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첫눈이 내린 지난 17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 입구. 두터운 몸뻬 차림에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쓴 이순희(77·여)씨는 이날도 큰 대야 2개에 담아온 땅콩, 깨 등을 파느라 여념이 없다.
“먹고 살려고 이 일을 하는데, 요즘엔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통 사는 사람이 없어.” 장사가 신통치 않다고 푸념하는 할머니에게 점점 추워지는 날씨 따위는 아예 관심거리가 못된다. 할머니가 파는 땅콩과 깨는 한 봉지에 2천원이다. 서울 시내 여러 곳의 도매상한테서 떼어와 몇백원을 남기고 판다. 물건을 떼러 갈 때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할머니에게 지하철은 생계의 터전이자 생활공간인 셈이다.
“우리같은 노인네들은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아. 계단을 오르내릴 때 힘들지만, 지하철 안에서는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해주니 편안하게 다닐 수 있어.”
칠순을 훨씬 넘긴 나이인데도 할머니가 좌판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생계 때문이다. 경비 일을 하던 남편이 지난 91년 심장병으로 숨진 뒤 직접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몰렸다. 자녀들이 있긴 하지만 야속하게도 다들 제 살기에 바쁘단다. 할머니가 미아삼거리역에 터를 잡은 것은 2년 전이다.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는 할머니는 7시30분쯤이면 이곳에 나온다. 크게 힘든 것은 없지만, 요즘엔 다리 관절이 쑤시는 게 마음에 걸린다.
하루 수입을 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만원씩만 벌면 좋지”라며 쑥스런 웃음을 보인다. 지난해부터는 물건 도매값이 올라 1개당 이문이 떨어졌는데도, 좌판 물건은 싸야 한다며 그 가격을 고집하고 있다.
버는 돈의 대부분은 15만원 월세, 식비, 목욕비, 난방비, 약값 등으로 쓴다. 혼자하는 살림이라 씀씀이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수입이 워낙 적은 터라 빠듯하다.
“뭐 딴거 없어. 단속에 걸리지 않고 편하게 장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김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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