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민주주의총회-새롭게 등장하는 미국청년운동의 징후

피플즈 트리뷴(People’s Tribune) 98/11/8

크리스 마힌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인터내셔널뉴스 제33호 (1998년 11월 12일 목요일)

편집자 주 : 이 기사의 개념들은 7월 ‘신(新)미국을 위한 혁명 연맹’ 전국 사무실에서 열린 학생 회의에서 노련한 혁명론자인 넬슨 피어리(Nelson Peery)가 ‘청년과 혁명’을 주제로 연설하고 이루어진 토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11월 5일부터 9일까지 수백명의 학생활동가들이 위스콘신 매디슨에서 대학 민주주의 총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새로운 전국학생조직 건설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이다.-그것은 명확히 기업권력에 대한 토론회(teach-ins)의 연속선상에 있는 계획이다. (토론회는 내년 초에 수십개 대학에서 개최될 것이다)

총회는 학생운동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많은 징후들 중 하나이다. 이러한 학생운동의 고조는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오늘날의 학생활동가들은 몇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학생운동이 과거의 운동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오늘날의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와 씨름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어떠한 시대도 그 시대의 본질, 역사에서 그 시기의 함의를 드러내는 하나의 중심요소에 의해 평가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함의”는 청년운동을 포함한 모든 것의 조건이 된다. 우리 시대의 내용은 인간노동에 의한 생산으로부터 기계에 의한 생산으로의 이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빈곤은 더 이상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필요로하지 않는 자본가들에 의해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내쫓김에 따라 함께 증가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세계적 규모의 새로운 청년운동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프랑스, 미국까지 오늘날 젊은이들은 교육, 문화, 미래를 위한 투쟁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더 이상 새로운 청년운동이 생길것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어디에서 그 주동자들이 운동을 이끌어 갈 것인가이다.

이러한 새로운 청년운동은 과거의 학생운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미국 역사의 많은 시기들이 젊은이들의 노골적인 환멸에 의해서 평가되어 왔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수십년에 걸쳐 문헌상으로 수백개의 청년조직이 미국에서 조직되었다.

예를들어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청년 공산주의자 연맹(Young Communist League)은 대량 생산 산업부문의 노동자들을 노조 조직화하는 운동에서 청년부문을 담당했다. 1940년대에 미국민주학생연맹(American Youth for Democracy)은 파시즘 반대투쟁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4가지 자유(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욕구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역자)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에 젊은이들이 결집하도록 도왔다. 이후에 남부흑인청년 의회(Southern Negro Youth Congress)와 학생비폭력위원회(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는 법적 차별에 대항하여 싸웠다.

이러한 각각의 조직들은 그 시대의 특별하고 중대한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한 문제가 해결됐을 때 조직은 사라졌다. 오늘날 잠재력은 훨씬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 새로운 청년운동은 하나의 문제가 해결될 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청년운동은 생활필수품이 사회에서 분배되는 방법을 바꾸지 않고는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청년운동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혁명운동은 사회적 약자에 의해 이끌어졌다. 체제의 왼편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에 들어가기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체제 안으로 들어가려고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등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떼어내기 위해 싸운다. 그들은 인간적 가치에 기반한 다른 제도들을 창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오늘날의 청년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체제는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노동력에 의하지 않는 생산은 다만 돈이 사용되지 않는 분배만을 요구한다. 그것은 생활필수품이 사람들에게 지불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의해 분배되는 사회이다. 중도적인 조치로는 사회의 문제들을 풀수가 없다. 왜냐하면 생산자동화는 중도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의 청년운동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확장될 수 있고 이전의 운동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 만약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안다면. 오늘날에는 즉각적인 요구에 대한 투쟁과 장기적인 운동의 목표 사이의 구별이 없다. 오늘날 미국의 학생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보편적인 투쟁의 한 부분인 세계 청년운동의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그것이 청년운동이 가능한한 크고 넓어져야 하는 이유이면서 대학민주주의총회(와 다른 노력들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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