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에게서

전혜린에게서

혹은 를 들으며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낭만적 결합을 발견하든 어쨌든,

실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혹은 실존하기 위해서

선택한 도피이든, 도전이든 무엇이든,

자살은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방식.

그러하니

자살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건 가혹하고,

눈물로 애도하는 것은 이상하고, 구차하고,

‘자유의지’를 칭송하는 건 왠지 멋쩍습니다.

그렇다면

‘책임’을 묻고

이상하고 구차하지만 눈물로 애도하고

멋쩍지만 ‘자유의지’를 칭송해야 할 상대는

자살자가 아니라

타살자와

자살방조자와

살인자가 아닐런지요.

최영화 / 문화사회 편집위원 sobeit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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