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섬이 멀찌감치 보이는 매향 1리 해안가에 위치한 ‘갯마을 횟집’은 주말이면 타지 손님들로 톡톡한 재미를 봤었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그 많던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신문마다 떠들어 대는데 누가 회 먹으러 여기로 오겠어요.” 주인 김복기(44)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기자를 붙잡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거 감수해야죠. 그래야 미군기지도 철수시키고, SOFA도 개정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김복기씨는 1988년 12월 전만규(매향리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매향리 미군 사격장 점거농성에 참가했었다. 당시 전만규 위원장은 그로 인해 수원교도소에서 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김씨는 전 위원장에 대해 “끈질긴 사람이야, 나는 중간에 그만 뒀지만 그 사람은 높이 평가해야 해”라고 말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전 위원장은 다시 수원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그가 차디찬 감방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지난 6월 20일 전만규씨로부터 ‘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그 편지는 6월 23일 저녁 매향리 주민 대책 본부 앞에서 벌어진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위한 범시민 한마당’에서 주민들에게 낭송되었다.

그 편지에서 전만규씨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편지의 요약.

[주민에게 드리는 서한 제 1호]

주민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소생(전만규)은 주민 여러분의 염려지덕에 몸성히 잘 있습니다. 12년전 오늘 본건 매향리 미공군 사격장 점거 시위 및 시설물 손괴 등으로 구속기소되여 바로 이곳 수원교도소 감옥에 수감되었던 사실이 엊그제 일같이 주마등처럼 머리는 스쳐 가는 회상의 감회가 새롭습니다.

주민 여러분!

그야말로 전쟁의 공습을 방불케 하는 50년간의 전쟁지옥을 종식시키고 매향리의 해방을 위하여 13년째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역시, 호랑이 앞에 하룻강아지 격으로 역부족인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현실(미국에 맹종하는 공권력)은 분노에 앞서 비애와 자괴감 마저 듭니다.

도대체 우리 주민들을 미군 조종사들의 담력을 키우며 실전의 생동감을 주는 실험용으로 활용하는 가운데에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하는 것도 모자라, 고의적으로 장난 삼아 우리 주민들을 향하여 연습포탄을 발사하고 중형폭탄을 투하하여 보금자리인 가옥마저 박살내는 반인륜적이고 살인적인 만악의 미군 놈들은 구속하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만행을 중단하라고 정당 방위적 항의 표시로 주민대표(전만규)가 사격 깃발을 찢었다고 해서 구속하여 2중 3중의 고통을 가해하는 국가 공권력에 대하여 한심스럽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시골 촌놈(전만규)을 기물 손괴등 범법적용을 씌워 미군 놈들에게 알아서 충성하는 공권력의 반민족적 처사에 서글픔과 함께 이 땅 조국이 이제는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전만규가 악법 몇 구절에 의하여 실형을 받고 출옥하게 되면 나의 가족들을 데리고 대한민국의 종주국인 미국으로 이민을 갈 것입니다. 들쥐가 들벅거리는 식민지에서 더이상 살고 싶지도 투쟁의 가치와 의지도 갖고 싶지 않은 현실에 더할 수 없는 서글픔과 비애감에 가슴 쓸어 내립니다.

매향리 주민 여러분!

우리 매향리 땅을 미군들에게 모두 내어주고 우리 주민들은 전만규와 함께 이 지구상에서 가장 힘세고 가장 안전하며 쾌적한 미국 본토로 이민을 갑시다.

두서없는 필을 이만 줄이겠습니다.

주민 여러분들의 가내가 두루 평안 하시옵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천년 6월 9일 수원구치소에서 전만규 올림

‘미국으로 이민가고 싶다’는 역설적인 말을 할 정도로 그는 서글픔과 비애감에 젖어 있는 것이다.

매향리 주민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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