대는 대중에게 허무주의만 보태줄 뿐이다.

‘국민승리21’이 그러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정리해고제의 법제

화이고 세계가 경악한 IMF “신탁통치”이다. 대중의 무력감이다. 이것을 극복하

려면 이 사람들이 또다시 이 중대한 투쟁을 지도해서는 안 된다.

6) 저항의 연대는 민중의 생존권적 요구와 투쟁으로부터!

저항의 연대는 생존권적, 기본권적인 생활상의 요구에 기초해야 한다. 신자유

주의는 그것의 파괴를 추구하고 있고, 바로 그곳에서 민중과 신자유주의 세력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공격은 민족국가와 민족

경제의 무력화와 개조를 통하여 관철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정세 하에

서는 이것들을 지켜내는 것이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해진다.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 철회를 요구하고 경제주권 수호를 주장하는 것을 민족주의라고 폄하하

거나, 더 나아가 국수주의라고 매도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그것을 요구.주장하

며 초국적-자본의 공격을 격퇴하는 과정 속에서 민중의 생존권을 사수하면서,

천민재벌과 및 북풍공작이나 일삼는 파쇼 폭압기구를 해체시키고, 반민주악법을

철폐시키고, 정치.경제의 진정한 민주화를 쟁취해야만 한다. 그러한 대응을 통

해서만 초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 총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그러므로 저항의 연대는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 철회ㅡ민주대개혁 운

동”으로 모아져야 한다. 이것을 큰 방향으로 하는 속에서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

투쟁들을 과감하게 수행해야 하고, 이 속에서 민주대개혁을 넘어서는 진보의 동

력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 민중과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저항의 연대는 지금 매우 긴급을 요하고 있다. 아니 이미 귀중한 시간

을 상당히 허비했다고 말해야 옳다. 그러나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듯이 우리

운동은 봄에 활짝 꽃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봄이 오고 있다. 98년의 봄은

어떠한 봄이 될 것인가? 과연 희망의 봄이 될 것인가? 희망과 미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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