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영화 <꽃파는 처녀>는 이적표현물의 대명사 였다.
대학가에서 상영하려 할 때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수천명의 경찰병력이 캠퍼스에 투입되기 일쑤였고, 누구도 <꽃파는 처녀>의이적성에 이의를 달지 못했다. 일부 한총련 대학생들은 이적표현물임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 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꽃파는 처녀>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결정한 올 4월 서울고 법 형사4부의 판결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재판부는 독일유학 시절 <꽃파는 처녀> 등 10편의 북한영화를 빌려본 혐의(이적표현물 소지)로 기소된 박아 무개씨에 대해 부분무죄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당시 이 판결은 `고무줄 국 보법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한 판례로 인권단체들의 환영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및 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기소된 한총 련 산하 노래패 `천리마’의 김아무개(24)씨 등 6명에 대해 선고유예 결정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판결문에서 “김씨 등이 북한노래를 개작한 이른바 `민중가요’를 부르기는 했으나 국가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북한을 `고무찬양’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적단체 구성 혐의에 대해서는 “어떤 집단이 이적표현물을 만들었다 해서 이적단체로 단 정할 수는 없다”며 아예 무죄결정을 내렸다.
법원의 이런 판결들은 헌법재판소의 찬양고무죄 한정합헌 결정(90년 4월 )에 따라 91년 5월 신설된 국보법 1조2항을 적극적으로반영한 결과다. 신설 국보법 조항은 “국보법을 확대해석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못박았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 추세가 `국보법의 엄격한 해석’ 쪽으로 완전히 가닥 을 잡았다고 보기는 아직 무리다. 오히려 대법원이나 대다수 하급심 판결은 여전히 과거의 `엄벌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 3월 대법원은 화가 신학철씨의 남북통일과 미군철수를 묘사한 그림 중 평화통일을 상징하는 윗부분만을 부채에 인쇄해 판매한 혐의(찬양·고무 )로 기소된 이아무개씨와 화가 신씨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1·2심을 파기 하고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또 지난 8월 서울지법은 지난해 북한의 잠수정 침투사건과 관련해 피씨통 신에 “게릴라전 수행을 위한 무장공비 침투라고 단정할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찬양·고무)로 기소된 윤아무개(29)씨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윤씨의 집에서 이적표현물이 발견된 사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는 이유를 들었다.
국보법 판결에 관한 한 재판부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곧 재판부가 누구 인가에 따라 유·무죄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법 이전의상황’이 수시로 벌 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지법의 한판사는 “90년 헌재 결정 이 후 많은 판사들이 국보법 적용에 신중을 기하고는 있으나, 무겁게 처벌했던 과거의 관성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겨레>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공동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 자들은 국보법의 가장 큰 문제로 인권침해 소지와 함께정치적 오·남용 및 법해석의 모호함을 들었다. 지금처럼 고무줄해석을 할 수 있는 조항들이 남 아있는 한 법원의 오락가락하는 판결사례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 다.
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는 “해석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 는 법을 방치한다면 법의 오·남용에 따른 피해자 속출을막을 수 없을 것” 이라며 모호한 독소조항을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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