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에 휩싸인 인도네시아
뉴스그룹 alt.culture.indonesia / 5.22
대중들이 그들 자신의 권력을 깨닫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민주적 혁명이 임박
해있다. 유혈 반혁명 쿠데타 이후 삼십여년간 인도네시아를 지배해온 수하르토
대통령은 5월 21일 사임해야했다. 하비비 부통령으로의 대체는 정권을 손상시키
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지배엘리트는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다. 상층부의 허
약함과 분열에 자극을 받은 대중들은 반항하고 있다. 도시 빈민층의 지지를 받
아 학생 시위가 늘고 있다. 군부는 상하불문하고 분열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
군대가 공개적으로 시위대에 동조하고 있다. 대중은 과거의 방식으로 지배받기
를 거부한다. 이 반란은 인도네시아 사회내부와 외부 모두에 그 뿌리가 있다.
분명히 아시아 금융체제의 위기로부터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IMF의 400억달
러 긴급융자에 의해 강요된 연료, 전기, 교통의 가격 급상승은 즉각적으로 도화
선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이 정치적 위기를 갑작스런 경제적 침체로만 환원하는 것은 완전히 논
점을 놓치는 것이다. 지난 2년간 민주주의적 학생운동인 성장해왔다. 그것은 수
하르토 정권에 명시적으로 반대할뿐만 아니라 동티모르 지치과 같은 다른 민주
주의적 이슈도 포괄하고 있다. 1996년7월 혁명적인 신생 민중민주주의당
(Peoples’ Democratic Party)과 더 온건한 인도네시아민주당( Indonesia
Democratic Party, PDI)에 대한 탄압은 학생운동 참가자들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인도네시아 민주당(PDI)이 1965년 수하르토에 의해 축출된 수카르노 前
대통령의 딸에 의해 지도된다는 사실은 그 탄압이 널리 알려지는데 기여했고 인
도네시아 민중의 마음속에 정권의 반민주적 본성을 각인시켜주었다.
지난 2주간 학생시위대는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정권의 전략은 그들을 캠
퍼스안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5월 12일 평화적으로 시위하고 있던 자카
르타의 명문 트리삭티 대학교 학생 6명의 총격사망은 그 전략을 불가능하게 했
다. 군부의 행동 – 몇몇 사람들이 추측하는대로 다른 파벌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는 어떤 군대내 파벌이 한 것이든 아니든 – 은 전환점이었다. 이 순간 학생들은
민중 다수에 대한 지도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폭도들은 약탈하기 시작했다. 카
이로의 G-15에 참석하고 있던 수하르토는 귀국해야 했다. 그러나 불타는 자카르
타에 도착하자 그는 우왕좌왕했다. 국가의 정치가 갈림길에 있음을 인도네시아
사회 전체가 인식했다. 이제 혁명이 가능해졌다. 선도적 소수의 행동이 대중적
운동이 되었다. 정권은 분열하고 있고 대중은 급격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요
구하고 있다. 미움받는 독재자 수하르토가 물러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의 비민주적인 헌법도 물러나야 한다. 세계제국주의에 대한 이 사태의 심각성은
지난주 버밍험의 G8지도자 모임에서 확인되었다.
몇 년간 독재에 무관심하던 그곳에서 이제 수하르토의 사임요구가 나왔다. 매
들린 울브라이트가 가장 최근의 요구자이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인도네시아 사회가 수하르토의 이른바 ‘신질서(New Order)’ 체제에 의해
체계적으로 비정치화되었기 때문에 인기있는 대안적 지도자가 없는 것이다. 변
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신들의 힘을 차츰 배워가고 있는 민중이 정치를 되찾
아가고 있다. 정권으로부터의 미끼 – 가격상승 중지 또는 수하르토 사임 – 가
이제 대중들을 오히려 더 자극할 뿐이며 새로운 출발에 대한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고있는 것은 성숙해진 혁명 前단계의 대중운동의
상승이다.(前이라함은 아직 지배체제에 대한 물리적 타격이 현재로서는 미성숙
하다는 뜻일뿐이다.) 그러한 사태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해결될 수 있
다.
인도네시아의 각 계층과 계급의 앞날은 불확실하다. 군부의 일부 파벌에서 주
장하는 반란 진압은 현재의 분열을 화해시킬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운
동은 결코 완전히 의식적이지 않다.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경쟁하고 있고
검증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중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교훈은 풍부할 것이
다. 결과가 어찌되는 인도네시아는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만들
어지고 있다. 그 전개와 과거의 실수와 그 영웅주의와 그 희생 – 모든 것들이
밑으로부터 밀려오고 있다. 90년전 네델란드에 대항한 민족적 투쟁의 탄생을 기
념하는 ‘국민 각성의 날’에 치뤄진 수요일 대중 시위는, 유혈을 우려하는 ‘지도
부’에 의해 자카르타에서는 취소되었지만, 전국을 휩쓸었다.
군부 파벌의 점점 심해지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물러날 때까지 의사당
에 남아있기로 작정한 학생들은 아직도 의회 건물을 점거하고 있다. 장성들이
‘천안문 사태’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현재의 육군 지
도자인 위란토는 온건파로 알려져있다. 그의 경쟁자이자 수하르토의 사위인 수
비안토는 강경파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군부는 타격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내의 분열은 커지고 있다. 군부에게는 놀랍게도 국회의장이 수하
르토 사임 요구에 동조했다. 상층의 그러한 분열은 하층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의심할바 없이 자라고 있는 혁명적 운동은 자발적으로 민주적이고 좌익적이다.
이제부터는 의식성이 열쇠이다. 맑시스트들은 조직해야하고 운동으로 통합되어
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계급으로 구성될 수 있고 민주적 혁명의 헤
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다. 기초적 운동이 전개되면서 민중은 이념과 위기에 대
한 해답을 갈구할 것이다. 긍정적인 앞길이 추구될 것이다.
수하르토는 어떻게 30여년간 권력을 유지했나? 왜 서구는 그를 지지했나? 화
교들은 어떠한가? 동티모르의 자치는 어떠한가? 군부의 역할은? 그리고 IMF는?
이 모든 사안들 – 사실 현재 인도네시아 사회의 전체 기반이다 – 은 정권을 몰
아내려는 투쟁에 의해 질문될 것이다.
그리고 위험이 있다. 2천8백만을 거느리는 무하마디야 이슬람 교육 및 사회단
체의 지도자인 아미엔 라이스(Amien Rais)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는 대중운동
의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나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대중운동의 지
도자가 될 것인가? 이 반동분자가 혁명적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하는가?
극동 경제평론(Far Eastern Economic Review, 5월 14일)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수하르토에 대한 안전한 부르조아 대안이라는 것을 입중하려고 했다.
“의심할 바없이 IMF가 유일한 대안이다. 나는 그것을 필요악이라 부르겠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IMF를 멀리할 수 없다. 그러나 물론 경제적 주권을 IMF에게
내주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우리의 민주적 노력을 밀고나가기 위해 미국의 도덕적 지지가 필요하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일반적 프로그램에는 맞는 주장이다. 냉전이 끝나기 전부
터 미국은 반공 독재를 반공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대체하기 위해 헤게모니
를 이용해왔다. 칠레, 아르헨티나, 엘 살바도르, 남한, 필리핀 그리고 남아프리
카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하르토는 구시대의 유물이며 그
의 부패한 정권은 국제경제기구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장애물이었다.
아미엔이 권력을 잡을 준비가 되어있다하더라도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이것은 현재 민중민주당(PDP)이 추구하는 전술에 문제를 제기한다. 5월 14일 나
온 발표에서 그 당의 중앙지도부는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모든 민주주의적 인
사들에게 ;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축출된 인도네시아민주당당수), 아미엔 라
이스, 부디만 수하트미코(구속된 PDP의장), 스리 빈탕 파뭉카스(구속된 인도네
시아 연합개발당 의장)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은 당신이 수하르토를 대신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발표할 시간이다. 이것은 곧 이루어져야 한다. 수하르토
는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사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술은 국민의 – 계급연합이라는 뜻이다 – 연합정부를 요구하는 민중민주
당(PDP)의 노선과도 일치한다. 이것이 의회를 대체할 독립적 국민회의와 대통령
을 ‘선출할’ 국민협의회를 빨리 준비하자는 요청에 의해 지지받고 있지만 연합
의 일부로 아미엔 라이스를 포함시키는 것은 주도권을 반혁명세력에게 넘겨줄
위험을 수반한다. 1979-81년의 이란 혁명과 종교적 파시스트 지도자에 의한 대
학살의 기억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국가들인 이 나라의
이슬람 세력들은 근본주의자들과는 동일하지 않은 반면, 라이스와 같은 인물이
이끌고 있는 민족주의 혁명세력들은 근본주의자들과 단지 똑같은 행태롤 보일
것이다. 65년과 66년의 위기는 수하르토의 ‘신 질서(New Order)’의 탄생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인도네시아 공산당(Communist Party of Indonesia, PKI)에 의해
음모적으로 꾸며진 연합쿠데타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도네시아 공
산당(PKI)은 3백만의 회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에서 정권을 잡지 않은 공산
당중가장 거대한 당이었다. 그들의 준모택동주의자들의 공식적인 공산주의자
강령은 ‘반제국주의적’ 민족 자본가들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후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네덜란드 식민통치를 종식시키고 정권을 잡은 수카르노 대통령에 의
해 구체화 되었다. 65년의 쿠데타는 수카르노 자신이 집권당시의 우익정권을 숙
청하기 위해 꾀해진 것 처럼 보여져 왔다. 그리고 이것은 인도네시아 공산당
(PKI)의 지지를 받았다. 이 전략은 재앙으로 바뀌었고, 반쿠데타 세력으로 ‘헌
법을 수호하기 위한’ 수하르토가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얼마후 인도네시아 공
산당(PKI)은 일소되었다. 15만의 사람들이 반공산주의자 숙청과 반화인 숙청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아미엔 라이스(Amien Rais)는 진저리가 날 정도로 이 숙
청기간을 ‘민중 권력’의 한 예로서 언급했다. 극동 경제 평론(Far Eastern
Economidc Review)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도네시아는 민중 권력으
로 인해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고 1966년에 학생들이 수카르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군과의 연합을
통해 다시한번 민중권력을 보여주었다”
분명하게도 인도네시아 민중민주당(PDP)이 아미엔 라이스에게 권력을 주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세계 네 번째의 인구를 가진 이나라에서 절대다수
인 자바인들은 압도적으로 이슬람교도인 반면 화교, 동티모르(대부분이 카톨릭
인), 서 파푸안, 그리고 Sumatran Ache 인들을 포함한 소수종족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억압받는 소수종족들에게 현재의 상황은 기회일 수 있다. 지속적으로 민
주적인 프로그램은 민족적으로, 인종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해야
만 한다. 혁명의 열기 속에서, 새로운 정치는 태어나고 낡은 확실성은 버려진
다. 구 마오주의전략들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인접한 필리핀과 중국 자체에
서도 대부분 신뢰를 상실한 반면, PKI가 대중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은 그것의 부
정적 유산은 완전히 지워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역사
는 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결과가 어떠하든 -체제가 안정적인
이행을 조직할 수 있든 없든, 피로 얼룩진 탄압이 있든 없든, 대중들이 새로운
새로운 문제들에 대처하고 다하기 위해 앞을 향해 일어서든 않든 – 세계는 인
도네시아의 운동이 과거 혁명들의 교훈을 배울 때에만 인도네시아로부터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틀림없이 이란 혁명과 1965년 인도네시아의 위기는, 대학살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학습되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혁명은 새로운 세기를
위한 추세(tone)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민주적 혁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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