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학살, 기념식에 수만명 참여

메히꼬 노동뉴스 10/2

1968년 10월 2일 메히꼬 정부 사격수들이 메히꼬 시에서 있었던 학생시위대에

총을 쏴 수백명이 죽었다. 그당시 메히꼬내 미국 지지자들은 항의라는 말을 거

의 한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러나 메히꼬 진보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죽은 학생들의 피는 여전히 삼문화

장(Plaza of Three Culture)으로 알려진 뜨라뗄롤꼬 광장(Tlatelolco Square)에

서 스며나오고 있다. 10월 3일 학살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십이만명가량이 광

장에 모였다. 기념식의 주요 주제는 ‘진실과 정의’였다.

1968년 학생시위 의장이었던 라울 알베레스 가린(Raul Alvarez Garin)은 대중

들에게 학살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이들은 여전히 많다고 했다. “30년이 지났

고 우리는 여전히 진실이 감취진 채로, 증거와 결과물들은 숨겨진 채로 권위를

찾고 있다”고 했다. 여권인 제도혁명당(PRI)에게 학살에 관계된 기록을 공개하

라는 기본적인 요구를 1968년 이래 계속해 왔다. 제도혁명당은 학살을 “군사기

밀사항”이라고 지칭한다. 전국 사빠띠스타 해방군 지도자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시위대에게 편지를 보냈다. “1968년 시위는 메히꼬 역사에 한가지 분명한 방식

으로 불을 지폈다. “그때부터 두 나라가 갈라졌다. 두 나라가 갈린 것은 권위주

의와 편협과 억압과 아주 잔혹한 착취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두나라 모두

민주와 포용과 자유와 정의를 건설하기 원했고, 원한다.”

시민혁명군(EPR)에 속해 있다는 혐의로 최근 아까뿔꼬(Acapulco)에 수감중인

에리까 사모라(Erika Zamora)라는 학생이 보내온 글도 읽었다.

발언자들은 메히꼬 정부의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과 시민혁명군(EPR)에

대한 계속적인 억압과, 특히 EZLN의 지지기반인 치아파스의 계속적인 군사화에

대해 언급했다. 시위는 메히꼬 총독 조지 마드라소 꾸엘라가 12월 치아파스 악

떼알에서 있었던 EZLN 지지농민들을 학살했던 PRI 고위관료들을 무죄로 입중한

바로 다음날 일어났다. EZLN지지자들은 정부가 PRI지지자들을 무장시켜 마을사

람들을 선제공격하는 데 도왔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남부지역 선거전날에 EZLN 관할지역에 경관을 증

가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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