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동향] – 투쟁동향
실업자들의 전국 첫 대중행동,
‘실직자 거리행진’ 부산에서 열려
지난 18일 오후 부산에서는 1백여 명의 실업자와 노동자, 학생 등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 1회 실직자 거리행진'(부제 : “우리는 일하고 싶다”)을 실시하
여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업자 대중행동이 이루어졌다.
대회는 부산역에서의 간단한 집회와 서면까지 약 8km에 이르는 시가행진, 그
리고 시에서 운영하는 서면 인력은행 앞에서 마무리 집회로 이루어졌다. 부산역
집회는 극단 새벽의 실업자를 위한 노래에 이어 ‘실직자 거리행진’ 준비위원장
인 안하원 목사의 대회사와 실직자 당사자들의 호소가 있었다. 안 목사는 대회
사에서 “실직자들이 이처럼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IMF 경제신탁통치에도 원인이
있지만 이를 빌미로 기업들이 부당하게 사람을 잘라내는데도 큰 원인이 있다”면
서 기업들의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촉구하고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업자 스스로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기업도산으로 실직한 50대 가장 실업자는 “노동부와 인력은행 등을 수없이 드
나들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정부의 보다 실질적인 대책마
련을 촉구하고 “이제는 사정이 너무 어려워 하루에 토큰 두 개로 김해까지 나가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자신의 딱한 처지를 떨리는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는 미취업 청년실업자는 이날 낭독한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통해 고생고생하며 딸자식을 대학까지 마치게 하였지
만 어려운 집안 살림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하는 자신이 부모님께 너무나 미
안하다고 울먹여 함께 한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또 그는 학교를 마
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부딪힌 실업 현실에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하였다. 세진컴퓨터랜드에서 정리해고된 조합원은 실직자 호소에서 “이제는
기업경영자들이 정리해고를 안하면 무능한 경영자로 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
면서 “노동자들이 단결투쟁으로 부당노동행위와 정리해고에 맞서 싸워나가야 한
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서울에서 온 민주노총 부위원장이자 전국건설일
용노조협의회 의장인 이규재 위원장은 연대사에서 “오늘의 이 투쟁이 실업자 투
쟁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 젖히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면서 전국의 실업자
들이 함께 싸워나가자고 호소하였고, 부산지역 건설일용노조준비위의 한 동지가
낭독한 결의문에서는 실업자도 인간임을 선언하고 일자리 보장과 최저생계비 보
장을 촉구하였다. 또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을 ‘실업자 거리행진의 날’로 선포하
였다.
부산역 집회 이후 곧바로 서면까지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철저하게 막아서는
전투경찰에 맞서 여러 차례 격렬한 몸싸움으로 차선점거 공방을 벌이면서 이루
어진 행진은 실업자들이 맨 앞장을 서고 중간에 학생, 맨뒤에 민주노총 조합원
들이 대오를 지었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일자리를 보장하라!” “실업자도 인
간이다. 최저생계비 보장하라!” “가족이 굶고 있다. 일자리를 보장하라!”며 목
이 쉬라고 외치고 ‘늙은 노동자의 노래’와 ‘아빠의 청춘’을 노래하며 두시간 이
상을 걸었다. 행진대오가 서면 로터리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주변의 많은 시민들
이 에워싸 행진대오는 더욱 늘어났다. 며칠 전부터 서면 일대에 부착한 선전 포
스터에 5시 서면 도착을 알려놓아서인지 관심들이 매우 높아 보였다.
인력은행 앞에 집결한 행진대오는 마무리 집회를 시작하였다. 먼저 자유발언
시간에 마이크를 잡은 40대 실업자는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고개를 들 수 있
도록 정부가 보다 실질적인 실업대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하였고, 자신을 건설
일용노동자로 소개한 30대 실업자는 “요즘 건설 일용노동자들은 취업자도 실업
자도 아닌 신세가 되었다”면서 “건설일용노조를 건설하여 실업자 투쟁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말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뒤이어 연대의 인사에 나선 민주노
총 부산본부 강한규 본부장은 투쟁만이 권리를 쟁취하는 길임을 강조하고 민주
노총도 실업자들과 형제된 입장에서 앞장서서 투쟁할 것임을 약속하였다. 안하
원 목사는 마무리 인사말에서 “오늘의 투쟁은 비록 작은 출발이지만 우리 실업
자들의 처지를 바꾸고 역사를 바꾸는 큰 싸움으로 전국적으로 번져나갈 것”이라
고 힘주어 말하고 실업자들이 더 많이 나설수록 실업문제 해결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며 다음달 제2회 실직자 거리행진에 더 많은 실업자들이 함께 할 것
을 호소하였다.
‘실직자 거리행진 준비위원회’ 주최로 개최된 이날 실업자 대회는 전국의 관
심이 집중된 가운데 힘있게 진행됨으로써 이후 실업자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실직자 거리행진’ 준비경과
* 다음은 18일 ‘실직자 거리행진’을 준비한 ‘경제주권 수호/ 민중생존권 사수/
민주대개혁을 위한 부산시민대책위’에서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2월에 구성되어 매주 주말 집회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경제주권 수호/
민중생존권 사수/ 민주대개혁을 위한 부산시민대책위’는 3월 초 월례 대표자회
의에서 그 때까지 집중해서 싸웠던 정리해고 문제에서 벗어나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업자 문제를 생존권 투쟁의 중심에 세울 것을 결정하였다.
대책위는 산하에 부당노동행위 신고센타를 설치하는 한편 그 첫 대중적 실천
투쟁으로 3월말이나 4월초에 실업자 대회 개최를 사업방향으로 설정해 놓았다.
그러나 실업자 당사자들이 주체로 모아지지 않는 속에서 막연한 가운데 실업자
조직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직 전국적인 투쟁 분위기가 확
산되지 않고 있는 때라서 그런지 가장 쉽게 실직자 투쟁의 주체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정리해고 문제가 걸려있는 사업장 조합원들을 조직하는데 실
패하였던 것이다. 자신들의 처지가 곧바로 실직자로 떨어진다는 현실 속에서 자
신들이 실직자 투쟁의 선두주자로 나설 것을 제안하고 이를 토론해 보았으나 많
은 대정부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투쟁의 방향에서 사실상 대 사용자 투쟁에
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3월 중순경 시민대책위 공동대표인 안하원 목사님이 시작한
‘실직자 쉼터’에 나오는 몇몇 실직자들이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집
회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투쟁의지를 비추자 이에 큰 힘을 얻고 곧바로 준
비에 착수하였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한 달 잡았다. 그 동안 소수라도 우리 주변의 실직자들을 모아서 상징적으로라도 실업
자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50명 정도를 목표로 하였다.
실업자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떳떳하게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처음 하는 대
중행동은 그 수가 많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교적 선진적 의식
을 지닌 실업자들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실업자 투쟁은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후 경제 정세와 실업 사정으로 보아 대규
모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번의 ‘제 1회’로 잡은 실
직자 거리행진은 이 투쟁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선전사업은 비교적 열심히 하였다. 매주 집회장에서 알려내고 대책위가 발행
하는 ‘IMF 통신’에서도 광고하고 대책위 산하 단체의 기관지에도 광고를 내는
등 꾸준한 사전 선전활동을 하였다. 포스터도 1천여 장을 배포 부착하였다. 또
각종 사회단체들이 운영하는 쉼터와 새벽 인력시장, 노동부와 상공회의소의 직
업소개소, 시에서 운영하는 인력은행 등에 집중적으로 선전물을 배포하였다. 4
월 18일이 가까워지자 ‘거리행진’에 대한 관심과 동참의사 표시 등 많은 전화들
이 왔다. 그러나 선전만으로는 실업자들의 거리행진 참가 정도에 대한 확실한
수준을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실업자 조직화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쌓여 갔다. 실업유형에
따른 조직화 방안을 강구하였다. 학생회와 민주동문회를 통한 미취업 실업자 조
직화, 노동조합을 통한 정리해고자 조직화, 야학 동문회를 통한 실업주민 조직
화 등 다양한 방도를 시도하였다.(학교별/사업장별/지역별 조직화)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건설일용노조 건설 준비를 통한 일용직 실업자 조직화였다. 비록
그 수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노조 건설이라는 과제와 결합하여 매우 높은 의지
를 보였다. 또 이들은 일정한 사업장이나 자본가에게 매여 있지 않은 고용상의
특성과 실업과 취업의 상태 구분이 불명확한 작업특성으로 인해 자신을 실업자
로 규정하는데 일반 사업장 노동조합원들에 비해 부담감을 덜 갖는 것이다. 즉
업종 특성이 실업자와 취업자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대회 당일까지도 얼마나
참가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가운데 실업자만 50명은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은 전적으로 부산지역 건설일용노조 준비위 사업장별 지역별 학교별 조직화도 이후 계속해서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그리
고 이들이 주체가 되어 실업자 대중행동을 준비하도록 해 나갈 것이다. ‘실직자
거리행진’의 주최가 시민대책위가 아니라 ‘실직자 거리행진 준비위원회’인 것도
이러한 의미이다. 그러나 실업자들의 현실은 일상적이고 항상적인 조직활동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먹고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일
자리를 구하러 열심히 다녀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들을 곧바로 조직으로 세
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한 달에 한번씩 대중행동 동참으로 실천
과 결합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월 1회 ‘거리행진’에 참가하는 것이 곧바
로 조직활동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실업자 조직의 이름도 그들의 사회적 특성
에 맞게 자연스럽게 지어져야 한다. 서구식 정치결사의 느낌을 주는 ‘실업자 동
맹’은 매우 어색하다. 제각기의 인연으로 묶여지는 다양한 이름과 형태의 실업
자 모임이 지역적으로 모아져서 함께 하는 ‘실업자 연대’가 훨씬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은 여러 차례의 거리행진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알아가는 가
운데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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