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정부수립 4개월만인 48년 12월 여순사건의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제정된 뒤 그동안 11차례 개정됐다.
특별형법인 국보법이 만들어진 지 5년만에야 일반형법이 제정된 사실 등은 당시 국보법이 좌우익의 유혈대립이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서둘러 만들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6개 조문만으로 이뤄진 제정 당시 국보법에는 법원 판결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의 결정만으로 문제단체를 해산시킬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우려는 58년 당시 집권 자유당이 야당의원들을 감금한 채 단독국회에서 국보법 3차 개정안을 통과시킨 `2·4파동’으로 현실화했다. 3차 개정법은 △헌법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죄 △`인심을 혹란하는’ 이적행위의 처벌조항과 함께 △국가기밀을 군사정보 뿐 아니라 사회·문화 관련 정보까지 확대해석해 `막걸리 국보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건국 초기 긴박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국보법이 치안·군사적 목적을 주로 반영했다면, 3차 개정 국보법은 주 적용대상을 빨치산과 무장공비에게서 국내 반정부인사에게 본격적으로 옮긴 셈이다.
국보법은 4·19와 함께 `인심혹란죄’가 없어지는 등 대폭적인 개정을 거쳤으나,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또다시 반국가단체에 대한 `고무·찬양죄’ 등을 담은 반공법을 제정해 정권유지를 위한 탄압수단으로 남용하기도 했다.
80년 집권한 신군부는 반공법을 폐지하고 통합 국보법을 마련했다. 그러나 반공법의 찬양·고무죄나 이적성 개념 등 모호한 규정들은 고스란히 국보법에 옮겨졌다. 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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