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록]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진정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공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어떤 위기?―① 내외 지배세력의 총체적 총공격으로 인한 존립의 위험이다.

우선 지금이 과연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맞는가? 지금 이 시기에 위기가 아

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위기인가 하는 점에서는 시각상

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과연 어떤 위기인가?

먼저 경제 대공황 하에서 물밀듯이 밀어닥치고 있는 임금삭감, 대량해고 등

유연화 공세를 비롯한 자본의 총공세로 인하여 노동자 대중이 문자 그대로 생존

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의 공세 그 자체와 그러한 공세

에 노동운동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중첩됨으로 인해서 노동운동의

조직력은 현장에서부터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조직력을

유지하고 위상―투쟁을 통해 노동자 대중의 권익을 수호하는 자주적 결사체로서

의―을 지켜낼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위기상황이다. 즉 노동자 대중의 생존의 위기이고, 민주노조운동의 존립의 위기

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 계급과 노동운동이 처한 위기―기회를 내포한 위험―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다. 만약 위기가 이것만이라면 우리는 흔히 말하듯이 위기

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진보와 변혁의 계기로 전환시킬 수 있다.(예컨대 노

동조합운동은 다소간 위축되더라도 변혁지향의 노동자 정치운동은 급격히 고양

되는 등으로) 그러면 이번 상황은 과연 그러한 위기인가? 쉽게 기회가 될 수 있

는 위험인가?

공황은 자본축적 과정의 파국이며 따라서 축적의 위기인 동시에 지배세력 측

의 “체제적” 위기일 수 있다.(이른바 좌파적인 부분에서는 이 “체제”라는 개념

을 선호하고 있다. 예컨대 “IMF 체제”라고.) 일반적으로 그러하다. 그러나 이번

공황은 IMF 신탁통치라는 세계체제적인 변수가 첨가되어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가해지고 있는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전

면]개방.[신자유주의]개혁 공세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의 표현이 아닌 이

상―현재 세계경제가 심각한 과잉생산 상황임을 감안하면 장차 세계공황과 자본

주의 세계체제의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은 한마디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한 공세를 자본측의 실패의 표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그들의 공세는 우리들에게 실로 심대한 위협으로 되고 있

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공황에 대해서 우리에게 위험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라

고 말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틀에다 현실을 꿰맞추는 방식이다. 현실을 매우 도식적으로 또는 일면적으로(일

국적{一國的} 공황으로만) 바라보는 인식의 소산이다.

다른 한편 현 상황을 노동자.민중에 대한 위협으로만 바라보고 국내 지배세력

에게도 “위기적”임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일면적이다. 재벌.특권관료 등

지배세력은 분명히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자본은 공황, 그것도 대공황을

맞이하여 폭력적으로 자신의 자본가치를 깎아먹어야(減價) 할 형편이다. 게다가

종래 국내시장에 대해 행사하던 배타적 지배권을 상당 부분 초국적 자본에게 내

놓아야 할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 위험을 과도하게 보면 안 된다. 그들

에게 있어서 초국적 자본은 ‘욕심많은 놀부 형님’인 동시에 확실한 우군이기도

하다. 그들(초국적 자본과 국내 독점자본)은 상호 치열하게 각축하면서도 노동

자.민중을 착취.수탈.억압.위협하는 데는 굳건히 손을 잡고 있다. 그러므로 국

내 지배세력은 자신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그 점은 매우 분명하지만, 우리 노동자.민중처럼 생존.존립이 문제되는 절대절

명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니다.(오늘자 신문을 보면 삼성이 포드와 합작

하여 기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은 존립의 위기가 아니다!)

이와같이 현재의 상황은 단순도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내부의 국민경제와 외

부의 세계경제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요컨대 현 상황을 “공황”이므로 자본의

위기라고 한마디로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이 아니다. 과학은 도식적이 아니라 구

체적이다. 공황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IMF 신탁통치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 국내 지배세력에게는 초국적 자본이라는 적수인 동시에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은 표면상으로 재벌을 해체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국

내 독점자본의 존재까지 없앨 의향은 아니다. 당장에 그렇게 바꾸게 되면 자신

들이 경영자가 되어서 한국 노동자들을 직접 지배해야 민족적 차이로 인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들의 이윤추구 활

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이 조성되기 때문이다.(예외적으로 금융부문에서

는 직접 경영을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여타 부문에서는 국내 독점자본을 하위

파트너로 삼고자 할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초국적 자본이 직접 지배를 추

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생활양식의 개조까지 하면서!)

반면에 현재의 상황은 우리 노동자 계급에게는 지금이 실로 심각한 위험 상황

이다. 초국적 자본, 국내 [독점]자본, [신자유주의적] 정권이 총 합세하여 노동

자.민중을 향해 총공격해 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노동자 계급과 노동운동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 조건은 매우 위협

적이다. 노동자 대중의 “생존”이 위태롭다. 노동운동의 “존립”이 위태롭다. 외

세와 국내 지배세력이 손을 잡고(기본적으로 이렇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를 위

협하고 있다.(정권까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제한적이나마 노동자측을 대변할

야당조차 없다. 야당은 신자유주의적인 요소와 수구적인 요소의 잡탕일 따름이

다) 그래서 극도로 위협적이다. 이런 상황이 무리 노동운동 상층부가 타협적인 성향이라 해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졌을 리

없다. 이것을 냉철하게 인정한 바탕 위에서 위기에 관한 인식이 이루어져야 한

다. 상황을 쉽게 인식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어떤 위기―② 밖으로부터의 총공격과 안에서의 붕괴가 겹쳐 있는 진정한 위험

이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과 노동운동의 위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객관적인 것과 주

체적인 것이 중첩되어 있다. “위기는 운동 외부적이 아니라 운동 내부적이다”도

맞지 않다. 또 “위기는 운동 내부적이 위기는 노동운동 외부적인 동시에 내부적이다. 그래서 더욱 쉽게 기회로 반전시

키기 어려운 위험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객관적 조건으로부터 오는 위험에 대

해서는 위에서 언급했다. 그러면 주체적 조건에서의 위험은 도대체 무엇인가?

민주노조운동의 대중적 구심인 민주노총은 지금 지도부 선출을 하지 못하고

몇 달을 끌어오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2월 9일, 정리해고 법제화 노사정 합

의 인준(지도부는 인준이 아니라 추인으로 간주했다. 노사정 위원회는 그러한

인준절차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권조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을 위해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1기 지도부가 사실상 불신임되고 새 지도부에 입후보

한 후보자들이 전부 무효화되었다. 그리고 총파업을 방침으로 결정하고 비대위

를 구성하였으나 비대위는 돌연 총파업을 취소하였다.(2월 13일) 그 이후, 비대

위 평가를 위한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으나 그것은 유야무야되고 갑자기 차기

지도부 선거를 다시 실시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3월 0일) 그리고 상층부(그것

도 패권적 부분이 아닌 여타의 부분을 배제한 가운데)에서 후보 단일화라는 이

름 아래 대중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밀실 작업이 추구되다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 이후 간신히 경선이 치러지게 되었으나 어느 쪽도 대중의 냉소주의를 극복하

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불신” 상태이다. 어느 위원장-총장 후보의

5.1일 총파업.총궐기 제안조차 이 불신과 냉소주의 속에 묻혀 버렸다. 이것이

지난 2∼3월 두달간의 민주노총의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임원선거에서 한쪽 후보는 기존의 집행부를 계승하는 것으로, 다

른 쪽 후보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전열이 구성되었다.(객관적으로 보기에

그러하다.) 이것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 편갈림은 선거

가 진행되면서 민주노총 결성에서부터 지난번 노사정 위원회의 정리해고제 합의

에 이르기까지의 민주노총 3년간의 활동 전반에 대한 평가를 놓고 그리고 향후

활동방향을 놓고 점점 더 멀리 갈려져 갔다. 그리고 논쟁이 날로 격해져 갔다.

(이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현장 대중의 시

각이 후보들에게 투사된 면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쟁점은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냐 아니냐, 관료주의 특히 관료화된 상층부의 물갈이냐 아

니냐로 갈라지고 있다. 양측 공히 투쟁을 강조하고, 현장을 강조하고,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 지점에서 깊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차이는 정책과 노선의 차이인가? 우리가 보기에 그 수준을 넘는 것 같다.

정책.노선의 차이를 넘어 민주노총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차이를 드러내고 있

다. 그렇다. 지금은 민주노총의 정체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과 민

주노총은 관제어용을 탈각하지 못한 한국노총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 문제

로 되고 있다.(이갑용-고영주 후보는 “민주노총의 지도부를 새롭게 세우고 노동

운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바로 자본의 공세로부터 노동운동을 지켜내고

새롭게 운동의 전망을 열어가는 첫걸음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정체성 문

제는 뒤에 가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들이 어째서 그 동안에는 표출되지 않다가 이제 와서야,

그리고 그처럼 심각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가? 종래의 민주노총―그 결성에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에 대해서 그 동안에는 모두들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 동안에는 어째서 비판다운 비판 한 번 없었더란 말인가? 그러더니

이제 와서 민주노총의 그간 3년 활동을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다. 종래에는 민주노총 운영과 활동을 비판하는 것을

억압하던 사람들까지 이제 비판자가 되어, 아니 그것을 넘어서 청산론자가 되어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진정으로 애정을 가지고 비판해 온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물론 최근 몇달간, 특히 비대위 이후의 민주노총 상층부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 격렬한 주장을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비판

없는 전면 부정은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문제의 진정한 비판과 극복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어쨌건 이렇게 되면서 민주노총은 지금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청산할

것인가, 고수할 것인가라는! 아니면 대혁신으로 철저히 재정립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삼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정체성 문제>

우리는 그간 민주노총이 전반적으로 매우 우경적으로 기울어져 왔다는 것, 사

업작풍이 관료.행정적이었다는 것, 조직 운영이 패권적이었다는 것(물론 그 안

에 분파가 있었지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우려해 왔고 신

랄하게(!) 비판해 왔다. 그런 것들이 누적되고 심화된 결과가 마침내 지난번 노

사정 위원회에서의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합의로 나타났고, 그 후에도

후보 단일화 밀실 작업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

운 일이다.

민주노총은 누구 몇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느 분파의 소유물도 아니다.

민주노총은 누가 뭐라고 해도 대중의 것이다. 그것도 지금의 조합원 대중의 것

만도 아니다.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의 밑거름이 되어 온 열사들, 그것을 일구

어 온 선배들의 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 60만 조합원만이 아니라 그렇게들 입에 자주 올

리는 1천3백만 노동자 대중의 것이고, 나아가 4천만 민중의 것이기도 하다. 사

적 소유의식을 버리고 이러한 사회.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오늘의 민주노총 문제

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시각에 입각해서 볼 때 지금 민주노총은 그 동안의 오류가 누적된 바탕

위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배의 모습과 유사하다.

밖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데 안에서는 사공도 없고 돛대도 없다. 침몰 직

전이다. 난파 직전이다. 어떤 사람들은 배를 오른쪽 방향으로 가져가자고 한

다.(내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잘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어져 있다[국민회의의 이론적 자문역을 맡고 있는 최장집 교수(대통령

취임 연설문 작성자의 일원)는 “하나는 노동의 기능적 이익을 대변할 노사정 3

자 협력기구의 제도화이며, 다른 하나는 노동의 조직화와 정치참여의 허용이 그

것이다”라고 민주노조운동을 유혹하고 있다.―당대비평3. 참조]고 판단된다) 그

쪽으로 가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선원을 노예로 부리는

나라이다. 그쪽 나라의 노예화된 선원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한국노

총은 전격적으로 민주노총에 통합을 공식적으로 제의했다. 그래서 같이 준(準)

국가기구적인 노사협력기구로서 역할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한편 일부 선원들은 반란을 일으킬 기세다. 노예 나라에 갈 수 없다고! 죽든

살든 왼쪽으로 가겠다고! 죽더라도 계급적 당파성이라는 호랑이 가죽은 남을 것

이라고! 폭풍이 휘몰아치니까 그 동안 사공과 함께 오른쪽으로 같이 달려 왔던

사람들까지 하며 청산을 이야기하는 동지들 중에도 많은 수가 현재의 민주노총이 보여주고

있는 흐름과 행보를 같이 해 오지 않았던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의 대선

참여에 대해 진지하게 대중적으로 토론한 적이 있는가? 애초에는 대중투쟁을 하

다말고 팽개치고서 다들 국민승리21로 달려가지 않았던가? 그것에 적극 참여하

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나중에 ‘종이정당’ 문제가 나오고 나서야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않았던가? 준(準) 국가기구적인 노동조합으로 가져가는 것(예컨대 지역

협의회 또는 지역본부 사무실을 한국노총과 같이 정부(지방자치체)가 제공하는

건물에 입주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는가? 민주노총 중앙을 비판하면, 민주노총

을 부인하는 세력이라고 매도해 오지 않았던가? 명백히 부도덕하고 비민주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중앙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윽박질러 오지

않았던가? 민주노총의 위기는 결코 최근에 느닷없이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어

느 후보는 “IMF, DJ정권 탄생, 노사정 위원회, 노사정 합의 직권조인, 합의안

부결, 총파업 결정, 비대위 총파업 철회! 지난 두 달 만에 3년 동안 쌓아온 신

뢰가 무너져 버렸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민주노총에 대한 문제의식

이 얼마나 빈곤한가를 보여줄 뿐이다)

이것이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왼쪽도 아

니고 오른쪽도 아니고 도대체 어디로 가잔 말이냐고! 그렇다. 왼쪽도 아니고 오

른쪽도 아니고 한 가운데로 똑바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왜 오

른쪽이 틀리면 그 대안은 왼쪽이라고 단정하는가? 왜 많은 대중이 오른쪽도 거

부하지만 왼쪽으로 가자는데 기꺼이 따르지 않고 있는가? 왜 이것도 저것도 아

니라며 냉소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것이 절충이 아

니다. 기회주의가 아니다. 오른쪽으로 내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180도 바꾸어

왼쪽으로 내달리는 것이 바로 기회주의이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것은 무엇인가? 이 점은 조금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리는 이번 임원선거 과정에서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

접근되지 않겠는가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누가 되든 그렇게 접근된 내용으로 잘

이끌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진행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 접근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과정이었다. 정치적 주장에서는 많은 접근

이 있었다. 이것은 긍정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정체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접근

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평행선만 긋고 있다. 오히려 차이가 확대되고 있다.

그 책임이 어느 일방에만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긴 설명을 할 계제는 아니

지만 분명 쌍방에 책임이 있다. 예컨대 규약상 런닝 메이트가 아닌 부위원장들

까지 위원장-총장과 같은 “진영”을 형성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블록 형성이 되

고 만다. 어느 한쪽이 임원을 싹쓸이 하는 식으로(사실상 런닝 메이트로) 되고

만다. 이것은 선거 규정에도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양측 다 그렇게 하

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민주노총은 완전히 분파적 구도로 갈라지게 될 것

이다. 좌파와 우파로! 집권파와 반대파로! 이것은 누구에게 좋은 구도인가? 이

같은 분열구도야말로 총자본측이 바라는 바가 아닌가? 이것은 결단코 조합원 대

중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어용과 민주의 대립이라면 이런 구도가 맞을 것

이다. 지금은 민주노총의 내부의 대립을 한마디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민주노조운동에는, 민주노총에는 지금 중심을 잡는 것, 정체성의 중심

을 잡는 것이 아주 긴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자주성 문제>

정체성의 중심을 잡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것의 주요 항목들은 이미 쟁

점이 되어 있다.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이다. 그밖에 기풍과 사업방식, 활동의

방향도 문제로 되고 있다.

첫째는 자주성의 문제이다. 자주성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가 이야기되고 있지

만 이 지점에 있어서 논의가 구체적이지 못하다. 자주성이 어떻게 실종되었다는

것인지 밝혀지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고 있다. 국민회의로부터의 기부로부터의 자주성인가? 그것도 아니면 외세(미 대사관과 국제노동운동을 포

함)로부터의 자주성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른바 원로라는 분들로부터의 자주성

인가? 우리의 대답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민주노총은 지금 이 지점들에서

자주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자주성과 관련하여 다음으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노사정 위원회 참여 문제

일 것이다. 참여 자체가 비자주적인 것으로 문제시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이렇다. 지금으로서는 탈퇴하는 것이 백번 맞다. 그들은 대중의

결정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고 신뢰하는 관계로서조차 상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중의 결정권을 인정

하고 재협상을 통해 재개정하도록 오히려 압박해야 한다. 원칙의 확고한 견지를

전제로 해서 공세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난번 97년 3월 노동법 개정 당시에 조합원의 단체교섭권을 박탈

하는 데 도장을 찍었다. 이것은 결정적인 과오이다. 자기 정체성의 부인이다.

민주노조가 더 이상 민주노조로서 역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법으로야 어 있건 이것을 “전통”으로서 바로 잡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협상한

내용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회부하는 것을 전제로 재협상을 요구하라! 물론 총파

업.총궐기를 통해서! 이 얼마나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에 부합하는 방향인가? 이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직권조인이니 노동관료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정부

및 자본가 대표와 공세적으로 교섭하라. 교섭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이 교섭

을 두려워하게 하자!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직권조인은 철저히 배격하자! 추

인은 물론이고 대의원대회에서의 인준 가지고도 늘인다고 해도 부족하다. 1천3백만 노동자 대중 자신의 이해관계가 중대하게 걸

린 문제에 대해 그 결정권을 대중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최소한 60만 조합원에

게 돌려주어야 한다. 지난번 노사정 잠정합의안을 지금이라도 조합원 인준투표

에 부치자!

이렇게 된다면 자주성을 잃을까 겁이 나서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지 못하는 옹

색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난번 협상이 무효임을 천명하고 공세적으로 재협상

을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노사정 협상은 자주성의 문제인 동시에 민주

성의 문제이다. 대중 결정권 박탈의 문제이다.

<민주성 문제>

둘째는 민주성의 문제이다. 다들 현장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장성

이라는 것이 여론이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라면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

화”나 다를 것이 없다. 모두들 관료화된 상층부와 조합원의 괴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적 의견수렴 구조>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

니다. 그것은 통치기술의 고도화이지 민주성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것이 없어서

안 되었는가? 대의원 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의견수렴구조가 아니

라 의사결정구조(또는 체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민주성의 핵심은 첫

째로 대중에게 결정권을 돌려주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중 결정권이다. 그리

고 걸핏하면 위원장에게, 상부에 위임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둘째는 단위노조, 지역지부(지부, 협의회, 연합이 아니라 본부라는 말부터가

명령.행정 체계를 의미한다. 관료주의의 표본이다!) 등 각급 수준에서 자율적으

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부의 자율적 결정권은 약화되고 관

료적 통제권만 강화되어 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뒤바꿔야 옳다.

다음으로 단일노조 문제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산별노조가 단일노조

로 둔갑했다. 단일노조를 만들어 놓고 산별노조를 만들었다고 호도하고 있다.

현재의 단일노조는 기업별 노조의 산업별 단일 통솔 체계일 뿐이다.

기업별 노조의 극복은 “일사불란한 명령체계”의 수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

니다. 재정 하나만 보아도 대기업 노조와 연맹과 총연맹(상급단체)에는 많으나

지역지부(산업.업종별 지역본부 또는 민주노총 지역본부로 이름하고 있는데)에

는 빈약하다. 그것도 중앙에서 다 걷어가서 하달하는 식이다. 그러니 지역조직

은 지방행정기구로 전락한다. 이렇게 되면? 대중의 의사가 밑에서 위로 올라가

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식으로 될 수밖에 없다. 국가

행정도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시대에 민주노총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그 결과로 지역에서의 일상적인 대중사업은 크게 위축되었다. 조직체계가 산

업.업종별로 분산된 데다가 돈도 없고 자율적인 결정권도 없다. 그러므로 단지

중앙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고 기업별 노조들을 통제할 뿐이다. 그래서 사업

태도가 아주 관료.행정적으로 되었다. 그러니 무슨 대중동력이 살아나겠는가?

<투쟁성 문제>

셋째는 투쟁성의 문제이다. 누구나 투쟁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강조점의

차이는 있다. 누구는 보다 대중적인 동원을 강조하고 누구는 좀더 과감한 전투

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문제가 아니다. 작년 총파업 당시

우리는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투쟁을 경험했다. 대중성 없는 전투성은 모험주의

일 것이다. 그러나 전투성 없는 대중성은 캠페인으로 후퇴할 것이다. 일가족이

자살하고, 빚으로 3대가 줄줄이 자살을 하고, 등록금을 내지 못한 중학생들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집단자살하는 이 암울한 시대에 우리의 투쟁은 전투적 대

중투쟁일 수밖에 없다. 우리 겨레의 역사에 이런 적이 있었더란 말인가?

우리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처럼 대중성이냐 전투성이냐 하는 인

위적 대립구도에 있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통일시켜 수행할 것이냐에 우리의

방향이 있다. 우리들이 요구하고 주장하는 바가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정확히

받아안고, 나아가 대중의 정서까지를 반영하는 것일 때 이 문제는 해결된다. 문

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투쟁을 얼마나 예술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가이다.

여기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문제로 된다. 이 때 국민이라는 것

이 지배언론에서 조작하고 형성한 여론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적극적인 투쟁

을 거의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서 그러할 것이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그러한 경향에 젖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앙

일보처럼 조합원 여론조사 하는 것을 방침 결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왔던

것이다. 이처럼 의식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 여론조사에 의거할 때 부

르조아적 요구를 내거는 캠페인성 행동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된다.

반면에 대중의 가슴 속에 있는 정서를 고려하지 못하고 “계급성”이라는 이름

아래,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조합주의적이고, 노동자주의적인 것만을 내세울 때

투쟁은 대중투쟁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광범한 노동자 대중과 민중의 동참은

물론이고 조합원 대중의 참여도 어려워진다. 투쟁의 주체를 의식화를 통해 일으

켜 세우는 것과, 광범한 노동대중 및 민중의 동참을 확보해 내는 것 둘 다 중요

하다. 이 둘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도 우리 운동이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전형적인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

다. 전투성이냐 대중성이냐 하는 대립구도가 그것이다. 누구는 전투성을, 누구

는 대중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하나만을 쫒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둘을 통일적으로 해결해 내는 것, 그것

이 진정으로 어렵고 연구와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여전히 고민을 덜하

는 방식으로, “게으른” 대립이 반복되고 있다.

누구는 머리깎고 농성하는 투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한다. 누구는 대중

에 영합하는 대중성을 비판한다. 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도부가 구속되기

를 주저하면서 지난 총파업 투쟁의 성과는 “조합원의 단체교섭 결정권을 내주

고” “합법성이라는 면허증을 얻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이렇게 볼 때 지도부의

과감한 행동성, 결단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도부는 개인이 아니다. 명동성

당에서 머리깎고 텐트 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투쟁을 대중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단순히 대중이 동참하기 쉽게 하는 것

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대중에 영합하는 것이다. 대중으로 하여

금 협소한 이해관계를 넘어 계급적.민족적 이해관계를 자각하게 하고, 기업이나

업종(제조업, 사무직, 공공 등)의 벽을 넘어서 계급적으로 상호 신뢰하도록 하

고, 그리고 그러한 자각과 신뢰를 바탕으로 어깨걸고 과감하게 행동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투쟁의 예술이다.

이것은 지난 10여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런 방향성이 우리 운동의 기본

으로 자리잡힐 만한 때가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투성과 대중성의 낡은 대

립구도만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깊이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기풍의 문제>

넷째는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 기풍 또는 사업방식(포스트 모던 식으로

조직 문화라고도 하는데)의 문제이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노총에는 만장일치가 능사가 되어 왔다. 창립 위원장 선거

에서부터 그러했다. 이것은 하나의 관행으로 이어져서 지난 총파업 이후 민주노

총의 명운과 직결되는 정치세력화 방침에 관련해서도 제대로 된 토의 한 번 없

이 위원장의 권위로, 만장일치로 처리되었다. 조합원 대중 차원의 토의는 물론,

대의기구에서도 제대로 토의되지 않았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누구도 그 결정

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국민승리21에는 조합원의 절반도 자

기 조직이 낸 후보를 그것도 위원장을 찍지 않았다! 이 정도면 통렬한 자기반성

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른 하나는 전체주의적 기풍의 문제이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노총 안에서는

“튀면 찍힌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왔다. 올바른 이야기를 하면 “너무 튀는 것

아니야!” “자네 너무 튀어!” 한다. 그러면서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따돌린다. 나

아가 그 사람과 상종하는 사람도 위험분자로 간주한다. 이렇게 해서 다수파에

대해 전체주의적으로 순응하는 기풍을 조성해 왔다. 모든 연맹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연맹에서는 분명히 그러했다. 이것은 어디에서부터 배워 온 기풍

인가? 정녕 민주노조운동의 전통 속에는 없던 것이고 굳이 연원을 찾자면 한국

노총에서나 찾아야 할 것이다.

<활동방향의 문제>

마지막으로 정치적 방향성(계급성과 변혁성)의 문제이다.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을 바르게 세워내고, 노동자적인 기풍을 회복하는 것

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것이 정치적 방향성을 바르게 잡아나가는 것이다. 이것

과 관련하여 지금 계급성과 변혁성이 이야기되고 있다. 누구는 계급성을, 누구

는 변혁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정치적 방향성의 문제는 그 동안에는 잘 드러나지 않아 왔다. 그러다가 경

제 대공황과 IMF 신탁통치 정세 속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80년대

운동권의 우파적, 좌파적 틀이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할 뿐

만 아니라 지난 몇 년을 경과하면서 반(反)외세에 대한 문제의식의 대폭적인 실

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이 공황이 초래된 원인으로부터, 그것이 오늘

과 같은 극단적으로 노동파괴적인 양상으로 진행되게 된 이유에 이르기까지 초

국적 자본-미국-IMF라는 요인을 주요 요인에서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거의 대부분이 이것을 재벌을 개혁하는 데 “활용”하자는 환

상을 퍼뜨렸다. 김대중 정권을 믿고서 힘을 합쳐 재벌을 개혁하자고! 초국적 자

본이 마치 우리 편이 되기나 한다는 듯이! 신자유주의 김대중 정부가 마치 우리

편이기나 하다는 듯이!

민주노총에서 IMF 신탁통치 강요에 대해 어떤 조직적인 투쟁이 있었는지 찾아

보라! 전 세계가 경악하던 IMF 신탁통치가 강요되던 그 시기에! 민주노총은 고

작 캉드쉬에게 왜 우리와 직접 협상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면서 자신의 위상 제고

에나 신경을 썼다. 그 결과가 바로 정리해고제의 관철이다. IMF 신탁통치를 기

정사실로서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어떻게 노동시장 유연화, 정리해고제를 반대

할 명분과 대의를 찾는단 말인가? 대중에게 그들의 강요를 받아들이게 만들어

놓고서! 또 이 참을 활용하여 재벌을 개혁하자고 계산(?)을 하는 속에서 어떻게

국가부도를 막으려면 외국자본을 들여와야 하고, 외국자본을 끌어올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자본과 정권의 논리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듣기로 재벌측은 IMF 신탁통치를 노동운동을 깨고 정리해고제를 관철

시키는 기회로 활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누구의 것이 관철되

었는가? 그들의 것이 아닌가? 그들이 신탁통치를 반대하지 말라고, 우리들의 정

당한 주장을 국수주의라고 떠들어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진보적 지식인들과 민

주노총이 그들과 똑같은 입장이지 않았는가? 외세의 힘을 빌려(말이 좋아 기회

를 이용하여!) 재벌을 개혁하자고?

요컨대 외세를 활용해서 국내 지배세력과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을 계급적인

입장이라고 호도하는 잘못을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런 정치적 입장은 계급

성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 그것은 기회주의일 따름이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IMF 신탁통치 반대투쟁만 하자거나, 지금도 IMF 협약 원

천 무효화를 가장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IMF 신탁통치

에 따라 정리해고제가 관철.집행되고 있고, 실업자가 2백만을 육박하며, 실물공

황이 밀어닥치고 있다. 지금의 정세는 지난 연말연초와는 많이 변했다. 아니 예

정된 과정이 많이 진행된 상태이다. 지금은 대중의 생존권이 직접적으로 위협당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요구의 가장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세력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초국적 자본-미국

-IMF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IMF 신탁통치든 IMF 체제든! 체제라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그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해야 정권과 자본의 논리를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 간접적으로 공격해서는 효과적일 수 없다. 정

부를 향해 “내정간섭 받아들이지 말라”로 되어서는 안 된다. IMF-미국을 향해

신탁통치를 철회하라고 나가야 한다. 직접적인 공격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 방향 아래서 정부로 하여금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갖도록 압박(구체적으로

재협상에 나서도록 촉구하고)해야 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무책임하게, 나아가 반노동자적으로 기만하는 정권을 비판하고 공격해야

한다.(실효성 있는 실업대책 수립 요구, 정리해고제 무효화 요구 등으로!) 김대

중 정부를 보다 직접적으로 보다 강도높게 공격하는 것이 곧 계급성은 아닌 것

이다!

또 하나 꿰뚫어 보아야 할 지점이 있다. 지금 IMF체제는 비틀거리고 있다. 그

들이 무모한 공격을 가했으므로 그들이 강요하는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국제적으

로 부인당하고 있다. 이 취약한 지점을 공략함으로써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성과

를 쟁취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과 쟁취의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광범한 민중(국

민이라고 해도 좋다. 그것이 일어나라 코리아 같은 국민주의가 아니라면)을 우

리의 둘레에 모을 수 있다. 광범한 대중에 대한 이러한 지도력을 가지고서만 단

지 한 번 거창하게 전투를 치르는 것을 넘어서 계속되는 큰 투쟁의 승리를 내다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번 싸움은 일회용 전투가 아니라 중.장기적 전쟁의

출발이다. 그러므로 광범한 대중을 더 많이, 더 튼튼히 결집하는 것이 매우 중

요하다. 그래야만 그들의 공세를 저지하고 계속 전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정리해고제 무효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보장을 쟁취할 수 있다. 나아

가 민주변혁으로 전진할 수 있다.

요컨대 노동운동은 광범한 노동자.민중에 대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

한 지도력을 가지고 신자유주의 정권이 아니라 우리 노동운동이 대중을, 노동

자.민중을 자신의 둘레에 모아냄으로써만 정권과 자본을 압박하여 정리해고제를

철회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민주변혁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지금은 경제 대공황과 IMF 신탁통치가 중첩되어 전개되고 있

는 정세이다. 그리고 칼자루는 IMF-미국-초국적 자본이 쥐고 있으며, 그들은 상

당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 취약점을 공략하여 일정한 성과를 쟁취할 때,

그 자신감으로 대중은 계속 전진할 것이다. 또 전체 민족적.민중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 지점을 공략함으로써 노동운동은 노동자 대중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4천만 민중에 대한 지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민족.민중의 이해

관계까지를 대변하는 것이 참된 계급성일 것이다. 또한 그렇지 않고는 한판 격

렬한 싸움은 가능할지라도 우리의 요구들을 쟁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에 따

라 대중으로 하여금 또다시 깊은 패배감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방향성을 더 이상 80년대 운동권의 NL, PD 도식에

끼워맞추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당시에도 그것들은 옳지 않았고, 지금의 조성

된 정세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생존권을 유린당하는 노동자.민중과 내외 독점자

본이 지금 대결하고 있다. 첫번째로 유린당하는 것이 노동자이므로 노동자를 주

축으로 기층민중과 나아가 전체 비특권 대중이 뭉쳐야 한다. 그리고 내외 독점

자본과 대결해야 한다. 그들 가운데서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IMF-미국-

초국적 자본이며, 그들은 또한 세계적으로 비난받고 있고 특히 한국에 대한 무

모한 신탁통치는 광범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재벌과 노동자

가 싸우게 해 놓고 자신들이 두 가지 이익―재벌 약화와 노동 무력화―을 동시

에 얻어내고 있다. 그리고 서구의 노동운동들이 국제연대라고 포장해서 이것을

또한 부추기고 있다.

<혁신에 대하여>

만약 위에서 말한 방향이라면, 그것을 정체성의 중심으로 설정한다면, 민주노

조운동 안에서 지금 심각해지고 있는 주체적 조건에 있어서의 위험상태를 극복

하는 길이 찾아지리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물론 단기간 내에, 당장에 극복되지

는 않을 것이다. 각자가 처하고 있는 사업장의 조건이 다르고, 운동해 온 경험

이 다르고, 거기다가 운동을 배우면서 보고 읽은 책이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 하

는 것들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들은 다양성으로서 존재하면서

도 통일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이다. 지금은 그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통일성을

만들어 내야 할 시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차게, 승리적으로 투쟁해야 할

시기이다.

만약 올바른 방향에 의해서 승리적으로 투쟁하게 되면 우리 내부의 차이들도

적대성이 아닌 다양성으로 되면서, 자주성.민주성.투쟁성이라는 원칙들을 살리

는 방향으로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투쟁을 만들어내

지 못한다면 혁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공문구가 되고 말 것이다.

혁신의 주체는 대중이다. 대중을 주체로 세워줘야 한다. 대중은 투쟁의 과정

에서 주체로 세워지기가 가장 쉽다. 투쟁 과정에서는 대중이 제 목소리를 내게

된다. 대중은 투쟁의 동력이기 때문에, 자기를 바치고 있기 때문에 투쟁 속에서

는 적극적으로 주인으로서의 발언권을 행사하고자 한다. 물론 대중을 대중성이

라는 이름 아래 동원의 대상으로 삼을 위험성은 투쟁 속에서도 얼마든지 상존한

다.(그래서 대중성이 곧 대중 주체성이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교육과 선동의

과정에서보다 대중투쟁의 과정에서 대중을 주체로 일으켜 세우기가 훨씬 쉽다.

이런 점에서 대중 주체성을 강조하고, 지도부의 직접 선출권을 강조하는 동지

들도 대중투쟁을 통해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같

은 투쟁 되기나 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직선제라는 방식만으로 충분할 것인가? 그것이

과연 민주성 확보의 핵심고리일까? 더구나 현재와 같은 불신과 냉소주의를 놓아

두고서 직선제를 실시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또 최소한 일년 후의 일일 따

름이지 않은가? 그때 가면 상황은 또 어떻게 달라질는지? 지금은 1년 후가 문제

가 아니다. 지금 당장이 문제이다. 따라서 지도부 직선제와 더불어 투쟁의 용광

로 속에서 대중을 주체로 세우는 혁신을 해야 한다. 이 때 핵심은 협상에 대한

대중의 결정권이다!

우리는 87년의 대통령 직선제가 정치를 민주화하는 데 기여하기는 했지만, 다

른 한편으로는 국민대중을 정치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지역주의의 포로로 만들

고 있음을 지금 보고 있다. 이렇게 된 가운데 수구.보수 세력만이 정치판을 배

타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대중은 당연히 자신의 대표자를 직접 선정할 수 있어

야 한다. 이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의 중요한 한 항목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업과 운영의 결정권을 선출된 사람에게 몽땅 내맡기지 않고

대중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민주노조운동에서는 단체협약에

대한 인준투표이다. 이것이 또하나의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의 중요한 항목이

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는 그 어려운 투쟁 상황 속에서도 이것을 실시했다. 민

주노총이 지금 이것을 해야 한다. 이것을 하면 노사정 위원회는 코포라티즘(담

합주의) 기구가 아니고 참여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없으면 직선으로 뽑

힌 위원장이라도 직권조인해도 그만이다! 그러한 직권조인을 무효라고 주장할

근거가 직선제만으로는 확보되지 않는다. 대의원대회 인준만으로는 안 된다. 대

중의 직접 결정권이어야 한다! 우리의 대중 민주주의 원칙과 방식을 그들이 인

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내부적으로 “교섭에 대한 조합원 결정권”을 원

칙으로 정하고서 과감하게 투쟁하는 것뿐이다. 이것 없이는 그들은 결코 우리의

원칙과 방식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혁신”은 불충분하다고 본다. 혁신은

구호성에 그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혁신이냐 위와 아래 동시 혁신이냐라는 애

매모호한 공방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혁신의 기본방향은 (준)

국가기구적 노동조합으로 가느냐(한국노총과의 통합), 운동체적 노동조합으로

발전하느냐 이다. 실은 이 지점은 지금 은폐되어 있다. 그러나 공공연히 일국가

일노총이라는 주장이 공식적 결정기관의 논의도 없이 선동되고 있다. 신문에 보

면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의 통합에 원칙적인 이의가 없다고 발표되고 있다. 여

기에서 진짜 정체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으로서 민주

노총은 총체적으로 자기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

동”에 대한 비판, 관료화에 대한 비판, 직선제 요구 등의 수준의 문제가 아니

다. 이것은 표면 현상을 가지고 즉자적으로 불만을 결집하는 정도 이상이 되지

못한다. 혁신은 또한 과거지향이 아니라 미래지향이어야 한다. 민주노총 청산론

을 이야기하는 것은, 전노협 청산론을 이야기한 것이 우편향이었듯이, 좌편향이

다. 또 전노협 정신 계승을 이야기하는 수준 가지고는 안 된다. 그 한계를 극복

하는 것까지 되어야 한다. 전투적 노조운동으로부터 계급적.변혁적 노동운동으

로! 변화된 세계정세와 국내 정세 속에서, 낡은 단순도식적.분파적 구도를 극복

해야 한다. 현실은 그런 분파적 구도로는 운동을 이끌 수 없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하였다. 그러한 대혁신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노동해방을 넘어 인

간해방 지향으로 자신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것이 참된 계급성이고 변혁성이다.

맺음말 ; 거품이 빠질 때 때도 빼자!

민주노조운동은 지금 진정한 위기에, 그리고 심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쉽

게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기 어려운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자주성.민주

성.투쟁성에서 비롯된 문제임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사상

적 빈곤이다. 노동운동이 근본적으로 지향해야 할 된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지향인 인간해방을 튼튼히 움켜쥐지 못하고 있다. 또 이

러한 근본지향에 입각하여 우리 운동의 기본 원칙들(계급성과 변혁성, 대중[주

체] 민주주의, 전투적 대중투쟁, 강고한 민중연대 등)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

다. 나아가 우리의 주.객관적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기초하여 운동

이 나아가야 할 정치적.조직적.투쟁적 방향들을 도식적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잡

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들 모두가 부족한 가운데 오른쪽으로 갈거나 왼쪽으로 갈거나 하

면서 좌.우 편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국제연대라는 이름으로

외부로부터 잘못된 부추김을 잔뜩 받고 있다. 그 끈들을 끊어내야 한다. 밖에서

누구의 부추김을 받기 이전에 우리들 안에서 서로 물어가는 것부터 해야 한다.

나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고집하기 이전에 조사하고 연구하고, 학습하고

토의하고 하는 것부터 실행하자. 물론 근본지향을 튼튼히 하는 바탕 위에서이

다. 그리고 상층부에 올라갈수록 일방적으로 지시하려고만 하지 말고, 아래로

내려가서 대중에게 귀 기울이고 대중의 결정에 복종하는 운동을 하자.

공황이 닥치면서 거품이 빠져나가고 있다. 우리 노동운동에는 거품이 많았던

것 같다. 거품이 빠질 때 때도 함께 빠져나가도록 하자. 동지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위기는 그냥 기회가 아니다. 우리가 보

기로 지금은 진정한 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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