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록]
한국의 경제적.정치적 위기
경제.사회 분석에 관하여 한국 사회에 보내는 충고
제임스 크로티(James Crotty)
[편집자 주]
이 글은 제임스 크로티 교수가 한국경제 사태가 발생한 이후 한국을 방문
하여 전경련,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계의 대표자들과 면담한 결과를 토대
로 작성한, 한국경제 사태에 관한 평론으로서(그가 면담한 노동운동의 대
표자들 가운데는 본 연구소의 대표도 포함되어 있다), 1998년 3월 28일에
‘한국사회경제학회’의 심포지움에서 강연한 것을 귀국 후 글로 보완 정리
하여 보내온 것이다. 그는 암허스트 소재 매사추세츠 대학교 경제학부 교
수이다. 그는 한국경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및 한국
사태에 관한 그의 글의 일부가 <주간정세동향> 3월 2일자 “신자유주의 체
제와 개발도상국의 발전 : 동아시아 모델의 종말?”에 번역.소개된 바있
다.
나의 동료 개리 딤스키(Gary Dymski)와 나는 3월의 2주 동안 한국에서 서로
다른 경제적,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와 시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한국의 경제위기에 대해 토의하면서 보냈다. 우리는 현직 및 전직 관료들, 기업
및 은행 경영자들, 노동운동 대표자들, 가지각색의 견해를 지닌 경제학자들, 그
리고 대학생들을 면담했다. 이 면담으로부터 우리는 한국 경제위기에 대하여,
그리고 현재의 위기의 원인 및 예상되는 경제.정치적 결과들에 대하여 많은 것
들을 배우게 되었다. 오늘 나의 논평은 이 토의들에 의해, 그리고 이 토의들에
관하여 개리와 나눈 대화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Ⅰ. 동아시아 위기는 1970년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체제의 탄생 및
정착과 관련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7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던 현대 자본주의의
이른바 황금시대(Golden Age)는 경제에 대한 국가규제에 기초하여 건설되었다.
북국(지구의 북반구에 주로 위치하고 있는 선진 독점자본주의 나라들을 말한다
: 역주)에서는 국가가 총수요를 통제했고, 기업과 금융을 규제했고, 소득을 재
분배했고, 사회안전망을 제공했고, 노동조합을 지원했으며, 온갖 종류의 국제적
경제활동을 통제했다. “관리 자본주의”(managed Capitalism) 혹은 “사회적 시
장”경제 하에서 높은 세계성장률을 이룩했고, 북국의 노동자들은 낮은 실업, 높
은 실질임금 성장, 그리고 사회-임금(social-wage)의 증가를 경험했다. 남국(지
구의 남반구에 주로 위치하고 있는 제3세계 나라들을 말한다 : 역주)의 대부분
역시 적절한 고성장을 이룩했다.
황금시대는 1960년대 후반 및 1970년대 초반에 위기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
리고 이 위기의 시기는 결국 1980년대 초에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보수주의
자유시장 혁명으로 끝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황금시대에 뒤이어 아직 미완성
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출현하였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일차적으로 미국과 영국,
다국적 은행들 및 비금융 기업들(다국적 기업들), 신흥의 초국적 금리생활자계
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에 의해 옹호되었다. 그리고 북.남국
모두의 국내 경제엘리트들로부터 점차 지지를 얻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무역, 직접투자, 그리고 특히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이동을
통해 전 지구적 통합이 증대하는 환경 속에서 탈규제, 자유화, 그리고 민영화에
기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탈규제된 전 지구적 시장체계가 거
의 모든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경
제활동을 규제하는 국가권력은 심각하게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만약 그들의 처방이 널리 이행된다면 개별국가 경제와 세계
경제는 황금시대에서보다 더 잘 운용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즉 국내총생산
(GDP) 성장이 증가할 것이고, 실업은 낮아질 것이며, 생산성 증가가 커질 것이
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국가들간의 “꼭대기로의 경주”(race to the top : 다국
적 기업과 그 해외 직접투자의 영향에 대해 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견해에서는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지역간 혹
은 국가간 경쟁이 잘 교육된 노동자, 양질의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추게 만든다고
본다 : 역주)와 “수렴”(convergence : 다국적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에 의해 남
국과 북국 등 모든 나라의 경제가 비슷한 조건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보는 주장
: 역주)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북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의 도움을 받은 덜 발
전된 나라들(개발도상국들 : 역주)에 의해 최상의 성과가 달성될 것이라는 것이
다.
최근 몇 유주의적 방향으로 전환함에 따라, 실제로 확대되고 심화되어 왔다. 무역은 보
다 중요하게 되었다. 직접투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증대하고 있다(1990년대 들
어 남국으로 가는 비율이 증대하고 있다).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이동이
거대하게―10년 전에 예견된 것보다 훨씬 더 크게―이루어지게 되었다. 신자유
주의 개혁의제들이 각국에서 상이한 속도로 거의 모든 곳에서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주창자들에 의해 약속된 경제적 향상들 중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세계 경제성장은 극적으로 낮아졌다. 세계 실업은
증대했다. 실질임금의 성장은 감소했다. 북국에 있어서 국가의 생산성 증가율은
낮아졌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에, 그리고 개도국들간에 경제적 성과는 수렴
된 것이 아니라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 장기적인 자본축적율은 감소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북국의 노동자와 대다수 민중들에게 해를 끼쳤다. 구체적
으로 말하면, 유럽에서 실업은 불황기의 수준에 있다. 실질임금 증가가 완만해
졌다―미국에서는 평균(중앙값) 실질임금이 실제로 감소했다. 모든 곳에서 불평
등이 증대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안전망이 잠식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또한 동아시아 이외의 개도국들에 있는 노동자와 대다수 민중들에게도 역시 하
나의 재앙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는 가장 유력한 다국적 은행들 및 다
국적 기업들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엘리트들―특히 금리생활자들―에
게는 커다란 경제적 성공이었다.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번창한 유일한 지역은 동아시아, 그리고 최근에
는 동남 아시아 지역이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근
무하는 아지트 싱(Ajit Singh)은 최근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동아시아(일본
을 포함하여)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발전이 인류역사에서 지속적인 경제 확장
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성
공은 신자유주의적 발전”모델”에 대한 저항을 통해 이룩되었다. 이 나라들은 신
자유주의 모델 대신에, 민간 시장들에 대한 국가의 지도(guidance)에 기반하고
있는 “동아시아” 모델을 변용하여 활용했다. 최근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동아시
아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최후의 주요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의 위기의 어려움 때문에 동아시아의 장기간에 걸친 거
대한 성취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남한의 자본당
국민총생산(GDP)의 연평균 실질성장률은 1960년부터 1997년까지 약 7%였다(실질
미국달러를 기준으로). 1980년부터 1994년까지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 성장률
은 7.7%였다. 반면에 북국의 성장률은 1.5%였고, 동아시아를 포함해서 개발도상
국 일반의 성장률은 2.5%였다. 1962-1991년 동안에 한국의 실질임금 성장률은
매년 평균 7.6%였다. 동아시아 25%를 차지하고 있지만, 1990년대 세계 GDP 성장의 대략 반 정도는 이 지역에서
기여한 것이었다.
한국사람들에게 권위주의, 경제적 착취, 그리고 정치적 억압 역시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울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 위기의 시기에 한국인
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에 일어났던 평균 한국인의 경제생활의 믿기 어려울 정도
로 엄청난 향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모델의 성공은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세력들에게 세가지 심각한 문
제를 야기했다. 첫째, 동아시아는 신자유주의 이론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산 증거였다. 또한 동아시아는 국가규제와 시장력의 영리하고 유연한 결합이 경
제성장, 생산성, 기술진보 및 소득 평등과 관련해서 신자유주의보다 우월한 결
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둘째, 아시아는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체제의 완전한 정착에 대한 최후의 심각한 장애물을 상징했다. 서구측은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가 21세기 초를 지배할 것인가―영.미 형(型) 자본주의냐 아니
면 동아시아 형(型) 자본주의냐―하는 문제를 놓고 그들이 동아시아와 일종의
“전쟁”―그들이 승리하고 있는 것 같지 않게 보이던 전쟁―상태에 있다고 생각
했다. 끝으로, 강대한 외세들은 그들이 동아시아 기적으로부터 이윤을 챙기는
것이 동아시아 기적과 연관된 국가 통제 및 규제에 의해 심각하게 제약되고 있
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세가지 이유 모두 때문에, 강대한 초국적 자본 세력들은 동아시아 모
델을 침식하고 그것을 신자유주의적 제도와 정책으로 대체하기로 작정하였다.
이 결의는 1997년 아시아 위기의 전개가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는 외부의 맥락을
규정하고 있다.
Ⅱ. 무엇이 한국위기를 야기했는가? : 한국 내의 서로 다른 견해들
우리가 면담하였던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위기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똑같은 요
인들을 강조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그룹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요인들을
종합했고, 한국을 이러한 위험 상황에 빠뜨린 것에 대해 서로 다른 기관들을 비
난했다. 이러한 상반되는 위기론들이 IMF 협약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하도
록 만들었고, 또한 이 위기에 대응하여 상반되는 정치전략을 지지하도록 만들어
왔다.
a) 지배적인 견해
위기의 원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그 책임을 일차적으로 재벌의 행태
에 돌리고 다음으로 김영삼 정부에 돌리고 있다. 외부의 압력은 덜 강조되고 있
다. 이러한 주장의 전형적인 변형(variant)은 다음과 같다.
1990년대 초반 언젠가 재벌은 매우 유력한 북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심각한
경쟁자가 되어 해외 직접투자뿐만 아니라 수출을 통해 그들과 전 세계에 걸쳐
시장경쟁을 하겠다는 과도하고 비현실적인 야심찬 계획을 발전시켰다. 1993년
이후의 엔화 평가절상은 이러한 야망을 고무시켰을지 모른다. 이러한 목표의 추
구는 재벌로 하여금 1990년대 중반에 걸쳐 신생산능력 및 신기술에 대한 거대한
투자를 하도록 만들었다.
재벌은 이러한 투자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새로운 신용이 필요
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재벌은 국내 금융시장의 탈규제 속도를 가속화하
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그래서 재벌은 새롭게 탈규제된 국내 신용기관들로
부터 공격적으로 차입했다. 이러한 신용의 대부분은 단기였다.
정부의 국내 자유화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김영삼 정부는 1994년 9개의 새로운
머천트 뱅크(merchant bank : 환어음 인수, 사채 발행을 주업무로 하는 금융기
관. 우리나라의 종합금융사를 지칭하고 있다 : 역주)의 설립을 허용했다. 그리
고 1996년에 15개를 추가로 허용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비공식적인 장외
주식시장에서 축재를 했고, 표준적인 시중(상업)은행 업무에 거의 혹은 전혀 경
험이 없었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은행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정부는 이러한 종금사에 대해 규제 혹은
통제를 거의 행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종금사들이 그들의 자산 혹은 채무 계정
의 어느 쪽에 있어서나 그들이 어떤 거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도 몰랐다.
은행 감독의 이러한 총체적 부재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관행과 극히 판이한 것이
었다. 재벌은 이 종금사들의 대부분에서 주요한 소유주 지위를 차지했다. 그래
서 상업은행에서 대부에 부과하는 제약들을 받지 않고 종금사들은 재벌에게 대
부할 수 있었다.
국내 자유화의 결과로서, 재벌은 한국과 일본 모델의 높은 부채/자산 비율 전
통에서 일상적인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국내 금융기관들에 채무를 지게 되었
다.
재벌(및 종금사들)은 또한 해외 대출시장에 제한없이 접근하기를 원했다. 이
것은 부분적으로는 국제 이자율이 정부의 규제를 받는 한국의 시장에서 통용되
는 이자율보다 훨씬 더 낮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단기 자본유입―은행
대부(뱅크 론) 및 포트폴리오 자본(유가증권에 투자되는 자본 : 역주)―을 성급
하게 그리고 과도하게 자유화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자본계정의 자유화
는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의 전제조건이었는데, 재벌은 북국의 상품
및 투자시장에 차별없이 접근하는 것을 확보하기 위해 OECD 가입을 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실제로는 OECD와의 협약에 의해 요구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빠
르게 자본이동을 자유화시켰다. 단기 해외자금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에
몰려들어 왔는데, 대부분이 은행 대부의 형태로 들어왔다. 동아시아 붐에서 금
융투자와 연관되어 이상하게 진행하는 도취증에 부추겨져서, 초국적 투자가들은
그들의 평소의 떼거지 행태를 과시했다. 대부의 일부는 직접적으로 재벌에게 주
어졌고, 여타 부분들은 한국의 은행들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한국의 은행들은
이러한 자금의 일부를 재벌에게 재대부했다. 종금사들은 그들의 해외 차입금의
상당한 부분을 아시아 지역의 금융 자산에 투기하는 데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
다.
이러한 환경에서 단기 자본유입을 자유화한 결과, 1994년과 1997년 사이에 대
외채무가 약 600억 달러로부터 약 1,200억 달러로 배가되었다.(한국 은행들의
해외지사의 빚은 계정하지 않은 액수임) 대외채무 총액은 다른 나라들의 전례와
크게 다른 유별난 것은 아직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이 채무의 무려 58%가 1
년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였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재벌은 야심찬 그리고 모험적인 장기적 자본투자 붐의 재원을 일차적
으로 단기 차입금으로 조달했다. 그리고 단기 차입금의 로부터 차입한 것이었고, 따라서 외화로 지불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
민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벌을 규제하고 제지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정부는 오히
려 재벌이 이렇게 하는 것을 지원했다.*주)
*주) {{나의 견해로는, 위험의 주요 원천은 확장 프로그램 그 자체가 아니
었다. 비록 그 프로그램이 모험적이고 아마 과도하게 야심적인 것이었지만 말이
다. 요컨대, 북국의 다른 주요 다국적기업들도 자동차, 철강 및 반도체와 같은
산업―이 산업들 모두는 과잉 생산능력에 의해 역병(疫病)에 걸려 있었는데―에
서 전 세계에 걸쳐 생산능력 확장 프로그램을 유사하게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은 거대 과점체들이 전 지구적 시장을 누가 지배할 것인가를 놓고 전 지구적 경
쟁에 참여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 경쟁에서 창출된 과잉 생산능력이 심각한 경
기후퇴, 대규모 지급불능 및 부도에 의해 파괴될 때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 제너럴 모터스(GM) 사는 한국의 재벌과 다르
지 않게 행동해 왔다. 한국 사례에 있어서 핵심적인 차이점은 투자 붐의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에 있었다.}}
그래서 국내 및 외부의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수많은 바람
직하지 않은 사태들 가운데 어떤 한 가지라도 발생하게 되면, 그것은 국내 및
외부의 금융위기를 촉발할 것이다. 그와 같은 사태들로는 원화의 평가절하(이것
은 달러화 혹은 엔화로 된 기존 채무를 상환할 원화를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만
들 것이다), 엔화의 과소평가(이것은 수출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해외 이자율
의 상승, 국내 경기후퇴, 주요 수출시장 확대의 완만화, 혹은 재벌에게 채산성
문제를 일으키는 여타 원인들 등이 있었다.
이러한 조건 만약 재벌이 그들의 국내 채무를 상환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면, 외국 은행들 및
포트폴리오 투자가들은 그들의 투자가 위험에 처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고, 한국
으로부터 돈을 회수하려고 할 것이다. 외국 은행들이 그들의 단기 대부금이 채
무 불이행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포트폴리오
투자가들이 통화의 평가절하를 예견할 때, 그들은 그 나라로부터 자신의 돈을
제일 먼저 회수한 은행과 투자가가 손실을 가장 작게 입는다는 것을 이것이 통화 붕괴 및 대량 채무 불이행의 가능성―모두가 두려워하는―의 한 원
인이 되는 공황(panic) 혹은 접촉전염(contagion)을 만들어낸다. 한국 정부의
외환 보유고(대략 3개월분의 수입량에 필요한 액수)가 부족했다는 사실은 단지
그 상황을 보다 격화시켰을 뿐이었다.
물론 1996년과 1997년의 제반 사태가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1994년의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와 1995년 이후의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는, 철강, 자동차, 그
리고 특히 반도체와 같은 주요 수출시장에서의 수요 감소와 함께, 1994년 이래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한 것의 원인이 되었다. 즉 1996년에 적자가 240억 달러
혹은 국내총생산(GDP)의 5% 가까이 되었다. 이러한 동일한 문제들이 부실채무
(원리금 회수가 불가능한 채무 불이행 채무 및 이자 납부가 안 되고 있는 채무)
증가*주)의 원인으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벌에 있어서는 이윤을 감소시키고
과잉 생산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의 원인으로도 되었다. 그 후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의 폭락에 의해 촉발되었던 아시아 전체에 걸친 금융공황의 발발은 원화
를 폭락시키고, 외국 은행들이 한국 기업 및 은행들에 대한 대부의 채무연장을
거부하는 사태를 사실상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주) {{과거의 정부는 경상수지가 악화되면 통상 신속하게 원화를 평가절하
시켜 왔다. 그러나 1995년과 1996년에는 원화가 10∼20% 과대평가되었다고 알려
졌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를 하지 못했다. 그 한가지 이유는 이 시기의 외국
자본의 거대한 유입이 불태화(sterilization : 외국자본의 유..출입은 통화량
변동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 때 통화량이 변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환율 등여
러 정책을 사용하는 것을 불태화 정책이라고 한다 : 역주)를 통해 쉽게 상쇄될
수 없는 원화가치에 대한 절상 압력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환
율 하락이 한국의 기업 및 은행들이 그들의 막대한 대외채무를 상환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을 정부가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b) 재벌과 일부 정부관료들은 위기를 어떻게 보는가
재벌의 대변자들과 일부 관료들이 위기의 원인에 대해 다른 이론을 제시하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보다 장기적 관점을 취해서, 문제의
원천을 1987년의 정치적 재구조화를 가져온 대변동(upheavals)으로까지 거술러
올라가서 찾는다. 그들의 견지에서는 한국경제의 단기 및 장기 문제의 주요 원
인은 1987년 이후 노동운동에 의해 성취된 과도한 힘(power)이었다. 그들이 그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정부가 1994∼96년간의 새로운 종
금사 설립과 감독을 전적으로 잘못 관리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재벌이 이 시
기에 계획된 그들의 투자들의 기대수익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과도한
낙관주의에 병들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견지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신의 새로운 힘을 사용하여 생산성 증가를 능가
하여 실질임금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이것이 한국경제의 수익성 및 국
제경쟁력의 장기간에 걸친 위기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또 이것이 재벌로 하여
금 동남 아시아 및 유럽에의 투자를 통해 사업을 해외로 이전하도록 강제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종종 노동-절약적인 선진기술에 투자하도록 강제했다. 재벌의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위기에 책임이 있는 것은 노동자와 정부이다. 그래서 재
벌은 현재의 위기의 가장 뿌리깊은 원인은 한국의 자본과 노동간의 오래 계속된
투쟁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c) 위기의 보다 중요한 원인은 내부요인인가 외부요인인가?
위기가 내부적 원인과 외부적 원인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급하고 과도하며 잘못 계
획된 국내 금융시장 및 자본유입의 자유화를 위기 발생의 주요 요인으로 생각한
다. 자유화를 지지하는 재벌조차 정부가 자유화를 아주 서투르게 다루어 실패했
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990년대의 과도한 자유화를 옹호하여 가해졌던 내부 및
외부 모두의 압력이 있었다. 문제는 어느 압력이 지배적이었는가에 대해 제기되
고 있다.
한편으로, 강력한 범지구적 세력들―미국과 G7(선진 7개국 정삼회담), 경제협
력개발기구(OECD), 다국적 은행들과 제조기업들, 초국적 금융 투자가들, 국제조
직들(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과 같은―은 아시아 나라들에게 탈규제하고,
민영화하며, 그들의 시장을 자유화하도록 거대한 경제적 및 정치적 압력을 행사
해 왔다. 이러한 압력에 저항했던 나라들은 북국의 상품 및 금융시장에 대한 접
근이 제한될 것이고 IMF 및 세계은행으로부터 적대적으로 취급될 것이라고 협박
되었다.
다른 한편, 아시아 전역에서 은행들, 수십년 간의 아시아 “기적”의 결과로서 번창했고 강력해졌다. 최근에 이러한 기
관들과 가문의 일부는 그들의 장래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국내시장보다는 전 지
구적 시장의 발전과 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리고 그들의 번영이 해외시장에의 무제한적인 접근보다 국가적 번영에 의해 보
다 덜 좌우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만약 그들의 정부가 국내시장을 자
유화하라는 외부의 압력에 양보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해외시장에의 무제한적
접근은 다가오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전 지구적 기회들을 완전하게 활용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이러한 동인(動因)들이 자유화에 대한 내부의
압력을 증대시켰다.
위기의 외부적 혹은 국제적 차원이 IMF의 배후에 있는 초국적 자본 세력들에
의한 한국경제의 사실상의 탈취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만약 금융상
의 곤란이 순전히 국내적인 것이었다면, 한국경제는 심각한 경제 문제에 직면했
겠지만, 그러나 즉각적인 위기나 한국의 경제주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에 직면하
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화를 나누었던 한국인들의 대
부분에 따르면, 부패한 김영삼 정부가 한국경제의 자유화를 가속화시키라는 초
국적 자본 세력들의 오랜 요구에 동의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것은 세계 최대
의 세계적 다국적 기업들과 겨루려고 한 재벌의 공격경영(drive)이었다(이것은
재벌의 수출품들에 대한 서구 시장의 확보, 재벌의 해외 직접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차별없는 대우, 그리고 범지구적 금융시장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을 필요
로 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위기에 대해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
는 것은 재벌, 정부 혹은 재벌의 견지에서는 노동운동으로 대표되는 내부세력들
이라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와 관련된 외세는 여기에서 주요한 원인적 역
할을 하지 않는다. 내부 모순들이 위기의 지배적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외부 모순보다는 내부 모순에 맞추어진 이러한 불균형한 초점은, 내가 이후에
주장할 것이지만, 이러한 위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IMF 협약에 대한 태도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Ⅲ. 한국과 미국 및 IMF 간의 협약
a) 외세의 입장에서 볼 때
IMF에 의해 대표되는 초국적 세력에게는, 협약은 세 가지 주요 목표를 달성하
기 위해 고안되어 있다. 첫째, 만약 협약이 완전하게 그리고 영구적으로 이행된
다면, 이 협약은 한국에 완벽한 신자유주의적 구조를 부과할 것이다. 그래서 중
기적인 미래에 동아시아 모델의 일부 변형으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
지만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 및 정책적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둘째, 한국의
상품 및 자본 시장이 외국인의 무제한적 공략에 처음으로 개방될 것이다. 셋째,
협약은 한국 기업들과 은행들에 대부해 준 대부금에 대해 돈을 떼어먹힐 외국
은행은 하나도 없도록 보증할 것이고, 따라서 전 지구적 금융시스템에 대한 심
각한 위협을 막을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IMF 협약은 서구에서는 시스템을 둘러싸고 진행중인 전쟁에서
앵글로-아메리칸 형(型)의 자본주의에 의해 아시아 형(型)의 자본주의가 최종적
으로 패배한 신호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최근에 “이 나라들(아시아 지역의 : 역주)의 일부에
서 우리가 설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혁명임이 분명하다”고 논평했다.
한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아시아 위기의 가장 근본
적인 효과들 중의 하나는 몇 년 전만 해도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게 매력적이고
대안적인 모델처럼 여겨졌던 아시아적 방식 대신에 ‘서구형의 자유시장 자본주
의로 세계적 범위에서 전환한 것’이었다”(뉴욕 타임즈, 98. 2. 13일자)고 선언
했다. 이러한 승리주의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우리는 승리했다”라는 기사제목에
서 훌륭하게 요약되었다.
b) 재벌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재벌의 대표자들(전.현직 정부 관리들 뿐만 아니라)도 IMF 협약에 대
해 일반적으로 긍정적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협약에는 재벌들에게
불편한 조항들―특히 고(高)이자율과 한국경제를 일본 수입품들에 대해 제한없
이 개방을 허용하는 것―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은 IMF 협정이 그
들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국내의 정치적 목표들을 성취하도록 자신들을 도울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첫째, 협약은 노동자계급의 힘을 영구적으로 파괴하도록 고안되어 있다―이것
이야말로 재벌의 제1의 목표이다. 그래서 임금 하락,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영구적인 의미에서의 고용 불안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는 것이다. 둘째, 협약은 정부 규제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재벌의 제2의 목표를 성
취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벌은 재벌의 이해관계를 한국경제와 한국 국
민 대다수의 이해관계에 맞추어 통합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규제
및 제한에서 벗어나, 한국 내에서 혹은 전 세계에 걸쳐 기업 이윤과 족벌의 금
융상의 이해관계를 자유롭게 추구하게 될 것이다. 만약 IMF 협약이 완벽하게 그
리고 영구적으로 이행된다면, 그것은 대기업 및 최부유층 족벌의 경제적 운명이
한국 국민 대다수의 이해관계와 달라지는 것을 한국경제의 영구적인 구조적 특
징으로 만들 것이다.
c) IMF의 비밀협정의 구성요소들
① 거시경제에 관한 긴축
② 노동법 “개혁”
③ 외국인의 한국 은행 및 기업 소유에 대한 제한의 철폐
④ 수입 제한의 폐지
⑤ 국내 및 국제 자금 이동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종식
⑥ 바닥으로 가는 길로의 안내―신자유주의화의 길
IMF 협약의 조항들이 가져오게 될 귀결은 바로 이것이다. IMF 협약은, 철저하
게 그리고 항구적으로 시행될 경우(물론 이런 사태까지 되지 않을 수도 있지
만), 동아시아의 전통대로 정부가 민족적 이해관계, 민족적 구조 및 민족적 정
책들에 입각하여―이것들이 지난 35년 간 한국경제의 “기적”을 만들었는데―기
업을 규제하는 데 사용할 정책 수단과 구조들을 모조리 파괴하게 될 것이다. 이
렇게 되면 한국은 세계 금융시장에 깊숙히 편입될 것이고, 그것에 의해 구조적
으로 속박될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이지 않은 경제체제, 동아시아 형(型)
의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경제체제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을 모조리 박
탈당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철저하게, 그리고 영구히 신자유주의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이다. 특권층과 몇몇 유력한 은행들 및 기업들은 초국적 자본 및 지구촌 경제와
의 유대관계에 힘입어 번영을 구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약
화될 것이 분명하고, [그에 따라] 한국 국민의 2/3에서 4/5까지는 경제적 불안
정과 임금의 저하가 영속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Ⅳ. IMF 협약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토록 해악스러운 것이라고 할 때, 한국
정부가 그것을 받아들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의 있을 수 있는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이번 경제위기는 너무나
예상 밖이었고 심각했으며 또 급변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그것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답변이 그것이다.
애초에는 외환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기를 거부하다가 막상 그것이 밀
어닥치자 정부 지도자들은 제정신을 잃었으며, 그리하여 대외부채에 대해 전면
적인 채무 불이행(default)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라도 방지하고자 미국과 IMF가
요구한 조건들을―그 조건이 어떤 것들이건―무조건 받아들이겠다고 말해 버렸
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은 사태발생 당시(1997년 11
월∼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심화되었다. 이 답변에 의
하자면 이렇듯 IMF 협약을 무조건 받아들인 것은 오로지 혼돈과 당황 때문이라
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관리, 은행원들, 경제학자들 및 재벌의 대표자들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은 [위와 같이 답변하기보다] 한결같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전면적인 대외 채무 불이행(default)이나 일시적인 채무 지불유예
(moratorium) 및 그에 따른 국제 신용의 상실은 한국경제에 너무나 커다란 피해
를 입혔을 것이며, 따라서 한국 정부는 미국과 IMF가 요구하는 것들을, 그 내용
이 무엇이든지간에,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문자 그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
다”라고. 그러한 요구들이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해 또 경제주권에 대해 얼마나
해로운 것이건 그것을 불문하고! 이렇듯 IMF의 강요를 받아들인 것은 합리적인
선택(당황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이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견해가 옳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하면, 이러한
견해(IMF 강요를 받아들인 것이 합리적 결정이었다는!)가 한국경제를 자유화할
것인지 아닌지, 또 한다면 얼마나 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에 미치는 결과는 실로
심대하다. 만약 우리가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인정할 경우, 즉 1) 일단 금융시장
과 국제간의 자금이동이 충분하게 자유화하게 되면, 어느 나라에 통화위기가 발
생할 때 그 나라는 그 나라에 적대적인 초국적 자본 세력의 요구조건들에 대
해―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건―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
다. 2) 규제가 철폐된 금융시장은 원천적으로 투기 버블과 통화위기에 시달리게
되어 있다. 3) IMF는 자신들의 요구조건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경제에 심
대한 피해를 입히게 되더라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초국적 자본 세력의 구성원
들을 즐겁게 하고자 고안된 요구조건들을 강요할 것이다 라는 세 가지 점을 인
정할 경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논리적 필연으로 도출된다. 즉 국민 대다수의
경제적 복지를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는 정부라면 응당 금융시장의 자유화 및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아예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
다.
그러나 아마도 위와 같은 전제들과 추론은 완벽한 진실은 아닐 것이다.(그것
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전무할 경우에만 그것들은 완벽한 진실이 될 것이다!) 한
국은 보다 덜 파괴적인 IMF 협약을 맺자고 주장하여 그것을 관철시키는 것이 충
분히 가능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미국-IMF에게 확실하게 위협
을 가했어야 할 것이다. 즉 IMF가 강요하는 요구조건들이 지나치게 파괴적일 경
우 한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말겠다고 하는 위협을 했어야 하는 것이
다. 예를 들어서 한국 정부가 한국의 은행들과 기업들이 그들이 해외 은행들에
서 빌린 채무에 대하여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도록 내버려두겠다는 위협을 가했
다고 가정해 보자.(이런 위협은 사실 특별히 무슨 조치를 취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놓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해외의 채권자들과 한국인
채무자들 사이의 교섭을 둘러싼 ‘교섭 여건’을 극적으로 변경시켰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IMF는 매양 채권자로서 그리고 해외
채권자 카르텔의 대표부로서 처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카르텔의 존재는 해외의
대부자들(lenders)로 하여금 자신들의 대부(loans)에 대한 채무연장(roll-over)
을 거부―이 거부 전략은, 이익은 상당한 반면에 지불해야 할 비용은 전혀 없
다―토록 하는 강력한 유인을 만들어 낸다. 만약 돈을 빌린 쪽이 빚을 갚게 되
면, 빚쟁이는 간단히 승리한다. 그렇지 않고 돈을 빌린 쪽이 빚을 못갚겠다고
나오면 IMF가 해당국의 정부에 압력을 넣어서 어떻게 해서든(정부가 지불보증을
하게 해서라도) 빚을 갚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채권자들은 훤히 내다보고 있다.
이렇듯이, IMF가 채권자 카르텔을 만들어내고 이 카르텔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이라는 믿음이 있음으로 인해서 해외의 채권자들은 느긋하기만 하다. 이렇게 해
서 외국 은행들이, 채무 불이행에 대해 별 걱정을 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대
출에 대해 채무연장을 대대적으로 거절할 소지가 실제로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IMF의 요구조건 모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경우, 그래
서 IMF와의 교섭이 결렬될 경우, 해외 채권자들은 채권자 카르텔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며, 각자는 제각기 한국인 채무자들과 개별적으로 채무 상환에 대한
교섭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채무자에게 매우 중요한 어떤 대부에
대해서 채무연장을 해주지 않는 어떤 대여자(외국 은행)가 있다면, 그러한 결정
은 해당 대여자에게 엄청난 손실로 귀착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채무연장
거부는 채무자의 채무 불이행 선언을 촉발할 것이며, 이 경우 빚을 준 측은 이
자만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 원금까지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해외 채권자들이 대출금에 대한 채무연장을 해 줄 경우, 이러한
행위는 돈을 빌린 측으로 하여금 채무변제 능력을 보유하도록 도와줄 것이며,
그럼으로써 자신이 제공한 대부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장차 환불받을 수 있
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한국은 해외 채권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제공한 대부를
몽땅 잃게 될지도 모르는 사태에 직면케 함으로써 대부금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해 지불기한이 연장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IMF 신
탁통치를 회피하고] 한국경제에 대해 이번 사태가 끼치는 피해를 일정한 선에서
제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채무 불이행 선언을 선택했다면 한국에게는 심각한 위험을 야기했을 것
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경제가 기왕에 직면하고 있던 문제들이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증권에 투자된 해외의 자금들이 보다 빨리 도주했을 것이며, 원화의 평
가절하가 더욱 급격했을 것이며, 필수불가결한 핵심 수입품들(예컨대 원유)에
대해 무역신용을 얻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채무 불이행 선
언이 가져오는 방사성 낙진을 제한시키는 데 여타의 정부 정책들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선택은 장기적인 견지에서 볼 때 IMF 프로그램이 가져오
는 폐해보다는 훨씬 덜 해악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IMF 협약을 거부하겠다고 확실하게 위협하기 위해서는 “양호
한” 최후의 대비(fallback position : 위에서 말한 여타의 정책수단들)를 갖추
고 있어야만 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즉 교섭 석상에 있어서 위협이라는 것은, 그 위협을 실제로 행사했을 때 그것이
교섭의 상대편에게도 상당한 위험을 가하기만 한다면, 위협을 가한 측에게 심각
한 손상을 야기할지라도 충분히 실효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정
적인 점은 다음과 같다. 선견지명이 있는, 대규모적인 채무 불이행 선언은 한국
정부와의 협상에 관련되어 있는 상대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심각한 위협이 되
었다는 점이다. 이 위협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단지 일본, 유럽 및 미
국의 은행들만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그같은 채무 불이행 사태로 인해서, IMF
가 전지전능한 초국적 채권자 카르텔을 조직해 내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다는 신뢰를 투자자들이 상실하게 될 경우, 국제금융 시스템
그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이 IMF의 극단적인 요구조건들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경우 한
국만이 아니라 한국사태에 관계가 있는 당사자들 모두가 손해를 볼 것이라는 극
히 유리한 지점을 한국 정부가 활용하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조금만
밀어붙이면] IMF 최종 합의서에 들어 있는, 유례없이 파괴적인 요구조건 보따리
의 대다수―그러나 전부는 아니고―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에, 단
지 그것을 근거로 해서, 전 지구적인 금융위기를 촉발할 위험을 무릅쓰고 IMF가
한국을 돕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IMF로서는 결코 합리적인 결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교섭이 결렬되었을 때 해외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치는 손실은, 요구조
건들 가운데 일부라도 관철시키는 것으로부터 얻어내는 이익에 비해서, 너무나
컸을 것이다.
한국 었다. 한국 정부는 IMF의 요구조건들 가운데 몇 가지를 거절할 수 있었으며, 그
렇게 하면서도 구제금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우리들이 만약 한국 정부가 어느 정도의 교섭력(bargaining power)을 가지고
있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면, 한국 정부가 사실상 IMF의 요구조건들에 대해서
어느 것이든 모두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
를 설명해야 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IMF와의 비밀협정을 자기자
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바라마지 않은 강력한 세력이 한국 내부에 존재했다는 것
이다.
내가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재벌은 IMF 협약의 많은 부분을 선호했다. 재
벌은 특히 노동법 “개혁”, 국내 및 국제 금융시장의 자유화, 및 투자를 조정하
거나 산업을 규제할 수 있는 정부의 권한을 종식시키는 것을 선호해 왔다. 재벌
들은 그래서 자신들이 바라지 않는 조항들이 약간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노동
자계급의 힘을 완전히 분쇄하고, 대량해고를 단행하고, 대폭적으로 임금을 삭감
하고, 정부의 통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그것들마저도 받아들이고자 했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재벌은 한국경제 체제를 대내외적으로 전면적으
로 자유화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믿는 지점에 이르
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IMF의 요구조건을 받
아들이는 것을 지지하였으므로, 한국 정부로서는 채무 불이행 선언 또는 지불유
예 선언이라는 확실한 위협수단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것 같다.
Ⅴ. 정치전략들에 관한 약간의 관찰
한국의 현 위기는 대내적 힘들과 대외적 힘들의 ‘복합적인 교호작용’이 원인
이 되어서 발생했다. 나는 우리가 면담했던 대다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견
해―위기의 일차적 원인은 [외부적이 아니라] 내부적인 것이며, 재벌과 정부가
심사숙고하여 내린 의사결정들이 사태를 초래한 주된 원인들이다. 그리고 이 의
사결정들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그 방향이 미리 예정된 것은 아니다 라는―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한 견해와는 달리 나는 다음의 점을 강력히 역설하고자 한다. 즉 국제환
경의 변화들이 재벌의 정치적 권력과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 양자에 대해 공히
심대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또한 다음과 같은 점을 주장하
고자 한다. 즉 IMF로 상징되는 외세와 IMF [신탁통치] 협약은 다가오는 수년 동
안에 걸쳐서 재벌이 한국 국민에게 야기하는 위험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을 야기
하리라는 것을.
불행하게도, 우리들이 한국 사람들과 토의해 본 바에 비추어 볼 때 한국 사람
들은 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매우 과소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노동운
동의 대표자들만을 유일하게 예외로 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오로
지 내부적인 위협에 대해서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최근 들어
세 차례 한국을 방문했었으며 이 방문에서 알게 된 바이지만, 이렇게 되고 있는
까닭은 한국 사람들 모두가 [너무나도] 재벌을 미워하고 또 [너무나도] 정부를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현 위기에 있어서 내부적인 원
인이 [외부적 원인들보다]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너무나 강력해서 다
수의 정치경제학자들을 포함한 진보적인 한국인들의 다수가 IMF 협정을 사실상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IMF
[신탁통치] 협정을 지지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IMF가 재벌
의 힘을 약화시키고 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력을 감소시키는, 수십년에 걸친
[지배세력과 노동자.민중 간의] 싸움에 있어서 노동자계급 및 민중들의 우군이
라고―또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믿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의외이기는 하지만], 재벌을 소유하고 있는 족벌들의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감소시키고 정부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더 많은 민주적 통제를 행
사하고자 노력해 온 한국 민중들의 시도들이 오랫동안 실패해 왔다는 역사적 경
험에 비추어 본다면, 능히 이해할 만도 하다. [그래서] IMF 협약의 이행이 재벌
의 힘을 극적으로 약화시키고 또 경제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을 급격히 감소시킬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IMF 신탁통치] 상황에 대해
내부적인 계급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최초의 진짜 기회라고 바라보는 것도 결
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이처럼 과소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연원하는 정치
전략들은 극히 위험스럽다. [왜냐하면] 앞에서 지적했듯이 재벌 또한 노동조합,
노동자 계급 및 정부의 행정규제에 대항하는 그들 자신의 투쟁에 있어서 IMF를
자신들의 우군이라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MF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재벌과 진보세력 양자 모두가 옳을 수는 없다.(둘 다 모두 IMF를 자기의
우군이라고 보고 있으므로! 적어도 둘 중의 하나는 잘못 판단하고 있다.) 진실
은 오히려 진보세력과 재벌세력 양자 모두가 잘못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
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즉 IMF 신탁통치와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화는 한국의 노동자와 절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적 장래에 대해 심각하
게 해악을 끼칠 것이며, 그와 동시에 재벌로 하여금 서구 및 일본의 다국적 기
업과 다국적 은행들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IMF 신
탁통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말하면―만의 하나 그것이 가능
하다고 한다면―한국의 민중들보다는 재벌들이 그렇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가능
성이 압도적으로 크다 할 것이다.
[따라서] 주된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만약 IMF 신탁통치가 철저하게 그리
고 항구적으로 집행된다면, 재벌은 극도로 약화될 것이고 정부는 경제적으로 무
력화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되고 나면 한국적인 가치를 반영하고 노동
자와 국민 대다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작동하는 경제체제를 재구축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경제적 기적을 창조하는 데 사용되어 온 정책들과 장치들 및 구조들은
모조리 말살되어 버릴 것이다. 미국과 IMF는 이러한 결과들을 가져올 일련의 요
구들, 바로 그것을 목표로 하는 요구들을 한국에 강요했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
적 경제모델의 구조적 토대를 영원히 파괴하기 위해서이며 또 한국경제를 영구
히 신자유주의화하기 위해서이다. 서구 언론들이 ‘미국이 동아시아 자본주의와
의 전쟁―단지 하나의 전투에서가 아니라―에서 승리했다고 믿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IMF의 목표는 한국을 멕시코나 아르헨틴과 같은 예속경제
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멕시코나 아르헨틴에서는 초국적 자본이 이 나라들의 경
제를 지배하고 있으며, 노동자 계급의 힘은 약하고, 불평등은 극심하며, 고(高)
실업이 만성화되어 있으며, 경제성장 추세는 극히 저조하다. 이들처럼 한국경제
는 결국 전 지구적인 금융시장에 깊이 편입되고 또 그것에 종속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해외 투자자들은 국내 이자율, 주가 및 원화 가치의 결정에 커다란 영향
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외국 은행들과 기업들은 한국경제의 핵심적
부문들에서 사실상 지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IMF 신탁통치가 끝나고 난 다음에 한국이 동아시아형(型)의 경제를 재건하려
고 시도할 경우 그러한 시도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외국인들의 “신뢰”의 붕괴,
원화의 투매(投賣), 주식시장의 붕괴, 단기 해외대부에 대한 채무연장
(roll-over)의 거부, 이자율의 앙등, 대외 부채위기 등등을 촉발하게 될 것이
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위기와 같은 위기가 재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한국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초국적 자본의 공략에 견디는 능력이 취약해진 상
태에서 그러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들에 기초한 경제 모
델을 건설하는 데 대한 구조적 장애들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우리가 만난 한국
인들 가운데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간파하고 있는 유일한 부류는 노동
운동의 대표자들뿐이었다.
나아가 IMF 신탁통치를 재벌을 패배시키는 데 활용하고 그 이후 그것을 벗어
던져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건 일단 국가가 경제를 규제
하는 권능을 박탈당하고 나면 경제에 대한 국가의 진보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규
제―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건―를 구축하는 데 대한 대내적 내지 국내적 장애
만이라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경제권력이 한번 파괴되고 나면 그것을 역전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 규제적인 경제체제는, 북반구에 있어서나 아시아에 있어서나 간
에, 불황이나 혁명 및/또는 전쟁이라는 격변을 거친 연후에나 도입되었다. [국
가 규제적인 경제체제의 수립을 방해하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구속이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러한 체계를 원점에서부터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국내 정
치적 동맹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 [한국에서도 곧] 밝혀질
것이다.
IMF 협약이 철저하게 실행된다면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깊숙히 편입되어
들어갈 텐데, 이렇게 된 상태에서 그러한 정치적 동맹관계를 형성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내내 나는, IMF가 재벌
과 정부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우군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IMF 협약을
충실하게 이행한 연후에 완전고용, 평등 및 고도성장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한국
경제를 재건하는 일이 도대체 가능할 것인지를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해 납득
할 만한 답변을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의문
을 머리에 떠올려 보지조차 않고 있었다.
우리가 면담한 사람들 가운데 신자유주의 및 IMF 신탁통치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일하게 노동운동 대표자들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그것이 불가피하
다는 숙명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들은 무력감을 느끼면서 무저항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정부 및 은행 간부들의 몇몇도 그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같
은 무력감은 이번과 같은 엄청난 사태가 도래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는 점, IMF 협정은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또 너무나 신속하게 그리고 정치적 논쟁
도 없이 채택되었다는 점,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힘은 너무나 강대하다는 점 등
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숙명주
의는 아주 위험스럽다. 왜냐하면 숙명주의에 빠지면 사태가 숙명론에서 예정하
고 일어나지 않을 경우, 신자유주의가 승리할 것임은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이러한 숙명주의는 종종 숙명론과는 모순되는 신념 즉 대
량실업, 빈곤, 거지(홈 리스) 및 불평등 등등은 한국의 기층 문화 및 도덕적 가
치들과 너무나 근원적으로 상충하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며, 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과 병존하고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 때가 되면 즉 실업율이 극히 높아질 경우, 한국 사람들은 IMF가 설계한
처방에 대해 반항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점을 확신한다. 즉 한국사람들은 IMF 협약을 철저하게 그리
고 영구적으로 실행하는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
로써 IMF 신탁통치 시기 중에 한국경제와 한국 국민에게 가해지는 손상과 피해
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에 의거해서, 한국경제에 대한
IMF 신탁통치가 약화되어 버렸을 때 IMF 신탁통치 이후에 한국경제를 진보적이
고 효율적인 경제체제로 재건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하게 될 제도, 정책 및 장
치들 가운데 최소한 몇몇은 [유실시키지 않고] 보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IMF 프로그램에 반대하고 또 IMF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정부와 재벌에 반대하는(재벌과 정부를 지지하는 IMF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IMF를 지지하는 재벌과 정부에 반대하는!) 대중적이고 훈련된 사회적 항의―시
위, 토론집회, 학생데모 및 대규모 파업 등등―를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불
가결하게 요청될 것이다.
미국, IMF, 외국인 투자자들, 한국 정부 및 재벌은 모두 사회 불안과 정치 불
안정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IMF 신탁통치 협약이 이같은 불안정을 빚
어내고 있다고 그들이 믿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의 신탁통치 강요를 철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G7 나라들과 IMF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이 아시아 나라들에 강요한 협약들이 드디어 이 나라들에서 사회적인 반
항, 불안정 및 나아가 어쩌면 폭력사태까지를 유발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다.
대규모적인 사회적 항의는, 그와 동시에, 정부로 하여금 IMF와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하는 데 필요한 ‘확실한 무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규모적인 사회적 항의는 현재의 IMF 프로그램을 철저하게 시행하고자 하고 있
는 해외의 이해관계자들에게 그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현저히 높이는 반면 그
들이 누릴 이득은 현저히 줄어들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IMF 협약의 핵심적 요소들을 제거해 버린다고 해서 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들
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
요하다. 따라서 외세들은 협약의 핵심적 요소들 모두를 사수하고자 어떤 비용을
치루고서라도 투쟁하려는 이유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따
져보면 이 점은 분명하다.
IMF 협약은 일종의 “희망사항” 일람표이다. 한국에 대한 IMF 협약은 초국적
지대-수령인들, 다국적 은행들 및 다국적 기업들,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
그들이 바라는 항목들의 사실상 거의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IMF와 미국 양자는
한국 정부가 그러한 요구 항목들 모두를 기꺼이 받아들인 데 대하여 매우 기꺼
워하였으며 나아가 반신반의하며 놀랐다. 심지어 충격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
므로] 만약 한국 국민들로부터 단호하고 단결된 저항에 직면하게 되면, 그들은
한국 정부가 당초 그들에게 허용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몫을 확보하는 것에
결국 기꺼이 동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당분간은 경제 혼란이
한동안 진행될 것이고,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저항세력의 의지와 결의를 시험할
것이다. 나아가 IMF가 한국에 제공하기로 약속했지만 아직 제공하지 않은 구제
금융 금액이 [그것들을 실제로 제공해 버림으로써] 줄어들게 되는 데 상응하여
그들의 교섭력은 날이 갈수록 저하될 것이다.
IMF 신탁통치 협약이 한국 국민에게 끼치는 피해가 늘어날수록 한국 국민의
대부분은 IMF 협약에 반대하는 사회적 항의에 동참하고자 할 것이다. 십중팔구
그렇게 될 것이다. 실업과 기업 도산은 이미 기록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이것들은 조만간 더욱 악화될 것이다.(그리고 경기후퇴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 재벌들은 대량 정리해고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러한 대량 정리해고
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빈곤과 거지(홈리스)는
극적으로 증가될 것이다. 그러나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항의가 만들어지기 위해
서는 이것들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러한 항의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IMF
협약이 철저하게 이행될 경우 한국민둘의 경제적 미래에 대해 엄청난 위험과 비
극을 야기할 것이라는 사실을 대중들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이
다.
따라서 진보세력의 지도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노동조합이건, 학생운동 그룹
이건, 대학사회이건, 또 비정부 기구이건 막론하고―자신의 구성원들에게 IMF
프로그램이 야기하는 위험성에 관하여 교육 활동을 개시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하여 IMF 및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화하려는 IMF
의 기도에 대항하는 대중선전 캠페인을 조직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같
은 대중선전 캠페인은 IMF에 대한 저항을 대대적으로 조직함에 있어서 필수불가
결한 전제조건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선전 캠페인의 성과 위에서
수행되는] 이러한 대대적 저항은 정부를 민주화하고, 재벌의 경제적.정치적 자
배력을 종식시키고, 나아가 국민 대다수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경제체제를 만
드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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