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 자카르타 시위대 쏘다

영국독립신문 98/11/13

1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부대 소속 바이 디아미르 오설리반과 리차드 로이

드 패리는 수천명이 수도중심가로 행진할 때 국회 앞에 있는 비무장 시위자들을

쐈다.

지난 밤에는 인권감시자들이 병원에 들어가는 것을 처음에는 저지당했고, 나

중에 알려진 바로는, 이번이 수하르토 대통령이 6개월 전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자카르타에서 일어난 가장 심한 진압으며, 50명이 다쳤다고 한다.

자동소총을 소지한 경찰과 군인들이 내년에 있을 민주적인 선거준비와 법률

개정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회기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모인 국회의사당 쪽으로 행

진하던 시위자들의 머리를 향해 총을 쐈다. 진압대는 최루탄을 쏴댔고 영국제

장갑차에서 물대포를 뿌렸다.

군인들이 쏜 최루탄은 공포탄이며 고무가 뒤덥힌 것 같았는데, 시위자들에게

는 한번 넘게 직접 쐈다. 구급차는 이 상황에서 쫒겨나듯 갔고 목격자들 말로는

적어도 한명이 다리에 총탄이 박혔다고 했다. 이 상황을 주시했던 한 서방 외교

관에 따르면, “군대와 경찰이 필요 이상으로 조치했고, 이들에 대한 위협적인

행동들은 없었다”고 한다.

이번 상황은 32년간의 수하르토 독재정권 사퇴를 촉구하는 무제한 항쟁과 전

국시위가 있었던 5월의 광경을 비슷하게 연상시켰다. 수하르토는 그의 가장 친

한 친구이자 부통령인 하비비에게 권력을 넘겼고 하비비는 자신이 약속한 민주

적인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 인민자문위원회(People’s Consultative Assembly,

MPR)와 이번 주 모임을 소집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인들은 하비비를 옛 정권의 하수인보다 못하게 여긴다. 국

회도 수하르토인맥과 선거를 거치지 않은 군대 장성들로 이루어졌다. 국회는 13

일 국회법령을 발효시키면 학생조직들이 내세운 요구들을 묵살시킬 수 있을 것

이라고 예상했다. 학생들의 요구에는 군대 정치개입 철폐와 수하르토 재산축적

에 대한 조사도 들어간다.

“수하르토는 32년동안 사람들로부터 뺏고 부정부패로 모은 백 7십억이나 되는

재산(천 7백억?)으로 호위호식했다.” 이 문구는 학생 선언문중 일부이다.

5월 이후에도 중간중간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12일 있었던 시위에는 처음으

로 어마어마한 인원이 학생들과 연합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인도네시아 경

제위기로 가장 열악해진 빈민가인 자카르타의 캄퐁에서 왔다.

자카르타 순환도로 하나는 군중들로 막혔다. 수백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군

대는 행진을 막으려하다 옆으로 쓸려났다. “영원하라 해병이여”라고 사람들은

해병대를 향해 외쳐댔다. 해병대도 개혁해야 한다고 전적으로 믿는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 명문대학에 다니는 한 역사학도는, “이번 시위는 독재 정권이 대

중을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며 국회로 행진했다.

군대는 해가 떨어지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하자 자리를 정렬했다. 학생

조직은 그 중 한 집단이 유료도로를 막고 있는 군인들을 통과해 구급차를 운전

하려 했을 때 단 한번 기강이 무너졌다. 이때 전경들은 막대로 창문을 부수고,

그 사이에 군인들은 수 십번 공포탄과 고무탄을 공중에 쏴 시위자들을 철수시키

려 했다.

이때 구급차에 있던 학생 네 명이 다쳤고, 전경도 한 명 다쳤다. 장교들은 군

인들에게 다 쓴 탄약통을 줍도록 명령했는데, 진압의 증거로 다 쓴 탄약통 몇

개를 모으던 한 서방 외교관은 몸수색을 당했다.

5월 수하르토 몰락을 앞당긴 사건, 학생 여섯명이 터지지 않은 최루탄에 맞

아 죽는 일은 반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군은 어느 정도 자신들의 권력을 발휘해

야 하는지 난감해하고 있다. 어제 인도네시아 국방부장관인 위란토 장군은 수요

일 저강도 폭력에 군이 관련된 것에 대해 “사죄”했다. 그는 또, “인도네시아 전

군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사죄하며,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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